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로기완>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주변에서 영화를 보고 응원과 축하의 메시지를 많이 보내주셨다. 최근에 <로기완> 무비토크를 진행했는데 관객 분들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밀도 있게 영화를 느끼고, 굉장한 정성이 담긴 편지로 소감을 전달해주셔서 놀랐다. 치유받는 느낌이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한 마디 남기자면, ‘기완’의 상황이 흔하지는 않지만 그의 고통을 특별한 고통이라고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기완’과 ‘마리’에게 본인을 이입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위로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첫 작품을 넷플릭스에서 공개하게 된 소감은 어떤가.
넷플릭스가 더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려는 시도를 한다고 느껴졌다. 전 세계 구독자들을 상대로 하다 보니 이야기의 다양성을 고려하는 것 같았고 덕분에 <로기완>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7년 전 제작이 중단됐다가 다시 재개됐다고.
7년 전에 용필름의 임승용 대표님이 <로기완> 연출을 먼저 제안했다. 당시 송중기 배우에게 ‘로기완’ 역을 제안했는데 그가 거절하면서 프로젝트가 멈췄다. 아쉬웠지만 <로기완>과의 연이 거기까지라고 생각하고 미련 없이 접었다. 그 사이 용필름의 다른 작품 각본을 각색하기도 했고, 내 오리지널 각본을 쓰기도 했지만 연출 데뷔의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는 않더라. 그러다가 송 배우가 마음을 돌려 합류하기로 했다.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고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후련한 마음이 크다. (웃음)
다른 배우를 선택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송중기 배우의 전작들을 보면서 마음을 뺏기는 순간이 여럿 있었다. ‘로기완’에도 잘 어울릴 거 같더라. 또?신인 감독의 데뷔작인 데다 해외 로케이션까지 나가야 하는 만큼 인지도 있는 배우가 필요하기도 했다.
송중기 배우가 처음 출연 제안을 거절했을 때 ‘로기완’이 그토록 혹독한 상황에서 사랑에 빠지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 사이에 송 배우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시나리오도 달라졌다. ‘기완’이 살아남으려고 분투하는 모습이 와닿아서 출연을 결심한 거 같다.
실제로 함께 작업해보니 어떻던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한 모습을 보여줬다. 극중 ‘기완’이 행복할 자격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송 배우가 직접 추가한 대사다. 엄마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가진 아들이 낯선 땅으로 도망가 살아가면서 겪는 고뇌를 좀 더 드러내도 될 거 같다더라. 배우와 창작자가 한 작품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힘이 났다.
연기적으로 감탄한 순간이 있다면.
한 장면을 꼽기 어렵다. (웃음) ‘기완’이 처음 벨기에에 도착했을 때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구한다. 그 장면이 시나리오에는 ‘허겁지겁 빵을 먹는다’ 정도로 간결하게 쓰여 있었다. 그런데 송 배우는 빵의 상한 부분을 떼어낸 뒤 잼에 손가락을 넣고 핥아먹었다. 가방 속 빵 부스러기까지 긁어먹더라. 시나리오에도 없는 디테일한 연기로 ‘로기완’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물에 들어가는 장면도 원래는 대역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본인이 직접 하고 싶다고 하더라. 겨울이라 꽤 추웠는데 열정이 남달랐다. 삼촌과 싸울 때 텅 비어버린 얼굴도 좋았다. 생각할수록 모든 장면이 좋았던 거 같다. (웃음)
‘마리’ 역의 최성은, ‘선주’ 역의 이상희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마리’ 역 오디션을 열었을 때 최성은 배우가 가장 처음 왔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그냥 ‘마리’ 같았는데 두세 번 더 만나면서 확신이 들더라. (웃음) 이상희 배우는 독립영화 시절 때부터 유명했던 배우이고 좋아하는 배우이다. 애초에 ‘선주’ 역에 이상희 배우를 염두에 두고 썼다. ?
‘기완’의 서사 자체는 많이 변하지 않았다. 다만 ‘기완’이 어떤 고난을 겪고 왜 떠나야만 했는지 좀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로기완’의 시점으로 바꿨고 ‘마리’(최성은), ‘선주’(이상희) 등 그와 엮이게 되는 주변부 인물들의 사연을 보강했다.
영화를 위해 새롭게 창조된 ‘마리’는 불법 사격 도박장에서 일한다.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마리’는 ‘기완’이 떠날 결심을 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어렵게 터를 잡은 벨기에를 떠날 정도의 사건이 필요했다. ‘마리’가 몸 담고 있을 만한 어두운 세계가 필요했고, 메이저에서 활동하던 ‘마리’가 그런 곳까지 흘러들어갈 수 있는 종목으로 사격이 적당할 거 같더라.
‘로기완’의 어머니 역할로 김성령 배우가 나온다. 가장 의외의 캐스팅이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좀 더 전형적인 배우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임 대표님 생각은 달랐다. 잠깐 등장하면서도 ‘기완’에게 큰 영향을 주는 역할이고, 배우의 색다른 모습을 끌어내고 싶어 하셨다. 그렇게 ‘옥희’ 역에 김성령 배우를 캐스팅하게 됐는데, 여태 보지 못했던 모습을 봤던 거 같다. 쓰러진 채로 ‘기완’한테 가라고 얘기할 때 카메라 뒤에서 지켜보는 내 마음까지 무너져내릴 거 같더라. 김성령 배우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혹은 기대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순간들에 함께 있을 수 있어 영광이었다.
첫 장편 연출인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감정적으로 파고드는 이야기라 나보다 배우들이 힘들었을 거다. 힘들었던 순간보다 새롭게 배운 것들이 훨씬 더 기억에 남는다. 단편과 장편의 차이도 알았고, 배우가 전체적인 연기호흡을 어떻게 잡아가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내 가능성을 봐준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차기작 계획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 그간 스릴러 장르도 써봤고 케이퍼 무비에도 도전해봤다. 뭐든 하다 보면 되겠지란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는데, 소소하더라도 캐릭터의 내면을 깊게 다루는 이야기가 좋더라. 쓸 때도, 찍을 때도 그런 이야기가 가장 즐겁다. 아마 앞으로도 큰 규모의 이야기보단 드라마 장르에 집중하지 않을까 싶다.
사진제공_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