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탕함에 가려진 진짜 모습 <분노의 윤리학> 곽도원
2013년 2월 27일 수요일 | 김한규 기자 이메일

평소 정장을 즐겨 입는 편인가?
아니다. 얼마 전 장례식에 가야 해서 정장을 찾아 봤는데, 상의는 술 먹고 어디에다 두고 왔는지 바지만 있더라. 으허허허허.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검사, <회사원>의 기획이사, <베를린> 국정원 간부 등 정장을 입고 출연하는 역할을 자주 맡는 편이다. 이 캐릭터들의 또 하나 공통점은 하나같이 악독한 놈들이라는 거다. <분노의 윤리학>의 김수택 교수도 그렇고.
글쎄. 나도 궁금해서 지인에게 한 번 물어봤다. 눈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 내 눈이 쭉 찢어졌거든. 그래서 악역을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안경 쓰면 인상이 좋아 보인다나. 안경이 가림막 역할을 하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지성미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하하.

<분노의 윤리학>에서는 김수택 교수를 포함해 네 명의 악인들이 나온다. 영화의 재미 중 하나는 곽도원, 이제훈, 조진웅, 김태훈의 연기 대결이다. 보이지 않은 신경전이나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다.
다들 친해서 그런 건 없었다. (김)태훈이는 <아저씨>에서 처음 만났다. 내가 그 영화에서 빨간 점퍼 입고 다니는 형사 1번을 했었거든.(웃음) 태훈이는 형사 반장이었고. 그때 술 많이 마셨지. 태훈이는 연기에 대한 고민이 깊은 친구다. (이)제훈이나 (조)진웅이는 같은 소속사라 친하다. 특히 진웅이는 나처럼 연극을 했던 친구라 말이 잘 통한다. 부담이 된 배우는 따로 있었다. 바로, 문소리.

문소리도 같은 소속사로 알고 있는데.
같은 소속사지만 대화를 많이 나눠보지는 못했다. 다른 배우들 보다 문소리 씨와 붙는 장면이 많다.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배우고, 집중력이나 캐릭터 분석을 철저하게 하는 사람이라 좋은 호흡을 보여줘야겠다는 욕심이 앞서더라.

떨리던가?
떨림보다는 기대감.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게 한 것 같다. 문소리와의 연기보다 더 떨렸던 건 여대생과의 키스신이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렇게 진한 키스신이 처음 아닌가?
기자간담회에서도 얘기했지만 정말 키스신이 있어서 이 시나리오를 선택했다니까. 으허허허. 이걸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더라. 키스신 찍는 당일 긴장 많이 했다. 아침 일찍 촬영장에 가야 해서 일찍 잠을 청했는데, 잠이 안 오는 거야. 뜬 눈으로 밤을 새웠지. 촬영장에 도착해서는 밥도 안 먹고 물만 마셨다. 어찌나 ‘가글’을 많이 했는지 입안이 화~~~해서 하하. 여대생 역을 맡은 배우가 고성희라는 후배인데, 참내 이 가시나가 밥을 네 끼 먹더만. 여자들 참 대차. 처음에는 긴장했다고 했는데 그게 다 뻥이었어. 뻥(웃음)

뭐 이제 찐한 키스신을 경험해봤으니 나름 노하우도 생겼을 것 같다.
노하우는 생겼다. 아름다웠어. 배우는 참 좋은 직업이야.(웃음)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더라.

<분노의 윤리학>을 처음 접했을 때 스릴러인줄 알았다. 영화를 보니 스릴러가 아닌 블랙 코미디더라.
여대생을 죽게 한 네 악인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영화 자체가 무겁긴 하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블랙 코미디 요소가 가득했다. 정말 만화책 보듯 한 번에 싹 읽고, 다음날 감독님에게 전화에서 미팅을 가졌다. 만나자 마자 내가 그랬지. “감독님 시나리오를 읽고 분석을 해봤는데, 혹시 이 작품 코미디 영화 아닌가요?”라고. 감독님이 맞다고 하더라. 감독님 이하 배우들이 코믹함을 강조하기 위해 애 많이 썼다.

