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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저씨는 또 누구신가! <아저씨> 김태훈
아저씨 | 2010년 8월 17일 화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내에서 <아저씨> 언론 시사회 이후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보고 나서 영화가 잘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정말 잘 되고 있다. 당신은 처음 보고 어땠나?
사실, 전혀 감이 없었다. 내가 촬영할 때, 모니터를 잘 안 보는 스타일이라 관객과 똑같이 궁금한 마음으로 봤다.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예측 할 수 없더라. 시사회 끝난 후 매니저랑 스타일리스트에게 물어봤다. 영화 어땠냐고. 그런데, 재미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웃음) “어? 이거 아닌가?” 싶었지. 그런데 VIP 시사회에 온 지인들이 폭발적으로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다 싶었다. 감독님들도 그렇고, PD님들도 그렇고 영화를 재미있게 봐 주셨다.

영화가 흥행중인데, 하루에 관객이 얼마나 드는지 관심이 가겠다.
찾아서 확인하지는 않는데, 주변에서 알려주는 통에 저절로 확인이 된다.(웃음) 독립영화 할 때는 안 그랬는데, 상업영화다 보니 연락이 많이 온다. 연락이 뜸했던 지인들도 그렇고, 내가 나오는지 몰랐던 동기들도 영화를 보고 메시지를 보내오더라. 상업영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봐주는 영화를 했을 때, 좋은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지인들이 뭐라던가?
지인들이야, 격려 차원에서 좋다, 라는 말들을 많이 해 준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연기 했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잖나.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결혼을 했는데 와이프도 비슷하게 본 것 같았다. 표현자체를 많이 하는 친구가 아닌데, 내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같이 느껴 주더라.

감독님이 <약탈자들>을 보고 당신을 캐스팅 한 걸로 들었다. <약탈자들>에서 당신이 연기한 상태는 찌질하기도 하고, 호색한이기도 한 엉뚱한 인물이었는데, 감독님이 그런 모습에서 형사 치곤의 어떤 것을 떠올렸을까.
노형사 역의 종필이는 <약탈자들>을 보자마자 염두해 두신 게 맞다. 그 영화에서 나도 보셨는데, 고민을 하셨던 걸로 안다. 원래, 치곤은 양익준(<똥파리>의 감독 주연)이 하기로 돼 있었거든. 그러다가 익준이가 안 하게 되면서, 여러 명을 두고 생각을 하신 거지. 만나 뵙고 나서, 뒤 늦게 영화에 합류하게 됐다.

미팅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줬나?
나? 이런 모습이었지. 어쩔 줄 몰라서 안절부절하는 모습.(웃음) 약한 인간 인 것 같다, 나는.

영화를 보면, 절대 약한 인간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어쨌든 연기자니까. 사람 안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잖나. 선한 면도 있고, 악한 면도 있는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조심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영화 안에서는 그런 것들을 마음 놓고 끄집어내는 거다. 그게 참 재미있는 것 같다. 반대로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런 고민은 없었나? 요즘 한국 영화들이 공권력의 무능함을 자주 꼬집는다. 본인이 형사 역을 맡은 이상 그렇게 보이기는 싫었을 텐데, 캐릭터를 잡는데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쪽으로는 고민을 많이 못했다. 살면서 인간 김태훈으로서는 공권력에 대해서 의식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역할을 맡으면서는 지금 말씀 하신 그 지점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그 친구가 범인을 잡으러 다니는 상황들, 그 상황 상황에서 이 친구가 뭘 느끼고 왜 이렇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감정을 많이 생각했다. 또 감독님이 생각하는 치곤이라는 인물과 내가 생각하는 치곤이라는 인물을 조율하는데, 많이 집중했다.

<약탈자들>에서는 곱상한 느낌을 받았는데, <아저씨>에서는 굉장히 거칠다. 일부러 거칠게 보이려고 노력한 인상도 들고, 잘 생겨 보이길 포기했구나 싶기도 했다.
많은 작품을 하지는 않았지만, 화면에서 잘 생겼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웃음) 그래서 잘생겨 보이는 건 애초에 포기했다. 영화에서는 피부나 질감 같은 걸, 일부러 거칠게 한 게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의 모습과 실제 모습이 다르다는 소리를 <약탈자들> 할 때도 들었는데, 칭찬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 안에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고 믿기로 한 거다.

