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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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에 이어 김우빈이 김은숙 작가와 세 번째로 손잡았다. 이번 작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그는 인간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속삭이지만, 사실은 타락으로 이끄는 ‘지니’, 즉 사탄을 연기한다. 컷부터 단발, 발끝까지 내려오는 장발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파격적인 스타일링, 거기에 로맨스·코미디·패러디·아랍어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시청자를 들었다 놨다 한 김우빈. 그는 “작가님의 대본은 단점을 찾기 힘들다. 특히 <다 이루어질지니>는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며 김은숙 작가에 대한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한 줄의 대사를 외우기 위해 천 번을 들을 만큼 성실하게 준비한 그는 지금 이 순간, ‘현재’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배우이기도 하다. ‘배우’로서의 김우빈에게 소원을 묻자, 그는 미소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전 세계인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질지니>를 보는 것.”
김은숙 작가와는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에 이어 세 번째 만남이다. 제안받고 어땠는지. 아랍어 대사 등 준비할 것이 많았을 것 같다.
작가님이 연락을 주셨다. 스케줄 확인 후 대본을 보내주셨는데 정말 재미있더라. 싫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웃음) 캐릭터는 물론이고 함께하는 배우들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저를 놓고 쓰신 거냐고 여쭤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내게 처음 제안주신 거로 알고 있다. 프리프로덕션을 포함해 약 1년 동안 촬영했는데, 대본과 캐릭터를 내내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아랍어 대사는 핸드폰에 넣고 계속 들으면서 외웠다. 한 대사를 대략 1,000번 정도 들으면 외워지더라. 대사가 52개 있으니 약 52,000번 들은 셈이다. 현장에 아랍어 선생님이 상주해서 발음 등을 교정해 주어 크게 도움받았다.
<신사의 품격>의 조연, <상속자들>의 서브 남주, 이번에 주연까지. 김은숙 작가와는 특히 인연이 깊은 것 같다.
작가님의 대본은 단점을 찾기 힘들다. 예전에 작가님이 ‘넌 내가 왜 이 씬을 썼는지 알고 연기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정말 다른 노력이나 질문 없이 그대로 다 이해가 된다. 특히 이번 <다 이루어질지니>는 글이 주는 힘과 메시지가 좋았다.
공식적인 로맨틱 코미디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김은숙 작가님의 코미디를 워낙 좋아한다. 이번에도 전작들을 스스로 패러디한 여러 장면은 작가님만이 쓸 수 있는 유머라고 생각한다. 팬으로서도 반가웠고, 그만큼 잘 살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또 지니는 다양한 모습을 가진 캐릭터라 코미디를 살리면서도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했다. 다양한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데 중점을 뒀다. 감정의 급변에도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지니’로서 상황에 충실하려 했다. 무엇보다 작품 안에 메시지와 질문이 있다고 느꼈다. 작가님이 밝혔듯이 ‘인간은 어떻게 태어났는가보다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주제를 늘 염두에 뒀었다. 사탄으로서 인간의 욕망을 교묘히 이용하는 지니의 이중적인 면모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김은숙 작가의 전작을 패러디한 장면들도 웃겼지만, 특히 ‘작가님이 보고 있다’며 ‘가영’(수지)이 지니에게 눈치 주는 장면이 재밌었다. 직접 작가를 호출하는 건 어느 드라마에서도 없던 장면 아닌가. (웃음)
그 장면은 너무 재미있어서 의상도 미리 준비했었다. ‘문동은’ (<더 글로리> 주인공) 가발도 써봤는데 갑자기 그 장면이 사라졌더라! 작가님께 이유를 여쭤보니 ‘네가 싫어할 것 같아서’라고 해서, ‘아니라고 대사까지 외웠다’고 말씀드려서 다시 넣을 수 있었다. 그때 송혜교 선배님의 장면을 찾아보면서 연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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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진중한 이미지인데, 지니처럼 유쾌한 역할도 잘 어울리더라. 실제는 어떤가. 이번에 지니의 시그니처 손동작도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고.
원래는… 지금 보시는 그대로다. (웃음) 연기하다 보면 내 안에 있는 부분을 끌어내 캐릭터를 만들게 된다. 상상도 덧붙이고 대사 안에서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니’가 되더라. 그렇게 현장에서 있으니까 에너지가 생기더라. 김우빈이라면 어색했겠지만, 지니라서 가능한 모습들이었다. 지니가 ‘다 이루어질지니’ 하면서 소원을 들어줄 때 하는 제스처는 대본에는 없던 부분이 맞다. 시그니처 동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여러 버전으로 시도했었다. 그러다 처음 시도한 버전이 좋아서 그대로 밀고 갔다.
컷부터 단발, 아주 긴 장발까지. 외적인 스타일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대본에는 ‘발끝까지 오는 머리’라고 적혀 있었는데, 과거 지니와 현재 지니의 느낌을 달리 표현하기 위해 스타일링에 변화를 주었다. 천 년 전 지니의 의상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느낌으로, 현재는 세상에 다시 나왔으니 슈트 같은 각진 인상을 주려 했다. 자주 맞춰온 의상팀이라 덕분에 호흡이 좋았다. 머리는 컷을 기본으로 단발은 통가발을 착용했고, 긴 머리는 가발에 이어 붙여서 더 길게 만드는 등 여러 번 손길을 거쳤다. 이렇게 긴 머리는 처음인데, 무게가 꽤 있어서 쉴 때는 말아서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기도 했다.
