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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아이 로봇'의 아시모프는 어디로 갔나?
2004년 8월 2일 월요일 | 유지이 이메일

비정하고 속물근성으로 들끓는 인간세상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이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혼란에 빠진 로봇이 마지막에 택하는 선택은 언제나 인간의 안녕이다. 인간의 피조물이되 인간보다 더욱 인간성이 짙게 배어나오는 기계에 대한 이야기, [터미네이터]와 [웨스트랜드]의 대척점에 있는 인간적인 SF의 세계관은 누구의 것일까. 레플리컨트의 반란에 대한 서정시 [블레이드러너]의 이야기라고? 반쯤은 맞다. 리들리 스콧이 [블레이드러너]를 영화화할 당시 냉혹하기 짝이 없는 필립 K. 딕의 원작을 각색하며 아시모프의 영향을 짙게 받았을테니까.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기계의 이야기는 아시모프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훌륭한 영화에 순서를 정하는 영화제나 별점이 사실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훌륭한 소설가를 가리는 일도 별다른 의미가 없는 행동임을 안다. 그러니 SF작가 3대 거장 따위를 뽑는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기로 하자. 하지만 아담한 묘지 한자리에 모인 비엔나의 4인의 거장처럼 SF작가로서 클라크 - 아시모프 - 하인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허투루 넘어갈 수가 없다. 그것이 순위를 정하는 일에 초연하되 3명의 작가에게 집중하여야 하는 이유다. 현란하게 '거장'이라는 명폐를 가져다 붙이기 전에 3명의 작가가 자신의 개성적인 SF세계관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밀어붙인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하도록 하자. 별나고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구축했지만 요절한 필립 K. 딕이나 장엄한 [듄]만 남기고 펜을 떠나간 프랭크 허버트도 훌륭한 작가며, [게이트웨이]의 프레데릭 폴이나 참신한 우주를 구축한 어슐라 르 윈도 유능한 작가지만 각기 다른 지향점의 SF를 세 작가만큼이나 꾸준히 추구하지는 못했다. 다른 모든 거장처럼 꾸준함만으로도 세 작가는 추앙받을 자격이 있다.

유년기의 끝 (아서 C. 클락)
유년기의 끝 (아서 C. 클락)
루카스가 [스타워즈]로 SF영화를 메이져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후, 여름과 크리스마스의 극장가에 대규모 예산을 집행한 영화의 한 부분은 항상 SF가 차지하곤 했다. 한편 창조적인 역량의 열정이 미래 어딘가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SF의 세계는 언제나 새로운 상상력에 허덕였고 굶주림은 때로 19세기말의 작가까지 SF영화를 통해 되살려내곤 했다. 그럼에도 세 거장의 작품에 손을 벌리는 시도가 많지 않았던 것은 대부분 두시간 남짓의 극영화가 수렴하기엔 거장의 손아귀가 너무나도 거대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가벼우려 해도 거장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운 것. 고전파 이후의 교향곡이 베토벤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낭만파 이후의 피아니스트가 쇼팽의 동상에 입맞추는 것 또한 거장의 그림자가 얼마나 넓은 영역까지 닿아있는지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두시간으로는 냄새도 맡기 힘들 숨막히는 진지함과 장엄한 세계에 압도되어 차마 각색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SF영화의 제작자들도 결국 거장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세계의 수도를 공포로 전율시키며 구름 사이로 나타나 하늘을 뒤덮던 [인디펜던스 데이]의 거대한 비행접시는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의 첫 페이지의 거대함과 다르지 않으며, 저패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에서 지구를 향해 낙하하는 식민행성의 비장함은 하인라인의 소설과 다르지 않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더욱 인간다운 [블레이드러너]와 [A.I.]는 로봇3원칙이 더욱 인간을 위하는 아시모프의 세계와 얼마나 다를까.

기대했었다는 고백을 해야 하겠다.
공동작업으로 온전히 아서 클라크의 세계를 필름에 담아냈던 큐브릭의 [2002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하인라인 소설 속에 잠들어 있는 전체주의의 관성을 재치있게 풀어낸 폴 버호벤의 [스타쉽 트루퍼즈]처럼, 아시모프의 SF세계도 [아이, 로봇]을 통해 은막에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다는 고백을 하여야 하겠다.

