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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타자화” 디즈니+ <하이퍼나이프> 박은빈 배우
2025년 4월 28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사람을 죽이는 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뇌에 미친 스승(설경구)과 제자(박은빈)가 있다. 디즈니+ <하이퍼나이프>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미친 사람들, 순도 높은 애정과 이기심으로 똘똘뭉친 사고 회로를 지닌 두 사제를 주인공으로 한 메디컬 스릴러. 예측불허의 캐릭터와 예상치 못한 관계성으로 시청자를 매료시켰다. 종영 후 라운드 인터뷰에 임한 박은빈을 만났다.

테이블 위에 대본과 관련 자료를 가지런히 놓아둔 박은빈. 1년이 지난 촬영의 기억 때문에 행여나 오정보를 전달할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스무명 가량의 기자들을 앞에 두고 일일이 명함을 받아 챙기는 친화력을 발휘하며 분위기를 주도한다. 박은빈에게 물었다. 연기 동력과 비결은 무엇이냐고. 연기동력은 매번 새로운 캐릭터에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는 시청자, 그리고 그 비결은 자신과 분리하여 캐릭터를 소개하고자 하는 철저한 타자화에 있다는 그의 말을 들어본다.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캐릭터인데 이미지 변신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지.
배우로서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와 역할에 도전하는 것이 재미라고 늘 생각해 왔다. 개인적으로 도전이라기보다 ‘시도’라고 표현하고 싶다, 같은 것을 반복하는 데 염증을 느끼는 부분도 있다.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다고 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기존 이미지 탈피를 위해 참여한 작품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간 해보지 않은 역할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이라는 강렬한 로그라인 자체가 흥미로웠다. 제작에 참여한 ‘동풍’ 최낙권 대표님이 ‘나’라는 배우를 떠올렸다고 하셔서, 오히려 역으로 ‘왜 저를 떠올리셨는지, 제가 왜 이 역할을 해야 하냐’고 질문드렸었다. 그랬더니 ‘상상이 안 가기 때문에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셔서, 나 역시 대본을 재미있게 본 터라 해보자 했다.

표정과 대사 모두 폭발적으로 내지르는 장면이 많은데 감정의 격차가 큰 연기를 하며 많이 소진됐을 것 같다. 어떤가.
연기할 때 에너지를 잘 비축하는 편이다. 소진의 감정이 느껴질 때를 대비해 미리 조율하곤 한다. 감정의 극단을 표현할 경우가 많았지만, 연기적으로 힘든 적은 오히려 없었던 것 같다. 설경구 선배님과 함께하는 장면에서는 희열이 느껴지면서, 스스로 도파민 돋아 하면서 (웃음) 이런 상황에 카타르시스를 느껴도 되나 싶었다. 시청자는 어떻게 볼지 걱정하면서 작품에 임했던 것 같다. 특히, 마지막 사제간에 격돌하는 씬 일명 8화에서 ‘세옥이 백정이 되는 씬’은, 대본을 받는 순간 이 드라마는 이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달려왔다고 생각했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잖아도 피범벅된 세옥의 얼굴이 너무나 인상적인 장면인데 촬영 당시에 대해 좀 더 들려준다면.
이틀 동안 촬영한 시퀀스인데 ‘양 경감’(유승목)을 죽이는 걸 하루에 끝내면 그 후에 세옥과 ‘덕희’(설경구)가 대화하는 씬을 하루동안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개인적으로 양 경감을 죽이는 것보다 그 후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일정이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았고, 야식 먹고 새벽 5시까지 찍었는데 해가 밝아오는 등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뒷부분이) 선배님도 나도 조금은 아쉽지만, 사력을 다해서 한 만큼 잘 나온 것 같다. 후회는 없지만, 다만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욕심은 든다.

보편적이지 않은 인물을 표현하면서 어떻게 접근해 갔는지. 특히 분출이 큰 캐릭터라서 자칫하면 과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조율이 관건이었겠다.
세옥을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그보다는 좀 더 범주를 넓혀서 반사회적 인격장애 인물로 탐구했었다. 직접 본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해하고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참고 문헌 등을 통해 접근하는 시간을 가졌다. 충동조절 장애에 독선적인 인물이라, 과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충분히 인지했고 한편으로는 과해야 추동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나만의 방식으로 인간다움과 좀 더 다층적인 면모를 표현하려 했었다. 덕분에 세옥과 함께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치열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다행히 정이 안 가는 캐릭터라기보다 ‘나쁜 데 응원해도 될까’ 라는 생각으로 품어주는 분이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차마 이 캐릭터를 사랑해 달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웃음)

심리학을 전공한 덕분에 심리 진단 같은 부분에 익숙해서 인물을 좀 더 다층적으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떤 스펙트럼 안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내가 공부하고 배운 부분에 근거해서 좀 더 세옥에 가까워졌던 것 같다. 나만의 방식으로 세옥의 여러 특성을 나열해 놨었지만, 시청자분들은 어렵지 않게 보기를 바랐고 내가 표현한 부분을 잘 느끼셨으면 했다.

