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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을 비워야 한다 <페이스 메이커> 김명민
2012년 1월 20일 금요일 | 김한규 기자 이메일


영화를 안보고 인터뷰를 하려니 어색하다.(인터뷰는 언론시사회 이전에 진행됐다.)
-뭐 영화 얘기는 나중에 하고, 사담이나 하자.(웃음)

완성된 영화는 봤나?
-기술시사로 봤다.

어땠나?
-사담이나 나누자니까.(웃음)

(웃음) 이번 영화를 선택한 이유부터 들어보고 싶다.
-시나리오를 볼 때, 첫 장을 넘겨서 끝장을 덮을 때까지의 느낌을 중요시한다. 어떤 감독이 연출을 맡고, 어떤 배우가 출연하는지는 나중 일이다. 일단 시나리오가 나에게 감흥을 줘야 한다. 주만호라는 인물을 봤는데, 나와 비슷한 점이 많더라. 마라토너와 배우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마라토너는 고독하다. 42.195km를 달리는 동안 외롭게 고독을 씹으면서 달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의 사점(死點)을 이겨내고 골인 지점까지 들어와야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좋은 기록으로 들어와야지 이름을 떨칠 수 있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촬영에 들어가면 그 누구도 나를 온전히 도와줄 수 없다. 어려움에 봉착할 때면 홀로 이겨내야 한다.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고 해도 끝난 게 아니다. 흥행 성적이 좋아야지 비로소 배우의 존재감을 기억하니까.

캐릭터와의 다른 공통점은 없나?
-극중 만호는 후천적으로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나도 후반부 제작이 무산돼 빛을 못봤던 <스턴트맨> 촬영 당시, 오토바이에 깔려서 오른쪽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그 때 이후로, 날씨가 안 좋으면 꼭 신호가 온다. 오래 달리거나 서 있으면 피가 안 통하니까 마사지를 해줘야 한다. 이런 점이 만호랑 비슷하다. 굳이 다른 부분을 찾자면 만호는 남을 위해서 뛰는 반면, 나는 내 꿈을 위해 이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이 친구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고, 나는 포기했다. 이민가려고 했으니까.(웃음)
최근 드라마보다는 영화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신파 멜로, 코미디, 스포츠 등 다양한 장르 영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장르의 중복은 의도적으로 피하는 건가?
-물론이다. 웬만하면 같은 장르를 연달아 하지 않으려 한다. 초반에 스릴러를 많이 했는데, 촬영이 끝나면 많이 힘들었다. 몸과 정신이 피폐해지더라.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 지금보다 인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았거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 시나리오를 받는 것 자체에 감사한다. 물론 시나리오가 좋은데, 전작과 같은 장르라는 이유만으로 안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
-예전에 팀 로빈슨이 인터뷰 한 걸 보니까 나이를 위해서라도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 나 또한 그런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아들 영향이 크다. 이왕이면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페이스 메이커>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페이스 메이커>를 본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아저씨 영화를 통해 꿈과 희망을 가졌어요”라고 말해 주면 좋겠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호에게 자신의 삶을 대입하게 될 것이다. 나를 희생하고 가족을 위하며 사는 가장들이 얼마나 많나. 그들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일한다. 남을 위해 살아온 가장들에게 위안과 용기의 메시지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자신의 연기가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기쁜 일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더 행복한 일이 아닐까?
-정말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일개 배우가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그런 일이 <불멸의 이순신>때 있었다. 그 당시 난치병 환자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고령의 암환자 한 분을 만났다. 그분이 처음에는 3개월을 선고 받았는데, 드라마를 보고 9개월이나 더 연장됐다는 거다. 처음엔 의심했지. 하지만 그분이 직접 쓴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보고 새 삶을 얻었다는 그 글귀에 마음이 짠하더라. <불멸의 이순신>으로 KBS 대상을 받을 때 ‘내 자신을 위해서 연기하지 않겠다’는 소감도 그 분이 생각나서 한 말이다. 결국 돌아가셨지만, 배우로서 제2의 인생을 열어주는 힘을 많이 주셨다. 내 연기로 많은 분들이 감동과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
이번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장면을 꼽는다면.
-만호와 동생(최재웅)의 이야기다. 극중 만호가 이런 대사를 한다. “동생은 내가 뛰는 모습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모습을 보러 오지 않았다” 동생은 만호가 페이스 메이커를 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만호가 페이스 메이커를 하게 된 계기가 동생의 대학 진학 때문이거든. 만호는 오로지 동생만 생각한다. 캐릭터를 분석할 때 엄마처럼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억척스럽고 고생하는 엄마가 자식에게 간, 쓸게 다 빼주는 것처럼 말이다. 형제의 이야기가 눈물과 감동 그리고 희망을 전할 거라고 생각한다.