코미디 요소가 드러나는 장면을 꼽자면 어느 부분인가?
김수택 교수와 아내인 선화(문소리)의 취조실 대화 장면이다. 선화가 수택에게 “바람피울 때 체위는 주로 어떤 걸 했냐”고 물어본다. 원래 시나리오 상에서는 “왜 그런 걸 물어봐”라는 대사 밖에 없었는데, 코믹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 체위 동작을 손으로 표현하면서 민망해 하는 모습을 집어넣다. 취조실에서 근엄하게 있다가 갑자기 윽박지르는 경찰의 행동을 보고 울먹이는 수택의 표정도 관객을 웃기기 위해 현장에서 만든 거였다. 언론시사회 전 영화를 무거운 스릴러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인들을 초대한 VIP시사 때 뭔가를 보여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무대인사 때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고 있습니까? 무거운 영화 아닙니다. 여러분 행복하시라고 만들었습니다. 꼭 자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일부러 분위기를 띄웠다. 정말 무거운 영화는 아니니까. 영화를 보고 난 뒤 지인들이 재미있게 봤다고 하더라.

영화의 절정 부분인 스튜디오 혈전 장면도 큰 재미를 준다.
그 장면도 재촬영을 했다. 처음에는 심각하게 찍었거든. 대사톤과 행동을 코믹하게 바꿔서 촬영한 게 지금의 완성본이다. 태훈이나 진웅이, 제훈이 모두 피칠갑하면서 연기하느라 고생 많았다.

스튜디오 혈전 장면에 혼자 나오지 않는다. 좀 아쉽지 않나.
어휴(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피 싫어한다. <황해> 때 하정우씨한테 죽임을 당하는 김승현 교수 역을 맡았다. 계단에서 칼 맞는 장면인데, 그걸 엄동설한에 4일 동안 촬영했다. 날은 춥고, 복부에 발라놨던 피는 마르니까 피칠을 계속했다. 느낌이 이상해. 피 느낌을 주려고 물엿을 넣거든. 찐득찐득 해. 그게 계속 옷 안에 스며들어서 힘들다. 4일 동안 그러고 있으니까 미치겠더라. 그냥 취조실에서 울고불고 하는 게 났지. 그게 나아. 애들이 날 부러워했을 거다.
김수택 교수라는 캐릭터는 처음 어떻게 접근했나?
아! 이걸 얘기해도 될 까 모르겠네.

뭔데?
김수택은 롤 모델이 있다. 그것도 세 명이나. 실제 불륜 문제로 곤혹을 당했던 교수들을 혼합했다. 김수택의 느끼한 말투, 영어를 빈번하게 쓰는 것, 나지막이 웃는 것 모두 롤 모델에서 따왔다. 프리기간이 짧아서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김수택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지식인들의 과욕이었다. 이들의 과욕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조금은 유쾌하고 통쾌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네 사람 중 가장 악독한 놈은 누구인 것 같나.
역으로 질문하고 싶다. 누구라고 생각하나?

