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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이 아닌 위로가 필요했던 시간 <스케치> 고은아
2014년 3월 25일 화요일 | 서정환 기자 이메일

그동안 연기하는 모습 보기가 힘들었어요.
17살에 데뷔해서 19살까지 말도 안 되게 열심히 했어요.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를 찍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결국 소신대로 일을 진행했는데 21살 때까지 쉴 수밖에 없었어요. 회의에 빠졌어요.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서 작품을 안 한건 아닌데 연기를 하고 있는 내가 너무 어색한거예요. 그래서 쉬고 싶었어요. 쉰다는 건 아무것도 안하고 먹고 노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한 준비 같은 거였죠. 그래서 공연도 많이 보러 다니고, 영화제 출품작도 많이 찍었어요. 그러던 중 주위에서 활동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기존 회사와 계약이 끝나고 편하게 일했던 실장님과 함께하게 됐고 맘이 편해지면서 이제는 활발하게 일하려고요.

작품에서 연기로 만난 게 아니라 이슈가 된 여러 가지 것들로만 고은아를 접하다보니 연기에 뜻이 없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다들 그렇게 아시더라고요. 전 욕심도 많고, 연기 활동에 만족하지 않거든요. 만족을 하면 열정이 뜸해질 수도 있는데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거든요. 연기를 잘 모르니까 하고 싶은 거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억지로 하고 싶지도 않았을 뿐이에요.

19살 생일에 마지막 인터뷰를 했어요. 그때까지 내가 알던 고은아는 욕심도 많고 연기에 대한 열정도 큰 친구였는데, 작품 활동이 뜸한 상황에서 예능이나 다른 가십들로 비쳐지는 모습을 봤을 때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그런 생각도 하게 된 것 같아요.
굳이 대답한다면 좀 힘들었어요. 누군가 하라고 해서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혼자 일을 시작한 건데, 어느 순간 방송이라는 매체에서 일을 하게 되고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 어른들 때문에 지쳤고 숨게 됐어요. 일을 너무 하고 싶었으나 그들에게 벗어나고 싶어서 하기 싫은 척을 한 거예요. 예능 같은 경우도 하고 싶진 않았는데, 남동생이 데뷔를 하게 됐고 시작하는데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있었고요. 팬들이 작품에서 보고 싶다고 할 때마다 미안했어요. 다른 걸로 인사를 하게 되니까요.
오랜 만에 출연한 <스케치>는 어떤 면에서 끌렸나요?
오랜만인데 대중적이면서 상업적인 영화로 친근하게 다가갔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변화 아닌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 이만큼 성숙했어요’가 아니라 ‘저 이런 사람 됐어요’를 먼저 알리고 활동을 하고 싶어서 이 영화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힘들었을 때 제 모습을 많이 담았거든요.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시나리오를 수연이 아닌 은아로 봤어요. 사회와 타협하지 않는, 저도 할 말 다하잖아요(웃음). 그런데 여리고 외로워하는 아이. 뒤에서 혼자 슬퍼할지언정 앞에서는 강한 척 하는 아이. 그림에 대한 열정이 크지만 사회가 그렇게 만든 거잖아요. 저 같은 경우도 그랬어요.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짓밟으려 하니까. 저를 형상화시켜놓은 캐릭터였어요.

특별한 캐릭터 설정도 없었겠네요.
없었어요. 다들 캐릭터 분석을 하잖아요.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서 수연을 연기해야지, 라는 생각보다 그냥 거짓말 안하고 솔직하게 나 자신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촬영 전에 감독님께 이야기했어요. ‘감독님이 원하는 장면에서 제 감정이 안 나올 수도 있고 눈물이 안 나올 수도 있을 거예요. 또 아닌 장면에서 제가 감정이 폭발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감독님은 걱정 말라고, 표현하고 싶은 거 표현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숨겨왔던 거, 쌓아놨던 거 표출하기도 했어요.

수연은 세상과 단절된 캐릭터에요. 술과 담배에 찌들어있고, 외부와 접촉을 기피하고, 그래서 작업실도 빛이 차단되어 있죠. 고은아의 내면에도 그런 성향이 있겠지만, 외부에 노출된 이미지로 판단할 때는 씩씩하고 꿋꿋하게 숨지 않고 앞에 나서는 모습이지 않을까요?
그동안 살아오면서 생긴 방어기제인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 지친 모습도 쉽게 보여줬더니 위로가 아니라 더 물어뜯으려고 달려들더라고요. 그래서 성격도 많이 바뀌었어요. 솔직해지라고 하지만 솔직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너무 힘들고 지쳐도 웃자, 웃어주자, 나중에 표현하자, 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가면을 쓰고 사람을 만나는 건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서 감정을 컨트롤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거나 불쌍하게 여겨지고 싶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제 자신이 너무 불쌍하거든요. 나 혼자만 나를 불쌍하게 여기면 되는데 여럿이 저를 불쌍하게 보면 제가 제 자신에게 지칠 것 같아요.
수연의 현실과 감정을 눈빛과 표정으로 보여주는 몽타주 신이 많은 영화였어요.
속으로 그 상황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슛 들어가기 전에 생각이 많아요. 비슷한 감정들이 많아서 어떻게 표현해야하나 생각이 많았죠. 그런데 슛 들어가면 어느 순간 그냥 나오더라고요. 대사가 있는데 대사를 안 할 때도 있었어요. 차마 목에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아서요. 솔직했던 것 같아요. 대중들에게 ‘저 숨어서 이렇게 지냈어요. 저도 이렇게 슬펐어요’ 한번쯤 알리고 싶었어요. ‘나 좀 위로해줘. 나 그렇게 독하지만은 않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욕해도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지치고 힘들어’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어요.

