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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 질문, 대화의 장 <애프터 미투> 이솜이, 강유가람, 소람 감독&남순아 프로듀서
2022년 10월 13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애프터 미투>는 사회·문화적으로 뜨거운 바람을 일으킨 미투 운동의 현재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질문하는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다. 여학교에서 만성적으로 행해져 온 교사 성폭력을 뿌리뽑기 위해 전개된 스쿨 미투의 현장 <여고괴담>, 어린시절 겪은 성폭력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중년 여성의 미투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미투 운동 이후의 문화·예술가의 오늘을 인터뷰한 <이후의 시간>, 여성이 섹스 관계에서 느끼는 미묘하게 불쾌한 감정을 포착한 <그레이 섹스>까지 동시대 여성의 일상과 목소리를 전한다.
 남순아 프로듀서
남순아 프로듀서

# <애프터 미투> (남순아 프로듀서)

1991년 처음으로 위안부 증언을 한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오프닝과 10년 만에 바뀐 서울시장을 향한 목소리로 마무리하는 엔딩은 남순아 프로듀서의 아이디어였다. “우리 계보 안에서 미투 운동을 해석하는 거로 시작해서, 정치 지형과 상관없이 앞으로 계속해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남순아 프로듀서는 단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며, 한국독립영화협회 성평등위원회에서 활동한 바 있다. 현재 그는, 옴니버스 영화 <기기묘묘>의 ‘유산’ 에피소드로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 단편 호러 <탄생>을 후반작업 중인 그는 “허세가 많고 시기 질투가 많은 스스로를 최대한 정신줄을 잡고 숨기려고 한다”는 솔직한 사람이다. 본업인 영화 연출만큼의 열정으로 앞에 나서서 행동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 매일>(2021)의 구성작가로 강유가람 감독과 합을 맞춘 경험은 이번 <애프터 미투>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네 감독이 옴니버스 다큐로 뜻을 같이하는 게 흔치 않을 일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일단 강유가람 감독이 미투 이후의 흐름을 담아보자는 제안을 했다. 박혜미 총괄 프로듀서와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한 후 감독들을 차례로 모셨고, 그분들이 합류하면서 점차 방향을 다듬어 갔다. 기획 단계에서는 이슈를 짚어 나가는 것 그러니까 미디어 등에서 다뤘던 부분을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감독들이 천착한 주제와 관심사가 들어오면서 질문을 던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갔다. 결과적으로 미디어가 주목하지 않은 여러 담론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질문일까.
말했듯 초기 방향이 이슈파이팅이었다면 각 감독님이 들어오면서는 좀 더 섬세한 질문에 접근해 갈 수 있었다. 가령 소람 감독의 <그레이 섹스>는 ‘틴더’(데이트 매칭 앱)라는 소재를 통해 젠더 권력이 평등하지 않으면 단순한 욕망에 불쾌감이 동반될 수 있는 지점을 짚는다. 미투 운동일 때는 누가 봐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가 명확하다. 특히 가해자는 주로 유명인이었다.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이러한 상황에 따른 질문이 필요하다고 본다. 법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부당함을 느끼는) 개인의 탓으로, 개인의 감정 탓으로 돌려버리는 건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하는 질문이다. 미투 운동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고, 이를 사적인 관계 속에서도 이어가도록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고괴담>(박소현 감독)

한 여고에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던 교사가 있다. 강제 추행을 일삼은 그는 10대들의 미투로 세상에 알려진 지 3년 만인 2021년 2월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박소현 감독이 연출한 <여고괴담>은 용화여고와 그 졸업생들이 주축이 돼(용화여고 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이러한 형사처벌을 이끌기까지의 과정을 담는다. 감독은 전작 다큐멘터리 <야근 대신 뜨개질>(2015)과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2019) 등을 통해 대안적인 삶과 다양한 교육 형태와 구조적 문제를 바라봐 왔다.

이번 스쿨 미투를 다루면서 감독은 “해당 교사는 징역 1년이 확정돼 수감 중으로 이제 곧 출소한다. 문제는 교육 일선에 재취업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제도적인 미비점을 짚는다. 9월 30일은 대법 판결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여고괴담>을 통해 재판이 거쳐온 과정과 그 의미, 한계를 환기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감독이다.
 이솜이 감독
이솜이 감독

#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이솜이 감독)

이솜이 감독은 매일같이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라는 문장을 공책 빼곡하게 쓰며 자기 회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중년의 박정순 선생을 카메라에 담았다. 치유공동체에서 처음 만나 인터뷰를 허락받기까지 1년이 넘는 교류의 시간이 필요했다. ‘치유공동체를 찾은 분들 중 ‘행복 쌤’(박정순 선생의 가명)은 가장 복잡한 분’이라고 설명한다.

감독은 자전적인 실험 단편 다큐멘터리 <관찰과 기억>(2018)에 이어 장편 다큐 <너에게 가는 길>(2021)의 촬영부로 참여했다. 피해자가 어떻게 발화하고 치유하고 살아가는지를 담은 <100.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는 성폭력, 여성폭력, 가정폭력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는 단계에서 만든 작품이다. 현재 군대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을 주인공으로 재현의 연극성을 드러내는 다큐를 준비 중이다. 욕심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어떻게든 작품을 만들어 내려는 것을 보니 그럼에도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는 감독이다.

