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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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감각의 블랙 코미디 스릴러였던 데뷔작 <옆집사람>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염지호 감독이 첫 상업 장편 영화 <눈동자>를 선보인다. 영화 <눈동자>는 시력을 잃어가는 과정 속에서 엄습하는 공포와 서스펜스를 감각적으로 다룬 정통 스릴러물이다. 염지호 감독은 이번 작품에 대해 "여러 오마주를 표현한 것 자체가 바로 나 자신인 것 같다"라며, 고전 영화를 향한 깊은 팬심과 자신만의 장르적 문법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여냈음을 밝혔다.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상업 영화의 책임감 속에서도 장르물에 대한 뚝심과 애정 하나로 밀고 나간 그의 치열했던 제작 비하인드를 들어보았다.
◆ 한국적 각색과 고전 스릴러의 오마주
영화 <눈동자>는 스페인 스릴러 <줄리아의 눈>을 한국적인 정서에 맞게 변주하고 디벨롭한 작품이다. 염지호 감독은 원작의 시각적으로 강렬한 포인트와 주인공의 눈이 점차 안 보이게 된다는 설정 자체에 큰 매력을 느꼈다. 이번 작품에서는 원작의 관음 설정을 현대 사회에서 심각한 범죄 행위로 대두되는 '스토킹'으로 치환했다. 주인공 ‘서진’(신민아 분)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현민’(이승룡 분)의 왜곡된 집착을 통해 과연 이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궁극적으로 염 감독이 이 영화를 ‘사랑에 대해 묻는 이야기’라고 정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는 1인 2역을 소화한 신민아가 연기한 쌍둥이 자매 ‘서진’과 ‘서인’ 사이의 애틋한 자매애는 물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분명하지만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곤 하는 가족애, 그리고 잘못된 애정이 불러오는 파국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다.
직접 각색을 맡아 결말까지 집필하는 과정에서 시나리오 방향이 결정된 뒤로는 평소 좋아하는 여러 클래식 영화들을 적극적으로 오마주했다. 특히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의 문법을 많이 따라가고자 했다. 극 중 '현민'이라는 캐릭터는 <사이코>에 등장하는 돈가방처럼, 작품의 문을 여는 강력한 존재이자 극 전체를 관통하는 커다란 맥거핀(MacGuffin)의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수많은 명작 장르 영화의 문법을 영리하게 차용해 연출적 재미를 더했다. 극 중 인물의 감추어졌던 광기가 처음으로 폭발하며 실체가 드러나는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영화 <샤이닝> 속 잭 니콜슨의 연출을 오마주해 칼 대신 도끼로 문을 찍는 강렬한 연출을 선보였으며, 영화 <셔터>에서 영감을 받아 붉은 화면과 사진을 활용한 감각적인 오프닝 시퀀스를 완성했다. 또한, 서진이 지하실에서 동생을 추억하다 자신이 목 매달리는 착각에 빠지는 장면을 통해 쌍둥이 간의 영혼과 감각이 연결되어 있음을 시각화했다. 마지막에 서진이 가마로 향하는 엔딩 부근은 영화 <링>에서 저주받은 테이프를 본 인물이 직면하는 특유의 압도적인 공포감을 화면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염 감독은 이러한 적극적인 오마주에 대해 "영화에 내가 엄청 진하게 보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영화는 내 자식 같은 거라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많이 묻어났을 것"이라며 연출적 소회를 전했다.
◆ 신민아의 디테일과 김남희를 향한 믿음, 전우애로 똘똘 뭉친 현장
1인 2역을 소화한 신민아는 이번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할 수 있다. 캐스팅 단계에서 처음부터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었다. 염지호 감독은 "피지컬적으로 너무 크거나 작지 않으면서 진취적이기도 하고 연약하기도 한 이미지, 그리고 눈에 관한 영화인 만큼 어떤 눈이 예쁘게 보일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거쳤는데, 신민아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이거구나 싶었다"라며 깊은 만족감을 표했다. 이어 대선배이기도 한 신민아에 대해 “기본적으로 되게 디테일하고 경험치가 풍부한 게 잘 느껴졌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신민아는 쌍둥이 캐릭터 구축과 표현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며 대사를 같이 고치기도 했다. 인물 중심으로 극을 끌고 나가는 작품인 만큼, 감독의 디렉션을 영리하게 캐치해 화면에 온전히 구현해 낸 신민아 덕분에 연출 의도가 더욱 선명해질 수 있었다.
다양한 감정의 층위를 지닌 캐릭터를 연기하며 촬영 직전까지 남모르게 고민했던 김남희를 설득한 과정도 인상적이다. 촬영을 며칠 앞두고 불안해하는 김남희에게 염 감독은 "형은 분명히 잘할 수 있다. 나는 캐릭터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 형도 나를 믿고 해주면 좋겠다"라며 설정값과 캐릭터에 대해 다시 한번 짚어주었고, 배우 본인에게 강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감독의 진심이 통했을까. 막상 슛이 들어가자 김남희는 요구하는 디렉션대로 감정을 바로바로 쏟아내며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다. 독립 영화인 전작때와 달리 큰 자본이 투입되는 첫 상업 영화인 탓에 압박감과 부담이 컸다는 염 감독. 배우들과 스탭들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준 덕분에 "현장에서 전우애가 샘솟았다"고 당시를 따뜻하게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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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적인 사운드와 기괴한 미장센, 대중성을 위한 조율
영화 <눈동자>의 서스펜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감독이 가장 공을 들인 것은 단연 '사운드'였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효과에 있어서 음악뿐만 아니라 세밀한 사운드 이펙트와 실제 믹싱 단계까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후반 작업 당시 길게 할 때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사운드에만 매달렸을 정도다.
