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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변화를 갈망하는 본능 <암살> 최동훈
2015년 7월 24일 금요일 | 최정인 기자 이메일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 들었다.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좋다. 하자고 하는 게 어디냐(웃음).

<암살>은 개봉 전부터 관심을 많이 받은 작품이다. 벌써부터 영화와 관련된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리뷰를 읽을 시간이 없었다. 요즘은 술이 없으면 잠도 못 잔다(웃음).

전반적으로 전작과 다르다는 평이 많다. 본인도 간담회에서 <암살>은 기존과 조금 다른 시도를 한 영화라고 밝혔다.
많이 변한 건 아니다.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은 대사가 끝나자마자 다음 컷으로 바로 넘어가는 호흡이 빠른 영화다. 그런데 <범죄의 재구성>이 끝난 다음에는 감정의 여운이 남는 영화를 찍고 싶더라. 그래서 <타짜>는 조금 쓸쓸한 느낌이 나도록 찍었다. 원래는 <타짜>를 마치고 바로 <암살>을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가 쉽게 안 써져서 차라리 정신 내놓고 노는 영화를 하나 찍어야지, 하고 만든 게 <전우치>다(웃음). 그랬더니 다시 범죄영화를 하나 찍고 싶어 <도둑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도둑들>도 매우 빠르고 경쾌한 영화이지 않나. <도둑들>을 찍고 나니 또다시 여운이 남는 장르영화를 찍고 싶더라(웃음). 사실 <타짜>가 끝난 뒤부터 계속해서 독립군에 관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사진도 봤는데 정작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도둑들>을 끝내고 나니 서스펜스나 액션영화라는 장르 안에서 그 시대의 캐릭터를 조금 더 심층적으로 파보고 싶었다. 조금 더 감성적인 장르영화를 찍고 싶었는데 역시 독립투쟁에 관한 영화를 찍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최동훈이 변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암살>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재미 있는 영화를 찍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런데 재미라는 영역도 굉장히 방대하지 않나. <도둑들>과 같은 영화가 제공하는 재미가 있다면 <암살> 같은 영화가 제공하는 재미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암살>과 마찬가지로 <타짜> <전우치> <도둑들>도 전작과는 조금 다른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건가?
<전우치>는 뭔가 문맥에 안 맞는 듯 한데? 왜 <전우치>가 거기 끼어 있을까(웃음). 맞다. 그때도 완전히 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 <전우치>를 한 거다.

결론적으로 <암살>은 독립군이라는 소재보다 조금 감성적인 장르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먼저 출발했다고 봐도 되는가.
아니다. 독립군에 대한 이야기는 옛날부터 하고 싶었다. 그런데 <도둑들>을 끝내고 나니 더 이상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나의 정서적 불안감이 때마침 독립군의 이야기 틀에 잘 맞아 떨어진 거다. 여운이 남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도둑에는 도둑의 흐름이 있고 독립군에는 독립군의 흐름이 있지 않나.
<도둑들>은 비교적 단기간에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들었다.
그래도 일 년 정도 걸렸다(웃음). 하지만 다른 건 모두 일년이 넘었으니까(웃음).

그런데 <암살>은 묵혀놓았던 아이디어다.
맞다. 묵혀뒀던 아이디어...

시나리오 집필이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일 텐데 <암살>을 연출하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말대로 시나리오 집필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영화로 만들어진 <암살>도 예전에 처음 썼던 시나리오와 비교해 에피소드와 등장인물만 조금 변했을 뿐 스토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실 처음 썼던 시나리오도 재미는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충분치 않다고 느꼈다. 일제 강점기는 우리가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이지 않나. 그런데 <암살>은 그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굉장히 외롭고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행복하고 낭만적인 인생을 꿈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염석진 같은 인물을 맞닥뜨린다면 두렵고 고독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썼던 시나리오는 스토리만 있고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전체적으로 잘못 썼다고 느꼈다. 역시 독립군 이야기는 만들 수 없는 건가 보다, 이래서 사람들이 안 하는 건가 싶더라(웃음). 그래서 시나리오를 폐기처분하고 배우들에게도 언제 완성할지 모르겠으니 기다리지 말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집핍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건가?
<타짜> 끝나고 나서 <암살> 시나리오가 잘 안 써졌을 때 스코틀랜드를 갔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았고 지금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분노는 있겠지만 열패감은 없어 보였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도 독립해서 잘 살고 있지 않나. 사실 다른 시나리오가 들어와서 작업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레지스탕스 영화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다른 나라는 전쟁을 겪거나 식민지배의 역사가 있어도 레지스탕스 역사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데 우리는 없더라. 그래서 <암살>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사람들은 <암살>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떤 시각으로 독립군 이야기를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이번에는 처음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자인 아내에게 <암살>을 다시 써야 될 것 같다고 이야기 했더니 어떻게 만들거냐고 묻더라. 그래서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던 속사포 캐릭터를 만들고 안옥윤도 정규군 형태의 집단에서 끌고 와 세 명의 독립군 이야기를 아내에게 구두로 들려줬다. 그랬더니 재밌으니 이제 가서 쓰라더라(웃음). 잠깐 일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사람들을 피해 방에 조용히 처박혀 시나리오를 썼다. 원래 있던 결말만 유지하고 70신을 새로 써서 아내에게 보여줬는데 조금 나아졌다며 30신만 바꾸면 될 것 같다더라. 여기까지 온 마당에 30신 쯤이야, 라는 마음으로 나머지 시나리오도 바꿔 쓴 거다. <암살>은 총 102신인데 마지막 두 신만 원래대로 남겨두고 100신을 바꿔 썼다.

