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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이 가득한 배우 <손님> 천우희
2015년 7월 13일 월요일 | 최정인 기자 이메일

완성된 <손님>을 본 소감이 어때요?
깜짝 놀랐어요. 쥐 떼 장면처럼 CG로 처리된 부분이나 과거의 무당 장면은 시사회에서 처음 봤거든요. 다른 부분은 촬영하면서 봤던 장면이거나 예상했던 부분이었는데 그 두 장면은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쥐떼 장면은 생각했던 것보다 스케일이 더 커서 마음에 들었어요(웃음).

쥐 떼 장면은 정말 블록버스터 급이에요.
정말 어마어마했다는...(웃음)

<한공주> 이후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것 같은데 <손님>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손님>은 <한공주> 개봉이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온 시나리오였어요. 그리고 당시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온 건 아니었어요(웃음). 아무튼 <손님>은 처음 읽었을 때 독특한 느낌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이에요. 지금까지 접해 본 시나리오 중 동화를 원작으로 한 이야기는 처음이었거든요. 배경이 한국 전쟁 직후라는 점도 신선했어요. 그 두 가지 요소가 시나리오 안에서 굉장히 잘 맞아 떨어져서 참신하고 재미있었어요. 역할보다는 전체적인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거죠.
<한공주> 이전에는 불량소녀 역할을 많이 했지만 근래에는 피해자 역할을 많이 했어요. 이미지 변신을 의도한 건가요?(웃음)
그렇지 않아요(웃음). 작품을 선택할 때는 매 작품마다 시나리오 자체만 봐요. 다음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거나 어떤 장르를 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어요. 사실 마음대로 되는 부분도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 작품을 선택할 때는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받는 첫 느낌을 가장 많이 믿는 편이에요. 어떻게 보면 선택의 이유가 단순하죠(웃음).

여배우로선 쉽지 않고 기피할 수도 있는 개성 강한 역할을 많이 맡았어요.
맡는 캐릭터마다 모두 임팩트가 강한 편이어서 주변에서는 갈 데 까지 가려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웃음). 일부러 강한 캐릭터만 선택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인상이 강한 역할을 많이 맡은 것 같기는 해요. 예전에는 밝은 역할도 많은데 왜 항상 고난의 길을 걷는 어려운 역할만 맡게 되는지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렇다고 밝은 역할이 연기하기 쉽다는 뜻은 아니에요. 조금 더 신선한 마음으로 연기할 수 있는 역할을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분이 ‘사람들은 네가 깊은 내면까지 표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맡기는 거야. 그러니 슬퍼하지마’ 라고 말씀해 주신 다음부터는 감정적으로 무거운 인물도 최대한 잘 표현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때부터는 이미지가 강하고 어두운 역할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됐고요.

어딘가 예전보다 차분해진 것 같은 느낌이에요(웃음).
그렇지 않아요. 목소리가 가라앉아서 그럴 수도 있어요(웃음). 평소에 흥 나는 대로 행동하면 사람들이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해요 (웃음). 그럴 때면 오히려 인생은 자유로워야 된다고 반박하기도 하고(웃음).
<한공주>가 슬럼프를 극복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라 밝힌 적이 있는데 <손님>은 어떤 의미를 지닌 작품인가요?
<손님>은 제 나이보다 조금 더 성숙한 역할에 도전할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실제보다 나이가 많은 역할도 잘 할 수 있을지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촬영을 모두 마치고 보니 <손님>은 일종의 성장통 같은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그 동안 맡았던 캐릭터들도 모두 나름대로 어려운 구석이 있었지만 미숙은 보여질 수 있는 부분이 한정적이었거든요. 현장에서 미숙이 처한 상황이 바뀐 부분이 있었는데 배우는 본인이 연기하는 인물을 스스로 납득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힘들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장에서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시도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 작품이에요.

나이보다 성숙한 연기를 해보니 어땠나요?
어려움이 많더라고요(웃음). 십대를 연기할 때에는 제가 십대 때 가졌던 느낌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어려웠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경험한 느낌도 사라지니까요. 하지만 경험하지 않은 연배를 연기하는 것 또한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나이 듦을 연기하려고 특별한 설정을 더하다 보면 오히려 오류에 빠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 든 사람을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서 목소리 톤과 같은 설정은 조금 덜어냈어요. 그래도 어딘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은 했기 때문에 살을 조금 찌웠어요. 체중 말고는 나이에 관한 무언가를 염두에 두고 연기한 건 없어요.

그러면 미숙을 연기할 때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뭔가요?
심플하게 연기하는 거요. 보이는 부분이 매우 한정적이었거든요. 미숙이 과거에 겪었던 사건을 모두 보여주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어요. 그래서 등장하는 한 장면만으로도 미숙이 어떤 성격을 가진 인물인지 드러났으면 했어요. 대사나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는 표정 하나에도 미숙의 모습이 모두 담겨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인물을 최대한 압축해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인물을 보다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싶어서 조금 더 표면적으로 연기했던 부분도 있어요. 접신하는 부분은 예외지만 그 장면 전까지는 인물을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하려고 한 거죠. 욕심대로 인물의 이야기를 모두 펼쳐서 전달하려고 하면 너무 많은 것들이 생겨버리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미숙의 비중이 생각보다 적어 아쉬웠어요. 작품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한 만큼 전략적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은 없었나요?
그런 생각은 안 해요. 지금까지 보여줬던 캐릭터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거나 역할과 비중이 어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는 조금 자유로운 편이에요. 왜냐하면 원하는 작품이 적절한 시기와 맞물려 들어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거든요. 사람들의 기대와 제 자신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작품은 피하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선택하다 보면 스스로가 만든 제약에 갇힐 것 같아서요. 시나리오 자체는 너무 좋은데 비중이 적다고 포기해 보세요. 나중에 영화가 개봉했을 때 아깝다, 내가 할 걸,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잖아요.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남들이 보면 생각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모든 작품은 인연이 있어 만나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남들은 제가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스스로는 매 시기 연이 맞는 적절한 작품을 만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손님> 같은 경우도 비중은 별로 신경 안 썼어요.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후에 선택한 작품이 있나요?
<해어화>, 한 작품이요. 나머지는 모두 수상 전에 선택한 작품들이에요.

