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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의 온도 <연애의 온도> 이민기
2013년 3월 22일 금요일 | 김한규 기자 이메일


혹시 은행을 자주 가는 편인가?
직접 가는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주거래 은행은 있다. 영화 촬영하기 전에 한 번 들렸다.

은행원 역할을 맡아서 일부러 찾아간 건가?
그런 이유도 있고, 겸사겸사.(웃음) 오랜만에 갔더니 얼굴을 아는 직원분이 요즘 뭐하냐고 물어봤다. 새 영화에서 은행원 역을 맡았다고 하니까 반가워하더라.

거래 은행이 있다면 저축 통장 하나쯤은 있겠다.
뭔가 계획적인 일을 하지는 않는 편이다. 하지만 장래를 위한 저축은 하나 하고 있다.

적금 통장, 아니면 연금 저축?
이건 좀 웃긴데. 내 마지막 20대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통장을 개설하고 꾸준히 돈을 모으고 있다. 우연히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라는 책을 읽고, 문뜩 내 29살 생일에 의미 있는 선물을 내 자신에게 하고 싶더라.

그 돈으로 어떤 선물을 하고 싶나?
아직 정하지 않았다.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아니면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의미가 있는 거라면 어떤 거라도 상관없다.

은행을 배경으로 한 사내 커플 영화라서 점에서 저축와 연애의 공통점을 찾아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축은 돈이, 연애는 사랑이 쌓인다는 것, 급박한 사정 때문에 적금을 해약하는 경우처럼 연애도 사소한 문제 때문에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게 비슷하더라.
듣고 보니 그러네. 만기일까지 돈을 꾸준히 모으는 게 어려운 것처럼 결혼할 때까지 헤어지지 않고 사랑을 지속하는 것도 어렵지.
연애를 저축과 비교한 것과 마찬가지로 기자간담회에서 노덕 감독은 ‘연애는 롤러코스터와 같다’라고 말한바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연애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실제 연애를 제대로 경험한 적이 없어서인지 연애나 사랑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내 안에는 직접 경험한 연애 감정보다 영화나 책, 음악을 통해 간접 경험한 감정이 더 많다. 그러다보니 나름대로 연애지침이 생겼다. 내 감정을 숨기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게 좋은 거라 생각했다. 되도록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배려하는 게 맞다고 믿었다. 하지만 영화를 찍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감정은 숨기기보다 겉으로 드러내야 한다. 감정을 표현해야 관계에 발전이 있다. 물론 동희(이민기)처럼 격하게 감정을 표출하면 안 되겠지만.

감정에 솔직하다보면 쉽게 싸우기 마련이다.
사실 사랑에 정답은 없다. 영화에서 동희와 영(김민희)이 헤어진 이유는 솔직한 감정을 있는 대로 퍼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했다. 소극적으로 일관하다가 이별한 것 보다는 낫지 않나. 모든 걸 쏟아 부어서인지 이들은 감정싸움의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별이 두렵더라도 일단 사랑 앞에 솔직한 게 좋은 것 같다.

영화의 독특한 점은 이별 직후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이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특이했다. 이런 대본은 없었으니까. 여타 멜로 영화처럼 극적 요소가 없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사랑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잘 풀어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읽으면서 저절로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공감하는 동안 내 안에서 상황에 따른 인물의 감정이 정립됐다. 시나리오가 강요한 게 아니었다. 내 스스로 느끼고 만들어낸 감정이었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지면 관객들도 나처럼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출연을 결정했다.

영화는 인물의 감정을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인터뷰 형식을 간간히 삽입하거나 핸드 헬드 방식을 사용했다. 동희의 현실적인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했나?
준비하지 않은 준비를 했다고나 할까. 시나리오를 읽은 후 연기에 힘이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더라. 그냥 일상적인 연기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동희가 다혈질 성격이라 간간히 감정을 강하게 가져간 것 이외에는 감정 표현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매 장면 마다 감정을 미리 설정하지 않고 현장 느낌에 맞춰서 연기했다. 정작 고민은 따로 있었다.

