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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건너 온 뜨거운 감자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 오멸
2013년 3월 26일 화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지슬>에 대한 제주도 반응이 뜨겁다는 기사가 많다. 혹시 홍보성 기사가 아닐까 싶어 제주도에 사는 지인들에게 <지슬> 현지 반응을 물어봤다.(웃음) 실제로 관심이 높다고 하던데, 이런 반응이 느껴지나?
관객 반응을 체감하기 전에 서울로 와서 잘 모르겠다. 나 역시 언론 기사를 통해 소식을 듣고 있을 뿐이다.

주변 지인들이 소식을 전해 올 거 아닌가.
사실, 전화기를 꺼 버렸다. 주위가 갑자기 요란스러워지니까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 영화를 하고 싶었던 거지, 영화로 유명해지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 의도와 달리, 모든 상황이 너무 복잡해져 버렸다. 조금 지친 것 같다. 지금 두통이 심한데, 이해 부탁한다.

주위의 관심이 많이 부담되나 보다.
마음 가는대로 살아 온 인생이라, 타의에 의해 내 생활이 불편해지는 걸 싫어한다. 말썽도 많이 피우며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영화 한편 때문에 어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돼 버린 것 같아서 부담스럽다. 나에게 관심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친한 척 하는 것도 짜증나고. 그래서 전화기를 아예 꺼 버린 거다. 가까운 친구들은 오히려 조용하다. 진짜 마음으로 도와 준 사람들은 별 말, 안 한다.

<지슬>을 통해 사람들이 오멸이라는 감독을 많이 알게 됐다. 앞으로 당신에게 더 주목할 텐데, 그럴 때마다 이런 것들이 부딪히겠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뜰채로 물 뜨는 기분으로 찍어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그게 무슨 말인가?
<지슬>로 생긴 관객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뜰채에 관객들이 너무 많아서 무거운 느낌이다. 다음에는 그 관객들이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찍어야지, 싶다. 더 사랑받고 싶은 마음보다는 부담을 덜고 싶은 마음이 크다. 물론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작품이라는 게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는 거니까.

당신의 인생에서는 어떤가? 지금의 상황이 인생의 여러 굴곡 중에서 도드라진 시기인 것 같나?
이건 굴곡도 아니다.

그럼 뭔가?
거품? 주변이 바뀐 것뿐이지, 작품을 만든 나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그러니 나에게 지금의 상황은 거품과 같다. 갑자기 ‘우우우’ 생겼다가, 한 순간에 쓱 가라앉는.
거품이라 하기엔 관심을 가지는 이유들이 상당히 묵직하다. 단순히 선댄스수상작이어서 환호한다기보다는,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 그리고 의미에 열광하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이 당신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에 담긴 의미를 왜 나에게 물어보나, 싶다. 그건 세상을 너무 편하게 사는 거다. 시 의미를 모르겠다고 시인 쫓아가서 해석해 달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는 거지. 내가 직접 말하는 것보다 각자가 보고 느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나는 그런다. 영화를 보고 아무리 이해가 안 되도 감독에게서 직접 답을 구하지 않는다. 내가 알아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해가 안 되면 3년도 고민한다. 그런 스타일이라 인터뷰가 몸에 안 맞는다.

그렇게 말하니, 묻고 싶어서 가지고 온 질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된다.(웃음) 그런데 이런 건 있다. 혼자 되씹어도 되겠다 싶은 영화가 있고, 감독의 의도가 궁금한 영화가 있는데, <지슬>은 특히나 감독에게 묻고 싶은 게 많은 영화다.
솔직히 홍보 인터뷰 때문에 영화 개봉을 안 하는 감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슬>은 숙제가 있는 영화여서 인터뷰를 하고 있기는 한데, 내가 예상했던 선에서 심하게 넘쳐버렸다. 오늘만 해도 인터뷰에 하루를 모두 썼다. 내가 요즘 자주 쓰는 단어가 ‘자아상실’이다. 내가 내 삶을 못 살고 있는 기분이랄까.

조금 다른 질문일 수 있는데, 평론이라는 게 필요 없다고 보나?
평론가가 있으니까 내가 인터뷰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웃음) 그 사람들 몫을 내가 대신할 필요가 없지 않나. 내가 또 안 했던 걸 하는 걸 싫어한다.