칭찬 맞다. 그리고 왜 더 다르게 느꼈냐면, 시사회 때 당신이 검정 슈트를 멋지게 입고 와서 영화 속의 모습과 더 대비가 돼 보였거든.
촬영 감독 형도 못 알아보더라. “아~ 옷이 날개구나~” 하면서. 사실, 나도 그 날 되게 어색했다. 머리도 그랬고. 현장에서는 잠바 하나로 버텼다. 옷이나 헤어스타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범인 잡는 데에만 집중하는 형사였기 때문에 멋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분장 선생님께서 머리를 직접 잘라주셨는데, 내 머리를 표현하기를 “남성들이 가는 블루클럽 중에, 형사들만 가는 블루클럽 스타일”이라고 하셨다. 그게 갑자기 기억나네.(웃음)

(웃음) <아저씨>가 다른 영화들보다 오랜 시간 찍은 걸로 안다. 회차도 많았고. 이렇게 긴 호흡의 영화는 처음으로 아는데, 어떻던가?
시간이나 기간은 나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독립영화를 찍든, 단편영화를 찍든 내가 그 안에서 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 할 뿐이니까. 내가 두 작품을 같이 했으면 모르겠는데, 그냥 그 인물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을 뿐이다. 물리적인 시간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영화 속 치곤이라는 인물은 굉장히 사연이 많아 보인다. 정의감 불타는 형사도 분명 아니었다. 동료들에게도 그리 신임 받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런 인물을 연기하는데, 당신 나름대로 사연을 만든 게 있지 않을까 싶다.
내 나름대로 정리했던 치곤은 뭐랄까. 리더십 있고, 남자답지만, 마초는 마초다. 하지만 강하게 누르는 마초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말씀하신 것처럼 밑에 형사들이 치곤에게 개기기도 하잖나. 그럴 때, 남자답게 붙되, 바로 풀어서 친구처럼 지내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또 딸이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이혼을 해서 할머니가 키워 주는. 왜냐하면 태식(원빈)에 대해서 치곤이 계속 “이게 뭐지?” 하면서 이상한 감정을 갖잖나. 처음에는 “재, 뭐야?” 했다가, 어느 순간 대단하게도 보고, 결국은 태식을 이해하게 되지. 그런 과정을 위해 딸이 있을 것 같다는 설정을 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마지막 치곤의 선택이 조금 더 이해가 된다. 사실,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소미(김새론)와 태식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치곤의 행동이 100% 이해되지 않았다. 냉철한 치곤이 너무 감상적이 됐다고 할까? 그걸 영화적으로 놓고 봤을 때, 원빈이라는 캐릭터의 판타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치곤이라는 캐릭터를 약간 죽인 듯 보였다.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겠다. 감독님이 어떤 식으로 상황들을 정리하고, 캐릭터를 조율했는지 말이다. 어찌됐든 감독님과 소통을 하면서 표현한다고 했는데, 어떤 이유에서건 잘 안 보였다면, 반성이 되기도 한다. 내가 뭔가를 더 보여 줬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건 배우로서 내가 계속 가지고 가야 할 고민 인 것 같다.

반성이라기보다, 포커스 자체가 원빈에 맞춰진 영화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치곤의 경우도 그렇고, 태국 배우 타나용 웡트라쿨이 연기한 람로완도 이해는 되는데, 완벽하게 아귀가 맞지 않는 행동을 몇 개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런 부분들이 태식의 판타지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돌아와서, 치곤의 첫 등장 씬이 되게 인상적이다. 거구의 남자를 엎어치기 하는데, 그게 언제 찍은 건가. 치곤 캐릭터를 행동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중요한 씬이었다.
초반에 찍었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조금 아쉬운 건, 원래 대본상으로는 조금 더 강하게 엎어치는 거였다. 거구가 오면 잡아서 확 넘기는 거였는데, 그러지 못했다. 촬영 이틀 전에 상대역을 맡으신 분이 캐스팅 돼서 왔는데, 덩치가 너무나 큰 게 아닌가. 무술감독님이랑 합을 맞춰 봤는데, 도무지 방법이 안 나더라. 그리고 그 나이트 클럽씬이 마지막 촬영이었다. 나이트클럽 영업 때문에 빨리 찍고 빠져 줘야 했고, 부상의 위험이 있는 씬이라 한번밖에 못 찍었다. 조금 더 멋지게 넘겼다면, 훨씬 임팩트가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액션씬을 위해 훈련도 했나? 민첩성이 좋아 보이는데.
아니다. 너무~ 둔하다, 너무 둔해. 지구력도 없고. 운동은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엎어치기 연습을 많이 했다. 운동신경이 좋냐고? 아니!(웃음) 어렸을 때는 나쁘지 않았다. 형제만 3형제라 매일 공 가지고 놀고, 나가서 뛰고 그랬거든. 그러데 안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엉망이 됐다. 기본이 안 돼 있는 상태에서 하다 보니, 실력도 떨어지고. 또 체력도 그다지 좋지 못하다. 이젠 운동신경이 제로인 것 같다.(웃음)