세옥이 밖으로 표출한다면 덕희는 안으로 침잠한다고 할지, 데칼코마니같이 닮았지만 그 표현 방식은 완전히 다른 두 인물이다. 설경구 배우와 연기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하다.
7~8화 대본이 조금 늦게 나오는 상황에서 방향성에 대해 의논하느라 대화를 많이 나눌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마음으로 참여했는지, 이 드라마를 통해 어떤 감각을 전달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관계가 명확하고 내용도 쉽지만, 그 안에 해석할 여지가 있는 점이 흥미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선배님과 본 적 없는 사제 관계라 그 감정 역시 상식적으로 흐르면 안 된다는 방향성에 합의했었다. 어렵게 다가가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도록 배우로서 잘 전달해 보자는 목표 지점이 같았다. 인터뷰하면서 새삼 느끼는 점이 <하이퍼나이프>에 대해 많은 말이 필요할까이다. 원래도 설명보다는 ‘체험해 주십사’ 한 작품이었다. 내가 처음 대본을 읽을 때 느꼈던 오묘한 감정을 시청자분이 어느 정도까지 느낄지 궁금했는데 다행히 기대 이상으로 많이 따라와준 것 같아 감사하다.

모처럼 연기 ‘보는 맛’이 있다는 평가다. 덕희와 세옥을 보면서 뭐라 설명할 수 없이 그 연기에 매료되는데 설경구 배우와 호흡은 어땠나.
알고 보면 깊은 애정을 다룬 드라마이기도 하다. (웃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 않나. 세상과 어긋나 있는 지독하지만, 진한 사제 관계가 아닌가 한다. 누가 봐도 오답인 걸 자기만의 정답을 만들어 버리는 인물들인데, 덕분에 시청자의 해석도 다양하고 재미있어진 것 같다. 선배님과 호흡은, 일단 내가 연기할 때만큼은 직관적으로 부닥치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대사도 현장에서 외우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그만큼 현장의 몰입도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고 캐릭터로서 보여드릴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선배님도 비슷한 것 같았다. 리허설보다 슛 들어갈 때 전심전력이 되는 분이셨다. 덕분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알뜰하게 합을 맞추는 부분에 있어서 호흡이 좋았다.

‘서 실장’(윤찬영)과의 관계도 흥미롭다. 세옥이 나름대로 끔찍이 챙기지 않나. (웃음)
세옥도 그렇고 그 주변인들에 대한 설명이 깊지는 않다. 원인과 결과에 있어서 원인을 추구하는 작품이 아니라, 과감하게 서사를 생략하고 관계성으로 이끌어 가는 작품이라 그렇다. 서 실장은 세옥이 과거에 수술해 주고 살린 인물인데, 세옥은 나름 효용성이 있는 친구라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에 곁에 뒀다고 생각했다. 화면으로는 생략되었지만, 대본상에 지문으로 ‘빨랫감이 가지런히 개어 있다’ 고 나왔었다. 이를 보고 깔끔하고 정리정돈 잘하는 친구라 쓸모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세옥에게 ‘필요’를 확 안겨주었기 때문에 곁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했다.

김정현 감독은 세옥이 초반 간호사 ‘미란’(장선)을 살해 후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희열을 느꼈다고, 너무 무섭게 나와서 다시 찍자고 제안하기도 했을 정도라던데.
내가 기억력이 좀 좋은 편인 것 같다. (웃음) 촬영 당시가 막 떠오른다. 첫 촬영이 학원에서 서 실장을 기다리는 씬이었다. 미란을 살해하는 씬은 3회차 촬영한 씬인데 감독님께서 앵글을 돌려서 거꾸로 찍겠다고 하시는 거다. 미란의 목을 조르는 데 있어 효율적이지는 않은 자세지만, 감독님 나름의 생각이 있을 듯해서 따라갔었다. 그런데 처음 촬영하고 나서 서너 차례 더 테이크를 갔었다. 감독님께 ‘무엇 때문에 그러시냐’고 여쭤보니 눈이 거꾸로 뒤집혀서 나오는 데 괜찮겠다고 하시길래 그게 세옥인 것 같다고 말씀드렸었다. 그런 앵글을 원하셔서 거꾸로 찍으신 거 아닌가 했다. (웃음)

수술장면의 대부분을 직접 소화했다고.
세옥이 네 명의 목숨을 살렸는데, 그 중 이치다 여사랑 이야기하면서 나가는 수술 장면만 대역을 쓰고 나머지는 직접 연기했다. 이대 목동병원 김영구 교수님이 촬영 있는 날에는 곁에서 검수해 주셨다. 다행히 신경외과의 경우 손의 움직임이 그렇게 버라이어티하지는 않더라. 한가지 신경 쓴 지점은 의사마다 스타일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안전을 위해 주변을 정리하면서 수술하시는 분, 무엇보다 빨리 끝내시는 데 집중하는 분 등 그 방식이 다른데 세옥은 천재의사 역할이라 과감하게 가기로 했었다. 수술 장면은 보통 6~10시간 정도 촬영했는데 대기하다 보면 문득, 수술 장비와 의료 기기 등은 모두 진짜니까 내 눈앞에서 뇌가 열린다면 어떤 기분일지, 또 내 손끝에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 정말 경이로운 일이겠구나 싶었다. 숭고함이 느껴졌다고 할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번과 또 다른 결의 의사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생기더라.

