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가 나오길 목 빠져라 기대하다 어느 장면은 대사 하나 없이 배우가 바뀌고 그나마 나온 대사와 함께 영화가 끝나버리는 영화가 있다. 국내 최초 HD독립장편 영화 <빛나는 거짓>은 영화매체가 가진 특이성을 배반하는 일종의 실험영화처럼 다가온다. 세 명의 주연배우 중 유일한 여자 배우인 옥지영은 한국 영화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다져 나가는 몇 안되는 여배우로 빛을 발하고 있고 여러 편의 상업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인지도를 쌓고 있는 김한 은 영화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연기를 보여줘 눈길을 끌었기에 영화개봉을 빌미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 시작 30분전에 도착한 김한 은 ‘사람의 미소가운데 진심으로 즐거워서 웃는 웃음은 바로 저걸 거야’ 라고 느끼게 만드는 미소의 소유자로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의 장난끼는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국내 흥행작들의 비디오판 패러디 제목들을 열거하면서 극에 달했는데 그 중 한 개를 밝히자면 <친절한 금자씨>의 아류 제목은 ‘친정간 금자씨’란다. 실제로 보니 피부가 너무 투명해서 대화하다 없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됐던 옥지영은 또 얼마나 발랄한 배우인지.
두 배우의 인터뷰 내내 충무로의 미래는 ‘언제나 맑음’ 일거란 확신이 들었다. 이 글을 읽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도 그 느낌이 잘 전달 되길 바란다. 가슴을 울리는 멋진 대답들이 쏟아진 인터뷰 이기에 그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죄다 기자 탓이다.
김한 (이하 김): 저는 처음에 감독님한테 인사동에서 만나서 하겠냐고 물어보시기에 우선 시나리오를 보고 말씀을 드리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인터넷으로 보내주시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시놉이 온 거예요. 그래서 전화로 ‘시놉시스가 왔는데요?’ 그러니까 ’아.. 그게 시나리오예요.’그러시는 거예요.(웃음) 그럼 나머지는 뭐예요? 그랬더니 ‘나머지는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는 거죠’ 하셔서 정말 농담인줄 알았어요. 사실 찍으면서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하고 결과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시작 했는데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아요. 그런데 감독님이 말씀하시길 ‘영화를 스토리나 다른 거 위주로 생각을 하고 보면 틀리다. 영화를 영화로만 봐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저도 그 말씀을 듣고는 이해는 안돼도 좀 편안해 졌어요.
이: 정말 난감하셨겠네요. 시놉 같은 대본이라. 영화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본인의 캐릭터만 대본을 받으신 거예요? 아니면 전체를 다 받으신 건지.
김: 전체를 다 받아서 제거는 따로 줄을 긋고 색깔을 쳐 주셨죠.
이: 지영씨는 어떻게..
옥지영 (이하 옥): 저도 시나리오를 봐도 이해가 안가는 거예요. 이미지적으로만 나와서..(웃음)한이 씨가 말 한대로 편안하게 보니까 영화라는 게 꼭 대사가 있어야 전달되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안 하면서도 전달하는 게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편안하게 봤던 거 같아요
이: 2004년도에 찍었고 해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는데 예상했었나요?
김: 영화 찍을 때 PD분이 경상도 분이셨어요. 그때 그러시더라구요 (똑같이 흉내 내며) “한이씨, 내년에 개봉할지도 몰라요”하시는 거예요. 그래도 개봉은 마음속에만 있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잊고 있었죠. 솔직히. 그래서 감독님한테 비디오 받고 ‘아..단편 하나 찍었었구나”이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전화가 와서 작년에 말한 거 이제 개봉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까 정말 당황스럽고 놀래고 비디오를 다시 여러 번 봤어요. 배우로서 기분은 되게 좋았지만 이 영화에 대해서 물어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래서 고민이 많았죠.
이: 기자 시사회 때 질문이 안 나와서 좀 속상하셨겠어요.