그런 사람치고는 연극, 영화, 미술 등 도전 분야가 많다.
연극, 영화, 미술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들이다. 내가 말한 ‘안 했던 것’들은 생활적인 면에서 오는 부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슬>이 개봉하고 나서 뿌듯했던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뿌듯하다기보다는, 마음이 오히려 더 무겁고 착잡하다. 개봉 둘째 날 극장에 가 보니, 평생 극장이라는 곳엔 오지 않았을 것 같은 할아버지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계시더라. 자신의 슬픈 역사를 확인하기 위해 극장에 온 어르신들을 보면서 어떻게 기뻐 할 수가 있겠나. 관객 한 명 늘었다고 뿌듯해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지. 가령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이 들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기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지슬>을 보고 더 마음 아파하지 않으시길 바랄 뿐이다.

4.3사건 유족들의 관심이 특히나 클 텐데, 그분들은 만나봤나?
유족들께서 감사패를 주겠다고 했는데, 안 받겠다고 했다. 그런 자리에 가는 걸 꺼려한다.
<지슬>을 논하는데, 故 김경률 감독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영화 부제로 ‘끝나지 않은 세월 2’를 달았는데.
형님(김경률 감독)이 4.3 이야기를 그린 <끝나지 않은 세월>을 찍은 1년 후에 스트레스 등의 이유로 돌아가셨다.(김 감독은 2005년 12월에 뇌출혈로 쓰러져 41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큰 그늘이 됐다. 그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하기, 그러니까 정면 돌파라고 봤다. 그래야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형님을 총제작자로 이름 올리고 부제도 ‘끝나지 않은 세월 2’로 지었다. <지슬>은 <끝나지 않은 세월>과 같은 목적, 같은 가치를 찾고 있는 영화인 셈이다.

김경률 감독님의 죽음이 당신에게 왜 큰 트라우마가 됐나?
굉장히 가까웠다. <끝나지 않은 세월>도 도와주기로 했었는데, 다투는 바람에 중간에 나왔다. 형님도 고집이 있고 나도 고집이 있다 보니, 어느 지점에서 ‘이건 아니다’ 싶었거든. 너무 가깝다 보니 자주 티격태격했다. 그런 형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내겐 큰 충격이었고, 결국 그늘로 남았다. 마음 한 구석에 4.3 사건에 대한 부채감이 생긴 것도 그때다. 그 그늘은 결국 제주도에서 영화할 사람들이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거라 생각했다.

<지슬>을 통해 숙제를 어느 정도 푼 것 같나?
숙제는 받았지만, 답은 잘 모르겠어요. 잘 풀었는지 아닌지는, 내가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작들 같은 경우에는 제작비가 1,000만원 미만이었다. 그에 비해 <지슬>은 2억 5,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일반적인 영화 제작비에 비하면 저예산이지만, 당신의 전작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큰 제작비다. 게다가 제작비 마련을 위해 전세보증금까지 뺀 걸로 아는데, 무리를 해가며 제작비를 늘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전작 <어이그 저 귓것>(‘귓것’은 ‘귀신’의 제주 사투리로 어리석다는 비아냥.)이나 <뽕똘>(‘뽕돌’은 낚싯바늘이 물속에 가라앉도록 낚싯줄 끝에 매어 다는 작은 쇳덩이나 돌덩이.)은 우리 여건에 맞는 작업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영화였다. 제작비가 없는데 괜히 휘청거리면서 시스템에 끌려 다니는 짓은 하기 싫었다. 그래서 1,000만원이 있으면 1,000만원, 500만원이 있으면 500만원에 맞춰서 예산을 짰다. 그런데 사람들이 500만원 짜리 영화를 보면서 50억 짜리 영화와 비교를 하는 게 아닌가. 500만원이면 500만원 짜리의 가치를 읽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을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지슬>을 만들면서는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안 듣게 해야지’ 하는 마음이 컸다. ‘너희들이 원하는 게 잘 찍는 영화야?’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4.3 역사를 다루는데 누가 되면 안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 거다.

<지슬> 출연자 대부분이 비전문배우인걸로 아는데, 연기가 굉장히 자연스럽더라. 아, 나는 자막 없이 영화를 봤다.(웃음) 제주 사투리를 아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연기에 깜짝 놀랐다.
연기에 전문가/비전문가가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앵글 앞에서 연기하면 누구나 배우인 것이지, 돈을 많이 벌고 인기가 있어야만 꼭 배우는 아니지 않나. 배우 자격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나는 <지슬>에 나온 분들보다 연기를 더 잘 할 수 있는 배우는 없다고 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그 삶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설경구씨가 아무리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한들, 문화와 삶이 몸에 배어있지 않은데, 그들보다 더 리얼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지슬>의 배우들이 진정한 전문가 들이지, 더 이상 어디에서 전문가를 구하나.
특별한 디렉션을 주지 않았나?
상황만 던져주고, 알아서 연기 하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현장에 시나리오를 들고 다니는 배우가 거의 없었다. 외워오는 사람도 없었고. 비전문배우들이어서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제주 방언을 듣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다. 외국영화제에 많이 소개됐는데, 방언이 주는 어감의 차이를 외국인들은 구분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니, 괜히 내가 아쉽더라.
전작들과 비교하면, 문화적인 속성이나 언어적 유희를 많이 뺀 영화다. 방언이 주는 정서에 집중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다. 그리고 <지슬>은 제주도 언어로 풀어낸 영화일 뿐, 인간이 지닌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영화다. 외국관객들과 감정의 공유가 가능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본다.