각종 영화제 수상 이후에는 출연 제의를 받는 인물의 역할이나 비중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기회의 폭이 아주 많이 넓어졌어요(웃음). 배우들은 욕심이 많잖아요. 작품이 들어와서 가장 기쁜 건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이에요.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너무 기쁘고 감사하죠. 또 저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라고 하더라도 각각의 시나리오는 다른 느낌을 갖고 있거든요. 물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은 한정되어 있지만 다양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느끼는 점이 참 많아요. 시나리오를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너무 감사하고 좋아요.

환경에 변화가 많은 만큼 조언을 구할 만한 사람이나 의지가 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법도 한데 실제로는 어떤지요?
속내를 드러내고 주변에 뭔가를 물어보는 성격은 아니에요.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론 내리는 편이에요.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마지막 판단은 본인 스스로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남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더 혼란스러워 질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선택은 항상 혼자 해 왔어요. 주변의 조언을 듣기도 하지만 결국 스스로 결정하는 편이에요.
<손님>에서 이성민과 맞닥뜨리는 장면이 있어요. 연배가 높은 배우와 직접 대립하는 연기는 처음이에요. 기세에서 밀린다는 느낌은 없었나요?
맞아요. 그 동안은 대부분 또래 배우들과 작업했어요. 하지만 기세에서 밀린다는 느낌은 없었어요(웃음). 당연히 나이 차이는 나지만 배우로서 연기를 하고 있을 때는 그런 것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으니까요. 물론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선배님들을 더 깍듯이 공경하게 되죠. 하지만 연기할 때는 작품 속 인물로 만나는 거니까요. 이성민 선배와 대립하는 장면 같은 경우도 그런 상황에 놓인 미숙으로서는 겁에 질릴 수 있지만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로서는 그렇지 않았어요. 특히 성민 선배님은 연기 할 때 내가 이렇게 하는 건 어때? 내가 이렇게 연기하면 네가 불편할까? 하면서 배려를 많이 해 주셔요. 그래서 어렵거나 불편한 건 전혀 없었어요.

<손님>은 친일 잔재를 청산하자는 의지가 숨겨진 영화이기도 한 것 같아요. 현장에서는 그런 부분을 못 느꼈나요?
사실 시나리오에는 친일 잔재에 관한 부분이 더 많이 녹아 있었어요. 그런데 편집이 되면서 시나리오의 이야기가 많이 변했죠. 그래서 아쉬움이 더 많고 해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요.

미숙은 우룡과 마을 사람 사이에 있는 인물인 동시에 우룡을 배신하는 캐릭터예요. 일제 강점기에 몇몇 사람이 그런 삶을 살았던 것처럼요. 그래서 미숙이 거짓말로 우룡을 고발하는 장면이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그 장면은 준비를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나요?
개인적으로 미숙이 <손님>에서 가장 도덕적이고 순수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미숙이라는 인물의 정서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죄책감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미숙도 결국 궁지에 몰리는 순간에는 거짓말을 뱉어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게 된 거죠. 사실 미숙이 그 말을 뱉지 않았다면 상황은 굉장히 달라졌을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미숙의 죽음이 죄책감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설정이 조금 바뀌는 바람에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게 된 거죠. 왜냐하면 영화 전체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배우에게는 인물이 ‘왜’ 그런 행위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단순한 예로 칼로 배를 찌르고 나와서 독백을 하는 것과 독백을 한 후 칼로 배를 찌르는 건 굉장히 다른 의미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장에서는 미숙이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무당의 저주를 피해갈 수 없어 벌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접신과 죽음은 그 벌의 결과물인 거죠. 왜냐하면 미숙도 결국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였으니까요.
미숙이 벌을 받아 죽는 거라고 생각한 거군요.
네.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는 아니지만 현장에서 달라진 설정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였어요. 관객에게 미숙의 죽음이 어떻게 받아들여 질 지, 미숙의 죽음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방법인지, 여러 가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처음 시나리오에는 미숙이 접신하는 장면 자체가 없었던 건가요?
접신하는 장면은 있었지만 배우가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부분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연기가 달라지거든요.

<손님>은 약속의 가치가 주제인 영화이기도 해요. 배우로서 관객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한다면요?
제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항상 모든 작품에 최선을 다하는 거요. 가장 기본적인 거잖아요. 맡은 모든 작품을 흥미를 잃지 않고 연기하기를 바래요. 흥미라는 것이 단순해 보이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흥미를 느껴야지만 새로운 욕구와 생각이 생기니까요. 그래서 연기할 때마다 흥미와 진정성을 잃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배우 천우희가 작품에 흥미를 가지고 연기하는지 아닌지 관객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연기로 모두 드러나는 것 같아요. 말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티가 날 것 같아요. 관객도 분명 배우가 찰나에 갖는 느낌 모두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매 작품 항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려고 해요(웃음).

2015년 7월 13일 월요일 | 글_최정인 기자(jeongin@movist.com 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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