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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전주국제영화제
리뷰 - ‘아사쿠사 키드’ | 2003년 5월 6일 화요일 | 전주 = 박우진 이메일

우스꽝스럽고 우울한 다케시의 추억

아무렇게나 생긴 한 청년이 맨발에 ‘쓰레빠’를 찍찍 끌고 아사쿠사 거리를 걷는다. 마침 구두를 팔고 있던 노점상 아저씨가 수작을 건다. “이봐, 구두만 갈아 신으면 멋질 거라구.” 아저씨에게 말려 덜컥 발에도 맞지 않는 구두를 사게 된 청년. 바꿔달라고 항의하던 찰나, 어깨 한 명이 다가와 넌지시 일러준다. “문제가 있나? 그건 다 발이 있기 때문이지. 어때? 발목을 잘라 줄까?” 깨갱, 꼬리를 내린 청년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우리에게 영화 감독으로 잘 알려진 기타노 다케시. 그의 전업은 스탠드 코미디언이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대학을 중퇴하고 아사쿠사 거리를 방황하던 막막한 청년이었다. 영화 <아사쿠사 키드>는 다케시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그의 젊은 시절을 그려낸 작품. 우스꽝스럽고 우울한 청춘의 풍경이다.

스트립 쇼 극장 ‘아사쿠사 프랑스좌’의 청소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다케시는 무대에 설 것을 갈망하지만 뭐 하나 잘난 것 없는 그에게 쉽사리 기회가 올 리 만무하다. 바닥 쓸고, 엘리베이터 단추나 누르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던 청년.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덕인지 ‘아사쿠사 프랑스좌’의 사장이 그를 어여삐 여겨 손수 탭댄스를 가르친다. 어찌어찌하여 무대에 서게 되고, 호응을 얻게 된 다케시.

다케시의 젊은 날이 빠른 편집으로 겅중겅중 뛰어 간다. 삶의 단편들이 스크린을 ‘치고 빠진다’. 어쩌면 모든 것이 우연처럼 보일 정도로 연결 고리는 느슨하다. 이제 그 고생스러웠던 시절은 담담하게 술회할 수 있을 만큼 너무 멀어졌기 때문일까. 생뚱 맞은 개그로 일관하는 듯 하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감정이 느껴진다. 모두 다 어렵고 외로웠던 극장 사람들과 나누던 정만큼은 따뜻하고 진솔하다. 스트립쇼 걸들이 아침마다 싸 오던 여분의 도시락처럼, 그리고 어렴풋이 피어나던 조심스런 로맨스처럼.

뒤끝도 없이 담백하게 진행되던 영화는 한 순간, 호흡이 길어진다. 단짝 친구가 떠나고 모든 것에 회의가 들던 그 날, 다케시는 아주 오래 길을 걷고 카메라는 잠자코 그를 따른다. 딱히 털어놓을 곳이 없었을, 어쩌면 일부러 묻어 왔던 답답한 가슴이 복받쳐 긴 한숨을 토해 낸다. 그렇게 젊은 날이 가고 길모퉁이를 돈다.

드디어 만담가로 독립한 다케시. 그러나 첫 공연을 마친 그에게 한 장의 봉투가 배달된다. ‘형편 없어’ 그의 앞날엔 아직도 굴곡이 많을 것 같다. 그리고 삶이란 어쩌면 그렇게 늘 버텨 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뚝뚝한 표정의 다케시 아저씨에게도 우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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