‘테이블데스’(수술대 위에서 죽음)를 고수한 덕희의 아집과 고집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또 엔딩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덕희는 본인이 실패한 적이 없기 때문에 위로 더 치고 올라가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마음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세옥에게 실패를 통해서 두려움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거다. 덕희의 ‘한 번 울어봐야지’ 라는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누군가를 살리고 싶은 마음은 실력을 넘어서는 무언가일 거라고 생각한다. 덕희의 이러한 아집이 성공한 부분은 세옥으로 하여금 무릎 꿇게 하고 눈물 흘리게 했다는 점이다. 엔딩은 세옥과 덕희 둘 모두의 승리가 아닌가 한다.

인터뷰하면서 테이블 위에 대본과 작품 관련 자료가 나란히 놓인 것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 철두철미한 성격인 것 같다. 세옥과 닮은 점이 있을까.
세옥은 오히려 철저하지 못한 성격이다. (웃음) 이렇게 자료를 챙겨온 이유는 OTT 드라마는 처음인데, 촬영하고 공개까지 그 시기가 상당히 멀어서 혹시라도 잘못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 있을까 봐 서다. 작년 3월 20일 촬영하여 9월 2일에 끝났는데, 내가 혹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면 나중에 텍스트화된 내용을 보고 계속 마음이 쓰일 것 같아서 혹시 몰라서 확인차 가져온 것이다.

세옥을 연기하면서 닮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한 적은 없다. 평소에도 캐릭터를 나와는 별개의 인물로, 나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지 않고 ‘나라면…’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캐릭터에서 멀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타자화하는 것이 캐릭터와 오히려 친해지는 방법이라고 할까. 나와 닮은 점 혹은 차이점을 찾기보다 매번 이번에 맡은 친구(캐릭터)를 세상에 잘 소개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세옥에게 덕희처럼 증오와 사랑이 공존하는 대상이 박은빈에게도 있을까. 또 ‘내 것’ 러버인 세옥인데, 박은빈에게 중요한 ‘내 것’은 무엇일까.
세옥 같은 감정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덕분에 이런 감정을 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대리 경험해 본 것 같다. 덕희와 세옥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친, 순도 높은 애정과 이기심을 지닌 사람들이다. 이런 사고회로를 가졌기 때문에 ‘내 것’으로 만들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을 하지 않았나 싶다. 박은빈에게 내 것이란… (웃음) 이 작품도 ‘내 것’이 아닐까 한다. 한 작품 한 작품 잘 보여드리고자 애쓰고 있고 이번 <하이퍼나이프>는 보다 더 치열했어서 ‘내 세옥’, ‘내 하이퍼나이프’가 아니었을지, 그리고 이제는 ‘당신의 세옥’, ‘당신의 하이퍼나이프’가 되기를 바란다.

거의 30년차 배우인데, 어마어마한 경력이다. (웃음) 연기 동력은 무엇일까.
인간을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다. 인간을 이해하려고 시도할 때 어떤 깨달음을 얻는 순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발견해 나가는 순간, 그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걸 발견해 나가는 순간순간이 재미있다. 캐릭터를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오늘 이 인터뷰 과정을 통해서 ‘세옥’을 온전히 시청자의 품으로 떠나보낸다는 후련함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 여러 방 중 하나에 살고 있을 거다. 나 역시 캐릭터와 함께 성장하기에 애틋함이 크다. 캐릭터를 쓰신 건 작가님이지만, 이를 해석하고 보여주는 건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한 명 한 명 소개할 때마다 나뿐만이 아니라 같이 지켜봐 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 이번에 ‘세옥’이 나쁜 인물임에도 애잔함을 보여주는 분도 있듯이, 나의 친구를 보여줄 때 함께 좋아해 주는 분이 있다는 것이 크게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무인도의 디바>도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친구와 친해지기까지 늘 낯설고 어렵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거쳐서 얻는 성취가 크다. 이러한 성취 덕분에 배우라는 직업을 잘 했다고 생각하고, 성취 덕분에 지치지 않게 된다. 또 지치더라도 성취와 바꾸려고 하는 힘을 기르려는 스스로와 투쟁하며 살게 된다. (웃음)

이번에도 연기 극찬이 끊이지 않는다. 가벼운 질문인데 박은빈은 세옥 같은 타고난 천재일까 아니면 피나는 노력형일까. (웃음)
둘 다 아니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를 보고 참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지만, 나만 아는 나태함과 시행착오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025년 4월 28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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