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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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류현경이 첫 장편 연출작 <고백하지마>로 관객 앞에 섰다. 대본 없이, 우연이 우연을 불러오며 결국 ‘운명’처럼 완성된 작품이다. 영화 속 현실과 촬영 현장이 자연스럽게 뒤섞이고, 배우들의 즉흥성과 실제 경험이 장면 곳곳에 스며들었다. 류현경은 “애초에 이런 영화를 찍겠다고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저 친한 창작자들과 함께 시작한 작은 실험이, 어느 순간 온전히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자리 잡았다는 것. 전주국제영화제, 남도영화제를 거쳐 개봉까지 이어진 과정 역시 우연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후반 작업, 배급, 극장 상영 준비 등 처음 겪는 일들의 연속 속에서도 끝까지 즐거웠다며 웃는 류현경. 앞으로도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두 번째 장편도 준비 중이다. 배우이자 감독 류현경의 첫걸음, 그 솔직한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가 투박하지만, 사랑스러운 정서를 지녔더라. 연출자의 성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걸까. (웃음) 여느 작품보다 인간 ‘류현경’을 드러낸 작품 아닌가.
애초에 이런 이야기를 찍겠다거나 내 자신을 좀 더 어필하겠다고 시작하진 않았지만, 하다 보니 내 결이 드러난 건 맞는 것 같다. 연기가 결국 자기의 한 면을 꺼내는 일이듯이 연출도 그렇더라.
극 중 ‘현경’(류현경)은 소규모 강연 후 전화번호를 요청하는 참석자에게 번호를 주기도 하는데 실제로도 그런가.
번호를 달라는 분은 거의 없지만, 요청하면 드리는 편이다. 극 중에서는 현경이 부산까지 왔으니,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에 준 거긴 하다. 그런데 영화처럼 ‘류현경’ 이름을 검색해 보는 분들은 꽤 있다. 실제로 제일 난감한 건,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만났을 때 혹시 아는 분 아니냐고 물어보는 분들이다. 어디서 본 건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는 거지. (웃음) ‘거래처 누구누구 아니시냐’고 할 때는 정말이지 어쩔 줄 모르겠다. (웃음)
영화 <고백하지마>의 각본, 연출, 편집, 주연과 더불어 1인 회사 ‘류네’를 설립해서 배급까지 도맡았다. 스스로 개봉을 준비하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을 것 같다.
편집 등 후반 작업을 8개월가량 했는데 허술한 부분을 메우는 재미가 있더라. (웃음)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해 상영까지 했는데, 이 시기에 ‘극장에서 틀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렇게 극장 개봉이 목표가 되면서 여러 배급사를 미팅했지만, 다들 좀 힘들겠다고 하시더라. 정말이지 ‘극장’이라는 공간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배급사 ‘류네’를 직접 만들 게 됐다. 개봉이 결정된 후, 포스터를 말아 들고 독립영화관에 전하는 데 정말 그 순간 너무 설?다. 촬영과 후반 작업으로 영화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급과 개봉까지. 그리고 배우, 감독, 스태프들만이 아니라 배급사, 극장 관계자까지 모두 영화의 일부라는 걸 느낀 산 경험이었다. 참고로 오프라인 마케팅팀이 따로 없어서 언론시사회와 지금 라운드 인터뷰까지도 스스로 주관해야 했다. (웃음) 여러 절차를 도와주신 홍보사(이노기획) 실장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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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네’를 통해 다른 영화도 배급할 계획이 있는지.
독립영화 중,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직접 배급할 의향이 있다. 이 모든 과정을 해보니 너무 힘들지만, 그만큼 극장 개봉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다시 말하지만, 극장을 너무 좋아한다.
뜬금없는 ‘충길’(김충길)의 고백으로 문을 여는 이 영화의 시작이 궁금하다.
<고백하지마>는 김오키 감독으로부터 시작됐다. 섹소포니스트 김오키 감독이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붙이기)>(2020), <탈주>(2024) 등의 이종필 감독이 내게 출연을 제안하셨다. 여기에 김무건, 김충길 배우도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그렇게 찍은 영화가 <하나, 둘, 셋, 러브>다. 이 영화의 촬영을 마친 후 펜션에 남은 우리끼리 ‘재미있는 걸 찍어보자’는 이야길 하게 됐다. 그러던 중 충길이 갑자기 (내게) 고백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렇다면 ‘고백으로 불편한 상황을 찍어보자’고 이야기가 흘러갔다.
우연으로 출발해 이후 기획은 어떻게 발전했는지. 담고 싶은,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얼까.
불편하지만 재미있고, 싫다고 하지만 웃고 있는 상황을 그리려 했다. 펜션을 배경으로 한 전반부를 보면 현경은 충길에게 ‘불편하니까’ 그만하라고 하면서도 그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등 대화를 이어간다. 충길은 ‘무건’(김무건)으로부터 뜻밖의 고백을 받고 놀라기도 하고. 펜션 촬영을 마무리하고 후반부는 부산에서 찍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마침 김오키 감독의 공연 일정과 맞아서 자연스럽게 부산 씬들이 만들어졌다. 옷 가게 사장, 타로술사를 비롯해 대부분이 그 지역 비전문배우와 뮤지션들이 참여해 즉석에서 완성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고백하지마>를 다 만든 후 돌아보니, 우연의 반복이 결국 운명이라는 이야기 같다. 현경과 충길이 각자의 생각으로 고민이 많던 시기에 부산에 간 것도 또 그들이 우연히 만난 것도 어떤 운명이 아닐까. 현경과 충길이 <하나, 둘, 셋, 러브>의 티셔츠를 외투 속에 입은 걸 발견하고 서로 놀라며 웃는 마지막 씬도, 원래는 없던 장면이었다. 그 셔츠가 천이 정말 좋아서 (웃음) 잠옷으로 가져갔던 건데, 마침 충길도 가져온 거다. ‘운명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다.
