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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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단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는 핸드폰과 현대 사회의 고립을 접목했던 스릴러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2023)의 김태준 감독이 또 한 편의 서스펜스 <84제곱미터>를 선보인다. 이제 두 편의 작품을 내놨을 뿐이지만, 직관적인 제목과 현실 밀착 스릴러라는 인장이 뚜렷한 감독이다. 감독은 층간소음이라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직면할 수 있는 고통을 단순히 오락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부동산과 코인투자라는 젊은 세대의 사다리와 연결시켜 현 시대상을 날카롭게 반영했다. 일상적인 이야기에 장르성을 가미하는 작업을 좋아하는 걸 깨닫고 있다는 김태준 감독을 만났다. <84제곱미터>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이고, 이를 통해 층간소음과 그 근본 원인이 공론화되는데 일말의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한다.
너무 리얼해서 PTSD가 올 것 같다는 반응이 많더라.
호불호의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호의 반응이든 불호의 반응이든 영화를 다 보시고 의견을 주는 거라 피드백 자체에 감사하다. <84제곱미터>를 보고 스트레스 받지는 않을지 우려했던 부분이라 ‘우성’(강하늘)을 너무 어둡지 않게 보이려 했다. 우성의 상황이 점점 무거워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으로 다소 가볍게 간 부분도 있다. 사운드도 대부분이 소음이라, 우성의 감정에 따라서 일상 소음이 들리다가 안 들리기도 하는 등 최대한 라이트하게 가려 했다. 전반부는 우성이 유주택자로서 집을 사고 지키는 내용이었다면, 후반부 그러니까 무주택자가 되면서는 톤이 한층 무거워진다. 우성의 주택 유무에 따라 장르가 달라진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단순히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의 충돌과 대립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부동산과 코인으로 접목한 설정이 신선하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조사해 보니, 주택 구입이 상상 이상으로 힘들더라. ‘영끌’도 아무나가 아니라 실제로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거였다. 국민 평형, 이른바 국평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젊은 층이 내 집 마련을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한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힘드니까 코인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더라. 우성 역시 코인에 시선이 간 건 집을 지키기 위한 선택 아닌가. 자연스러운 흐름 같았다. 나 역시 층간 소음에 시달린 적이 있고 그 경험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 거였다. 나는 무주택자지만, (웃음) 영끌까지 해서 산 집에서 왜 층간소음에 시달려야 할지 생각해보니, 결국은 부실시공으로 생각이 미치게 됐다. 층간소음이 심한 부실공사 아파트에 살기 위해 인생을 걸고 영끌해야 하나 싶더라. 층간소음 문제를 단순히 오락적으로 휘발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랫집 사람이 윗집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표현이 있는데, 층간소음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는 건 상당히 예민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층간소음이 누구 탓인지 결론을 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윗집 혹은 아래집을 소음 제공자라고 결론을 내리면 가해와 피해의 문제가 생기지 않나.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결론보다 구조적인 문제로 규정하려 했다. 층간소음 문제를 따라가다 보니 사회현상과 비슷한 부분이 있더라. <84제곱미터>에서 보면, 우성에게 맨 꼭대기 층에 사는 ‘은화’(염혜란)는 아래를 보라고 하고, 윗집인 ‘진호’(서현우)는 위를 보라고 한다. 아파트가 수직구조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직관적으로 사회계층과 연결돼 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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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의 등기부등본이 정말 리얼하다고 느꼈다. 여러 셋집을 전전해 온 우성의 이력은, 그가 그토록 내 집 마련에 집착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한다. 우성의 엄마가, ‘서울에서 살지 않아서 미안해’ 이런 말을 하기도 하고.
나는 서울 사람이지만, 어릴 때는 서울에서 산다는 것이 유리한 스타트인 줄 몰랐다. 2010년부터 조연출 생활을 2~3년 하다가 그만두고 7년 정도 글을 쓰다 보니 서울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 수 있다는 게 큰 복이더라. 부모님이 서울에 안 사셨다면, 나 역시 (서울에서) 살 수 없었을 거다. 또 2021년쯤, 친구들이 ‘영끌’을 하면서 하는 말이 ‘지금 아니면 서울에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우성이 왜 그렇게 무리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마지막 무렵 남해 본가로 내려갔던 우성이 한 밤중에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데 그 마음은 무엇일까.