김: 아니에요. 되려 고마웠어요. 괜히 물어봤는데 모르는 거 물어보면 어떡하나. 모른다고 하면 앞에서 모른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한 건 거짓말로 꾸며야 되잖아요. 그런 게 싫어서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옥: 아, 전 생각을 못했어요. 솔직히 영화를 아직까지 못 봤거든요.
이: 완성 본을요?
옥: 예.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전화 와서 개봉한다고..(웃음) 그 말 듣고 기분이 엄청 좋았어요. 왜냐면 제가 찍었던 영화가 개봉한다는 건 행복한 거잖아요. 그래서 기분이 너무 좋았는데 …
이: 자식을 선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그런 감정이 들 것 같아요.
옥: 예 맞아요. 찍은 지도 오래됐거니와 기억도 가물가물했어요. 본 게 아니라서. 그래서 누가 물어보고 그러면 뭐라고 해야 되나 고민했어요.
이: 영화가 대사가 많이 없잖아요. 대사 기다리다가 한 챕터 끝나고. 그래서 되게 난해하셨을 것 같아요. 캐릭터 분석은 어떻게 하신 거예요?
김: 채기 감독님한테 여쭤봤어요. 이거 캐릭터가 뭐예요? 그러니까 ‘한이 씨요.’ 예? ‘그냥 열린 영화니까 편하신 대로 하시고 여기서 왜 그랬냐는 중요하지 않거든요? 그 사람이 하는 게 중요하지.’ 그래도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온 게 설명 되야 되는 게 아닌가요? 했더니 ‘일단은 그냥 가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연기하시면 되요.’ 그러시는 거예요. 처음 찍은 장면이 팔이 부러지는 신인데 그 장면 때문에 의사하는 친구한테 팔 부러진 사람들은 얼마나 아픈지도 물어보고 여러모로 생각해서 갔는데 인상을 너무 많이 썼다고 하시는 거예요. 사실 영화를 찍으면서 힘들었던 게 상상으로 캐릭터 분석을 하고 연구를 한거라 예를 들면,
과학자들은 흐르는 물을 보면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하겠지만 그걸 보는 일반 사람은 물 안에 뭐가 들었다 어떤 성분이다 그런 건 안 보잖아요. 논리적인 것보다는 물이 흘러가는 자체를 보듯이 감독님은 후자를 원하신 것 같아요.
옥:우와~말 너무 잘 하지 않으세요?
이: (동감하며) 지영씨는 팜플렛 보셨어요? 거기에 뭐라고 적혀 있냐면 나이도 배경도 모르는 한 여자의 여행이 시작된다. 그렇게 되어 있는데..
옥: 사실 팜플렛도 못 봤어요. 저도 감독님께 ‘얘가 왜 갑자기 제주도를 가는 거예요?’ 하니까 ‘원래 사람들은 가끔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고 그냥 지영씨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시는 거예요. 일상이라고 생각을 하라고. 심각하지도 않고, 즐겁거나 그렇다고 감정이 있지도 않은 상황.
이: 힘드셨겠어요. 지문도 없이 상황만 던져주신 셈이니.
옥: 그런데 그게 어떻게 보면 어렵고 복잡해 보이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정말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이: 촬영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촬영 자체가 에피소드였겠는데요?
김: <빛나는 거짓>이 독립영화지만 한편으로 단편영화 같은 느낌으로 가잖아요. 제가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학교에서도 스텝으로 많이 일할 기회가 있어서 단편영화는 선배들과 작업하거나 아니면 동기들끼리 여러 번 해봤어도 독립영화와 단편영화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는걸 느꼈어요. 더 어려워요. 독립영화가. 왜냐면 제작비 같은걸 떠나서 단편영화는 다 형들이고 친구들이라 ‘형, 이건 내가 이렇게 할께. 이건 이렇게 가는 게 어떨까?’ 하는데 독립영화는 엄연히 제가 페이를 받고 자신의 포지션이 있기 때문에 분위기는 좋아도 룰이 있어요. 더 힘들었어요. 솔직히. 나중에 가면 다 무너지긴 하지만요.(웃음) 감독님이 약간 애 같으신 면이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이: 채기 감독님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영화가 작년에 개봉하고 나서 관객들과의 대화에 참석하셔서는 심오한 작업에 약간 무성의하게 대답하시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이 장면은 어떤 의도인가요?’ 질문을 하면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찍었다. 그런식. 굉장히 엉뚱하실 것 같아요.