3형제 중에 누가 가장 운동을 잘 했나?
태우 형이 제일 잘 했다. (의외라는 반응에)아니다. 태우형이 액션 이런 걸 굉장히 잘한다. 기본적으로 몸이 뻣뻣한 건 맞는데(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을 잘 한다.
조연들 각각의 캐릭터가 굉장히 강한 영화다. 캐릭터 자체가 개성 있어서 라기 보다, 이를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가 배역을 살린 경우가 아닌가 싶다. 그만큼, 연기하는 재미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 연기 잘하는 배우들끼리 만나서 흥도 나고 했을 텐데.
사실, 그러지 못했다. 지금 너무 편하게 해 주셔서 조금 풀어져 있는 건데, 현장에서는 이렇게 편하게 말하는 스타일이 못 된다. 이런 자리에서도 여럿이 있으면, 저 끝에 조용히 있는 스타일이다. 노형사도 그랬다. 그 친구랑 나랑 둘이 너무 구석에 앉아 있으니까, 감독님이 지나가다가 “여기 모니터 앞에도 좀 앉아! 구석에서 그러지 말고” 이런 말씀까지 하셨다. 아, 노형사 그 친구는 원래 감독이다. 단편영화로 꽤 유명한 영상원 감독인데, 이번에 입봉을 준비하고 있다.

아, 제 2의 양익준인 건가?
익준이는 배우였는데 감독을 한 거고, 노형사는 원래 감독인데, 영상원 안에서 연기를 너무 잘 하니까, “좀 해라, 해라” 해서 몇 번 출연한 거다. 그리고 (김)희원이 형이나 다른 배우들은 사실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원빈씨도 그렇고. 그냥 인사 하고, 식사 했는지 안부 묻는 정도였다. 한마디로 현장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

앞으로도 그럴까? 현장에 익숙해지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그건 기본 성향인 것 같다. 독립영화 찍을 때도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유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학교 다닐 때는 안 그랬다. 내가 O형인데, 어렸을 때는 내성적이라는 말을 안 들었다. 누구나 “너 O형이지?” 할 정도로 밝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너 A형 아니냐?”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아마 연기 시작하고 나서 그런 것 같다. 연기를 배우면서 내 안에 있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 거지. 그게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까 너무 부끄럽고, 철이 없는 게 아닌가 싶어서 자꾸 조심하게 되고, 그러면서 조금씩 폐쇄적이 됐다. 그런데 낯을 가리긴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내성적이지는 않다. 편한 사람들이랑 있으면 많이 풀어진다.

<아저씨>는 원래 원빈이 아닌, 40-50대 배우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영화다. 그런데, 원빈이 맡으면서 굉장히 판타지적인 영화가 된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는 원빈 뿐 아니라, 어떤 배우가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굉장히 달라질 영화다. 그렇다면 만약 당신이 아저씨 역을 맡았다면, 어떤 느낌의 영화가 됐을까. 그런 생각 한 적 없나?
내가 아저씨를 하면? 아~! 그러게. 재밌는 질문이다.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재밌네. 아마 절대 멋있는 아저씨는 아닐 거다.(웃음) 그건 확실 한 것 같고. (생활 밀착형 아저씨가 나오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에)그럴 수도 있겠다. 애가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을까도 싶네. 얘기를 듣고 보니, 정말 한번 해 보고 싶네. 그런데, 감독님이 절대 안 쓰시지 않을까.(웃음)

