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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상은 요령을 모른다 <소수의견> 윤계상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 안석현 기자 이메일

<소수의견>은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영화다.
개봉한다는 얘기는 꾸준히 있었다. 시기적인 문제라고 들었다. 개봉해서 기쁠 따름이다.

개봉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없었나?
1년 반 전에도 감독과 둘이 편집본을 봤다. 그때도 꽤 완성도가 있었다. 이렇게 좋은 영화가 개봉 안 할 일은 없겠다 생각했다. CJ E&M은 영화 라인업이 많다. 개봉 타이밍을 섬세하게 조정하느라 늦춰진 것 같다. 빨리 개봉하려고 배급사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수의견>을 선택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해보지 못한 장르에 욕심이 많다. 일단 한 번 해본 건 최대한 선택을 안 하려 한다. 평생 완성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배우로서 아직은 내가 미완성의 단계라 여러 작품을 통해 다양한 얼굴을 만들고 싶다. <소수의견>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는 한 장 한 장 펼치면서 식은땀이 났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다른 배역은 이미 캐스팅된 상태였는데, 연기를 너무 잘하는 분들이 포진돼 있었다. 과연 내가 이 작품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다. 그런데 욕심을 놓을 수가 없더라. 이렇게 확실한 얘기를 담고 있는 시나리오를 만날 기회가 있을까 싶었다. 비록 연기를 못해 매장 당하는 한이 있어도 하고 싶었다(웃음). 연기를 잘하는 분들이 옆에 있으면 못하는 게 티가 더 많이 난다(웃음). 그래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덤벼들었다. 어떻게든 만들어보자는 심정이었다.

지금이라면 윤진원 역할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렇다(웃음). 지금은 해봤기 때문에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안다(웃음). 촬영할 때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막막했다. 법정 공방 장면에서는 특정한 동선을 만들어야 하는데 난감했다. 연극처럼 한다는데 연극을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콘티도 없었다. 극도로 예민해지더라. 이경영, 권해효, 김의성 등 대선배님들이 계셔서 오디션을 보는 느낌도 들고(웃음). 내가 식은땀을 흘리는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아직도 그때의 긴장감이 생생하다. 그래서 연습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경우의 수를 열 가지 이상 생각하면서 계속 연습했다.

윤진원을 다시 연기한다면 어떤 부분이 바뀔 것 같나?
법정 공방 장면을 더 맛깔나게 연기할 것 같다. 연기 경험이 쌓일수록 동선, 발음이 명확해진다. 법정 드라마는 법정 용어로 관객을 설득하는 영화이지 않나. 그걸 더 쉽고 교묘하게 풀어냈을 것 같다. 당시의 내 연기는 정직한 직구라 생각된다. 커브나 화려한 기술들은 해진 형이 담당했고. 이제는 나도 과하지 않은 수준에서 기술을 가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웃음).
2년 전 촬영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기분은 남다를 것 같다.
늙어 보이더라(웃음). 일부러 정장도 더 큰 사이즈를 입고, 더벅머리였다. 영화에 정말 많이 빠져 있는 모습이 순간순간의 눈빛에서 보인다.

<소수의견> 전후로 배우 윤계상은 어떻게 변했나.
<소수의견>은 전환점이었다. <소수의견> 이후로 연기가 완전히 변했다. 여러 선배들을 만나 배우의 길이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꼈고, 편해지기 시작했다. <소수의견>은 열등감 윤계상의 마지막 모습이다. 열심히 했고,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그립기도하다. <소수의견>을 지금 다시 만나면 지금보다 능숙하게 연기할 것 같지만 열정은 그때가 최고였다.

국내에는 법정 드라마가 많지 않다. 참조할 만한 작품이 적었을 것 같다.
주로 해외 법정 드라마를 많이 봤다. <의뢰인>도 봤는데, 우리나라 법정 드라마에는 참여 재판이 많이 없더라. 그래서 배심원단 앞에서 법정 공방이 벌어지는 외화를 많이 찾아봤다. 배심원 앞에 선 변호사의 움직임 위주로 관람했다.