그렇게 시나리오가 안 써지면 포기하고 싶지 않나.
어휴, 도망가야지.
청산되지 못한 과거에 대한 비판이 녹아 있다고 생각돼 마지막 장면이 좋았다. 통쾌함과 씁쓸함이 동시에 교차되더라.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거다. 마지막 신만 안 바꿨다. 그랬더니 요즘엔 왜 조금 더 관객을 울릴 수 있는 영화를 만들지 못했냐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웃음).

일제 강점기는 아직도 한국에게 매우 아픈 기억이다.
너무 아픈 시대다. 35년은 굉장히 길었다. 그런데 1930년대가 아무리 아프고 비극적인 시대라 하더라도 그때 존재했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생을 살았을 거다. 그래서 영화를 우울하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도둑들> 보다는 조금 무겁지만(웃음). <암살>은 우울하지 않지만 여운은 남게 만들고 싶었다. 현대의 우리가 그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최동훈 감독 특유의 경쾌하고 빠른 분위기로 그리면 어떨지 궁금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영화를 보고 시대의 무게가 역시 무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잘못일까(웃음). 1930년대가 그런 시대다. 그런데 <암살>을 <도둑들>처럼 만들 생각이었다면 애초부터 안 만들었을 거다. 그럴 거면 <도둑들 2>를 만들지 왜 <암살>을 찍었겠는가. <암살>은 <암살>만의 리듬이 있다고 생각한다. <암살>을 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처럼 안 찍었냐는 사람이 있더라. 그런데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세계 2차 대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고 나서 마음 편히 만들어진 영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1930년대를 그린 영화가 많이 없지 않나. 그래서 <암살>을 지금처럼 조금 여운이 남도록 찍고 싶었다. 그런데 확실히 영화는 많이 찍어야 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작들이 계속해서 훌륭한 걸작처럼 여겨지니까!

일단 많이 남겨 놓는 게 좋은 것 같기는 하다(웃음).
실제로 <도둑들>이 개봉했을 당시에는 재밌기만 하다는 평도 매우 많았다.

<암살>이 나오니 사람들이 <도둑들>을 새롭게 기억하게 되는 건가(웃음).
갑자기 <도둑들>이 걸작이 된 것 같다. <암살> 때문에 <도둑들>이 걸작이 되는구나 싶기도 했다(웃음). 어쨌든 <암살>은 지금 같은 영화이길 바랬다. 그런데 사실 전에 만든 영화들도 주인공은 모두 고독했다. <도둑들>에서 마카오 박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인물이다. <타짜>도 주변 사람들은 시끄럽지만 고니는 고독하다. 내 영화에는 언제나 고독한 인물이 주인공이다. <범죄의 재구성>도 최창혁은 고독했을 거다. 그런 면에서는 <암살>이 전작들과 다르지 않다.

주인공 이야기를 해서 말인데, 고독하다는 면에서는 공통되지만 전작들의 주인공들은 조금 삐뚤어진 구석이 있는 반면 안옥윤은 어딘가 올바른 이미지다.
안옥윤을 모범생처럼 느껴졌나?

모범생이라기보다 숭고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조금 숭고한 면이 있기는 하다.