대본 없이 촬영하는 방식에, 배우들이 낯설어하지는 않던가.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참으로 다행히도 이런 작업 방식을 좋아하는 배우들이 모였더라. 대사는 따로 없었지만, 씬 순서와 흐름은 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이런 정도의 톤’ 정도만 이야기하면 다들 너무 자연스럽게 표현해 줬다. 김무건, 김충길 배우 외에는 전문배우가 아니었는데 다들 너무 잘해서 놀랐다. 그분들 덕분에 영화가 풍성해졌다.
촬영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후반작업에서 사운드 보정이 특히 힘들었다. 특히 초반 촬영은 아이폰으로 녹음한 부분이 많아서 각자가 녹음한 파일을 공유하며 메우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평소 컷 설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촬영 감독님이, 이번 작업 방식에 맞춰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제목 ‘고백하지마’는 어떻게 생각하게 된 건가. 매우 직관적이다. 또 주제곡 ‘문제없어’를 비롯해 음악도 귀에 쏙 박히더라.
충길 배우의 실제 노래 제목이기도 하고, 그가 이전 영화에서 자주 고백하는 장면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것 같다. 주제곡 ‘문제없어’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김일두 뮤지션의 노래로, 너무 좋아서 또 가사가 어울리기도 해서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이외 다른 곡은 김오키 감독이 전부 만들었고 그중 가수 이하이 씨가 피처링한 곡도 있다.
관객들이 <고백하지마>를 어떻게 봤으면 하는지.
<아바타: 불과 재>와 동시에 개봉하는데, 우리 영화는 짧으니 편하게 보고 한편으로는 조금 쓸쓸한 마음이 들면 좋겠다. 연말이라는 시기와 어울리는 감정 아닌가. 또 극장에서 함께 보는 재미를 느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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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단편 작업 등 연출을 꾸준히 해 오다가 이번 <고백하지마>로 첫 장편을 선보이게 됐다.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중학교때 처음으로 단편을 연출했다. 그후 대학에서 전공하기도 했고 뮤직 비디오도 찍어와서 연출은 어느 정도 익숙한 일이다. 한데 잘 만들고 싶은 생각이 크다 보니, 후반 작업하면서는 ‘왜 저렇게 찍었지!’ 하는 후회에 ‘다음에는 이렇게 찍어야지’ 하는 다짐을 동시에 하게 되더라. 어릴 때 연출 제안을 받았지만 당시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너무 컸었다. 하지만 연기를 열심히 하면서도 중간중간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더라. 이런 이야기를 찍으면 너무 재미있겠다 싶으면서도 주변을 의식해서 ‘그냥 연기나 하자’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돌아보니 이런 시간들이 아까운 거다. 이제는 ‘눈치 보지 말고’ 하자는 마인드다. 연출이든 연기든 하고 싶은 걸 해볼 생각이다.
감독으로서 다음 작품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차기작은 어떻게 되나.
다음은 대본이 있는 작품이다. 남녀의 연애를 다룬 긴 연대기인데 굉장히 오래 걸려 한 씬 한 씬 쓴 시나리오다. 평소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그런지, 두 남녀의 긴 시간을 담고 싶더라. (웃음) 열심히 제작자를 찾아서 내년에 꼭 촬영에 들어가겠다는 마음이다. 이외 이번처럼 즉흥적인 방식이 될 다른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이야기에 따라서 접근하는 방식이 달리 될 것 같다. 배우로서는 내년에 유재명 선배님, 정성일 배우와 함께하는 스릴러 영화 <사피엔스>로 인사드릴 것 같다.
그러잖아도 연애 리얼리티 매니아로 유명하던데, 특별히 애정하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일단 <나는 솔로>를 좋아하고 또 <하트시그널>도 좋아한다. 20대 친구들이 나오면 ‘맞아, 저 땐 저랬지!’ 하면서 본다. (웃음) 당시에는 전부 같은 (연애) 감정이 너무 귀엽다. 사랑이라는 게 꼭 남녀의 형태가 아니라 넓은 의미로 꼭 필요하고 중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연애 리얼리티뿐만이 아니라 드라마 보는 것도 좋아한다. 이것저것 챙겨봐야 할 게 많아서 바쁘다.
아역 출신으로 30년차 배우다. 그간 사람으로 인한 상처와 위로를 동시에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장점이자 단점인데 진짜로 잘 까먹는다. 내면에는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처받아도 금방 잊어버린다. 회복 탄력성이 좋다고 할지. (웃음) 그래서 사람을 잘 믿고 특히, 함께 연기하는 사람들을 너무 좋아한다. 이번에도 <고백하지마>의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하고 있다고 하니 주변에서 다들 안스러워하시고 응원해 주셨다. 모두 한마음으로 GV에 참여해 주신다고 해서 감동이었다. (고아성, 박정민, 공명, 곽튜브, 염혜란, 김준한, 문소리, 가수 이적, 정인, 장항준 감독, 문성경 프로그래머, 장원석 대표(비에이엔터테인먼트) 정지혜 영화평론가 등 참여)
가벼운 질문이다, 충길식 고백을 실제로 받는다면 어떨 것 같나.
음… 재미있어서 영화처럼 웃을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경험이 없다!
사진제공. 류네
2025년 12월 22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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