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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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가 <강남 1970>(2015) 이후 10여 년 만에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 관객에게 인사한다. 이번에 그가 맡은 인물은 ‘유중혁’이라는 세계관 최강자이다. 소설이 현실이 된 세상에서, 소설의 주인공이자 ‘회귀’를 거듭하는 능력자이다. 이번 유중혁을 연기하며 이민호는 대사나 어떤 서사적 빌드업 없이 독보적인 세계관을 대변하는 롤을 부여받았고, 등장 자체로 훌륭하게 완수해 내었다. 연출을 맡은 김병우 감독이 ‘존재 자체로 판타지’라는 말이 과언이 아님을 몸소 증명해 냈다. 원조 한류스타로, 어느덧 데뷔 20년 차, 40대를 바라보는 이민호를 만났다. 이민호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이고 싶냐는 질문에 자신이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현답을 내놓는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정서’가 보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단다. 이민호가 나온 작품은 어떤 정서를 담고 있는지 보였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한다.
◆ 인간은 함께일 때 더 빛나고 힘을 받는다
“영화는 명확한 평가가 존재하니까 긴장되는 게 사실이에요” 오랜만에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 스크린 복귀한 이민호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가 오랫동안 영화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팬도 많은 터. 이에 “20대 때는 어떤 정서적인 해소나 깊은 이야기를 느끼고 싶어서 극장에 갔거든요. 스스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정서를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영화작업을 해보자 라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여러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립하고 깊은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었을 때, 영화를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이어, 이민호는 서른 초반이 지날 무렵부터 ‘자신을 다시 한 번 새로운 에너지로 채우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이러한 과정이 4~5년 걸렸고 다시 준비됐다고 판단했을 때, 다시 말해 새로운 걸 받아들이고 또 다른 경험을 시작할 시기가 시작됐다고 생각할 무렵에 만난 영화가 <전지적 독자 시점>이다.
“전 현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고 고립화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전지적 독자 시점>이 전하는, 인간은 여럿이 함께일 때 더 빛나고 힘을 받는다는 메시지에 끌렸어요.” 누적 조회수 2억뷰가 넘는 동명의 레전드 웹소설을 실사화하는 데 있어 부담감은 당연히 있었지만, 그럼에도 선택한 것은 ‘유중혁’(이민호)라는 캐릭터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닮은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유명 원작이 있는 작품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담감이 큰데요,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생각하며 저 자신을 자극시키는 것 같아요. 이렇게 훌륭한 한국의 IP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면, 제가 도움이 된다면 해야겠다 싶었죠.”
이민호가 연기한 ‘유중혁’이라는 캐릭터는 세계관 최강자이자, 세계관을 대변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별다른 사전 정보 전달과 대사도 없이 그를 연기하면서 어려웠던 부분도 많았을 이민호다. “서사의 빌드업 없이 독보적으로 세계관을 대변하는 롤이기 때문에 출연 결정하기까지 가장 고민했던 지점이었어요. 유중혁을 통해 이 세계관이 설득되도록 그가 처절하고 처연하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팬이라면 길게 보고 싶은 마음에 분량이 적어 아쉬움이 있을 수도 있는데 “분량에 아쉬움은 없어요. 유중혁에 관한 더 많은 서사가 들어간다면 시작의 방향성을 흐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앞으로 방대한 서사가 이어질 이 이야기에 그는 혼자서 ‘모험의 시작’이라는 부제를 붙였다고. 다음 편의 제작 여부는 흥행 성적에 달렸지만, 일단은 이후의 이야기도 염두에 두었다는 이민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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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나 성패에 상관없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닮았다
“어쩌다 인간이 이렇게 되었을까!” 이민호가 꼽는 <전지적 독자 시점>의 세계관을 대변하는 유중혁의 대사다. 그가 생각한 유중혁은 ‘멸살법’(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세계관에서 살아가는 인물이 아니라, ‘살아내는’ 인물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고요 속에 고요가 요동친다’를 방향성으로 삼았다. 한마디로 그가 느끼는, 그가 내뿜는 파장이 클수록 고요하게 보였으면 했다고. 평화로운 고요가 아니라, 전장의 시작 전의 모습 같은 느낌이 들길 바라며, 눈빛에는 그 파장의 크기를 담으려 했단다.
