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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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엄마가 이룬 성과를 동경하는 부분이 있어요.” 1970년대를 풍미한 자매 듀엣 ‘바니 걸스’ 멤버 고재숙의 큰딸인 전소니는 이렇게 말한다. 데뷔 8년차를 맞은 그녀는, 초기에는 ‘바니 걸스’라는 엄마의 후광 속에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전소니 그 자체로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현재 전소니에게 지금 시기는 “매우 어려운 타이밍”이다. 모든 게 궁금하고 다 알고 싶었던 초창기 시기를 지나, 몰랐던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알고 있던 것을 잊기도 하는 지금. N년차 직업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익숙함과 안정감 사이에서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나”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는 확실한 해소법은 없지만, 팬들에게 받은 편지가 큰 힘이 되었다고 전한다.
넷플릭스 <멜로무비>에 이어 <당신이 죽였다>로 시청자 곁을 찾은 전소니. 폭력 가정에서 자란 트라우마를 간직한 어른 ‘은수’ 역을 맡았다. 은수는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친구를 돕기 위해 그 남편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전소니는 “은수를 알아가면서 저 자신에 대해서 깨닫는 경험은 처음이었다”며, 캐릭터를 통해 스스로를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된 점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마치 극 중 은수처럼, 어린 시절의 전소니를 다시 만난 듯한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 시간을 통해 다시 한 번 “무언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렸다고 덧붙인다.
이번 <당신이 죽였다>의 은수 캐릭터에 각별한 애정을 표현한 바 있다. 어느 면에서 특히 그럴까.
사실 공개를 앞두고 이렇게까지 떨리고 조마조마했던 적은 처음이다. ‘은수’라는 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그의 능력, 가족과 친구를 대하는 태도 등 사소한 모습까지 모두 좋았다. 촬영 막바지, 한밤중 자동차 장면을 마친 후 혼자 울었었다. 작품이 끝난다는 게 무서웠던 것 같다. 그 정도로 ‘끝’이라는 사실이 슬펐다. 이렇게 공개되고 나니 정말 내 손을 떠난 것 같다. 감독님이 가정폭력이라는 주제의 무거움과 민감함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접근하셨는데, 이런 부분이 시청자에게 잘 전해진 것 같아 감사하다.
전작인 넷플릭스 <멜로무비>에서 ‘내 안의 무언가를 꺼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웃음)
확실히 <멜로무비>를 하면서 내 안에서 변한 부분이 있다. 이번에는 솔직해졌던 것 같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만큼 연기하려고 했다. 은수를 연기하는 동안 그가 이해됐고 그래서 편안했다. 인물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아가면서 한편으로는 나에 대해 깨닫게 됐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은수에 대해 수첩에 적고 있는데 불현듯 이런 행동이 스스로에게 왜 중요한지 알겠더라. 그러면서 무언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어린 전소니를 만났다고 할까.
오쿠다 히데오 작가 소설(‘나오미와 가나코’)이 원작인데, 인상 깊게 읽었다고.
시나리오를 받기 5~6년 전에 친구의 추천으로 도서관에서 빌려 봤었다. 읽으면서 유독 주인공의 얼굴이 보고 싶어지는 글이었고 나중에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잊고 있다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오디션이라도 보고 싶은데’ 했다. 또 그렇게 한참 지나서 넷플릭스 시리즈라고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어디선가 본 글 같은 거다. 원작을 찾아보니 ‘나오미와 가나코’가 맞더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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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가족 폭력이라는 주제와 그 묘사 등에 있어서 마냥 편하게 볼 작품은 아니다. 캐릭터를 어떻게 준비해 갔나.
특히, 1화와 2화가 그러실 거다. 그런데 감독님과 난 앞부분에서 시청자분들이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극이 진행되면서 ‘은수’와 ‘희수’(이유미)의 변화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실 거라 생각했다. 우리 이야기가 편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결국에는 주인공들이 자유를 찾는 이야기라, 이런 부분에서 울림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감독님과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공유하며 은수라는 인물에 최소한 부끄럽지는 말자는 마음으로 연기하려 노력했다.
은수는 방관자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당해온 폭력을 외면해 왔고, 직장에서는 폭력 피해자인 VIP 고객을 보고도 침묵한다. 이런 모습을 연기하면서 신경 쓴 지점이 있다면.
사람마다 상처의 발현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은수는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에 내적으로 또 외적으로 힘을 기르려 했을 거다. 주짓수를 배워서 힘을 키우고, 일에 있어서도 성공하는 등, 필요하면 아버지로부터 언제든 가족을 데리고 떠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다가 자신이 외면한 VIP 고객의 죽음에 크게 충격 받았고, 친한 친구인 희수조차 그 폭력의 피해자라는 걸 알았을 때 더 이상은 방관자로서 있을 수 없다고 선택했을 거다. 희수는 어떻게든 구하기로 결심한 거다. 한편으로는 스스로도 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희수를 구할까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그가 방관자로 살아온 오랜 시간과 그간에 쌓인 죄책감이 작용하여 희수를 위해서 행동했다고 생각한다.
은수의 결단은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다. 은수와 당신의 싱크로율은 어떤가.