서울과 거리가 먼 지역으로 우성의 고향을 남해로 설정한 이유도 있다. 남해는 아름답고 한산한 풍경을 자랑하지만, 우성이 누워 있는 방은 자그마하다. 아마도 그때 우성은 불현듯, 아파트에 매몰되어 있는 상태라, 자기 집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거다. 그래서 부리나케 야밤에 서울로 가서 확인한 거지. 사람이 죽는 큰 사건을 겪고 비밀을 함구하면서까지 지킨 집 아닌가.
우성이 고향에서 다시 돌아온 후에도 또 같은 층간소음을 겪는데.
우성은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자신의 집을 지키는 편을 선택했다. 그렇게 지킨 집이 사실은 콘트리트 덩어리지 않나. 자기 집을 바라보는 우성의 감정보다 그런 우성을 보는 우리 시선을 담고 싶었다. 카메라가 점점 뒤로 빠지면서 그 공간에 갇힌 우성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렇게 지킨 집임에도 불구하고 층간소음은 여전한데, 마지막 엔딩에서는 ‘서울의 찬가’가 울려 퍼지는 광경이 아이러니하지 않나.
결말이 흥미롭던데, 담긴 의도는.
결말은 우성 입장에서 보자면 해피엔딩일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옳다 그르다기보다는 약간 열어 놓고 싶었다. 우성의 선택이 현실적이라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선택을 보면서 씁쓸하면서도 공감되는 부분도 크다고 생각했다.
우성의 윗집 남자 ‘영진호’ 역의 서현우의 변신이 놀랍더라. 그간 여러 캐릭터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번이 가장 서늘한 것 같다.
외형적인 변화나 언어적인 변화, 다시 말해 살을 찌우든가 혹은 사투리나 외국어를 구사하든가 하는 외부적인 요인 없이 서현우 배우 그 자체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진호라는 캐릭터는 그 정체를 드러나면서 계속 뜨거워지는 인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이중적인 면모와 우성과 브로맨스 등 계속 변화해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민낯으로 이를 표현할 배우로 서현우 배우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강하늘은 시시각각 변모하는 ‘우성’을 톤에 변화를 줘가면서 현실적으로 잘 표현해 냈다. 강하늘 배우를 떠올린 까닭은.
처한 현실이 어렵고 각박하지만, 처음부터 현실적으로 몰아붙인다면 극 전체가 너무 다크해질 것 같더라. 그래서 강하늘 배우로 중화시키려 했다. 또 우성의 감정이 정말 다양한 변화를 겪고 그러면서 장르를 오가는 느낌이 있어서 그 선을 잘 타는 일이 중요했다. 강하늘 배우는 그간 다양한 장르에서 여러 역할을 소화해 온 분 아닌가. 덕분에 초반에 우성이 텁텁하지 않게 잘 표현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영끌족’을 좋게 보지 않는 시선도 있는데, 그들 역시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지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우성을 통해 보이고 싶은 의도도 있었다. 강하늘 배우가 평소에 ‘미담 제조기’라고 불릴 정도로 인성이 좋기로 유명한 분이지 않나. 평소 사람을 잘 안 믿는 편이라, (웃음) 첫 만남에서 약간 의심의 눈초리를 갖고 가식의 껍데기를 벗겨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는데, 오히려 홀딱 반했다. 무엇보다 놀란 부분은 리더십이 강하고 현장에서 항상 치얼업 하며 즐겁게 이끌어 주신다는 점이다. 거진 모든 장면에 나오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또 감정연기도 힘들었을 텐데, 충격적일 정도로 주변을 잘 챙기시더라. 덕분에 나는 모니터에 집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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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극장용 영화로 만들었다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경우이고, 이번 <84제곱미터>는 처음부터 넷플릭스 영화로 기획되었다. 만드는 데 있어서 차이점이 있다면.