어떤 건가?
<퀵> <오싹한 연애> 등 최근 현실과의 접점이 크지 않은 작품을 연달아 했다. 그러다 보니 동희를 연기할 때 나도 모르게 감정표현을 과장되게 가져가지 않을까 두려웠다. 눈물을 흘려야 하는데, 오열을 한다든지 하는 기술적인 연기가 나오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촬영 전 감독님에게 부탁했다. 연기하다가 그런 부분이 나오면 얘기해달라고 말이다.
촬영 초기에는 과장된 감정 연기를 억제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 같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감독님이 한숨을 쉬지 말라고 하더라. 그 한숨이 과장되어 보인다고. 그것 말고는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현실적인 캐릭터인 동희를 연기함에 있어 해방감도 느꼈을 법 한데.
힐링이 됐다고나 할까. 매번 밖에서 사먹는 밥 먹다가 오랜만에 집 밥을 먹은 느낌이었다. <퀵> 촬영 때 오토바이를 타고 옥상에 올라가는 장면이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을 상상력에 의존해 연기하다보니 어려웠다. <오싹한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귀신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겁먹은 표정을 지을지 고민됐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그런 고민이 적었다. 그냥 인간 이민기의 모습을 보여줘도 될 만큼 현실적인 감정을 내보이면 됐다. 억지 감정을 안 써도 되니 정말 반가웠다.

<퀵>에서의 오토바이 액션 장면과 비견될 정도는 아니지만 싸움 장면이 다수 있다. 열심히 때리더라.
액션 장면이 어려웠다. <퀵>은 합이 있었다. 동선도 확실했고 안전 장비까지 갖춰졌으니 편하게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액션은 달랐다. 정확한 합이 없었다. 영화에서 동희가 영이와 하룻밤을 같이 보낸 민차장(박병은)을 흠씬 두들겨 패는 장면이 있다. 시나리오 상에는 ‘동희, 민차장 팬다’라고만 쓰여 있었다. 물론 무술 감독님이 오셔서 간단한 동작과 동선을 얘기해줬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마음대로 안 되더라. 감정이 실리니까 약속한 합대로 때리지 못했다.

상대 배우가 고생 많았을 것 같은데.
미안했지. (박)병은이 형이 고생 많았다. 원래는 가슴, 배, 엉덩이 순으로 때리기로 했다. 하지만 감정이 앞서니까 가슴을 때릴 순서에 엉덩이를 때리고, 엉덩이를 때릴 순서에 가슴을 때린 거다. 얼마나 화나겠나. 나중에 형이 그러더라. “너 영이를 너무 사랑한 거 아니야. 안 그러면 이렇게 심하게 때릴 수 는 없다”고 푸념하더라.(웃음) 그 장면에서 나를 말리는 사람들도 많이 맞았다. 내 주위에 있으면 다 맞는다는 걸 아니까 테이크가 갈수록 사람들이 알아서 피해갔다.

액션도 강했지만, 더 강했던 건 대사였다. 욕 한번 시원하게 하더라.
연기하면서 내가 욕을 한지도 몰랐다. 감독님이 말해서 알았다. 시나리오에는 “너 지금 정신 못 차리지”라고 쓰여 있었는데, 격한 감정으로 말해보니 “너 지금 xx 정신 못 차리지”라고 말한 거다. 감정에 취해서 대사를 하다 보니 조절이 안 되더라.