<약탈자들> 같은 경우는 배우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서 재미있었을 작품이다. 또 그 영화에서는 여러 사람의 시각에서 보여 지는 인물을 연기한 거라, 편하게 풀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도 싶다. 그에 비해 이번 영화는 맞춰가는 느낌의 연기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장단점이 있었을 것 같고, 배운 것도 있었을 것 같다.
맞다! <약탈자들> 같은 경우엔 말씀하신 그대로 어떻게 보면 조금 편했던 것 같다. 나를 중심에 두고 상태라는 인물을 거기에 수식했다면, 이번에는 치곤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거기에 나를 흡수시키려고 했다. 배운 게 바로 이거다. 예전의 나는 연기에서 내가 빠지면 껍데기일 뿐이라고 생각 했다. 김태훈이라는 인물이 어떻게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 한 거지. 그런데 이번에는 출발 자체가 달랐다. 그 안에 김태훈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바라봤다. 예전에는 이런 연기 방식에 대해서 스스로 수용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경험을 한 거다. 그래서 앞으로가 궁금하다. 더 많은 연기에 대한 세계가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더 열어야 할 게 많은 것 같아서. 많이 경험하고, 많이 모으면 언젠가 집약된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제와 인연이 많다.(그는 <약탈자들> <달려라 장미> <물의 기원>으로 각각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됐다. 최근에는 <6시간>으로 칸국제영화제에 가기도 했다.) 영화제를 통해 찾아오는 관객과 일반 관객들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경험자로서 그런 게 느껴지는지.
상업영화를 하고 나서 관객들을 만나 본 적이 없어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웃음) 그런데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면 항상 긴장이 된다. 특히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서면, 뭔가 재치 있는 대답을 해야 할 것 같고, 요점을 집어서 말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다. 안 그래도 되는데 말이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때, <숏숏숏>으로 관객들을 만났을 때다. 세 편의 배우들이 함께 서니까 질문이 되게 많았다. 그 중에 “제일 공포스러웠던 순간이 언제인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 질문이 나에게 가장 먼저 돌아왔다. 이럴 때, 뭔가 재치 있는 대답이 나와야 하는데, 순간 “카메라 앞에 설 때가 가장 두렵습니다”라고 했지 뭔가. 배우가 카메라가 가장 무섭다니. 그 때 많이들 웃어주시더라. 박해일씨도 왔었는데, 역시 웃으시고.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웃음)

(웃음)원론적인 질문 하나 하자면,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다. 내가 고3때 처음으로 수능 복수지원제가 생겼다. 신방과를 가고 싶었는데, 원하는 곳에 들어갈 점수가 부족해서 한양대 연극영화과와 기타 학교들에 지원했다. 처음에는 한양대에 떨어지고, 다른 곳에 합격했다. 그런데 운명적이었던 게, 한양대에서 막판에 추가 합격이 됐다고 전화가 왔지 뭔가. 개학 하루 정도를 남기고 였을 거다. 만약 그 때 다른 과를 갔다면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그 다른 길로 가는 과가 어디였나?
무역학과였다. 그 때 무역학과를 갔으면 지금 조금 더 잘 돼 있지 않았을까. 뭐, 평범한 회사원이 됐어도, 지금의 나보다는 잘 되는 거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나. 지금 배우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않나?
아니, 그런 아닌데, 워낙 (경제적으로)어렵잖나.(웃음) <아저씨> 한편 한 것 말고는 서른여섯 내 인생에 한 게 없다. 하하하. <아저씨> 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면 중간에 다른 걸 해 보려고 했었나?
그런 생각은 또 안 했던 것 같다.

그럼 뭐, 천상 배우 해야겠네.
(웃음)그렇지. 내가 말은 이렇게 해도 연기를 좋아하니까, 여태까지 버티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더디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밟고 올라간다는 느낌이다. 전통으로 연극영화과를 들어갔고, 나와서 대학로 연극판에 있다가 단편 영화를 찍고, 이번에 이렇게 상업영화를 찍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도 있고.
아~ 그렇게 정리를 해 주시니까, 내가 정말로 차근차근 밟아 온 것 같다.(웃음)

그러고 보면, 형님 김태우씨는 굉장히 빨리 주목 받은 편이다.
형은 승승장구 했지. 엘리트 코스였다. 중대에서도 인정받은 학번을 나와서, 바로 KBS 공채에 합격했다. 이후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로 쭉 이어지고. 사람들이 그런 형이 질투나지 않냐고 하는데, 그런 건 전혀 없다. 부럽거나 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게 나의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걸 보고 더 악착같이 해서 뭔가를 이뤘어야 하는데, 철이 없어서 그런지 그런 비교를 해 본 적이 없다. 서른여섯 까지 너무 생각 없이 살았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일단 큰 형도 그렇고 작은 형도 그렇고 나에게는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형들이랑 노는 게 가장 재미있다. 인터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진심이다.