3주 정도 두바이 사막 촬영을 했다고. 그런데 ‘왈츠 추는 지니’의 장면은 실제는 사막이 아니라고 해서 놀랐다.
3주 안에 모든 사막 장면을 다 담을 수 없어서, 상당 부분을 한국의 세트 촬영으로 소화했다. ‘왈츠 추는 지니’도 그중 하나이고, 한 시퀀스에서도 현지 촬영과 세트 촬영이 섞여 있기도 하다. 꼭 현지에서 찍어야 할 장면을 구분해서 효율적으로 진행했었다. 사막 장면 중 지니의 감정 스펙트럼이 넓은 장면이 있고, 코미디부터 잔혹함까지 그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게 중요했다.
상대역인 수지와는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이후 9년 만의 재회인데 호흡은 어땠나.
거의 10년 만인데 그렇게 오래됐는지 몰랐다. 체감상 2~3년 만에 다시 만난 것 같더라. 이미 친해서 바로 작품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또 성격도 비슷해서 호흡이 좋았다. MBTI도 비슷해서 서로의 리액션이 잘 맞는다. 지니와 가영의 첫 키스씬의 경우, 지니에게 사랑의 불씨가 피어나는 순간이라 설레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우리끼리도 했었다. 촬영 감독님과 앵글, 조명 등을 상세하게 상의했던 기억이 난다.
다채로운 톤을 가진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 또 웃기는 장면 그리고 힘들었던 장면을 꼽는다면.
초반부, 사랑으로 가영을 가르치는 할머니의 마음이 참 좋았다. <상속자들> 이후 오랜만에 김미경 선배님과 호흡했는데, 너무 따뜻한 장면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재미있는 장면은 워낙 많지만, 지니가 환생한 가영을 만나러 이순신 장군이 살던 시대를 방문한 씬이다. 모두들 한복을 입은 와중에 지니만 혼자 슈트를 입고 가영을 부르고 있지 않나. 우리 드라마의 매력을 잘 보여준 장면인 것 같다. 힘들었던 장면은 후반부, 분노한 지니가 황금비를 내리게 하는 씬이다. 여러 명이 동원되는 규모가 큰 장면이라 한 번에 가야 했고, 아랍어를 하는 동시에 감정을 폭발적으로 끌어 올려야 했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기도 했다. 촬영 전에 감독님께 ‘저 믿으시라고, 저도 감독님 믿는다’고 말씀드릴 정도로 부담이 컸었다. 그래서 새벽에 나가 혼자 한 시간 반 정도 동선을 연습했었다. 그랬더니 조금 안심이 되더라.
송혜교, 김지훈, 다니엘 헤니 등 특별 출연한 배우진도 화려한데, 힘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정말 그렇다. 송혜교 선배님은 두바이까지 직접 오셔서 촬영하셨다. 덕분에 극이 더욱더 풍성해질 수 있었다. 김지훈 선배는 모델 시절 잠깐 뵌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하시더라. 다니엘 헤니 선배님은 이번에 처음 뵀는데 실제로 보면 정말 빛이 난다. 화면이 그 빛을 다 담지 못한다. 아마 놀라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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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어질지니>는 앞서 언급했듯이,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해 묻는 이야기이다.
선과 악의 경계, 그게 바로 우리 작품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선과 악을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기가영은 나쁘게 태어났지만, 선한 일만 한다. 그럼 그는 악인일까 선인일까. 이런 질문들이 흥미로웠다. 자료를 찾아보며 고민도 했고 결국에는 인간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에 공감했다. 욕망과 이기심 속에서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선함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김우빈의 욕망은 무얼까.
음, 직업이 작품을 통해 소통하는 일이다 보니, 작품을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한다. (웃음) 건강을 잃으면서 큰 변화를 맞았다.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예전엔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았다면, 이제는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산다. 거창하게 목표를 세우기보다, 그때그때 행복한 선택을 하며, 오늘에 충실하려 한다. 그랬더니 진짜 행복해졌다. 하루를 열심히 살고 집에 돌아올 때, ‘오늘보다 더 잘 살 수는 없다’는 마음에 괜히 뿌듯하기도 하고 기분 좋게 잠이 들곤 한다. (투병으로) 쉬면서 크게 달라진 점은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그전에는 남을 위해 사는 편이었는데, 무슨 말이냐 하면, 상대를 배려한 나머지 내 생각이나 의견을 잘 밝히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를 위해 살게 됐다.
식상하지만, 세 가지 소원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웃음)
많이 받은 질문이라 생각해 봤다. 첫째, 나와 나를 아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100세까지 살기, 둘째 나와 나를 아는 사람들이 100세까지 풍족하게 살도록 경제적 부를 갖기, 셋째는 아껴 두련다. (웃음)
상당히 이타적인 소원이다! 그럼 배우 김우빈의 소원은 뭔가.
‘나를 포함’이라 그리 이타적인 소원은 아닌 것 같다. 배우로서는, <다 이루어질지니>를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보기! 불가능하겠지만, 소원이니까! (웃음)
16년째 쓰고 있는 감사일기는 어떤 의미가 있나.
데뷔 때부터 매일 써왔다. 쓰면 잊고 지냈던 감사한 일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모델 시절에는 한 끼도 못 먹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세 끼, 아니 네 끼를 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또 촬영 중에는 잠을 제대로 못 자는데 지금은 푹 잘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거창하지 않아도 감사한 일이 잔뜩인 일상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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