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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연애행각] <레미제라블> 사람들은 왜 혁명을 하는가?
2013년 1월 9일 수요일 | 앨리스 이메일


이 글에는 영화 <레미제라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대의 몰락은 누구도 비껴가지 않았다. 19세기 프랑스는 살만했던 사람들을 어렵게, 어렵던 사람들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뼛속까지 사기꾼 장사치인 부모 밑에서 귀하게 자라난 에포닌(사만다 바크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모가 운영하는 여관 근처의 골목을 오가며 가난한 이들의 주머니를 털며 살았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 뿐이던 에포닌은, 사랑하는 사람이 새 시대를 바랐기에 혁명에 가담했고 기꺼이 그를 대신해 죽었다. 혁명을 꿈꾸던 도련님들이 에포닌의 부모가 운영하던 여관방을 드나들며 모의를 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마리우스(에드 레드메인)를 볼 일도 없었겠지. 그는 귀족집 자제였고 그에 비해 에포닌의 신분은 미천했다. 사랑엔 국경이 없다지만, 19세기나 지금과 다를 바 없이 사랑엔 국경만 없는 법. 살면서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 분명하게 다른 세계에 살던 그 둘을 만나게한 것은 오로지 수상했던 시절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비를 맞으며 노래하는 에포닌의 눈빛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입가에 미세하게 번지는 웃음은 마냥 슬펐다. 시대도 짝사랑도 모두다 비극이다.

선거철 특히나 대선이라는 굵직한 정치 이벤트가 있는 시즌이 돌아오면 주위에서 심심찮게 절교의 변을 듣게 된다. 대개는 평상시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지인들이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 그것도 내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에 대해 호감을 내비치는 순간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좌와 우로 퉁쳐서 나누지 않고, 좌면 좌, 우면 우, 조금더 디테일하게 들어갈수록 골치가 아파진다. 가령 여자의 정치성향은 진보신당인데 남자의 성향은 통합진보당이랄지 하는 것들 말이다. 미묘하지만 그 다름이 절대로 섞이기 싫어하는 성질의 것들이라 나와 닮아 사랑했던 혹은 좋아했던 이들이 나와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때 느끼는 절망감? 상실감? 그런 것들은 말로 표현하기 참 애매하고 껄끄러운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이 사상으로 결혼하는 시대도 아닌데 뭐 그리 민감하게 굴 것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냥 두기에도 그렇다고 낱낱히 까발려 교통정리하기에도 영 찜찜한 것이 바로 애정과 정치성향의 상관관계였던 것이다. 어쨌든 애정의 관계라는 것은 나를 포함하여 나를 이루고 있는 주변의 것들까지 공유하고 인정할 때에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19세기의 지고지순한 짝사랑을 앓고 있는 에포닌이라는 여자, 이렇게 앞 뒤 따지고 주고 받는 마음에 익숙한 현대 여성의 눈으로 보기엔 한 없이 바보같을 수 밖에. 마리우스 도련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말간 웃음을 흘릴 때에는 마냥 어린 아이 같은 에포닌, 그가 첫눈에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에게 반한 것을 알고도 질투심에 눈이 멀어버리기보다는 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량함을 한탄할 뿐이었다. 결국에는 마리우스를 향했던 총뿌리를 고민할 겨를도 없이 제 가슴 쪽으로 잡아 당기고는 그리도 바라던 남자의 품 속에서 눈을 감고 말았으니, 이 안타까운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에포닌의 삶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분명 팍팍하고 고단했을 테지만, 그저 운명에 순응하며 부모의 일을 거드는 것으로 근근히 살아갈 뿐 역사적 소명의식이 크게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역사는 에포닌의 죽음을 실패한 시민혁명의 한 장면으로 기록할지라도 에포닌 스스로는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신은 혁명을 바라지도, 혁명가를 위해서도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이를 대신에 목숨을 버린 것 뿐일테니 말이다.

사람들은 왜 혁명을 하는 걸까. 사람을 위해? 사랑을 위해? 시작한 적도 없는 사랑을 스스로 끝내버린 에포닌의 죽음 앞에서 혁명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간절히 사랑하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과, 실패하는 것으로 다음 세대에게 알리는 혁명에 대해.

2013년 1월 9일 수요일 | 글_앨리스(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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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ju555
에포닌의 그 사랑스럽고도 슬픈 그녀의 사랑은, 노래에서도 묻어나와 마음 한켠이 아렸습니다ㅜ   
2013-01-0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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