미술관 관장, 대학 선배 등 세상과 타협하기를 강요하는 사람들과 붙는 장면들도 있었어요.
감독님이 컷을 하면 상대 배우가 저에게 ‘너 나 진심으로 싫어하니?’라고 할 정도였어요(웃음). 감독님도 저에게 왜 그렇게 치를 떠냐고(웃음). 저도 모르게 저에게 상처 줬던 사람들을 그들에게 접목시켜 연기했던 것 같아요.

한강 대교에서의 오프닝 신에서 연기는 솔직히 어색했어요.
맞아요.

얼굴에 감정이 안 담겨서 연기 너무 오랜만에 했나, 걱정이 되더라고요(웃음).
처음부터 감정이 너무 나가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숨기고, 어떤 의혹만 던져주고 그렇게 가려고 했죠. 욕설이 섞인 대사를 하는데 너무 어색한 거예요. 욕을 못하는 사람이 아닌 데도요(웃음). NG 가장 많이 났던 장면이에요.

창민(박재정)과 만나고 마음을 열고 다시 상처를 받는 일련의 과정에서 감정은 어떻게 잡아갔나요?
설렘, 누군가를 처음 알아가는 수줍음, 이런 건 다 배제시켰어요. 수연은 사랑을 하려는 친구도 아니고, 사랑을 준비하고 있던 친구도 아니고, 사랑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친구도 아니었기 때문에 첫 만남도 그렇고 만남이 진행돼도 큰 감정은 솔직히 없었어요. 은아는 재정이 오빠를 잘 모르고 수연은 창민을 아직 잘 몰라, 그렇게 현실을 영화 속 상황에 접목시킨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제가 오빠를 알아가듯이, 수연이도 그럴 것 같더라고요. 수연은 안정적인 감정을 갖고 지내는 친구는 아니잖아요. 관객들에게 빤하게 감정을 들키면서 연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수연이는 왜 그랬을까, 관객들이 의문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레드카펫이나 화보로 몸매가 이슈가 되고 했기에 극중 노출이 더 부담되진 않았어요?
백상예술대상의 노란 드레스 때문에 의도치 않게 갑자기 섹시한 이미지가 부각됐잖아요. 그 후 작품이 계속 그쪽으로만 들어오니까 하고 싶어도 못했어요. 사람들의 시선 보다는 그런 배우로 낙인 찍힐까봐서요. 나도 노출에 대해 고민이 많은데 쉽게 결정했다고 판단할까봐서요. 그런 부담은 있었지만, 노출을 위해 작품을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한 영화에 그런 장면이 있었던 거라 그쪽으로 포커스가 집중되지 않았으면, 홍보도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죠.

그래서 다음 작품이 더욱 중요할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은 촬영도 마쳤고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노출은 없어요(웃음). 추격 스릴러에요. 강하고 현실적인 여성을 표현했고요. <스케치> 끝나고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긴 해요. 노출을 했기 때문에 그 이후 선택하는 영화가 중요한 게 맞아요. 그래서 쉽게 선택을 못하고 있고요. 하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이것도 걸리고 저것도 걸리고(웃음). 고민 많이 하고 있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얻은 것, 느낀 것들이 있다면요.
저도 몰랐던 성숙함을 찾는 계기가 됐어요. 저는 제가 마냥 아이인줄 알았거든요(웃음). 좀 더 틀을 깬 것 같아요. 평생 베드신은 안 할 거라 생각했는데, 작품 욕심이 있으니 아무 상관없더라고요. 좋은 스탭들도 얻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나 안 죽고 살아있다고 작품으로 알릴 수 있다는 것(웃음), 그게 가장 행복해요.

패리스 힐튼도 아니고 왜 매번 가십 기사로만 만날 수 있나 했어요(웃음).
의도치 않은 가십 기사가 튀어나오니까 저도 당황스러웠거든요.
2006년 인터뷰에서 “저는 올해를 저의 첫 발판으로 봐요. 지금 2년 동안 했던 것들은 연습, 나를 가꾸어 가는 과정이었고, 내년은 시작하는 단계, 내후년은 조금 은아가 알려지는 단계, 3년이 지나면 은아가 이제 배우 냄새가 나려고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단계, 5~6년이 지나면 작품에서 빠지지 않는 연기자가 되는 단계. 그러다보면 10년 후에 여배우가 되어 있겠죠”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이후로 10년 거의 다 됐거든요(웃음).
(폭소) 제가 이런 말을 했단 말이에요? 귀엽다(웃음).

배우 냄새가 나려고 하는 단계가 <스케치> 이후 활동에 달린 것 같아요. 그동안 쌓인 경험으로 다양한 감정의 결을 느낄 수는 있지만 아직 성숙한 배우가 됐다는 확신은 안 들거든요.
당연하죠. 아직까지 애인데.

애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어요(웃음). 작품 활동 열심히 하면 약속한 10년이 되는 2년 후에는 여배우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서른 살의 제 모습이 저도 제일 궁금하긴 해요.

앞으로 활동 계획은요?
간만에 나왔는데 그동안 쉰만큼 더 열심히 해야죠. 기다려준 만큼 열심히 하는 게 맞는 것 같고요. 다음 작품이 6월 개봉 예정인데, 개봉 전까지 좋은 작품 있으면 선택하고 싶고, 연말에 내년 개봉할 영화를 찍고 있다면 정말 알차게 한해를 보낼 것 같아요(웃음).

2014년 3월 25일 화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사진_권영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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