다혈질인 동희의 성향을 짐작하는데, 욕이 한 몫 단단히 했다.
글로 안 써놨을 뿐이지 그 의미가 내포된 거니까. 욕을 잘한 것 같다. 하하.
초반부만 보면 동희와 영은 정말 많이 싸운다. 연기하면서 ‘이건 정말 화난다!’ 싶은 상황을 꼽자면 어떤 건가?
유치했던 복수전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술집에서 영이가 동희를 먼저 때린 상황을 꼽을 수 있다. 내가 동희라도 정말 화났을 거다. 빈정거리는 말투로 대했고, 영이한테 일부러 술을 엎질렀지만 동희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아무리 헤어졌더라도 전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와 시시덕거리는 건 보기 힘들다. 그래서 일찍 들어가라고 행동한 건데, 그걸 영이는 맞받아친다. 그리고 맞는다. 그것도 확실하게.

말싸움하는 것만 봐도 두 인물이 서로 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게 엿보인다.
술집에서 싸우다가 동희가 “너 내 눈에 띄지 마라. 죽는 수가 있다”라고 한다. 이에 질세라 영이도 “너야 말로 죽는 수가 있다”라고 받아친다. 둘 다 절대 안 지려고 한다. 결과는 매번 영의 승리지만.

말싸움에 있어서 남자는 여자한테 이길 수 없다는 건 진리인 것 같다.
이기면 이겨서 문제고, 지면 져서 문제고.(웃음)

도대체 남자와 여자는 왜 싸우는 걸까?
참 어려운 질문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남자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여자는 뭐가 미안하냐고 되묻는다. 답 없는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더 큰 싸움이 일어난다. 한 발 물러서 양보하고 이해한다면 싸울 일이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한 것 같다. 아까도 인터뷰 하러 온 여자 기자분과 이것에 대해 짤막한 토론을 했다. 얘기를 해도 결론이 안 난다. 남녀 간의 문제는 풀지 못할 영원한 숙제다.(웃음)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처음 좋아했던 연예인이 김민희였다고 밝힌바 있다.
드라마 <학교> <순수의 시대>를 보고 좋아했다. 당시 독특한 캐릭터였다. 부스스한 헤어스타일, 느린 말투가 특이했다. 그 매력에 취했었지.

좋아했던 배우를 직접 만나고 연기까지 해보니 어땠나?
과거 내가 좋아했던 그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웃는 게 매력적이었다. 웃을 때는 어린 아이처럼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무표정하면 정말 차가워 보인다. 마치 <블랙스완>에서 백조와 흑조를 동시에 연기한 나탈리 포트만 같더라.
개인적으로 두 배우의 호흡이 좋았던 건 롤러코스터를 타기 전 이별을 예감하는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과거 동희와 영이 헤어진 장소가 놀이동산이었는데, 재결합 후 또 다시 놀이동산에서 싸운다. “예전에 왜 싸웠는지 기억이 났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근데 이번에도 똑같네. 우리가 괜히 이별한 게 아니었구나. 너나 나나 변한 게 아무것도 없네”라는 대사였는데, 마음에 와 닿았다.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이별을 예감하고 난 뒤 솔직한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영화는 이별의 아픔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하지만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이는 동희가 재결합에 망설이는 영이에게 “로또 1등 확률보다 이별했던 사람들이 다시 만나서 사랑을 이룰 확률이 더 높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롤러코스터가 무서워도 즐기는 동희와 영처럼 연애의 힘든 순간도 즐긴다면 사랑이 된다. 생각해보면 이별도 사랑을 해야 가능한 일 아닌가. 이들은 이 과정을 통해 한 단계 성장했을 거다. 동희와 영이 같은 커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용기를 냈으면 한다.

<퀵> 인터뷰로 만났을 때는 흥행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던데, 이번에는 자신감에 차있는 것 같다.
<퀵>은 본격적으로 내 이름을 걸고 나온 첫 영화였다. 그때는 책임감이 굉장했다. 영화가 잘돼야 한다는 부담감도 많이 느꼈다. 그래야 고생했던 스텝들에게 면목이 설 것 같았다. 이번 영화도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낀다. 하지만 기대감이 더 크다. 촬영하면서 나름대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결과물을 보니 완성도가 높았다. 개봉을 기다리는 시점에서 관객들도 나처럼 영화를 좋아해줄까라는 기대감에 쌓여있다.

