<추격자>와 단편영화의 힘!!
2008년 2월 20일 수요일 | 백건영 영화평론가 이메일


오랜 만에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 나홍진 감독의 상업 장편 데뷔작 [추격자]를 보았다. “물건이 등장했다”는 기자시사회에서 흘러나온 입소문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영화는 관객의 바람을 온몸에 안고 쫓는 자와 이러한 기대감을 하나씩 깨뜨리며 쫓기는 자 사이의 추격전을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미진이 사투하는 모습과 엄중호 곁에 붙여놓은 그녀의 딸을 수시로 보여줌으로써 소외되기 쉬운 인물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데뷔작에서 이만한 성과를 거둔 전례가 그리 많던가.

돌아보면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 최동훈의 [범죄의 재구성] 정도가 만장일치에 가까운 평단의 극찬을 받으면서 데뷔했지만, 관객까지 사로잡은 작품은 [범죄의 재구성]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서 하드고어에 가까운 스릴러 [추격자]가 보여주는 행보는 주목할 만 하다. 관람등급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으며 관람 후 만족도 또한 최고치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성급한 언론은 “한국영화의 희망” 이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한다.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나 전형적인 뒷북이다. 알려진 대로 나홍진 감독은 단편영화를 통해 기량을 인정받았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단편영화를 찍는 가능성 높은 신인일 뿐이었다. [완벽한 도미요리]와 [한]을 통해 갈고 닦은 실력의 결과는 그의 말대로 “후회 없이 쏟아 부운” [추격자]로 나타났다. 가히 단편영화의 힘이 상업 장편영화에서 고스란히 발휘되는 순간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홍진의 등장은 딜레마에 빠진 한국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사건임에 틀림없다.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단편영화를 찍음으로써 영화감독에의 꿈을 시작한다. 그런데, 단편영화라는 것이 그리 만만하게 볼 대상이 아니다. 길어야 30분 미만인 시간 동안 감독 자신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가운데 압축과 터뜨림을 두루 도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작비랄 것도 없는 소자본으로 한편에 영화를 찍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오로지 필모그래피가 쌓일 뿐이니, 밤새 이어지는 술자리와 재능에 대한 상호부조성 칭찬만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스탭과 배우들에 대한 유일한 보상일 따름이다. 비록 어설프고 허술한 촬영현장이지만 미래의 대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찍은 영화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담보물이 되어 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김삼력 감독의 [아스라이]에서 주인공 상호는 자신의 후배가 “영화 좆도 못 만들면서 영화제 돌리지나 말지 쪽팔리게...상금 타먹으려고 영화 찍느냐”고 대들자, “그래도 찍었으면 돌려봐야지, 돈을 구해야 영화를 찍지, 그러려면 작품이라도 부지런히 돌려야지” 않겠냐고 말한다. 재능 없이 열정만 품고 살아온 영화지망생의 서글픈 탄식이지만 그나마 영화제라도 초청 받는 것이 얼마나 운 좋은 일인가. 김삼력 감독만 해도 10년 세월을 단편영화를 통해 내공을 닦으며 때를 기다린 끝에 비로소 상업 장편 [아스라이]를 찍을 수 있었다. 눈을 돌려 보면 주위에 이런 젊은이들이 꽤 많이 있다. 영화제마다 응모해도 몇 년 동안 한 번도 초청되지 않는 감독들이 부지기수다. 그래도 이들에게 (단편)영화는 삶의 의미이자 존재증명에 다름 아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단편영화에서 나름의 지명도와 재능을 보여주었던 감독들의 대다수가 상업영화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단편영화와 절연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제 앞가림에 여유가 없는 탓이기도 하고, 더러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옴니버스 작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이마저도 유명세를 탄 이들에 한정된다. 상업 장편으로 데뷔한 감독이 단편영화 찍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쉬운 대목이다. 차기작을 기다리는 동안 공부하던 시절로 돌아가 단편영화를 통해 초심을 다잡고 재충전하는 기회로 삼아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점에서 학생시절 인상 깊은 단편 [지리멸렬][백색인]과 [2001 이매진]을 연출했던 봉준호와 장준환이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에도 틈나는 대로 단편영화를 찍어온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년 묵은 쑥을 찾는 사내가 있었다. 모친의 병구완을 위해서는 반드시 3년 된 쑥이라야 했다. 대체 누가 쑥을 3년씩이나 묵힌다는 말인가. 세상천지 어디에도 3년 된 쑥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3년이 흘렀고 모친은 임종했다. 이 어리석은 남자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3년 전에 쑥을 심었더라면 그는 모친을 살릴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3년 묵은 쑥을 찾을 생각만 했지 쑥을 심어 3년을 기다릴 생각은 안 했던 것이다.

어느 때보다 한국영화가 어렵다는 소리가 넘쳐나는 시절이다. 당장 살아남아야하니 자본의 선 순환구조를 위해 자금회수가 빠른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참신한 창작물보다 검증된 원본 있는 이야기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도 당연할 테다. 하지만 한국영화계가 대작에 한 눈 팔고 흥행의 단맛에 취해있는 동안, 매체들이 스타에 넋이 빠져 여배우의 쇄골 따위를 친절하게 전달하는 동안, 현장비평가들이 구색 맞추기로 독립영화를 언급하는 동안에도 단편영화 감독들은 (너무나 익숙한)경제적 어려움을 당연시 여기며 영화를 만들어 왔다. 나홍진은 이렇듯 척박한 토양이 배출해낸 단편영화의 힘을 상징하는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충무로 제작자들이 독립영화제를 찾고 졸업영화제에 관심 갖는 것은 될성부른 나무를 찾기 위해서일 터이다. 이왕이면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제작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찾아낸 신인 중에 제 2, 제 3의 나홍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단언컨대 한국영화의 미래는 단편영화에 있다.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네오이마주 편집장)

(총 21명 참여)
sasimi167
사람마다 다르겠죠.   
2008-12-30 13:16
godwls86
나홍진 감독님의 시나리오 연출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진짜 최고였어요~   
2008-05-28 12:51
kyikyiyi
단편영화들 많이 만들어지길   
2008-05-07 16:53
fatimayes
단편영화만드시는분들 화이팅!   
2008-05-07 15:48
callyoungsin
단편영화 화이팅~   
2008-05-06 13:45
dlrmadk
추격자의 감동이..ㅠ_ㅜ   
2008-03-04 01:04
ldk209
제작자가 감독의 단편 보고.. 반했다고 하든데....   
2008-03-02 11:47
jhkasuka
음....관객에게 자신의 의도를 화면에 잘 풀어서 전달 하는 것도 감독의 능력 아닐까요..단지 고상 하고 뭔가 있어 보일려는 단편 감독들도 참 많은데 무조건적으로 단편영화가 미래라는건 좀......   
2008-02-2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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