유인하(오연아)는 참여 재판 전담 검사다. 배심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스토리를 만들어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윤진원은 정반대의 스타일이다. 일부러 차별화해 연기했나?
정확한 이야기는 설득력을 극대화 시킨다는 말을 믿는다. 유인하는 ‘밥은 드셨어요?’라고 친절하게 얘기하면서 배심원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이 전략이지만, 윤진원은 그보다 더 중요한 열쇠를 갖고 있다. 배심원들에게 사실만 제대로 얘기해주면 어떤 친절함보다 설득력 있다고 믿었다. 자신감이 있었다.

손아람 작가의 원작 소설은 여러 모티브를 갖고 있다. 용사참사를 중심으로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사건, 지율 스님의 조선일보 10원 소송, 제주지검 압수수색, 국가기록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 고소가 얽힌다. 연기 할 때 이런 모티브들을 염두에 뒀나?
전혀 그렇지 않다.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용산참사에서 모티브를 받은 영화냐고 질문을 확실히 했다. 절대 아니라고 하더라. 그저 이야기로 접근해 캐릭터들이 맞닥뜨린 사건을 전달하는 게 목적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용산참사에 관한 이야기는 아예 지운 채 윤진원이 영화에서 마주한 상황에만 집중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
관심이 많다면 거짓말이고... 하지만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일들이 많다.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당연히 느끼는 것들이 있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댓글을 보면 국민들이 얼마나 울분이 쌓였는지 느껴진다. 여하간 배우는 작품으로 얘기하는 게 가장 똑똑한 것 같다.

주인공 윤진원은 영웅이라기보다 평범한 시민이다. 그런데 윤진원의 평상시 모습이 적어 그렇게 큰 사건을 맡은 계기를 유추할 수밖에 없다. 윤진원은 기회주의자인가?
최종 편집된 영화에서는 윤진원의 일상을 많이 덜어냈다. 국선 변호사가 맡는 사건들은 별로 질이 좋지 않다. 강간, 아동 성폭행, 소매치기처럼 일반 변호인들이 맡지 않고 거부한 사건들을 국선 변호사가 맡는다. 최종적으로 편집되기 전에는 여러 사건들을 맡는 윤진원의 모습이 적잖이 있다. 자신이 법조계에서 가장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윤진원은 열등감에 가득 찼고, 어떻게든 로펌에 가고 싶어 한다. 윤진원은 박재호(이경영)의 사건이 이슈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사건을 맡는다. 사람이 어떤 길에 들어서는 시발점은 비슷한 것 같다. 정의감에 불타서 시작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자신과 동떨어졌다고 여겼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순간 내 일이 된다. 윤진원도 똑같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필모그래피를 보면 캐릭터가 다양하다.
처음 작품을 함께한 변영주 감독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배우는 자신에게 만족하는 순간 똑같은 연기가 반복돼 위험하다는 얘기!’

경험이 쌓일수록 피하기 힘든 부분인 것 같다.
전에 익힌 연기를 쓰지 않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래도 새로운 역할을 맡으면 이전의 경험을 조금씩 첨가할 수 있어서 점점 연기가 풍성해지는 것 같다. 작품을 무조건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재료가 될 만한 작품을 만나서 경험해야 가능하다. 세월이 지날수록 내공이 조금씩 쌓이는 느낌이 들지만 아직 멀었다. 지금은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항상 다양할 수는 없지 않나.
신기하게도 영화가 개봉하면 비슷한 시나리오만 들어온다(웃음). 가령, 법정 드라마가 개봉했을 경우 법정 드라마만 계속 들어온다(웃음).

검증이 됐으니까(웃음).
맞다. 그런데 그렇게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이전과 다른 시나리오를 주는 분들은 애정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위험을 감수하고 기회를 주는 분들이다. 결국 그런 분들과 다시 일하게 된다.
다양한 캐릭터 중 특히 남자 배우들과 연기할 때면 분출하는 에너지가 달라진다.
희열을 느낀다. 눈을 봤을 때 가끔 대사를 잊어버릴 만큼 강렬한 눈빛을 주는 분들이 있다. 그게 너무 좋다. 세면 세게 갈 수 있으니까. 쌓인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강하고 질퍽거리는 게 좋다(웃음). 남녀의 멜로처럼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것들은 민감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오히려 신경이 많이 곤두서는 것 같다. 하지만 남자와 일대일로 붙는 장면들은 통쾌하고 재밌다.