미투운동에서 중년 이후의 여성이 소외돼 온 면이 있다. 어떻게 박정순 선생의 이야기를 담게 됐나.
미투 운동 저변의 목소리를 찍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치유공동체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공동체를 찾은 분들 중에서 선생님은 가장 복잡하고, 가족폭력과 친족성폭력 등 피해의 레이어가 많은 분이었다. 1~2년간 교류 끝에 인터뷰를 제안했고, 처음 선생님 댁을 방문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는 문구가 빼곡히 쓰여진 노트가 서너 권이 넘었고, 성폭력 피해자 관련 도서와 포럼 등의 관련 자료를 필사한 흔적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의 시작점인 고향을 찾아가 확성기를 통해 마음속의 울분을 토해내는데, 이 부분에서 어떤 감동이 느껴지더라.
선생님은 피해자로서 이미 정체화하고 자신의 언어로 체화하고 말하고자 하는 단계였다. 그간 우울과 회복을 반복하면서 자신을 온전하게 만드는 법을 찾으신 듯했다. 단편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선생님과 많이 대화했고, 모든 사람을 향한 얘기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한 이야기를 하면 좋겠더라. 그렇게 공간과 대상을 좁혀 나갔고, 종착지는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 있던 곳으로 선택했다. 사실 타인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은 처음이라 개인적으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강유가람 감독
강유가람 감독

# <이후의 시간>(강유가람 감독)

지방의 문화예술계는 성&위계 폭력 문제에서 자유로울까. 관심의 부족과 스피커의 부재 탓이 아닐까. 강유가람 감독은 세 명의 예술인 송진희 작가, 이산 연극배우, 남순아 감독을 만나 미투 운동 이후의 시간을 전한다.

어느덧 독립다큐멘터리계의 선배가 된 강유가람 감독은 다큐멘터리 <이태원>(2016), <시국폐미>(2017), <우리는 매일매일>(2019)을 통해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다. 이번 <애프터 미투>의 기획부터 함께한 감독은 “미투운동이 일상의 전복이 아니라도 균열은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조금씩 알게 되고 조롱할지언정 조심하게 됐기 때문이다. 영화가 ‘환기, 질문, 대화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는 감독. 농담도 잘하고 재미있고 싶은데 사람들이 세상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재미가 없는, 슬픈 사람임을 자청하는 그는 다음 작품으로 두 여성이 주인공인 스릴러로 극영화에 처음 도전한다.

부산의 미투 운동과 이후, 연극계, 그리고 영화계에 있어 미투 운동의 여파를 대략적으로나마 감지할 수 있는 인터뷰였다.
처음에는 미투운동이 연극계에서 크게 촉발됐고 또 미투의 당사자이기도 한 이산 님을 위주로 구성하려고 했다. 연극배우로 성평등 교육 강사로 예술가와 활동가의 정체성을 지닌 이산 님은 기대대로 업계의 흐름을 잘 짚어 주셨다. 하다 보니 지역과 영화계의 움직임을 전하고 넘어가야겠더라. 송진희 작가님의 경우는 부산 지역의 상황을 잘 알려주실 분이라 모셨다. 지역의 문화예술계는 폐쇄적인 면이 있어 오히려 미투가 묻히는 경향이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한다. 남순아 감독과는 한독협(한국독립영화협회) 성평등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하며 사건을 해결하고 고민을 공유한 지점이 있어, 영화계 내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짚어줄 거로 생각했다.

남순아 감독은 성폭력보다 위계에 의한 폭력을 지적했는데 영화계의 선배 입장에서 체감하는 부분인가.
직접적으로 크게 경험한 건 없다. 하지만, 인격적인 모욕을 받으면서 작업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다. 요즘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과 제도가 마련돼 시행되고 있으니 영화계도 그 제도 안에서 평등한 방식으로 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람 감독
소람 감독

# <그레이 섹스>(소람 감독)

남자친구의 욕구에 의한 섹스는 성추행인가 아닌가. 친밀한 관계에 있는 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한 OK는 거절인가 동의인가. <그레이 섹스>는 욕망과 불쾌함이 얽힌 규정하기 어려운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소람 감독은 말한다.

소람 감독은 외모 콤플렉스를 다룬 단편 다큐 <먹방>(2014)을 시작으로 장편 다큐 < B급 며느리 >(2018)의 조연출에 참여하면서 여성의 삶에 관심과 고민을 기울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단편 다큐 <통금>(2020)을 통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에 놓인 여성을 조명했다. ‘느낌이 너무 많은 사주’라 원하지 않는 문제점을 발견해서 삶이 힘들다는 그는 가사노동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질문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다.

남녀 관계에서 여자가 느끼는 묘하게 불편한 감정을 잘 포착했다. 인터뷰이인 달콤, 토기, 삐삐, 귤이 전하는 솔직한 심정에 공감할 여성이 많겠다.
어떤 분이 이런 댓글을 달았더라. 책이나 영화를 볼 때 가장 쾌감을 느끼는 지점, 그러니까 자기의 생각이 언어나 글로 표현된 걸 마주했을 때인데 <그레이 섹스>도 이렇게 캐치했다고. 자신도 몰랐던 감정의 색과 질을 인터뷰이를 통해 접해서가 아닐까.

연출 계기는.
당시 N번방과 데이트어플이 이슈화되면서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왜 계정을 만들었냐 등의 2차 가해로 책임을 전가하는 걸 여러 목격했고 ‘피해자다움’이라는 게 무언지 고민했다. 매체의 헤드라인부터 시작해서 통념에 갇혀 있고, 언론은 이를 재생산하면서 2차 가해가 이뤄진다. 인터뷰이를 만나 이야기를 다루면서 피해자다움이 무엇인지에서 점차 이들이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유교걸이라고 자책하더라도 불쾌감이든 뭐든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들이 섹스에 있어서 느끼는 욕망과 불쾌감, 이후의 자책과 자기혐오의 감정은 결국 2차 가해와 피해자다움의 연장선에 있지 않나 싶다.


사진. 박광희

2022년 10월 13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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