모두 다가 아닐까?
네 군상들 중에 좋은 놈 하나 없다. 심지어 여대생을 모델로 야한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나, 선화에게 돈을 요구하는 술집 여자도 독하다. 수택을 윽박지르는 경찰이나 검사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따지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악인이라 볼 수 있다.
세상이 사람들을 악인으로 만드는 거다.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와 타협을 하고 본이 아니게 피해를 준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아니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기적이 돼야 살아남는 세상이거든. 대신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야지. 그래야 사회가 유지되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과욕을 부리는 사람들이 가장 무섭다. 그 집단이 넓게 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통 의견을 논하고 타협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분노하고 싸우게 마련이다. 배우들끼리도 그렇지 않나.
연극에서 빈 무대에 첫 등장하는 배우는 공간에 대한 리액션을 한다. 그 다음 등장하는 인물이 그 리액션을 받아 또 다른 리액션을 한다. 진실 된 마음으로 상대방의 액션을 받고 반응하면 비로소 살아있는 연기가 된다. 하지만 각자의 욕심만 차리면 연기가 따로 논다. “내가 이렇게 분석했으니까 맞춰서 리액션 해라”라고 하면 상대배우는 “나는 분석 안했냐”고 언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무언의 합이 자연스럽게 이행되지 않으면 그 작품은 실패한다. 그런 작품은 관객들도 안 본다.
수택은 마지막에 여대생을 죽이지 않았지만 자신이 죄가 있다고 울며불며 말한다. 그 때 수택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친 건가?
(담배연기를 내뱉으면서) 수택은 끝까지 나쁜 놈이다. 죄를 시인한건 기나긴 취조와, 공권력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또 절대 권력을 가진 장인어른과 아내가 자신을 외면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봐라. 이 새끼 그런 일을 겪고 나서도 지 버릇 못 고친다. 여자한테 작업 걸잖아. 느끼한 목소리로 전화하고 말이야. 하는 꼬락서니가 참.

그러고 보면 수택은 참 찌질하다.
그래서 했다. 찌질하고 나약한 역할이라서. 연극에서는 해봤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보여준 적이 없었다. 새로운 도전이라고나 할까. 곽도원도 악역이 아닌 코믹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알고 보면 코믹 연기는 전작 <점쟁이들>에서 선보인바 있다. 이미지 탈피를 시도했지만 흥행 성적이 저조했다.
코미디, 너무 어렵다. 조금만 오버하면 관객들이 “날 웃기려고? 내가 웃나 봐라”하고 반감을 갖는다니까. 또 재미없으면 “이건 뭐 웃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라고 한다. 합일점을 못 맞추겠다. 그래서 <점쟁이들>이 쫄딱 망했잖아. 나 때문에 그런 건가. 으허허허.

연극에서도 코믹 연기를 해봤을 거 아닌가.
연극은 공간성이라는 게 있다. 관객들의 호흡이 느껴지니까 그들이 웃을 준비가 됐는지 확인가능하거든. 그 때 한마디 툭 던지면 빵 터진다. 연극에서는 타이밍, 의외성, 반복성, 공간성이 코미디의 요소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현장에서 스텝들이나 상대 배우가 웃는다고 관객이 웃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영화는 편집으로 코믹함을 극대화 시킨다. 편집이 중요하다.

관객들이 <분노의 윤리학>을 보고 얻어갔으면 하는 게 있나?
최근 관객들은 무거운 소재의 영화를 보지 않는 것 같다. 1980년대야 민주주의를 꿈꾸며 정치나 노동 문제를 다룬 작품을 많이 봤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그렇지 않다. 그냥 우리 영화를 보고 ‘세상에 이런 놈들도 있구나. 나는 이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이 웃었으면 한다.
이 영화를 보니까 과거 출연했던 단편 영화 <열정 가득한 이들>이 생각나더라. 그 영화에서 악독한 PD 역을 했잖아.
(일어나 악수를 청하며)진짜 고마워. 이야! 그걸 기억하네. 장애인의 현실을 담으려고 하는 방송국 PD 역이었다, 방송 분량을 빼기 위해 장애인이 다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찍는 나쁜놈이지.

이게 첫 단편 영화로 알고 있다.
연극 때려치우고 한 첫 단편 영화다. 그 때 정말 힘든 시기였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극단에서 쫓겨나고. 하소연 할 때도 없었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누님들도 재산권 분쟁으로 안 만나던 때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려고 아등바등 거렸다. 그 순간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친분도 없는 오달수 선배한테 가서 도움을 청했다. 선배가 일단 단편영화를 찍으라고 하더라. 그럼 감독들이 본다고. 그래서 <열정 가득한 이들>을 찍게 된 거다.