당시에 갑자기 OTT 공개가 결정되면서 정말 긴박하게 작업했다. OTT의 경우 사운드 레인지가 절반 이하로 감소하는 반면, 색감은 확 늘어나는 등 촬영 방식에 있어 차이가 크더라. 넷플릭스 오픈일까지 짧은 시간 내에 극장용으로 만든 걸 OTT 용으로 급하게 변환시켜야 했다. 극장에 개봉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에 쫓겨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 에 상실감도 들었다. 긍정적인 건, 한 영화로 두 가지 방식을 경험하면서 그 차이점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이번 <84제곱미터>를 하면서 많이 도움받았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을 텐데 말이지. 프리프로덕션부터 카메라 선택, 색감 등등 미리 알고 있어서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다.
극장용 영화에 갈증이 있는지.
영화의 꿈을 꾼 건 고등학교 언저리부터였다. 영화 전공이 아니라서 현장에서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OTT라는 옵션 자체가 없었다. 첫 영화인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코로나 시국이라 극장 상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작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자체가 행운이었다. 아울러 넷플릭스를 통해 OTT를 경험할 수 있어서 더욱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OTT 영화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고, ‘내 색깔’이 보인다는 말도 해주셔서 감사한 생각이다. 당연히 극장용 영화를 하고 싶지만, 그건 상황이 따라줘야 하는 문제 같다.
첫 작품부터 임시완과 천우희, 이번에는 강하늘, 서현우, 염혜란까지 캐스팅 복이 있는 것 같다. (웃음)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은 무얼까.
음…내 장점이라면… 관계자분들이 (내가) 열심히 하는 걸 잘 봐주신 것 같다. 미팅 전에 하고자 하는 이미지나 가고자 하는 방향성에 대해 준비를 많이 해가고, 물음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답변하는 편이다. 두 영화 모두 캐스팅 포인트는 배우의 새로운 면을 보이고 싶다는 거였다. 그래야 나도, 배우도 윈윈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임시완 배우의 경우,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를 결정할 때 영화 <비상선언>이 오픈 전이라 악역에 차가운 이미지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천우희 배우의 경우 그간 센 역할을 많이 해와서 이번에는 평범하고 사랑스러운 면을 보이면 어떨까 했다. 이번 <84제곱미터>에서는 염혜란 선배의 경우 소시민의 착한 이미지가 큰데 이번에는 권력자라, 새로운 걸 하고 싶은 마음과 맞아떨어진 것 같다. 결론인 즉 배우의 니즈와 내가 보여주고자 했던 방향성이 맞닿아 있어서 캐스팅 운이 따라준 것 같다.
두 작품 모두 현실 밀착 스릴러다. 당신의 인장이라 할 정도다. 선호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신인 감독으로서 예산이 크면 클수록 내 색깔을 보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실적인 예산 안에서 나의 색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워낙 좋은 영화도 많지만, 새로운 소재의 오리지널 작품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 아닌가. 오히려 핸드폰같이 현시대에 새로 등장한 문물이나 아파트처럼 한국적인 것들이 가장 새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가능한 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작업하고 싶은 생각이다. 다만 2017년에 촬영 들어가기 일주일 전 영화가 엎어진 적이 있다. 강제 입원당한 여성이 주인공으로, 이 또한 한국적인 소재라고 생각했었다. 딱 하나 준비했던 작품이 엎어지고 나니 세상이 무너진 기분이더라. 이후로 강박적으로 플랜을 여러 개 준비해 두고 있다. 기획을 다발적으로 하고 있는데, 하다 보니 대부분 일상적인 소재에 장르성을 가미한 이야기였다. 내가 ‘일상에 스며든 장르’를 좋아한다는 게 이제야 보였다.
경영학과 출신인데 어떻게 영화와 인연이 닿았나.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가 경영학을 전공하게 됐다. (웃음) 원래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현장에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너무 반대하셨고, 일단 대학교에 가면 내 선택을 존중해 준다고 해서, 재수하면서까지 대학에 입학했다. 그때도 당연히 영화과를 쓰고 싶었는데 또 부모님이 무난한 과를 가라고, (웃음) 하셔서 경영학과에 가게 된 거다. 그런데 살다 보니 어른들 말씀이 맞더라. 경영학과에 흥미가 없어서 학점은 좋지 않았지만, 그때 만난 친구들로 인해 시야가 확장되는 것 같다. 만약 영화과에 갔다면 영화하는 사람들과 주로 교류했을 것 같거든. 지금은 친구들이 사회인이 됐다 보니 그들로부터 배우는 부분이 많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5년 8월 4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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