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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인사와 두 편의 영화에 관한 잡문
2009년 7월 2일 목요일 | 백건영 편집위원 이메일


80년대 같으면 음악다방의 DJ들은 유라이어힙 Uriah Heep의 ‘July Morning'을 주구장창 틀어대었을 7월의 첫날이다. 사적인 작업에 신경이 곤두선 까닭에 극장나들이도 소홀했고 제대로 된 글 하나 쓰지 못한 채 6월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도 꾸준히 DVD를 보았고 잡문을 써댔으며 극장에서 본 영화가 전혀 없지는 않다. 다르덴 형제의 <로나의 침묵>과 오기가미 나오코의 <요시노 이발관>이 그것인데, 전자는 뇌 활동을 촉진시켜주었고 후자는 지친 뇌를 푹 쉬게 만들어주었다.

먼저 다르덴 형제 최초의 멜로드라마라는 카피를 앞세워 찾아온 <로나의 침묵>이다. <로제타>를 위시해 <아들>과 <차일드>에 이르기까지, 건조하고 냉랭한 시선으로 일관하며 관조의 카메라를 견지해온 다르덴 형제의 작품답게 <로나의 침묵> 역시 형식면에서 크게 다른 것은 없다. 다만 일정한 위치에 올라선 감독들 작품에서 곧잘 발견되는 매너리즘을 이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를테면 여전히 비감어린 정조가 전편을 압도하고 있으나, 매너리즘은커녕 시간을 역행할 요량인 듯 인물들이 보여주는 ‘내면의 역동적 갈등’은 이전 다르덴의 영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화법이다. 따라서 이전 영화의 인물들이 현실에서 철저히 소외되거나 스스로를 배제시킨 삶을 영위했고 무색무취의 세계관을 버젓이 달고 다녔다면, <로나의 침묵>의 인물들은 보다 현실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쓰며 현실에서 성공하고자하는 욕망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것. 때문인지 로나가 뱃속의 아기를 안심시키며 군불을 지피던 장면에서조차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불안했을 게 빤한 상황인데도 말이다. 아마도 감독의 어떤 영화보다 설명조로 진행된(그리하여 보다 이해하기 쉬운) 까닭에 불편함과 낯설음의 지수가 현격하게 낮아져버린 덕분일 것이다. 요컨대 인간 내면에의 성찰과 현실세계와의 역학관계를 집요하게 탐구함으로써 특유의 건조한 형식미를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언제나 흥미진진함 그 자체다.

<카모메 식당>을 만든 오기가미 나오코의 데뷔작 <요시노 이발관>은, 신구가치관의 대립과 화해라는 틀 속에 마을의 전통과 전승으로 상징되는 바가지머리를 한 아이들과, 전학온 학생에서 비롯된 변화하는 시대상을 대립각으로 세워놓아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취득해가는 영화이다. 데뷔작과 <카모메 식당> 사이에 품질차가 느껴진다고 할 혹자도 있겠으나,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후 작품과의 비교를 떠나 <요시노 이발관>은 연출자로서 오기가미 나오코가 가진 재능의 발화점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영화에서 감독의 재기가 빛나는 어떤(이발사인 요시노가 미카와 할아버지의 머리를 깎는) 시퀀스.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쉼 없이 가위를 움직이는 요시노의 손과 할아버지의 뒤통수가 클로즈업으로 보여 지는 이 장면에는, 웬걸!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감독의 실수인가? 사실 영화에서 배우의 머리를 배우가 실재로 자른다는 거 쉬운 일은 아닐 터.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마지막 장면에서 신동일이 직접 홍소희에게 머리를 맡긴 것도 이런 까닭일터인데, 어쨌거나 이 황당한 장면에 대해 잔뜩 의심을 품고 있을 때 즈음, 들려오는 목소리. 즉 이발관 뒤에 앉아 있던 아이들의 대사에서 정말 나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자를 머리도 없는데 왜 머리를 자르시지? 아주머니도 머리카락을 전혀 자르는 것 같지도 않고...바닥에 머리카락 한 올 떨어진 게 없잖아” 미용실 장면에서는 배우에게 최소한의 연습이라도 시켜 실재로 머리를 자르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고민을 일거에 해소시키고 사뿐히 넘어가는 대사의 힘. 모름지기 연출의 힘이란 이런 것일 게다.

또 감독의 재기가 빛나는 동시에 영화의 메시지가 함축된 엔딩 신에서는 폭소를 금할 길 없을 정도다. 글로벌문화란 특별한 것이 아닌 동양의 작은 마을의 전통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을 아이들 스스로 알 때가 올 것이라는 감독의 믿음이 빚어낸 멋진 장면이다.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전통 또한 소중히 지켜져야 한다는 양동작전을 훌륭히 수행하는 오기가미의 균형감각은 데뷔작인 <요시노 이발관>에서도 이처럼 탁월하다. 돌아보면 <카모메 식당>에서 일본식 주먹밥을 만드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줌으로써 자국의 음식문화를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정작 군침 흐르게 만든 건 따끈한 커피 한 잔에 곁들여진 시나몬 롤이 아니었나. 참고로 ‘민박집 주인 역으로 세상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내 맘대로 규정해버린 모타이 마사코의 연기는 언제 봐도 감칠맛 난다는 말은 꼭 해야겠다.

더위 앞에서는 꼼짝달싹 못하는 내게 여름은 너무 가혹한 계절이지만 그래도 신나는 일들만 많길 기대하면서, 독자 여러분도 더위에 굴하지 않고 건강하게 여름의 태양을 즐기시길 바란다.

2009년 7월 2일 목요일 | 글_백건영 편집위원(영화평론가)

9 )
kisemo
잘 읽었습니다 ^^   
2010-03-31 16:38
ldk209
역시 문제는 선택의 자유가 있느냐이다....   
2009-11-22 12:12
h39666
기회가되면 관람할께요~   
2009-07-16 15:52
ldk209
로나의 침묵...   
2009-07-03 14:43
sorigasuki
요시노 이발관 예고편만 봤는데 재밌을것 같아요   
2009-07-03 09:21
kwyok11
요시노 이발관   
2009-07-03 07:18
ooyyrr1004
요시노 이발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출품되었을때 봤었는데   
2009-07-02 22:19
justjpk
<요시노 이발관>은 봤는데~//
아이들 대사는 정말..ㅋㅋ   
2009-07-0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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