흑백 화면을 사용한 이유는 뭔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제주도는 아름다운 색을 지닌 곳으로 기억하지만, 다채로운 화려함의 이면에는 4.3 사건과 같은 아픔이 있다. 그 아픔을 얘기하는데 색을 빼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전공이 한국화여서 무채색이 익숙하기도 했다.

말씀대로 제주도는 컬러풀한 자연환경을 지닌 곳이다. 그래서 컬러화면으로 보면 굉장히 다른 느낌의 영화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혹시 추후에 컬러로 공개해 볼 생각은 없나?
분장에서부터 의상, 조명 등 모든 것을 흑백 컨셉에 맞춰서 촬영했기 때문에 쉽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흑백영화는 빛을 잘 써야 하기 때문에 라이트에 굉장히 예민했는데, 인력이 부족하고 여건도 안 좋아서 조명팀이 많이 고생했다.

외부인들은 제주도 사람들이 4.3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잖나. 그런 의미에서 <지슬>이 외부인들에게 4.3 사건을 알리는 것보다, 제주도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역사를 정면으로 쳐다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제주도에서의 선개봉이 탁월했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연극을 보기 위해 서울을 오가곤 했는데, 서울을 문화의 중심으로 바라보는 우월감이 내심 못마땅했다. 문화 변방으로 평가받는 제주도에 가장 먼저 선보임으로서 제주도민들에게 문화적 자부심도 선사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의 주인공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로컬시네마가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수도권 개봉까지 가고,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 기쁘다.

흔히 제주 여자들을 가리켜 억세다고 한다. 선입견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마을에 남은 늙은 어머니가 토벌군인의 칼에 죽어가면서도 아들 내외에게 전해줄 감자를 끌어안는 장면’, ‘동굴에 끼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아낙이 남편에게 자기를 버리고 빨리 도망가라고 윽박지르는 장면’ 등에서 제주 여성들의 강인함이 읽혔다.
감상은 관객 몫이기 때문에 내가 ‘맞다/아니다’를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교차되도록 묘사한 장면들이라, 느끼는 바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억센 건 그 환경에서 살아 본 사람만이 아는 일이다. 매일 위험천만한 바다에 몸을 던지는 제주해녀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밀접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억세다는 말로 단정 짓는 건, 너무 좁은 해석 같다. 죽음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을 억세다고만 할 수 있을까? 삶에 의연해 졌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배급 방식이 독특하다.(<지슬>은 배급권을 일부 지역 독립영화협회에 나누는 시도를 했다. 진진이 전국 배급을 진행하며 제주는 제작사 자파리 필름이 배급을 맡았다.) 개봉관을 잡는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슬>이 완성됐을 때, 개봉을 요구해 온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제주도에서 먼저 개봉하겠다고 메인 배급팀에 우긴 후에 극장을 찾아다녔는데, 개봉관 하나 잡으려고 엄청 힘들게 싸웠다. 잘 알겠지만, 누가 이 작은 영화에 문을 열어 주겠나. <어이그, 저 귓것>할 때도 배급사 진진을 통해서 제주도에 있는 극장 하나를 겨우 대관했는데, 아침 8시 30분에 한 타임 틀더라. 아무리 ‘퐁당퐁당’ 이라지만, 말이 되나 싶었다. 그런데 <지슬>이 선댄스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자, 마치 한국독립영화를 대표하는 영화처럼 평가하는데, 그런 시선들이 적잖게 당황스럽다. 솔직히 한국독립영화가 제주도에 해 준 게 뭐가 있나. 제주도 역시 마찬가지다. 외부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슈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 것들이 참 안타깝다.