영화의 기묘한 분위기를 완성하는 미장센과 미술 콘셉트는 극 중 베일에 싸인 인물 ‘지숙’을 표현하는 데 집중되었다. 얼굴에 큰 상처가 있어 집에만 머무는 인물인 지숙은 대부분 거울을 통해 파편적으로 비춰지거나 누군가의 기억 속에 등장한다. 지숙이 가진 내면의 정신적인 고통과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가 집의 풍경, 독특한 의상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묻어나오도록 세팅했다는 설명이다. 다소 파격적이고 기괴할 수 있는 설정을 도입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인물을 통해 발현되는 분위기가 아주 기괴하길 바랐고, 이상한 취향을 지닌 낯선 존재가 등장했다는 느낌을 단번에 주기를 원했다"라며, 극의 후반부 전면에 드러나는 인물인 만큼 확실한 시각적 임팩트를 주고자 했음을 밝혔다.
또, 영화 속 촘촘하게 얽힌 타임라인과 인물들의 숨겨진 사연에 대해서도 넌지시 힌트를 남겼다. 극 중 인물들이 겪는 정신적 충격과 그로 인한 내면의 균열, 그리고 과거에 취했던 의문의 행동들은 모두 철저히 계산된 결과물이다. 예컨대 누군가가 주변의 시선을 기피한 채 온몸을 꽁꽁 싸매고 호텔로 향해야만 했던 숨겨진 사정이나, 이로 인해 번진 기묘한 소문 등은 영화 속 미스터리를 쌓아 나가는 단서로 기능한다.
특히 감춰진 진실과 정체가 한 편의 연극처럼 베일을 벗는 후반부의 특정 시퀀스는 편집 과정에서 가장 고민이 깊었던 지점이다. 염 감독은 "영화를 많이 본 장르 팬들의 입장에서는 굳이 이만큼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까 싶어 편집실에서 분량을 줄여보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사건의 전말을 궁금해하는 대중들을 위해 결국 "좀 더 대중적인 입장에서의 선택"을 내렸다. 주인공의 시선에서 잠시 벗어나는 연출적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관객이 이야기를 한층 편안하게 따라올 수 있도록 설명적인 장면을 살려둔 것이다.
반면, 진실의 실마리가 담겨 있어 힌트가 너무 강하다는 의견이 분분했던 또 다른 후반부 장면 역시 고심 끝에 최종 생존시켰다. 이에 대해 염 감독은 "설령 범인의 정체를 미리 눈치채더라도, '저 인물이 왜 저런 행동을 할까' 그 의미를 추리해 보는 재미가 더 클 것이라 생각했다"며 대중성과 장르적 재미를 모두 잡기 위한 영리한 연출 비하인드를 전했다.
◆ 영화관에서 느끼는 단체 관람의 재미
<눈동자>는 독립 장편 <옆집사람>으로 강렬한 데뷔 도장을 찍었던 염지호 감독의 첫 상업 장편 영화다. 자본의 규모가 한층 커진 상업 영화 작업에 임하면서도 염 감독은 '현장성'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시나리오와 콘티는 최소한의 방어막이자 길잡이 지도일 뿐, 현장의 돌발 상황과 배우들이 주고받는 에너지 속에서 진짜 살아있는 장면이 탄생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극 중 인물들이 격돌하며 대사를 주고받는 긴박한 장면 중 일부는 시나리오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으나, 촬영 당일 현장에서 배우들과 합을 맞추며 만들어낸 생생한 애드리브와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긴 결과물이다.
웰메이드 스릴러가 귀해진 최근 한국 영화 시장의 흐름 속에서, 염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여전한 힘을 굳게 믿는 한 사람이다. 그는 "코로나, OTT, 요즘은 쇼츠 등 즐길 거리가 많아져 영화라는 매체가 예전보다 영향력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영화만의 재미를 줘야 한다"라는 확고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눈동자>를 통해 관객들이 복잡하고 어렵게 머리를 쓰기보다는, 정통 스릴러가 주는 서스펜스와 숨 막히는 긴장감,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 해소되면서 오는 장르적 카타르시스를 온전히 즐기기를 바란다는 염 감독. 결국 극장의 불이 꺼진 뒤, 스크린 앞에서 다 함께 숨을 죽이고 동시에 놀라며 즐길 수 있는 '단체 관람의 재미'야말로 영화 <눈동자>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자 관람 포인트라 전한다.
한편, 첫 상업 영화를 무사히 마친 염지호 감독은 벌써 다음 스텝을 고민하고 있다. 향후 차기작에 대해 "혼자 써본 시나리오는 있지만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도, "서사를 가진 매체라면 플랫폼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열어두고 싶다"라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기회가 된다면 오컬트처럼 스스로 깊이 몰두하고 재미있게 빠져들 수 있는 장르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싶다”는 염 감독이다.
사진제공. 쏠레어파트너스 ㈜바이포엠스튜디오
2026년 7월 6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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