촬영장에서 간간이 과거 함께 출연했던 선배들, 특히 설경구, 박해일, 박희순의 빈자리가 그리울 때는 없었나?
그런 적은 없었다. 다만 촬영 끝나고 형들하고 술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때가 그리웠다.(웃음)

혹시 영화를 보고 쓴 소리 해주는 선배들은 없나?
질타를 하는 선배는 없다. 그나마 이명세 감독님이 쓴 소리에 가까운 말씀을 해주신다. 매번 감독님은 “민기야 잘했는데, 너 이런 지점만 보완하면 좋을 것 같다”고 단점을 꼭 집어주신다. 그리고 연기가 아닌 영화 전체를 보는 눈을 가지라고 당부하신다. 그때마다 감독님이 선생님처럼 느껴진다.

전작을 살펴보면 김혜수, 정유미, 강예원, 손예진, 김민희 등 주로 연상 여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비결이 뭔가?
지인이 그러더라. 20대 남자배우가 그다지 많지 않은 영화판에서 내가 자리를 잘 잡아왔고, 20대 여배우 기근이라 연상 여배우와 연기를 하게 됐다고. 그 말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여지더라. 하하.
연상 여배우와 호흡을 맞추면서 생긴 노하우가 있나?
나이를 떠나서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잖나. 알게 모르게 사람이 가까워지면 무엇이든 교류를 하게 마련이다. 많이 배웠다. 나보다 오래 살았고, 연기를 오래 했던 사람들과 호흡을 맞췄으니 오히려 내가 편했다. 좋은 물이 있으니까 좋은 물고기가 사는 것 아니겠나. 나중에 그런 선배가 돼야지.

후배를 이끌 수 있는 선배가 되기 위해서는 인성도 중요하지만 뛰어난 연기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여타 인터뷰를 보니 연기에 대한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고 하던데.
좋은 선배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연기에 대한 자신감 같은 건 없다. 작품이 들어오면 일단 걱정이 앞선다. 인물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부터 한다. 그러다가도 한순간 ‘안되는 게 어디 있겠어’라는 마음을 먹고 일단 부딪혀 본다. 그리고 될 때까지 노력한다. 사실 잘 하는 걸 하는 것만큼 방심하게 되는 건 없다. 방심하지 않기 위해 매번 전작과 다른 인물에 도전한다.

두려운데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연기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 감정을 경험했던 안했든 나도 사람이니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대사를 해보고, 촬영장에서 연기해보고, 감정을 표현하면 되더라. 성취감이 있다. 그래서 계속 이 일을 하는 것 같다.

전작과 다른 인물에 도전한다고 했으니 다음 작품은 동희와 같은 현실적인 인물은 아니겠다.
아마도. 아직 차기작을 결정하지 못했다. 동희 같이 현실적인 인물을 계속하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인물을 경험하고 싶다.

그나저나 <연애의 온도>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흥행 변수로 작용할 것 같은데 걱정되겠다.
안타깝다. 배우들이나 감독님, 스텝들 모두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가 될 줄 몰랐다. 관객들이 제목과 등급을 보고 농밀한 베드신이나 노출을 기대하고 오면 어쩌나 걱정된다. 마음 같아서는 관객들이 편하게 즐기셨으면 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영화가 개봉된 후 “한국에 이런 로맨스 영화가 나와서 정말 반갑다”라는 말을 관객들로부터 듣고 싶다.

2013년 3월 22일 금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3년 3월 22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1 )
luckman7
이민기의 시대가 온건가? 아님 19금의 시대가 온건가? 하여튼 흥행변수로 떠오른 연애의 온도의 흥행가도가 기대되며 이민기가 과연 류승룡을 따라갈지도 기대된다   
2013-03-26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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