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죽기 전에 꼭 만들고 싶었다!” <마지막 위안부> 촬영현장
2013년 7월 26일 금요일 | 서정환 기자 이메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차항리에 위치한 <마지막 위안부> 세트장은 저 너머 용평스키장이 보이는 산속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비가 그치고 기분 좋게 물기를 머금은 녹음이 흩뿌리는 내음에 취한 것도 잠시, 이내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대동아공영’이 적힌 푯돌과 욱일승천기가 눈에 들어오며 영화의 제목을 상기시킨다. 곳곳에 경비초소가 자리한 야전병원과 대대본부를 지나 위안소 내부에 들어서자 좁고 긴 복도에 빼곡히 늘어선 문들이 벌써부터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시대의 아픔과 역사의 상처를 오롯이 겪어야했던,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전히 진행형인 고통의 시간들. 그 제국주의의 망령이 금세라도 눈앞에 펼쳐질 것 같은 기시감 속에서 <마지막 위안부>의 촬영은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판에 입문한지 어언 4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세트장 촬영을 마무리하고 있는 임선 감독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매달린, 죽기 전에 꼭 만들고 싶었던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중국 만주에서 <야망의 대륙> 촬영 중 우연히 들른 식당, 그 곳에서 일하던 종업원이 위안부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가 들려 준 이야기. 평소 위안부에 대해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했던, 평생 액션영화만 연출했던 임선 감독이 스포츠 신문에 기획물을 연재하고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였다.

영화화 과정이 순탄할리 만무했다. 시나리오는 사전 심의로 반려됐고, 나서는 투자자도 없었다. 역사를 재조명하고 이를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2002년 조선호텔에서 외신기자들을 불러 제작발표회도 진행했지만 중국 정부에서 민감한 사항이라며 또 한 번 반려됐다. 중국에서의 제작이 무산되고 한국에서 제작해보려 동분서주할 때에는 이승연의 위안부 누드 사건이 터졌다. 애꿎게 ‘임선 감독이 제작비가 없어 이승연을 캐스팅한 후 누드를 찍으라고 시켰다’는 내용의 기사도 흘러나왔다.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 기사도 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관심을 보이던 투자자들도 손을 놓고 포기해버렸다.

“천인공노할 일이지만, 섹스영화면 돈 대주겠다는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내 손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임선 감독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세트장을 건설할 장소를 물색했고, 지금의 장소를 발견했다. 평창 군수에게 허락을 받았고, 중국의 만주영화협회와 만주국 시절 남아있던 위안부 관련 자료들을 통해 고증을 거쳐 세트를 제작했다. 하지만 세트장을 완성하니 투자가 끊겼고, 또 5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되는구나, 독립영화로 만들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지난했던 10여년의 과정이 이제는 현실로 구체화되어 대부분의 촬영을 마친 임선 감독의 눈에 격동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어떻게 인권유린을 당했는지를 철저히 팩트를 기반으로 이야기하려한 영화다. 살아 계신 분들마저 돌아가시고 나면 이 이야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우리 국민도 무관심하고 일본 정부는 적반하장이니 내가 죽기 전에 이 영화를 꼭 만들어서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 싶었다.” 임선 감독의 마지막이자 절실했던 숙원이 배우, 스탭들의 재능 기부에 힘을 얻어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 위안부>는 항구, 열차신 등 남은 야외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한 뒤 후반작업을 거쳐 올해 개봉 예정이다.


● <마지막 위안부> 한가영, 김미영, 레이 인터뷰
 사진 왼쪽부터 레이, 한가영, 김미영
사진 왼쪽부터 레이, 한가영, 김미영
각자 맡은 역할 소개 부탁한다.
김미영: 돈을 벌기 위해 위안부가 된 일본인 미야꼬 역을 맡았다. 강제로 끌려온 한국인, 중국인 위안부들을 만나면서 같은 여자로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는 따뜻한 캐릭터다.
한가영: 애국봉사대에 가려했지만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위안소에 들어오게 된 비련의 여인 이연희 역을 맡았다.
레이: 중국에서 교사로 일하다 강제로 위안소에 들어온 단단 역을 맡았다. 주장을 굽히지 않는 강단 있고 눈빛이 살아있는 캐릭터다.