김: 옥지영씨하고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감독님이 저하고 찍을 때는 롱 테이크를 너무 좋아하셨어요. 거의가 롱 테이크에 풀 샷! 제가 오죽하면 ‘감독님, 영화에 제 얼굴 안 나오죠?’ 그렇게 까지 물어봤었어요.
이: 클로즈업 나오잖아요.넘어져서 악!!그럴 때 (웃음)
김: 감독님이 오락성 있는 영화를 찍는 분이셨다면 거기에 맞는 이성적이거나 뭐라 그래야 되죠? 일관성 있는 흐름을 잡아낼 분이셨을 텐데, 감독님 본인이 작품에 대한 논리성 보다는 (머릿속에 있겠지만) 이미지에 대한걸 강조하잖아요. 저는 영화를 찍으면서 사실 연기를 안 한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한 설명을 안 하셔서 난감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때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내가 설명을 안하는게 아니라 설명할 필요가 없는거라고. 이게 다기 때문에.. 숨은 그림을 찾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무슨 현상을 숨겨 논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보이는 거로만 이해해 달라고.
이: 그 대답을 듣고 나니 약간 부끄러워지네요. 영화기자라는 게 좀 난감하거든요. 영화속 이 의도는 뭔가요? 하고 질문해야 되니까. 그러고 보니 배우들끼리 겹쳐지질 않아서 촬영할 때 거의 마주칠일이 없었겠네요.
옥: 한번도 없었어요.
이: 그런데 아까 대기 할떄 보니까 되게 친하신 것 같던데..
김: 저는 제주도 스텝으로 따라갈 뻔 했었어요.
이: 정말이요?
김: 제가 촬영할 때는 원주까지 직접 운전해서 가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지영씨는 제주도 가는데 왜 전 안 데리고 가요? 그랬더니 감독님께서 조명 스태프로 오실래요? 그래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그랬죠. (좌중폭소)
이: 두 분이 미리 아셨었나요? 서로 알고 나서 영화에 참여한 건가 해서요.
김: 전에 매니저 하시는 분이 옥지영씨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어서 평소에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제가 <고양이를 부탁해>를 다섯 번 이상 봤거든요. 그리고 워낙에 고양이를 좋아해요.제목도 맘에 들고.연기도 좋아서.
옥: 찍기 전에 한번 뵈었어요. 그때 사람이 많아서 인사 정도만 하고 얼마 전에 포스터 찍을 때, 본격적으로 말을 건냈었죠.
이: 이난 감독님이 영화에서 연기도 하고 포스터사진도 직접 찍었는데 어떠셨어요? 한이씨 같은 경우엔 영화 속 모습 그대로 포스터 안에 들어있는 느낌이었어요.
김: 포스터 원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셋이 같이 찍은 게 있고, 그 안에 개인 샷이 들어가 있잖아요. 디자인이나 계획은 이난 감독님이 모두 하셨고, 보실 수 있는 큰 포스터는 셔터만 안 누르셨지 직접 하셨어요. 개인컷은 직접 다 찍어주셨구요.
이: 나중에 개봉된 거라 개봉된 영화를 보면 느낌이 남다를 것 같아요. 극장에서 보고 나서 아쉬웠던 장면이 있으시다면요?