단편영화가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거네.
단편영화가 아니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거다. 그 때부터 시간나면 단편영화를 챙겨보려고 노력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 영화를 꼽자면?
김종관 감독의 <드라이버>. 혹시 아나?

양익준 감독이 노숙자로 나오는 거 말인가.
맞다. 노숙자가 주인공인데, 쓰레기통에서 이리저리 뒤지다가 동내 불량배들에게 맞고 지나가던 여자에게 화풀이한다. 화풀이가 무섭지. 드라이버로 그 여자를 찌르려고 하니까. 마지막에 노숙자가 여자를 드라이버로 죽이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거지. 어쩌면 우리 영화보다 더 무섭고 잔혹한 분노를 다룬 작품이다.

단편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
단편영화는 10~15분 안에 인간이 갖고 있는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마치 시 같다. 그걸 관객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도 달라진다. 또 다른 이유는 새로운 역할을 미리 해보고 나름대로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편영화에서 특이한 캐릭터 연기를 시험 삼아 해보고 장편영화에서 대입해 보는 거지.

실제 단편영화에서 맡았던 캐릭터를 장편영화에 옮긴 적이 있었나?
<심야의 FM>에서 기자 역할 했을 때 <열정 가득한 이들>의 PD 역을 대입해 봤다. 이 PD 역은 연극 연습을 촬영하러 왔었던 실제 PD를 모델로 했고. 정말 영화처럼 어떻게 해서든 분량을 뽑아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하더라. 연습실을 엉망으로 해놓고, 배우들에게 이렇게 해보라고 지시하고. 그날 연습 분위기 다 망처서 술 마셨다. 하하.
2012년 영화와 드라마로 배우 곽도원의 위상이 올라갔다. 피부로 와 닿나?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서 즐겁긴 하지만 일이 점점 힘들다.

연극할 때보다 인지도는 높아졌지 않나. 금전적으로도 안정적이고.
연극은 연극만 하면 된다. 힘들어도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하고 소주 한 잔 마시면 피로가 확 풀린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는 연기하고 소주 마셔도 피로가 안 풀린다. 집구석 들어가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막막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니 담배만 계속 피우게 되더라.

그 힘듦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묘책이 있을까?
결혼. 결혼 생각하니까 행복하네. 하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다 해결될 것 같다.
정말 사랑하고 싶다.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도 하고 싶고. 정말 집에서 바가지 긁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으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

2013년 2월 27일 수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3년 2월 27일 수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총 5명 참여)
v53324
편안하고 후덕해보이는 곽도원, 하지만 그가 연기할 때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멀티 플레이어'다.   
2013-03-04 14:54
diekorea57
참 좋아라하는 배우 곽도원씨 ^^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잠깐 뵈었는데 웃음소리가 어찌나 호탕하시던지 100M후방에서도 단번에 알아볼수있었어요 ㅋ 분노의 윤리학 한국판 저수지의 개들같다는데 극장에서 꼭 확인하러갈게요 ㅋ'세상이 사람들을 악인으로 만드는 거다.'라는말은 음 공감되네요^^   
2013-03-02 10:26
veloce2
시나리오를 선택하게된 이유가 여대생과의 키스신때문이라니ㅋㅋㅋ 참 본능에 충실한 인터뷰네요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보니 전 곽도원씨가 나온 영화를 알게모르게 많이봤네요. 흥행작들이 정말 많아요. 아저씨,황해,범죄와의 전쟁까지ㄷㄷ 흥행보증수표라해도 과언이 아닐정도!! 저는 이영화 예고편을 보고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거같아서 기대가 컸습니다. 블랙코미디라.. 기대할게요!   
2013-03-01 03:29
jinycomoh
좀 징그럽네요. 능글맞아보여요.   
2013-02-27 20:10
ddreag
넉넉하고 포근해 보이네요....신뢰가는 배우입니다   
2013-02-2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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