몇 살 터울인가.
작은 형과는 네 살, 큰 형과는 여섯 살이다. 보통 남자 형제 중에 맏이가 권위적이면 딱딱할 수 있는데, 큰 형이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도 셋이 잘 지낸다. 큰 형은 나를 아들처럼 생각할 때도 있는 것 같고. 터울이 조금 있으니까. 아무튼 셋이 놀 때가 가장 즐겁다. 어릴 때도. 부모님들이 어디 모임 가면, 문 ‘딱’ 닫고 뛰어다니곤 했다. 탁구공 하나만 있어도 게임 하고. 지금도 만나면 뭐 하나만 있어도 돈 내기하고 그런다.

여자 형제가 되게 귀한 집안이었겠다. 이런 집안의 특징은 식구 중 한 명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면 그 여자에게 관심이 집중 된다는 거다. “재가 어떤 여자를 사귀나?” 하고 말이다.
우리는 공교롭게도 모두 오래 연애를 해서 서로 자기 여자들에게만 관심을 가졌다. 뭐, 상대가 바뀌어야 관심을 가질 텐데, 다들 8년 7년. 나도 9년 연애해서 결혼했다. 학교 선후배로 만나서 2006년에 결혼했지.

형제간에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익숙함을 좋아하는. 세 형제가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것도 그렇고. 사랑을 의리라고 하면 그렇지만, 오랜 연인과 결혼한 것도 그렇고.
그러게. 셋 다 그러기는 쉽지 않을 텐데.

연극영화과는 연기 전공으로 들어 간 건가?
나 때는 실기를 안 봤다. 설경구 선배님이나 이문식 선배님 때도 그랬는데, 우리 비주얼이 중대나 다른 곳과는 다르잖나.(웃음) 1학년 때 여러 가지를 해 보다가, 2학년 때 연기를 할지, 연출을 할지를 정했다. 그러면 나처럼 대부분 연출을 하겠다고 하지. 그런데 최영희 선생님이이라고, 수업시간에 한 번씩은 꼭 연기를 하게끔 했다. 그 때, 연기 쪽으로 진로를 확 바꾼 거다. 크게 고민도 안 했다. 그냥 선배들 따라다니고 술 얻어먹고 하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됐고, 졸업할 때가 왔다. 또, 그러다 보니 선배들처럼 극단에 들어가게 됐고. 그러다가 중간에 <달려라 장미>라는 영화를 하게 되면서 인생이 약간 달라졌다. 보통 극단에 가면 30대까지는 쭉 연극을 하거든. 그래서 나는 연극판에 있었다고 하기도 그렇다. 적어도 10년은 해야 “재 누구다”라고 알지, 몇 작품 달랑 하고 나왔기 때문에 선배님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좋게 말하면, 연극도 해 보고 영화도 해 보고 이것저것 해 본 셈이긴 한데, 그런 부분이 있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그나마 독립영화 쪽에서 조금 알려졌고. 그게 다다.
독립영화를 하면서 운도 따랐던 것 같은데, 좋은 작품들을 연달아 만났다.
그 해에 만난 작품들이 다 좋았다. <관객과의 대화>도 그렇고 <약탈자>도 그렇고.

<6시간>으로는 칸 영화제도 갔는데, 어땠나?
그걸 내 세울 정도는 아니다. 그냥 배낭여행을 다녀온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칸에 대한 환상이 별로 없었다. 영화 하시는 분들은 꿈이라고 하시는데, 나는 유럽이라는 곳이 더 궁금했던 것 같다. 어릴 때 꿈꾸던 유럽과 그 곳의 사람들. 그런데 가보니 되게 불친절하고, 내가 생각한 거랑은 다르더라.

그냥 여행을 다녀 온 거라고 하지만, 아마 당신의 밑바닥에는 그런 영화제에 다녀 온 자신감이 있을 게다. 그게 앞으로 무시 못 할 경험이 되지 않을까.
듣고 보니, 그렇네. 영화제를 갔던 것이 불편한 지점도 있는데, 한 두 번 가면서 익숙해지고, 분명 얻은 것도 있을 거다.