옥: 마지막에 망원경을 보면서 “안보여”라는 첫 대사를 하면서 그 안 보인다는 게 어떻게 보면 일상을 연기했던 것 중에 뭔가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말을 어떻게 해야 되고 어떤 감정이 들어가야 되는지 이 여자가 왜 안 보인다고 말을 했는지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거든요. 그때는 더 몰랐어요.(웃음) 감독님한테 계속 질문을 드렸는데 특별한 말씀이 없으시니까 이 부분에 있어서 제가 감을 잡지 못해서 그 장면 찍을 때 아쉬웠던 것 같아요.
김: 팔 부러지고 길가다가 모르는 사람이 저를 붙잡고 “우리는 486의 경쟁률을 뚫고 태어났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저는 부분에 뭔가 의미나 메타포(비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찾으려는 노력과 표정은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마음만은 의미를 가지고 연기를 했거든요. 영화를 끝나고 보니까 동떨어진 느낌으로 나왔더라 구요. 그냥 무서운 느낌. 그 부분이 좀 아쉬워요. 배우로써 캐치를 못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의도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부끄러워요.
김: 제가 아직까지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걸 위해서 노력하는 마음은 먼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영화에서 힘들었던 게 그거예요. 왜 이런 대사를 하는지, 느낌이나 표정은 똑같이 손을 올리더라도 손을 올리는 이유와 느낌이 분명히 달라야 되는데 보여지진 않더라도 마음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게 어려웠어요. 의도하지 않게 연출을 이쪽으로 해야 되는데 저는 거기에 나름대로 사족을 붙여서 감정의 흐름이 끊겨서(그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웠어요.
이: 말을 나눠볼수록 연기에 대한 진지한 진심이 마음에 와 닿는데요. 연기를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나요?
옥: 저 같은 경우는 막연하게 모델이 되고 싶어서 모델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모델을 하다 보면 영화 쪽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가끔씩 와요. 그때만 해도 연기라는 건 생각도 못했고, 뼈가 부러지더라도 모델만 하겠다고 결심한 터라 연기를 할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 와중에 <고양이…>대본이 온 거예요. 어떻게 보면 연기를 하고 싶어도 못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내가 연기를 너무 사랑해서 시작한 건 아니지만 내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좋은 기회를 잡아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 거죠.(웃음)
이: 한이씨는 이런 질문 많이 들으셨죠?
김: 아뇨. 제가 대답을 많이 하고 다닌 거죠. 농담이구요(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알려진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교떄 사춘기를 겪었어요. 부모님이 의사가 되라고 하셔서 그게 제 길 인줄 알고 준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손이 다쳐서 피가 나는데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러면서 순간 드는 생각이 ‘내 피도 이렇게 싫은데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배를, 머리를 수술할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힘들었어요.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학교에서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촌극을 했는데 끝나고 거의 일주일 동안 심장이 뛰더라구요. 그러다 우연히 압구정동에 가게 됐는데 길에서 에이전시 명함을 받았어요. 그게 저한테 충격으로 다가온 거죠. 그런데 저는 연기를 배운 적이 없으니까 연극영화과를 지원을 한거고. 사실 연기로 간 것도 아니 예요. 연출로 들어가서 공부했는데 재미가 없더라구요.(웃음) 그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연기로 방향을 틀었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아직까지 제가 끈기가 없어서 뭘 오래 해 본적이 없는데 밤을 새도 현장에 가도 에너지가 넘치는걸 느껴요.
이: 시선을 즐기시는군요.
김: 그런 의미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거죠. 어떤 위치가 더 좋고 나쁘다는 문제가 아니라 건강하게 태어나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기뻐요. 축복받은 일을 한다는거. 아무나 못하는 거잖아요.
이: 개별적으로 질문을 드릴께요 영화 속에서 지영씨는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잖아요. 영화를 보면서 혼자 여행을 떠나면 왠지 저럴 것 같은 느낌이 와 닿았어요. 평소에도 혼자 여행을 즐기시나요? 영화의 마지막에서 ‘안보여’란 대사는 되려 영화의 첫 장면인 우주로의 출장을 준비하는 우주여행사랑 이어진단 생각도 들었어요.
