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타, 할리우드만 가면 액숀스타?
할리우드 진출 | 2010년 12월 8일 수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지난 1월, ‘접속무비월드’에 출연한 장항준 감독이 말했다. “우리 집에서는 돈도 잘 벌고 성격도 좋고 집안의 가장인데, 남의 집인 부잣집에 가서 머슴살이 하는 것 같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비와 이병헌에 대해 토론하다 나온 말이다. ‘머슴살이’라는 단어가 도화선이 됐다. 관련 프로그램 게시판이 분노한 네티즌들에 의해 마비됐다. 감독을 비난하는 전화가 폭주했다. ‘접속무비월드’측은 즉각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결국 ‘국한된 배역, 아시아 배우의 한계인가?’란 토론 논점은 사라지고, 공방만 남았다.

이 논제를 다시 불러 세운 건, 정우성이다. <검우강호> 기자회견 현장에서 할리우드 진출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정우성은 답했다. “할리우드 진출이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이런 말도 덧붙였다. “할리우드 주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기량이 아닌 성룡이나 이연걸처럼 무술 고수가 돼야 한다.” 여기에 수개월 전, 장항준 감독이 하려 했던 핵심이 있다. 본인이 쌓아온 개성 대신, 액션으로 진출하는 스타들에 대한 걱정과 충고가 그것이다. 할리우드에 진출하겠다는 도전 정신은 중요하다. 목적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길을 가는 방법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병헌은 연기파 배우다. 표정연기가 특히 일품이다. 중저음의 목소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할리우드 영화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이하 ‘<지.아이.조>’)에 출연하는 대가로, (대부분의 씬에서)하얀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몇 마디 없는 대사에 빛을 바랬다. 전지현은 타고난 게 많은 배우다. 대중이 선호하는 외모와 신세대적인 모습은 그녀를 트렌드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전지현의 매력은 로맨틱코미디와 멜로드라마에서 유독 잘 살았다. <엽기적인 그녀>와 <시월애> 등이 이를 증명했다. 하지만 인기절정을 달리던 그녀는 갑자기 작품 활동을 멈췄다. 오랜 공백 끝에 선택한 건, 할리우드 액션영화 <블러드>였다. 그 속에 대중이 기억했던 엽기 발랄한 20대 여배우는 없었다. 우울한 분위기의 여전사만이 말없이 있었다. 로맨틱함 대신, 칼을 손에 든 결과는 참담하다 못해 암담했다.
(좌)비의 얼굴이 나오지 않은 미국판 <닌자 어쌔신> 포스터 (우) 국내판 포스터
(좌)비의 얼굴이 나오지 않은 미국판 <닌자 어쌔신> 포스터 (우) 국내판 포스터
비는 가수다. 언제부터인가 배우로도 불렸다. 무대 위의 비는 육체를 주로 소비했다. 하지만 스크린 속의 비는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천연덕스럽고 친근한 연기를 무기로 배우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그러나 비의 욕망은 예사롭지 않았다. 한국 무대가 좁았다. 아시아로 활동을 넓혔다. 아시아도 좁았다. 갈증이 계속됐다. 할리우드가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 역시 <닌자 어쌔신>에서 칼을 들었다.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줄어드는 체지방량이 자신감으로 환원돼 비를 채웠다. 살인병기로 돌아온 비는 더 이상 예전의 친근한 청년이 아니었다. 여기에 자신감 있는 발언들만 홍보에서 부각되면서, 안티팬도 늘었다. 얻은 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장동건은 잘 생긴 배우다. 잘생긴 게 연기력에 선입견을 줄 만큼 잘생겼다. 고착화된 미남 이미지를 바꾸고자, 그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인정사정없이 연기에 몰입했다. 억대의 광고를 포기하고 섬에 들어가 <해안선>도 찍었다. 노력 끝에 장동건은 얼굴‘만’ 잘생긴 배우가 아닌, 얼굴‘도’ 잘 생긴 배우가 됐다. 그런 그의 최신작은 할리우드 진출작 <워리어스 웨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영화에서 장동건이 내세운 무기는 그가 그토록 털어내고자 노력했던 조각미모였다. 그의 손에도 칼이 들려 있었다.