윤진원과 장대석이 핑퐁을 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지금부터 윤계상과 유해진의 앙상블을 지켜보라는 선언 같았다(웃음). 유해진과의 호흡은 어땠나?
해진 형은 살아있는 존재 그 자체다. 연기가 매번 다르다. 대사가 매번 다르고 행동이 매번 달라진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후딱 지나가버린다. 연기가 살아있으니 리액션이 당연히 좋게 나올 수밖에 없다. 테이크마다 대사를 계속 비틀면서 연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 배우도 비틀어지면서 움직이고 살아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내 눈을 봐봐’라는 대사가 있다. 그런 대사에서는 보통 땅바닥을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해진은 손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야 나를 봐봐. 보란 말이야 새끼야’라고 한다. 상대 배우에게 도화선이 되는 연기를 끊임없이 한다. 자극이 많이 됐다.

<소수의견>을 촬영한 2012년에 god 멤버들과 재회했다.
식구를 맞이한 것 같았다. 만리장성을 보면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적처럼 다가오는데, 나에겐 god가 기적 같은 느낌이다. 작년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했을 때 팬들의 환호성에 깜짝 놀랐다. 팬들이 주는 사랑을 겸손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god의 재결합이 심적 변화에 영향을 끼쳤는가?
사실 그래서 마음이 더 편해진 것도 있다. 식구들을 다시 맞이해서 든든했다. 이번 VIP 시사회 때도 재밌었다. 법률 용어를 늘어놓는 윤진원을 보고 준형 형은 ‘쟤가 저런 말을 알아? 쟤 저거 무슨 말인지 알고 하는 거야?’ 하면서 놀라더라(웃음). 아직도 22살의 윤계상을 기억하는 거다.
그래서인지 최근 2, 3년 사이에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몇 년 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봤는데 낯 뜨거웠다(웃음). 그만큼 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예전보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건가?
배우로서의 열망은 지금도 엄청 뜨겁다. 배우가 되고 싶다. 지금도 정말 간절한 마음이다. 하지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건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를 사랑해주는 주변의 사람들이 소중하다. 사랑해주니 행복해지더라. 얻고 싶은 걸 얻는 건 순간이지만 사람들의 사랑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연기를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다.
배우가 되고 싶다. 왜 자꾸 그 말이 떠오르고 그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 내 자신을 인정하지 못한 것 같다. 배우가 되고 싶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저 악바리가 한번 하면 무언가 해내겠다는 기대감을 주는 배우.

그간의 10년을 되돌아보면 어떤가.
나름 잘 온 것 같다. 너무 힘들었지만 잘 온 것 같다. 앞으로도 굴하지 말고 잘 가고 싶다. 좌절도 많이 느꼈고 내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도 알게 됐다. 지금은 그저 열심히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뿐이다.

예전과 달리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이 많다. 배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너무 많다(웃음). 연기는 피를 깎고 살을 도려내야 나오는 것 같다. 그런 시기가 분명 있어야 배우가 된다.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한계가 있다. 어딘가에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요즘은 깜짝 놀랄 정도로 다들 연기를 잘한다. 센스인 건지 연습인 건지 아니면 인간이 진화한 건지 모르겠지만 잘한다. 그런데 결국 벽에 부딪힐 거다. 거기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벽을 깰 수 없다. 배우로 불리는 사람들은 모두 희생을 했다.
<소수의견>은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이 영화는 지금도 자부심이 대단하다.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다. 흥행을 떠나서 우리나라의 현주소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클 수밖에 없다. 영화가 공개됐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 당장 욕심나는 역할이 있나?
더 늙기 전에 액션을 꼭 하고 싶다(웃음). 작년에 콘서트를 하면서 몸이 안 따른다는 것을 느꼈다(웃음). 이젠 허리도 아프고, 몸이 마음대로 안 된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몸을 쓰는 액션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왔다. 드라마를 촬영 중인데 죽을 것 같다(웃음).

어떤 드라마인가?
JTBC 드라마 ‘라스트’다. 조직을 지배하기 위해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오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오랜만에 밝고 명랑한 느낌의 역할도 보고 싶다.
준비돼 있다! <극적인 하룻밤>. 올 연말에 개봉 예정이다(웃음).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는 너무 밝아서 소름이 끼쳤다.
내가 좀 이상한 놈이다(웃음).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 글_안석현 기자(ash@movist.com 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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