옥: 여행을 진짜 좋아해요. 돈만 생기면 돈 한 푼까지 탈탈 털어서 무조건 가는 스타일인데 여태껏 항상 친구들이랑 가다가 요번에 딱 한번 혼자 가봤어요. 호주로 간 건데 사실 거기에도 친구가 있어서 엄밀히 말하면 혼자간 것도 아니죠(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 속 내용하고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이: 사실 한이씨가 연기한 원주로의 출장장면도 쇼킹했어요. 집에 일 있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주인공이나 그 옆에서 눈치 보는 여직원. 심기불편한거 참으며 밥 먹으라는 사장까지. 테이크가 긴 만큼 NG도 못낼 것 같다.
김: 그 장면엔 버전이 두 개가 있어요. 영화에서 ‘자고가자’ 그러면 좀있다가 ‘안되는데요. 집에 일이 있어서요.’ 하는게 있었어요. 그런데 말이 먼저 나오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 같으면 그럴 것 같았어요. 말이 먼저 나와서 실수한 상황이면,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고 회사도 유령회사인지도 모르고. 팔은 아파죽겠고. 민망해서 화장실 가는 장면도 감독님께 나 같으면 민망해서라도 화장실 갈 것 같다고 의견을 내니까 감독님도 좋다고 해서 그렇게 찍은 신이예요. 그 장면은 잘해서 좋은 것보다 그럴 것 같아서 좋아요. NG는 지금 생각해 보니 한 두번 정도 갔는데 연기나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말씀 드린 버젼 때문이었어요.
이: 화제작들 <고양이를 부탁해>(서지영 역),<달콤한 인생>(세윤 역)을 작업하면서 장편과 단편의 느낌을 알 것 같은데 차이점이 있다면요?
김: 제가 일단 상업영화를 4개 정도 해봤는데 상업 영화는 스케일이 크다 보니까 서로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 감독님이나 스텝들 다 신경 못 써주는 게 있어요. 흔히들 ‘찾아 먹어야 된다’는 표현을 쓰잖아요. 그런 부분에 경험이 없어서 좀 힘들었었고 그 대신에 그런 감독님과 작품을 하고 나면 ‘아..그래서 감독님이 그랬구나’ 하고 배우는 게 많았어요. 그에 비해 단점이라면 (상업 영화라서) 많은걸 준비해가도 시간이나 환경 때문에 영화에 못 싣는 경우가 있었어요. 지금 봐도 어떤 영화는 ‘뻣뻣했구나’ 하는 게 있어요. 독립영화는 뭔가 해보자는 가족 같은 분위기가 좋았고,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걸 보여 줄 수 있는 게 좋아요. 단점이라고 하면 규모가 작다 보니까 스케일이라고 하면 건방지고, 제가 신경 쓰지 않아야 할 부분들이 보인다는 거죠. 이 영화는 그 어떤 드라마나 CF보다 즐겁게 찍었어요.
옥: 전 영화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상업적인 영화는 없었어요. <고양이...>는 롱런 했지만 우리나라 보다는 해외에서 인정을 받은 영화라서 <빛나는 거짓>도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규모가 약간 작다 빼놓고는 특별한걸 못 느꼈어요.
이: 각자 나름대로의 필모그라피를 쌓아왔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김: 잘한게 없어서.하하 만들어 가야죠.
옥:’옥지영’하면 나올 수 있는 게 <고양이..>기 때문에 단점일수 있지만 가장 애착이 가는 영화예요. 첫 주연 작이었고,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았기 때문에. 그런데 이미지가 <고양이..>속 암울한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까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같은 경우엔 좀 바뀌었지만 영화 쪽에선 계속 그런 식으로 나갔어요. <가능한 변화들>, <인형사>도 그랬고. 어떻게 보면 애착이 가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미지가 굳다 보니까 좀…
이: 딜레마네요. 대표작이지만 떨쳐 버려야 하는.
옥: 시간이 흐르고 배우를 하기 위해서 연기를 하려면 극복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이제 해왔던걸 버려야 하고, 새로운걸 받아들이고 창조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긴 하지만 괜찮아요.