영화를 배급하기도 하는 극단 ‘자파리’는 제주말로 ‘쓸데없는 짓’을 뜻한다. 재미있다. 예술 집단의 이름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짓다니.
예술가들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잖나. 작품을 내 놓아도 인정을 못 받으면 쓸모없는 군상처럼 평가받고 말이다. 그런 사회적 시선이 불편하다. 나에게 경률이 형이 어떤 감독이냐고 물으면, 대한민국 대표감독이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흔히 대한민국 상위 1% 감독으로 봉준호와 박찬욱을 얘기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99%는 뭔가. 나는 경률이 형이 99%를 대표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돈도 없었고, 주변 인프라도 없었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오직 열정만으로 작품을 했다. 그러다가 자기 세계에 빠져서 1년 후에 뇌출혈로 돌아가셨는데, 그런 상황에 있는 예술가들이 세상에는 더 많지 않나 생각한다. 세상이 바라보기엔 쓸모없는 사람처럼 인지될지언정, 실상 그 사람들은 무언가 의미를 찾고 철학을 고민하는데 자신의 모든 걸 바쳤다. 그래서 나는 경률이 형을 대표감독이라고 말한다.

예술을 하면서, 세상이 변해도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있나?
물론. 나를 빵과 바꾸면 안 된다,는 생각. 그것만은 지키고 싶다.

얘기 하다 보니,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살다보면, 의지가 깎이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다.
나도 깎인 건 있다. 그림이라는 세상을 만나면서 내 안의 모난 부분과 덜 된 인간상이 깎여 나갔다. 다행히 내 의지는 깎이지 않았다. 이 일 때문에 내 삶이 위협받는 어리석은 짓은 앞으로도 하고 싶지 않다.

작품의 아이디어들은 어디에서 얻나?
나를 그냥 혼자 둔다. 이 세상에는 순도 100%라 할 수 있는 게 딱 하나 존재한다. 그건 바로 상상이다. 금도 순도 100%는 없다. 그런데 상상은 순도 100% 자기 것이다. 상상 속에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 어마어마한 힘인 거지. 가령 내가 지금 옷을 다 벗고 테이블에 누워있는 상상을 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불편해 할 사람이 누가 있나. 그건 나만의 세계니까,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다. 그 세계가 내겐 예술을 하는 세계다.
제주도에서 연극을 올리면 관객은 많이 오나?
그렇진 않다.
홍보가 조금 덜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100만원으로 연극을 만들어서 홍보를 얼마나 하겠나.(웃음) 영화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를 통한 홍보? 우리 여건으로는 불가능하다. 정보를 줄 힘 자체가 안 되는 상황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무슨 홍보를 하겠나. 100만원으로 연극 만들고, 200만원으로 홍보하는, 바보짓도 하고 싶지 않고 말이다. 그러니, 좋은 연극을 보고 싶은 관객은 스스로가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한 거지.

관객의 노력 못지않게, 창작자의 노력도 필요하지 않나? 내가 만든 작품을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끔 하는 노력 말이다.
꽃이 돌아다니면서 냄새를 피우지는 않는다. 나비가 날아오는 거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꽃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다. 그러다보면 나비는 저절로 오게 돼 있다.

신념이 굉장히 확고하다.
예술인들 대부분이 그러지 않나? 내 주위에는 그런 예술가들이 대부분이다.

그런가. 이렇게까지 주관이 확고한 예술가는 많이 못 봤다.(웃음) <뽕돌>은 과정의 중요성을 얘기한 영화였다. <지슬>은 과정 못지않게, 결과도 굉장히 중요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맞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오버되는 호흡들이 들어가고 있는 거다. 예산에서부터 말이다. 그리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역사에 누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작품 완성도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솔직히 완성도가 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허술하다는 말이 안 나오게끔 형태를 조금 더 갖추려고 노력했다. 다만, 내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형편없다고 매 맞는 것도 좋지 않지만, 너무 허황되게 거품이 끼는 것도 안 좋은 것 같다. 있는 그대로 작품으로 봐 달라.

2013년 3월 26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3년 3월 26일 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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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let
감독님께서 굉장히 뚜렷한 사고관을 갖고 계시네요. 그 점이 더 좋고, 더 기대됩니다. 영화 잘 봤습니다.^.^   
2013-04-17 11:07
jhmh1004
지슬, 이 영화 본사람들마다 다들 정말 최고라고 꼭 봐야하는 영화라고 했는데, 이 글을 읽으니까 영화를 직접 본 사람들이 왜 그런말을 했는지 알것같아요.   
2013-04-01 13:03
luckman7
한국 영화의 지문.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다. 아니 어쩜 제주말이 우리에겐 제2외국어 일지 모른다. 무엇보다 제주 다큐멘터리같은 영화라 제주를 알기에 딱 알맞은 작품같다. 꼭 보고 싶다   
2013-03-29 21:13
holeman
인상 깊은 인터뷰였습니다. 지슬 반드시 관람해야 될 거 같네요...감독님의 말씀도 말씀이지만 외양에서 발산하는 카리스마 또한 장난 아닌듯....   
2013-03-2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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