현장 공개 때 체중을 감량한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
-체중 감량을 하지는 않았다. 운동량이 많아서 그렇게 보인 걸 거다. 촬영 때 얼마나 많이 먹었는데.

<내 사랑 내 곁에>의 모습이 오래 각인돼서 그런 건가. 또 이런 연기에 도전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또 다이어트 했냐고 하더라.(웃음) 지금은 좋아졌다. 마라토너의 몸을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됐다. 진짜 마라토너들은 상체는 말랐고, 하체는 튼실하다. 현장 공개 때 다들 상체만 봤나봐.

메소드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에서 김명민이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메소드 연기가 어느 순간 수식어로 붙었다. 이 말이 수많은 안티를 모았다. 처음에는 이렇게 안티가 많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됐을까 생각해보니 <내 사랑 내 곁에> 때문인 것 같다. 이후, 뭘 하든 그런 식으로 본다. 다른 배우들과 똑같이 연기했을 뿐인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영화나 드라마를 시작하면 인물에 최대한 가까이 가려는 편이다. 마라토너를 맡았으면, 마라토너가 돼야 한다. 마라토너 같지 않은 사람이 나와서 연기를 하면 사람들이 믿겠나. 진정성이 없는 거다. 배우가 그 인물처럼 보이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아무리 배우라도 자기 몸을 혹사시키면서까지 연기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다. 몸이 생명인데. 그래도 그 인물처럼 보이지 않으면 관객에게 미안하다. 그래서 열심히 뛰었다.

메소드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에서 김명민이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지금도 어렵다. 정말 모르겠다. 항상 자신을 비우고 인물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다가도 오버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면, 정말 미칠 것 같다. 배우가 아무리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려 해도 잘 바뀌지 않는 게 있다. 눈물, 웃음 그리고 소리 지르는 거다. 자신도 모르게 인물이 아닌 자신의 본 모습이 나온다. 그걸 감추려고 하니까 오버 연기가 나오고, 그 때마다 한심하다고 느낀다. 자신을 비우는 게 참 힘들다.
마라톤을 소재로 한 영화다. 마라톤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단거리와는 분명 뛰는 방법이 다르다.
-마라톤이 뭐가 어렵냐 그냥 뛰면 되지 하는데, 굉장한 기술을 요한다. 골반으로 엉치 뼈를 쳐줘야 하는데, 허리를 새워서는 안 된다. 몸도 통통 튀지 않고 바닥에 붙어서 가야 한다.

복잡하다.
-그런 게 있다.(웃음) 신기했던 건 그 방법을 깨우친 순간 힘이 안 든다는 사실이었다. 주법을 체득하니까 상체의 힘이 빠지고 오로지 하체의 힘으로 가게 되더라. 신세계였다. 너무 신기해서 집에서도 뛰어 봤다. 이제 어떤 길이든 힘들이지 않고 뛸 수 있다.

혹시 기록은 재봤나?
-아니. 2000년도에 완주한 적은 있다.

완주를?
-그때 기록이 4시간 10분이었다. 완주 했다는 거에 의의를 둔다.

나는 10km도 못 뛰는데.(웃음)
-그때는 다리를 다치기 전이었다.(웃음)

메이킹 필름을 보니까, 뛰다가 아파서 힘들어 하는 장면이 나오더라.
-하필이면 그 때 나와서 찍다니.(웃음) 그 전에는 잘 뛰었는데.