<닌자 어쌔신> 개봉을 앞두고 비는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닌자 어쌔신>을 빈약한 스토리라고 비난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이 영화로 레인이라는 캐릭터가 할리우드 시장에 얼마냐 각인되느냐 하는 문제다. 설사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도 이름은 남을 수 있다. 그럼 된 거다. 그럼,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영화는 미국 2,800개관에서 개봉했다. 그의 말대로 이름은 (엔딩 크레딧에 또렷이)남았지만, 흥행은 실패했다. 그리고 비의 다음 스텝은 할리우드가 아닌 수목드라마 <도망자 Plan.B>였다. <도망자> 다음도 국내 영화 <빨간마후라>다. <빨간마후라> 이후 최소 2년은 대안이 없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군대에 가야한다. 아마, 국내 팬들은 2년이라는 시간동안 비를 기다려 줄 거다. <풀하우스>에서 ‘곰 세 마리’를 부르던 비를 추억하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인간미 넘치는 비를 기억하며 기다릴 거다. 하지만 비라는 사람의 매력이 아닌, 그의 육체만을 본 할리우드는 장담할 수 없다. 비가 할리우드에서 각인시킨 건, 20대 동양 남자의 건장한 몸이었다. 육체란 시간이 지날수록 쇄약해지기 마련이다. 2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할리우드가 비에게 강인한 체력만을 요구하다면? 그가 할리우드에서 보여준 건, 아직 육체 밖에 없다.
(좌)이병헌의 얼굴이 복면에 가려진 미국판 <지.아이.조> 포스터. (우) 얼굴이 모두 나온 국내판 포스터
(좌)이병헌의 얼굴이 복면에 가려진 미국판 <지.아이.조> 포스터. (우) 얼굴이 모두 나온 국내판 포스터
액션 영화를 다음 작품을 위한 포석으로 삼은 건, 비뿐이 아니다. 이병헌도 전지현도 장동건도 비슷한 생각을 품었다. 그 선택에 일부분 공감은 하지만, 지지하지는 않는다. 할리우드에는 ‘동양배우=액션배우’라는 인식이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무술 실력을 앞세운 중국 배우들이 할리우드들에 진출하면서부터다. 초반엔 잘 나갔다. 이소룡이 <용쟁호투>로 안타를 쳤다. 성룡도 <홍번구>로 출루했다. <와호장룡>은 홈런을 날렸다. 하지만 몸집만 커졌지, 장르는 매한가지 액션이었다. 새로운 걸 도전하는 중국 배우가 드물었다. 문제는 서양인들 앞에서 한국국적, 중국국적, 일본국적의 분류는 크게 의미 없다는 거다. 그들 눈에 동양인은 그냥 동양인일 뿐이다. ‘동양배우=액션배우’라는 등식은 결국 ‘한국배우=액션배우’라는 등식까지 성립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배우들이 “첫 작품이니, 액션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에겐 첫 시도지만, 할리우드 입장에서는 동양배우 대부분이 밟아온 흔한 접근법일 뿐이다. 한국스타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우리만의 특색이 필요하다.

그 특색의 하나로 <워리어스 웨이>가 내세운 게 하나 있긴 하다. 로맨스다. (홍보자료가 뿌려 진건지, 어쩐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영화 개봉을 앞두고 나온 기사 10개 중 9개가 ‘동양 남성 배우 최초로 서양 여배우와 로맨스 펼친다’며 <워리어스 웨이>를 높이 샀다. ‘장동건이 동양 남성 배우에 대한 금기를 깼다’고 칭송한 기사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기사들의 팩트는 틀렸다. 장동건 이전에 <애나 앤드 킹>의 주윤발이 있었다. 그의 멜로 상대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 조디 포스터였다. 하정우도 있다. <두번째 사랑>에서 하정우는 <디파티드>로 알려진 베라 파미가와 지독한 사랑에 빠졌다. 영화는 프랑스 도빌 아메리카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도 수상했다. 90%의 영어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한 하정우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정우의 도전을 기억 못한 건, <두번째 사랑>이 우리나라로 치면 저예산독립영화에 해당하는 작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스타들의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발견된다.
 동양 남자 배우 최초로 서양 여배우와 로맨스? NO!
동양 남자 배우 최초로 서양 여배우와 로맨스? NO!
이제껏 사람들은 동양배우의 할리우드 진출작이 액션영화가 되는 것에 대해, 할리우드가 액션연기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하지만 하정우가 증명했듯,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액션에 능한 동양배우를 원하는 건,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들이다. 이와 달리 독립영화 진영에서는 아시아 배우의 보다 다양한 모습을 원한다. 미국 내 아시아인의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만큼, 아시아 배우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날 게 자명하다. 즉, 그 틈새시장을 차근차근 공략하면, 자신의 개성을 애써 죽이지 않고도 미국 땅을 밟을 수 있다는 말이다. 또 하나. 하정우의 사례는 언어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운다. 하정우가 <두번째 사랑>에 출연할 수 있 있었던 건, 할리우드 진출을 대비해 틈틈이 학습한 영어 실력 덕분이었다. 영어는 뒤로한 채, 한국에서 톱이었다고 해서 미국에서도 메이저 영화에만 출연하려고 한다면, 할리우드는 한국스타들에게 여전히 위기의 땅이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라 했다.

조만간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파더>가 미국에서 개봉한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어떤 원성이 돌아올지 모를 멘트지만)<디 워>는 ‘명백히 못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게다가 ‘대부의 숨겨진 아들이 영구다’가 기본 콘셉트라니. 범우주적인 상상력에 웃음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에 있어서만큼은 심형래를 인정하고 지지한다. 적어도 심형래는 할리우드로 가기 위해 자신을 버리진 않았다. 1980-1990년대 추억의 한국영화로 기억되는 영구 캐릭터가 할리우드 땅에서 되살아날지 그 누가 상상했겠나. 어쩌면, 진정한 도전이란 이런 거다.

2010년 12월 8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총 5명 참여)
park5021
기사의 주 내용에 동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심형래씨의 이번 '라스트 갓파더'를 '할리우드에 대한 진정한 도전'이라고 평가하려면, 한국에서의 흥행 결과(아마도 '애국심'과 '추억'에 호소한 흥행이 예상됨)는 무시하고 미국에서의 흥행 결과를 놓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진정한 도전'인지 성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2011-01-02 13:05
namekay
심형래감독! 화이팅!   
2010-12-17 11:04
sajayoon
심형래감독! 화이팅!   
2010-12-16 20:43
khdi007
한국에서도 유명한 배우인 김윤진씨가 로스트로 미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고 한국계 배우인 존 조도 이미 헐리웃에선 꽤 유명한 배우가 된 것처럼 뭔가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네요..맨날 칼질만 하는 캐릭터로 헐리웃은 물론 국내에서도 욕먹지말고 김윤진, 존 조 같이 자신만의 캐릭터를 살려서 헐리웃에서도 인정받는 배우가 되길바람..   
2010-12-15 22:34
ursula
좋은 기사군요.   
2010-12-15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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