앞서 이민호는 유중혁과 삶의 방향성이 닮아서 끌렸다고 밝힌 바 있다. 어느 부분이 닮았을까. “유중혁은 멸살법이라는 세계 속에서 순간순간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이겨내려고 해요. 결과나 성패에 상관없이 주어진 바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가 지향하는 바예요.”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고 비록 그 끝이 희극이 아닐지라도 묵묵히 전진하는 유중혁에게서 자신을 발견했다는 이민호다.
‘존재 자체가 판타지’ 김병우 감독이 이민호를 캐스팅하면서 한 말이다. ‘유중혁’ 역할에 이민호 말고는 다른 배우는 떠오르지 않았다는 감독인데, 호흡은 어땠을까. “감독님이 좋았던 점은 디렉션이 질문형이라는 거예요. 답을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질문하며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 좋았죠.” “칭찬이요? 좋지만 부담스럽기도 해요”라고 털어놓으면서, 말이 필요없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이민호 하면, 말할 것도 없지, 이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해요.”
<전지적 독자 시점>은 한국영화로는 드문 현대 판타지물로 제작비 300여억 원에 달하는 대작이다. 극장을 비롯해 콘텐츠 시장의 형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600~700만에 달하는 손익분기점은 주연 배우로서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갈 터. “콘텐츠 시장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이 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 같아요. 자본의 흐름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작품을 고민하는 시기잖아요. 그 시작점으로 <전지적 독자 시점>이 잘 되어 자본의 순환이 이루어지면 좋겠어요.”라는 바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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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 바람과 있으면 힐링
1987년생, EBS 드라마 <비밀의 교정>으로 데뷔 후 2009년 방영한 <꽃보다 남자>로 일약 한류스타로 등극한 그인데, “20대 때는 주제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책임감도 컸어요. 이제는 그 시기를 지나서 다시 또 새로운 경험을 할 시기가 된 것 같아요. 자유로워진 거죠.” 애플TV+ 오리지널 <파친코>에 출연한 것도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서였다. 주역이나 조역의 문제가 아닌, 깊은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와 작품이 중요하다고, 또 자신이 필요하고 설득된다면 역할의 크기는 상관없다고 한다. 이때 캐릭터에 맞게 5~6kg 증량을 했는데, ‘관리 못해 살쪘더라’는 소리를 들어서 깜짝 놀랐다는 이민호, 아직은 ‘멋짐’을 연기하는 배우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쉽다는 마음을 전한다.
K- 콘텐츠의 글로벌 위상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현재, 평소에 친분이 있는 이정재를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는 이민호다. “연기는 물론이고, 글도 쓰고, 제작도 하고, 회사도 운영하시잖아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면 동기부여 되지만, 저는 그 정도로 치열하게 살 자신은 없어요.” (웃음) 자기만의 치열함의 한도치가 있으니, 그 속도에 맞춰 묵묵히 가고 싶단다.
한편, 이민호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라고. 자기중심적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까칠하지도 않단다. 게다가 허당미까지!
“일단 겁이 없고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데 거부감이 없어요.” ‘유중혁’에 이은 그의 선택은 영화 <암살자들>의 사회부 기자다. 진실이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되는 시대에서 진실이 왜 중요한지 되새기는 작품이라, 꼭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단다.
데뷔 20년 차를 맞은 이민호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13년은 책임과 경험을 다하는 삶, 그후 5년은 경험을 정의하는 삶, 그리고 지금은 다시 경험하는 삶으로 들어갔어요. 한 번도 목표나 꿈을 크게 꾸지 않은 것 같아요. 순간순간 변하는 상황에 유연해요. 마치 ‘유중혁’이 생존본능에 따라 직관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요. 늘 챌린지에 저를 던지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도전을 이어가겠다는 그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다.
“최근에 자전거를 많이 타는데요. 자연과 바람과 있으면 힐링이 된다는 걸 알았어요.” 자신이 자연과 바람을 매우 선호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이민호. 집돌이였다가 요즘에는 자전거를 타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마음 편하게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재충전과 영감의 근원을 전한다.
사진제공. MYM엔터테인먼트
2025년 8월 5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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