시나리오 받았을 때부터 뛰는 양이 많을 건 예상했겠지?
-마라토너 역이니까, 당연히 예상하고 갔지. 각오도 하고.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뛰어야 했다. 각오를 세게 다지는 편인데, 내 예상을 뛰어넘는 영화는 처음이다.(웃음)

감독이 원망스럽겠다.
-감독님에게 불만은 없다. 그건 감독님 스타일이니까. 배우가 감독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 영화는 산으로 간다. 배우가 경험이 많더라도, 감독의 권한을 침해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배우가 감독을 신뢰하지 않으면, 스텝들도 감독을 못 믿게 된다. 그러면 모두에게 마이너스다.
이번 영화를 통해 얻은 게 있다면?
-예상보다 큰 고통과 극한의 타이밍이 왔을 때, 극복하는 힘과 노하우를 얻었다. 모두 안성기 선배님 덕분이다. 선배님에게 끈기와 인내를 배웠다. 이젠, 아무리 힘든 작품이 들어와도 버틸 자신이 있다. 물론 힘든 역할만 할 거란 얘긴, 아니다.(웃음)

벌써 1년 전이다.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흥행을 맛본 후 변한 게 있나?
-그동안 출연했던 영화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작품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명민은 드라마는 잘되고, 영화는 다 말아먹었다고 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데. 드라마도 대 성공은 아니거든. <하얀거탑>은 평균 10% 나오다가 후반에 가서야 21% 나왔다. <베토벤 바이러스>도 초반에 힘들다가 종반 이후에 올라간 거다.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 속편 얘기는 없나.
-속편 얘기는 영화 찍을 때부터 나왔다. 소재가 정말 무궁무진했다. 영화 찍을 때도 소재가 10가지는 됐으니까.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 등 많은 얘기가 나왔는데, 감독님이 워낙 바쁘셔서.(웃음)

현재 <연가시>라는 작품을 찍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재난 영화다. 곱등이에 기생하는 연가시를 소재로 하는데, 숙주를 곱등이가 아닌 사람으로 설정했다. 연가시가 기생하게 된 사람은 식욕이 왕성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목마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끝내 좀비처럼 껍데기만 남게 된다. 현재까지 반 정도 찍었고, 2월말에 크랭크업 예정이다.

<연가시>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예정인가?
-나약한 가장. 하지만 가족들이 연가시에 감염되면서부터 강해지는 인물이다. 동생을 위해 뛰는 만호처럼 이번 영화에서도 가족을 위해 열심히 뛴다.

2012년 1월 20일 금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2년 1월 20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10 )
nayona0106
역시 대단한 배우이십니다 ^^   
2012-02-13 21:25
dudfuf0102
똥덩어리때보다 주름살이 더 늘어나신듯 보입니다...저도 늙어가고요   
2012-02-04 17:43
milkgirl999
김명민씨는 정말 자기를 영화 속 인물과 동일화하는거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나 연기하시는거 보면 김명민은 없고 그냥 그 사람이더라구요. 어떻게 저렇게 몰입할 수 있는지...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뿐입니다. 국민배우라는 칭호가 아깝지않아요.   
2012-02-03 17:49
shineunsu
연기를 위해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   
2012-02-03 10:31
kkdoris
누군가는 너무나 처절하게 자신을 만들어간다고도 하는데~ 그런 그의 열정이 너무나 멋집니다~ 그리고 많이 부럽구요~   
2012-01-30 22:06
yjyj3535
김명민씨 당신은 늘 비워져 있었고 늘 가득 채워진 배우입니다^^   
2012-01-30 15:39
sweetycom
김명민씨를 보면 배우로서의 프라이드랄까...자신의 역에 대한 자부심과 '역할 그 자체'가 되려는 몰입도가 전해지는것같아요.   
2012-01-28 23:56
bowony
천상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역할이든 잘 소화해내시는 것 같아요^^ 최고~~   
2012-01-2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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