아, 혹시 동기 중에 우리가 알 만한 배우가 있나?
없다.(웃음) 아까 말했듯 우리 때는 연기를 하는 절대 수가 부족했다. 1998년도 이후부터는 아예 실기로 연기를 뽑았는데, 우리 때는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없다. 오히려 우리 뒤 학번 들이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 문식이형 이후 1990년대 초반 우리 학번들이 다리 역할을 잘 못해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다. 잘 되는 선배가 있어야, 후배들도 용기를 얻어서 열심히 할 텐데. 우리가 그런 선배들을 보고 희망을 가졌듯 말이다. 내가 아니더라고 누군가 잘 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번에 학교에서 반가워하겠다.
그러게. 후배들이 영화를 보고 메시지를 보내오더라.

오디션도 많이 봤나?
많이 봤지. 숫하게 떨어졌다. 그러다가 2006년 <달려라 장미>를 찍고 연극을 하고 있을 때, CF 기회가 왔다. 마트 광고였는데, 신혼부부가 장 보는 컨셉이었다. 그러면서 소속사가 생겼고, <굿바이 솔로>와 케이블 드라마를 잠시 했다. 이후 허송세월이라고 생각했던 3년이 지나고, 계약이 끝났다. 그 때부터 스스로 프로필을 돌리면서 오디션을 다시 봤는데, 그 때 만난 게, <약탈자들> <관객과의 대화> 등이다. <약탈자들>로 인해 지금의 소속사를 만난 거고.

노력하면 되는 스타일인 것 같다.
그런가. 글쎄, 잘 모르겠다.

해도 해도 안 돼서 좌절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건 아니잖는가.
기회가 많았던 것 같기는 하다. 단편영화도 찍어보고. 그런 면에서는 운이 좋았다.

이번 영화 보고 김태우씨가 뭐라고 하던가.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자기 일처럼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나보다 더. 나는 오히려 담담했거든. 내가 크게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형은 본인 일보다 더 좋아하더라. 형은 형이구나 싶었다.
직접 뵈니까 조금 덜한데, <약탈자들>에서는 김태우씨와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했다. 역할도 살짝 비슷했고.
맞다. 형이 홍상수 감독님 작품에 나왔던 느낌과 비슷했지. 보시는 분들은 가지각색이다. 어떤 분들은 얼굴이 쌍둥이 같다고 하시고, 어떤 분들은 전혀 다르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은 연기하는 게 똑 같다고 한다. 심지어 ‘<약탈자들>의 김태훈이 김태우 흉내 냈다!’고 하는 분도 있었다. 우리가 형제인 걸 몰랐던 거지.(웃음)

앞으로 특별히 해 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많이 해 보고 싶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독립영화 상업영화 가릴 것 없이 말이다. 아직까지도 출발선에 서 있는 것 같다. 달리면서 하나씩 다져 나갈 생각이다. 그래서 후에, 다져 놓은 걸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지금은 가리지 않고 많이 해 볼 생각이다.

인터뷰 하면서 계속 느끼는 건데, 여러 캐릭터를 입을 수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표정이 다양하다.
너무 감사한 말이다.

다져 놓은 걸 펼치길 바라고, 그 때 다시 만나길 바란다.
오늘 인터뷰 너무 즐거웠다. 정말로.

2010년 8월 17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0년 8월 17일 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38 )
mckkw
가수 김태우인줄 알았네   
2010-09-08 15:43
eunsung718
멋잇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0-09-07 10:56
tldn84
이렇게보니까 얼굴이다르네요 ..ㅋ   
2010-09-07 10:35
hypnos011
ㅋㅋㅋ 멋져요 ^^   
2010-09-02 15:00
mobee00
연기 잘하시드만요~겉멋들지 말고 롱런하시길^^*   
2010-09-01 14:50
meyoung2
정말 김태우 닮았다고 생각했는데..아.. 이배우였군요. 앞으로 더 멋진 연기 보여주시길!!   
2010-08-30 22:39
siri2000
호감가는 인상및 대성할것같은 멋진배우네요 김태우씨닮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연관있었네요   
2010-08-28 17:50
yiyouna
김태우 동생이었구나   
2010-08-2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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