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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 감독의 <소년,소년을 만나다> 연출일기#2, 꽃미남 흑기사들 광수를 구원하다
2008년 11월 7일 금요일 | 김조광수 감독 이메일


꽃미남 흑기사들, 광수를 구원하다.

큰일이다.
시나리오가 써지질 않는다.
컴퓨터를 켜놓고 앉아 있지만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있다.
고작 써 놓은 것이라곤 '소년, 소년을 만나다(이하 소소만)'라는 제목 뿐.
제목 밑으로 커서만 껌뻑이고 있다. 껌뻑 껌뻑.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는 건지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허.
이래가지고 연출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 난 어쩌면 좋아. ㅠ.ㅠ

밤을 꼴딱 새우고 퀭한 눈 비비며 사무실에 나갔다.
다들 내가 잠을 못 잤는지 관심도 없다.
아, 내가 시나리오를 한 줄도 못 썼는데도 세상도 회사도 그냥 잘 돌아 가는 구나.
엉엉 울고 싶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온통 시나리오뿐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도 커서만 껌뻑일 뿐 한 줄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하루를 다 보낼 즈음이었다.

"형, 안녕하세요?"

어,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
'도둑 소년'이라는 단편을 만든 민용근 감독이었다.

 첫번째 흑기사 민용근 감독
첫번째 흑기사 민용근 감독

사무실로 들어오는 그를 보면서 나는 외쳤다. 브라보!
그가 나의 첫번째 흑기사였다.
그에게 내가 쓴 시놉시스도 아닌, 시나리오도 아닌 어중간한 글을 보여주며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초고를 써주면 내가 잘 다듬어 보겠노라고.
그는 12년 선배(민용근 감독과 나는 한양대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인 나의 연출 데뷔작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 대해 엄청 부담을 가졌지만 등 떠밀듯 막무가내로 안기는 나를 어쩌지 못했다. ㅋㅋ
이렇게 나는 고비마다 흑기사들을 만나곤 했다.^^*

시나리오가 만들어 지면서 내 첫 연출작 소소만의 작업도 활기를 띠어 갔다.
영화 작업에서 뭐든 중요하지 않은 게 있으랴만,
뭐니 뭐니 해도 캐스팅만큼 중요한 건 없다.
소년과 소년이 만나는 데,
그게 누구냐가 최대의 관심사가 되는 건 당연한 일.
앞서도 말했지만 소소만은 내 경험에서 끄집어 낸 이야기.
고로, 주인공은 바로 나.
그렇다고 소년을 내가 연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ㅋ
주인공 민수(내 경험이지만 이름을 광수로 할 수는 없다. 광수는 1920년대 이름. 광수는 절대 안 돼! 소소만은 샤방한 영화란 말야!)는 단연코 김혜성이었다.
왜?
난 혜성군이 어린 시절의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그렇게 얘기 했더니 돌아오는 말.

"미친 거 아냐?"

청년필름, 권위 같은 거 없는 회사라 아래 위 없기로 소문 낫지만
대표에게 미쳤다니. 쩝.
하지만 혜성군이 너무 예쁘니 내가 참는다. 하지만 주먹은 불끈.
솔직히 외모도 쬐끔 닮았지만(여전히 닮았다고 우긴다) 성격이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소년 시절의 난 혜성군보다 더 야리야리했다.
그래서 곧잘 "계집애 같다."고 놀림 받기 일쑤였고
가끔은 덩치 큰 녀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는데,
난 성깔(?)이 좀 있어서 열번 스무번을 맞더라도 꼭 한번은 때려야 직성이 풀렸다.
대들지 않으면 몇 대 맞고 끝날 일도
내가 되도 않게 맞장을 떠서 심하게 맞기도 했다.
하지만 난 한번이라도 때려야 직성이 풀렸다.
혜성군도 겉으로는 연약해 보이지만 강단이 있어 보였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민수는 외모와는 다른 의외성이 있어야 했다.

그런 민수를 단 번에 사로잡는 석이는 내가 좋아하는 신인배우 이현진을 하고 싶었다.
혜성군이 "나를 닮았다"고 우기는 캐스팅이었다면,
현진군은 사심이 들어간 케이스.
현진군은 '김치 치즈 스마일'이라는 시트콤을 보면서 내가 콕 찍어 놓았던 터.
캐스팅을 빌미로 얼굴이라도 보려고 했던 잘생긴 청년이다.
김혜성과 이현진.
생각만 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게다가 그 둘의 바람직한 키 차이.^^*
샤방한 퀴어멜로엔 딱이다.
하지만 난관이 있었다.
둘 다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배우들.