솔직히 나는 그렇게 대담하거나 용기가 있는 편이 아니라서 연기하면서 좋았던 부분도 있다. 내 눈에는 ‘은수’라는 캐릭터가 멋져 보여서, (웃음) 특히 자기 것을 내던지는 게 좋았다. 비슷한 점이라면, 과거의 죄책감이나 후회가 현재의 나를 움직인다는 거다. (후회의) 순간을 다시 경험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은 은수와 닮은 것 같다.
주짓수 등 액션은 실제로 소화한 건가. 격렬한 몸싸움 장면이 많아서 고생했겠더라.
주짓수는 한두 달 정도 배웠다. 기술이 방대해서 다 배울 수는 없었고 모든 동작을 대역 없이 소화하는 데 집중했었다. 엉키고 설키는 장면이 많아서 직접 해야 했거든. 해당 장면에 필요한 동작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은수와 희수가 노진표를 제압하는 장면의 육탄전이 매우 박력있던데, 롱테이크로 촬영했다고.
몸으로 부닥치는 씬들의 경우 사전에 많이 준비하고 들어갔다. 우리끼리의 합뿐만 아니라 카메라에도 잘 잡혀야 해서, 서로 ‘한 번만 더 해보자’ 하면서 열심히 했었다. 특히 은수와 희수가 진표를 살해하는 씬은, 배우는 물론 스탭까지 전방위로 동선이 맞아야 했다. 진표의 목을 은수와 희수가 양쪽에서 당기는 장면은, 나와 유미가 각기 촬영하고, 실제 조르진 않고 선배님이 연기로 표현한 부분인데, 나중에 영상으로 보고 우리도 진짜 놀랐다.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희수 캐릭터와는 달리 유미는 실제로는 밝고 비타민 같은 친구다. 시작 전에 ‘우리 작품이 조금 힘들 순 있지만, 힘내 보자’고 이야기하고 들어갔고, 덕분에 현장에서 매우 즐거웠다. 또 희수의 남편 ‘노진표’와 ‘장강’의 1인 2역을 소화한 장승조 선배는 극 중 모습과는 달리 매우 다정하신 분이다. ‘밥 먹었어?’, ‘내가 너무 나빠?’ 하고 묻는 등 아주 스윗하셨다. 이무생 선배는 현장에서도 진소백 사장 같았다. 약간 속이 잘 보이지 않고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긴장감이 들기도 했지만, 필요할 때는 도움이 돼 주셨다. 진소백을 마주하는 것 같아 연기하면서 많이 도움됐던 것 같다.
좋아하는 대사나 장면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빈 옷장을 열고 어린 은수의 손을 잡아주는 장면이 좋더라.
나 역시 그 장면을 좋아한다. 은수가 희수를 구한 게 마치 어린 은수를 구하는 것 같아 좋았다. 작가님과 감독님이 그런 장면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 우리 마음속에는 늘 어린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처럼, 실제로 어린 은수의 손을 잡아준 것 같아 마음이 따뜻했던 장면이다. 희수가 은수에게 ‘너가 나를 위해 어디까지 했는지 안다’고 하자, 은수가 ‘너를 위해서 한 게 아니라, 지금까지 피해왔던 나를 위해 한 거다’라고 답한다. 연기하면서 편애했던 대사다. (웃음) 은수라는 인물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해서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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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를 풍미한 듀엣 ‘바니 걸스’의 멤버 고재숙 씨가 어머니다. 데뷔 초반에는 어머니가 함께 거론되고 했는데, 지금은 배우 전소니로 우뚝 섰다. 그간의 시간을 돌아본다면.
여전히 뭐랄까, 엄마의 성과를 동경하는 부분이 있다. 나 역시 그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아보고 싶다. (웃음) 데뷔 8년차인 지금이 내게는 매우 어려운 타이밍인 것 같다. 시작할 때는 뭔가 궁금하고 다 알고 싶고 빨리 하고 싶은 마음으로 뛰어왔던 것 같은데, 지금은 스스로 느끼기에 애매한 시기다. 몰랐던 걸 알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알고 있던 걸 모르게 되기도 하는 시기. ‘모든 직업이 이 즈음에는 그럴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앞만 보고 달리기 바빠서 다른 생각을 못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잘 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되돌아 보면 최선을 다해 온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마음에 안 차기도 해서 고민이고 그렇다.
그렇게 의문과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은 어떻게 극복하는지.
진정한 해소법은 없는 것 같다. 그냥 그런 순간에도 계속 움직이면서, 가라 앉지 않으려 오기를 부린다고 할까. 한 번은 이런 혼란스러운 타이밍에 우연히 그간 모아뒀던 팬의 편지를 보게 된 적이 있다. 특히나 촬영이 힘든 날이었는데 편지를 보니까 너무 고마운 거다. 누군가는 나의 작업을 이렇게 봐주고 있는데 왜 스스로는 그렇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를 잘 봐주자’ 하는 마음으로 그날 촬영을 무사히 마친 기억이 난다. 성향인지 스스로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라는 일이 힘들더라. 좀 달라지려고 시도하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웃음)
앞으로 하고 싶은 장르나 역할이 있다면.
음, 사랑을 하고 싶다. <멜로무비> 때는 헤어져서! (웃음). <당신이 죽였다> 이후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로 찾아 뵐 것 같고, 얼마전에 <가이드 러너>라는 영화 촬영을 마쳤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5년 12월 10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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