김: 인생을 살아가면서 죽을 때까지 가져갈 작품을 배우로서 만나길 바라는 거죠. 아직까지는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이게 좋다 저건 나빴다라는 말은 못할 것 같아요. 옥지영씨도 제가 좋아하는 이유가 ‘배우’기 때문이거든요.
저는 배우랑 엔터테이너는달라야 된다고 생각해요. 배우는 인간의 정서를 담아내고 희로애락을 표현해 내야 되는데 자신의 틀에 갇혀서 ‘척’하는 연기를 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옥:우와..말이 너무 와 닿아요.
이: 정말 너무 멋진 말을 해주셨네요. 그렇다면 롤 모델로 삼고 싶은 배우는요? 사실 나름대로의 색깔을 가지신 배우들이라 이 질문은 우문이 될 것 같은데..
김: 스타니 슬라브스키(러시아의 유명한 연극연출가)를 아주 많이 좋아해요. 책을 읽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거기에 기초해서 연기하는 분들을 좋아해요. 그래서 드니로 형을 가장 좋아하죠.
이: 하하. 드니로 형..
김: 제 마음속에는 <대부>의 형님, <히트>의 형님으로 남아 있으니까. 한국에서는 누구라고 짚어서 말하기 보다는 정말 피 토하면서 연기하는 선배들을 많이 봐왔거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과연 저 사람만큼 연기를 하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정말이지 한국배우만큼 연기 잘하는 배우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선배 배우들이 한 것 만큼 연기 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사람은 드니로 형님. 싸이에 드니로 형님 사진으로 도배해 놨어요.
옥: 전 밀라 요요비치요. 연기보다는 그녀의 이미지와 모습에서 풍기는 향기를 좋아해요. 한국배우 분들 중에는 전도연 선배님.
사실 제 이름 앞에 배우란 이름을 붙이기가 아직은 어색해요. 전 ‘연기를 하는 사람’이에요. 아직은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배우’란 아무나 붙여지는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 한씨가 말한 그런 분들을 배우라고 칭하고 싶고 그분들에 비하면 노력도 안 했고 연기를 뛰어나게 잘하지도 않아서 나중에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배우’란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걸어 나가야죠.
이: 생각이 제대로 박힌 배우들이 있어서 이번 인터뷰가 너무 신나네요. 최근에 좋게 본 영화가 있나요? 앞으로의 계획도 말씀해 주세요.
김: <웰컴투 동막골>을 개봉하는 날 가서 봤어요. 연극도 봤었던 거라 CF감독 분이라 지루할 수 있는 부분에서 잘 표현해 내셔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액팅에 대해 말을 하자면 모든 배우들이 너무 잘하시고 노력한 흔적이 보여서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많았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은 제가 아무리 배우가 되고 싶어도 상업적인 부분을 떠나서 생각할 수가 없잖아요. 경제적인 부분을 등한시 하지 않으면서 인지도를 쌓아가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열심히 하고 배우로서 부끄럽지 않게 자기개발 충실히 하고 연기지도도 많이 받아서 드니로 형을 향해 한방한발 나가는 게 제 꿈이자 계획이죠.
옥: 아~반해서 말을 못하겠어요
김: 제발 그러지 마세요.이놈의 인기는 원.
옥: 워~워~워~진정하세요. (웃음) 영화를 엄청 좋아하는데 많이 못 봤어요. <가문의 영광2>가 가장 최근에 본 작품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은 저도 자기개발하고, 책도 많이 읽고 영화 잘 보고, 그리고 지금 찍고 있는 영화 <피터팬의 공식>잘 될 수 있게 열심히 촬영해야죠. 그리고 무엇보다 계속 꾸준히 연기하면서 배우의 길을 걸어가는 것!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그와 그녀의 색다른 모습을 살짝 엿보시길~
취재: 이희승 기자
영상: 권영탕 PD
사진: 이한욱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