TV에서 열심히 활동 중인 그들이
개런티도 없는 초초저예산(소소만의 순제작비는 650만원이다) 독립단편에
게다가 퀴어인데 출연을 할까?
영화판 상식으로 봤을 때는 "100% 안 한다"가 정답.
밑져야 본전이라고 시나리오를 건네봐?
사실 그럴 수도 있었지만
만약 내가 감독이 아니었다면 그냥 시나리오를 보냈겠지만
이상하리만큼 망설여졌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거절당하고 싶지 않았다.
데뷔작을 만들면서 처음부터 배우에게 거절당하면 의욕을 상실할까 겁이 났다.
며칠을 고민했지만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심했다.
신인을 찾자.
혜성, 현진 보다 더 멋진 꽃미남 배우를 찾자!


정말 많은 배우들을 후보로 올렸다.
그러다가 발견한 신인 배우 K와 모델 Y군.
K군도 Y군도 신인 중의 신인.
호기롭게 시나리오를 건넸다.
그런데 웬걸.
돌아 온 대답은 NO!
K군은 "저 교회 다녀요."가 거절의 이유였다.
헉, 교회 다니는데 어쩌라구.
Y군은 시나리오를 보기 전에는 출연을 하고 싶다고 몇 시간을 얘기 하더니
시나리오를 읽고 바로 거절.
앞으로 길게 배우를 하고 싶단다.

이건 뭐니?
퀴어영화를 하면 끝장이라도 난단 말야?


뒤통수 맞는 기분이 이런 걸까?
거절당하기 싫어서 생짜 신인을 찾았더니 이 게 뭐란 말인가?
내가 영화하는 동안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K군과 Y군! 절대 잊지 않겠어!!!
아, 운명의 신이 장난을 치는 건지
첫 단추를 잘 못 꿴 탓인지 다른 신인 여럿도 거절을 했다. ㅠ.ㅠ

그나저나 이를 어째.
촬영은 다가오는데 배우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어쩔 수가 없다.
거절당해도 좋으니 혜성군과 현진군에게 시나리오를 보내자.
이미 그랜드캐니언처럼 생채기가 난 가슴 아닌가.
그렇게 시나리오가 그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감독님 하겠어요."
둘 다 출연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현진군은 "결정하는데 1분도 안 걸렸다."고 했고
혜성군은 "무조건 한다."고 했다.
에고, 이쁜 것들.
이런 천사들을 만나기 위해 난 K와 Y를 돌고 돌아 그리도 헤맸나 보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사무실에 들어서는 그들의 얼굴이 빛났다.
샤방샤방!

 두번째 흑기사 이현진
두번째 흑기사 이현진
 두번째 흑기사 김혜성
두번째 흑기사 김혜성

나의 두번째 흑기사들이었다.
그들과의 합류를 축복이라도 하듯
김혜성, 이현진이 단숨에 검색 순위 10위에 올랐다.
동인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인녀.
그녀들이 나의 세번째 흑기사들이다.

다음에 계속... to be continue...

글_김조광수 감독(청년필름 대표) 광수닷컴 놀러 가기!

연출일기1 보기

121 )
kisemo
잘 읽었습니다^^   
2010-05-02 14:24
reedock
샤방샤방이 가장 잘어울릴 영화??배우??
20일 개봉인뎅..좀 있으면 제가 꼭 보러갈거랍니다!!ㅎ후   
2008-11-13 16:43
mvgirl
좋은 퀴어영화가 되길   
2008-11-12 19:27
hrqueen1
참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후회하지 않아], 이 작품을 찍은 건. [브로크백 마운틴]같은 전설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2008-11-11 12:42
yenv7v
사람의 갈등 그리고 소소한 진짜 이야기들 !
그런것들을 그린다는 것이 참 어렵고 의미 있는 일이죠.
궁금합니다. 어떤 모습을 담으셨을지 ^-^   
2008-11-11 12:08
stardom424
샤방샤방한 꽃미남둘...............여자들은 좋겠다~ㅎ   
2008-11-11 11:44
eyesis
이 영화를 보고 그분들을 이해할 수 있길~   
2008-11-11 11:40
fellas
일반 상영관에서 볼수 있길 바래요   
2008-11-1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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