아이작 아시모프 (1920-1992)
아이작 아시모프 (1920-1992)
명성높은 클라크의 [2002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즈]처럼, 아시모프의 세계관도 [바이센터니얼맨]을 통해 온전히 영화화된 적이 있다. 원작과 꽤 다르기는 해도 크리스 콜럼버스의 어른버젼 피노키오는 아시모프의 원작과 교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바이센터니얼맨]은 아시모프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 큐브릭이 [2002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통해 하드코어 SF작가 클라크의 리얼리즘을 보여주고 버호벤이 [스타쉽 트루퍼즈]를 통해 하인라인이 가진 전체주의의 장엄함을 보여주는 것처럼 아시모프의 짜임새있는 SF세계를 보여주기에 [바이센터니얼맨]은 역부족이다. 콜럼버스의 밝고 명랑한 세계관에 부합되는 아시모프의 선량한 세계를 비추는 것만으로 [바이센터니얼맨]은 맡은 바 소임을 완료한다.
아시모프의 작품은 보통 3개의 연작으로 나눈다. 아시모프가 SF작가의 역량을 발휘하여 [반지의 제왕]의 톨킨만큼이나 거대한 세계를 창조한 [파운데이션] 연작과 [제국]시리즈, 아시모프를 SF의 거장으로 만든 [로봇] 연작. 그 중에서도 아시모프의 이름을 SF독자의 뇌리에 각인시킨 저 유명한 로봇 3원칙이 등장하는 연작이 바로 [로봇] 시리즈다.
제 1 원칙 :
로봇은 인간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된다. 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인간이 피해를 입어서도 안된다.
A Robot may not injure a human being,or through inaction, allow a human being to come to harm, unless this would violate a higher order law.
제 2 원칙 :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다만 로봇공학 제 1원칙에 어긋나는 명령은 예외로 한다.
A Robot must obey orders given it by human beings, except where such orders would conflict whth a higher order law.
제 3 원칙 :
로봇은 스스로의 존재를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다만 그것은 로봇공학 제2원칙에 위반하지 않는 경우에 한정한다.
A Robot must protect its own exixtence as long as such protection doed not conflict with a higher law.

아시모프의 이름을 딴, 혼다의 로봇 [아시모]
아시모프의 이름을 딴, 혼다의 로봇 [아시모]
로봇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순간부터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까지, 피조물에 의한 반란이라는 인간의 심층적인 공포를 일거에 날려버린 아시모프의 탁견은 [로봇] 시리즈의 첫 단편집 [나, 로봇 I, Robot]에 의해 처음 세상에 소개된다. 로봇과 인간이 함께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상에 로봇과 인간의 상호행동에 의해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휴머니즘 가득한 아시모프의 단편집은 로봇의 행동강령을 만든 냉철함 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커다란 범죄에 치중하기 보다는 소소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고의 와중에 벌어지는 인간과 로봇 사이의 사건은 인간 사이의 우정이나 신뢰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로봇공학자의 살인사건 현장에 의심스러운 로봇이 발견되고 인간을 살해할 수 없는 로봇 3원칙과 살인에 관련된 로봇 사이에서 진실을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는 [나, 로봇] 보다는 [로봇] 시리즈의 또다른 장편 연작 [강철도시]에 가까운 이야기다. 처음 [아이, 로봇]의 시놉시스를 전해들은 많은 아시모프 팬이 [강철도시]나 [벌거벗은 태양]을 연상한 것은 정말 당연한 것이, 휴머니즘으로 포장된 소품 모음 [나, 로봇]의 세계관을 스릴러와 추리물의 영역으로 발전시킨 아시모프의 장편소설이 [강철도시]와 [벌거벗은 태양]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논리적으로 만들어낸 3원칙에 SF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세우고 살인극을 소재로 꾸며놓은 [강철도시]의 추리극을 보고 있노라면 이후 본격 추리물을 몇편 내어놓은 아시모프의 소설가적 재능이 더욱 잘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 [아이, 로봇]은 아시모프의 [강철도시][벌거벗은 태양]과는 매우 다른 작품인데, 베일리와 다닐 인간형사와 로봇형사의 콤비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아시모프의 소설과 [아이, 로봇]의 독고다이 스푸너(윌 스미스)는 매우 다른 인물이며(로봇과 인간의 차이에서 에피소드를 만들어가는 원작의 재미는 역시 절대 느낄 수 없는), [로봇] 연작의 뼈대를 이루는 로봇 3원칙의 논리적인 테두리 안에서 사건을 구성하는 아시모프의 소설과 로봇 3원칙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아이, 로봇]의 사건은 그다지 닮은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와 소설은 매우 다르며, 각색에 토를 다는 것은 무지한 일임을 잘 알고있다. 그럼에도 꽤 잘 만든 영화 [아이, 로봇]에 대해 아시모프를 핑계로 토를 다는 것은 처음부터 다른 영화를 위해 만든 시나리오를 아시모프 세계관의 영화에 맞게 각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균열을 아시모프 영화를 기대한 자가 참지못해 벌어진 불평이라고 해두자.

8 )
ldk209
진정, 미래는 이토록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세계가 될 것인가....   
2008-11-02 20:09
qsay11tem
안 본거 같네여   
2007-11-27 12:10
kpop20
못봤어요 ㅠㅠ   
2007-05-18 11:15
khjhero
못봤다는...ㅡㅡ;   
2005-02-15 20:42
soaring2
아이 로봇 괜찮았던 영화죠^^   
2005-02-13 14:24
cko27
흠. 아이로봇 그래도 조금 많이 각색되서 아쉽긴 했지만 재밌었습니다.   
2005-02-06 18:26
jju123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멋진 로봇이 탄생할꺼라고 생각대네요 ㅋ   
2005-02-05 19:57
moruhae
우어.. 넘 어려워.. 아는만큼 보인다지만.. 너무 많이 알아 영화를 제대로 못본것은 아니신지..?   
2004-08-1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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