캐스팅된 계기,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아무래도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다보니 여배우로서 선택하는데 있어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
김미영: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는 솔직히 위안부에 대해 잘 몰랐다. 그동안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된 계기가 됐고, 바로 잡을 수 있는 영화이기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사명감과 애국심이 불타올랐다. 그래서 하고 싶었다.
한가영: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님이 10여 년간 준비한 자료를 보고 나눔의 집에도 다녀오며 억울한 할머니들의 사연이 가슴에 와 닿았다. 잘 준비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꼭 내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레이: 신인이라 선택권이 없다(웃음). 아빠가 일본인, 엄마가 중국인이라 일본, 중국, 한국 세 나라에서 살며 서로 다른 문화를 접해왔다. 그래서 솔직히 처음에는 어렵지 않을까 싶었지만 많은 걸 배우고 싶었고 꼭 한 번 그분들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위안부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들은 제작됐지만 극영화로 제작되지 못했던 건 그만큼 위험부담이 크다는 말이기도 하다. 의도가 좋아도 결과가 받쳐주지 않으면 더 왜곡되고 비난받을 여지가 크기 때문일 거다.
김미영: 사실을 예술로 만드는 작업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왜곡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만은 않았다. 영화를 보면 알 거다.
한가영: 남자들의 욕구에 짓밟힌 삶을 재조명하는 영화라 부담도 되고 어렵운 건 맞지만, 그건 내 몫이다. 그들의 한 서린 아픔을 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부담도 되지만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다.

촬영을 하면서 위안부의 삶을 간접체험하고 있다. 마음이 아프고 힘든 부분이 많았을 거다.
레이: 캐릭터 자체가 반항하는 성격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독하고 잔인하게 당한다. 당시 진짜 이랬을까,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잔인하다,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마음이 아팠고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한가영: 어둡고 차단된 공간에서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다보니 처음에는 어려웠다. 감독님의 자료, 할머니들의 동영상을 보며 감정을 상상했다. 노력했지만 표현이 다 안 된 것 같아 아쉽긴 하다.
김미영: 배우는 경험해 볼 수 없는 것들도 몰입을 통해 충실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런 부분들을 두 친구가 잘 표현하고 있다. 일본인이고 게이샤 출신으로 돈을 벌기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과 중국인의 모습을 보는 것조차 힘들더라. 마음이 아프다.
한가영: 일본군 역할의 남자배우들도 너무 힘들어했다. 촬영하며 여자배우들은 울었지만 남자배우들도 밖에 나가서 울었다. 당하는 연기도 그렇지만 가하는 연기, 그리고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격이 상당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촬영을 잘 하고 있다.
김미영: 우리는 배우다(웃음).

오늘이 마지막 세트장 촬영이고, 로케이션 촬영이 조금 남았다고 들었다.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지, 또 영화가 개봉하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원하는지 듣고 싶다.
레이: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세트장에서 촬영했던 것처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는 감독님이 10여년 준비한 작품이다.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단순한 한편의 영화가 아니라 생각한다. 할머니들의 아픈 과거와 역사에 대해 한층 더 깊게 알아갈 수 있고 영화를 보면서 할머니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하는 심정이다. 물론 배우로서 레이도 예쁘게 봐주길 바란다.
한가영: 제일 걱정했던 신들은 거의 끝낸 상태다. 앞으로 남은 분량은 위안소에 오게 된 계기다. 위안소에서의 상황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장면이라 연결을 잘 시키도록 열심히 할 것이다.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서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을 수 있길 바란다. 사실적으로 표현하도록 노력하겠다.
김미영: 영화를 통해서 나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고 관객들 또한 제대로 알고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진실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남은 촬영도 열심히 하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가영: 실제로 눈물이 많거나 연약하지 않은데 우울한 역할을 했다. 잘 해낼까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 작품을 계기로 배우로 한 단계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되겠다.
레이: 며칠 전에 손에 밧줄을 묶고 6시간 동안 매달린 채로 촬영을 했다. 온몸에 피멍이 든 상태다. 그렇게 열심히 한만큼 영화도 잘되고 배우들도 잘 됐으면 좋겠다.
김미영: 19살에 MBC 공채로 연기를 시작해 활동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전세계를 다니며 인생 공부를 했고 사업도 하며 연기에 도움 되는 것들을 많이 습득했다. 이번 영화는 이런 준비된 나에게 좋은 기회였고 맡은 바 잘 감당하고 있으니 앞으로 지켜봐줬으면 한다.
2013년 7월 26일 금요일 | 취재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2013년 7월 26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3 )
chomalgu
화이팅하셔서, 꼭 스크린 걸어주세요. 꼭~! 보러가겠습니다.   
2013-08-02 15:22
aumma7
천인공노할 일이지만, 섹스영화면 돈 대주겠다는 사람들은 많았다. ----이 부분에서 너무 화가 나서 한참 스크롤을 못 내렸네요. 요즘 위안부 관련 문제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중인데... 감독님께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영화를 위해 노력해오셨군요.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반드시 흥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저부터 이 영화가 개봉하면 주위 사람들 다 끌고 영화 관람을 해야겠네요... 감독, 스텝, 배우 모두 힘내시길. 자랑스럽습니다.   
2013-07-29 23:28
level42
요즘 일본의 망언도 끊이지 않는 현실에 좋은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013-07-29 09:3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