그래서인지 최동훈 특유의 재치가 안옥윤에게서는 엿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다.
난 그래서 안옥윤이 재밌더라. 안옥윤은 명예를 좇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다. 그녀가 악전고투해서 암살작전을 해내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서스펜스를 느꼈다. 안옥윤을 지금보다 더 반항적인 캐릭터로 그릴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생각한 안옥윤의 마지막 얼굴은 그런 얼굴이 아니었다. 대신 속사포가 반항적이다. 누군가는 남아있다. <암살>에서는 안옥윤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영화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은 시대를 스크린에 재현하는 것도 큰 과제였을 것 같다..
어려웠다.

독립군 이야기는 워낙 많이 전해 들어서 그런지 식상하게 느껴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영화에서는 많이 다뤄지지 않은 소재인 것 같다. 당장 떠오르는 영화가 없다.
많이 못 본 게 아니라 사실 없을 거다. 식상하다고 하는데 사실 어디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어려움이 더 컸을 것 같다.
일단 30년대 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불문율과 싸우는 게 가장 힘들었다(웃음). 시대를 재현하는 것 자체는 그 다음이다(웃음). 1930년대를 영화로 제작한 걸 본 적이 없어서 자료를 많이 찾았다. 그런데 1930년대를 재현하려면 전례가 많이 없어 일반 사극보다 제작비가 훨씬 더 많이 들 수 밖에 없다. 영화는 꿈이지만 예산은 현실이지 않나(웃음).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배우들을 그 시대에 던져 놓아야 했다. 실제처럼 느껴지길 바랐기 때문에 뒷골목 같은 곳에서 작전을 벌이는 게 싫었다. 가솔린 가게 근처에서 작전이 벌어진다면 영화가 더 스펙타클해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사가 끝난 후에는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 그래서 사전 제작 기간이 길었다. 보통은 5~6개월 정도 하면 많이 하는 건데 <암살>은 8개월쯤 준비했다.

<암살>에는 반전 요소들이 많이 숨겨져 있다.
난 반전이 있는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이야기의 설정을 관객에게 미리 폭로한다. 반전으로 느꼈다면 잘못 만든 건데(웃음).

말한 것처럼 <암살>의 ‘비밀’은 충격을 주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서사를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신원이 바뀔 때마다 인물들이 새로운 위험에 노출되니까.그렇다. 관객이 미리 아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이야기의 한 부분을 숨겨놓고 마지막에 펼쳐 보이는 방식은 즐기지 않는다. 언젠가는 그런 식으로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관객은 알고 등장인물은 모르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선호하는데 나도 내가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미츠코가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더라. 분명 1930년대를 설명하고 있는데도 현대와 너무 동 떨어지지 않은 느낌이어서 좋았다.
재미있는 건 그 당시 존재했던 백화점의 시스템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백화점 시스템과 매우 비슷하다는 거다. 그때도 상품권이라는 것이 있었고 경품을 나눠주거나 백화점 꼭대기에서 문화행사를 해서 사람을 모았다. 백화점은 모더니즘의 상징이지 않나. 어마어마 했을 거다. 백화점 만드는데 공을 많이 들였다. 아마도 한국영화에서 가장 큰 실내 세트장일 거다. 조금 더 부쉈어야 되는데(웃음)

시대극인 만큼 대사 쓰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다.
대사 쓰는 것이 직업이라 힘들어도 받아들인다(웃음). 그런데 1930년대 말투로만 채워졌다면 어색했을 거다. 그래서 조금 순화가 된 형태로 구현했다. 예를 들면 김구 선생은 황해도 사람이다. 지금은 북한이 된 지역 사람인거지. 그런데 우리에게는 김구 선생이 황해도 말투를 쓴다는 인식이 없다. 김구 선생이 북한 말을 써야 하는지 아니면 현재 우리나라 말을 써야 하는지 선택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김구 선생의 육성이 15초 정도 짧게 남아 있더라. 그걸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결론낸 것이 영화 속 김구 선생은 정확한 황해도 말투는 아니지만 황해도 말투가 조금 섞여 있도록 하자는 거였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대사들이 그런 식으로 순화됐다. 그 시대 말투가 맞지만 조금 현대적인 부분이 있다. 어색하지 않길 바랬다.

그래서인지 인물들이 가짜 인물들처럼 느껴지지 않고 실제 존재했던 인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느껴지기를 바랐다. 어서옵쇼, 어랍쇼, 등 옛 서울 말투도 있다. 대사를 쓰는 게 어려웠다. 그런데 헤밍웨이가 네가 잘하는 것을 버려라, 그러면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다고 했다지 않나. 재밌는 대사를 여기저기 배치하는 걸 매우 즐기는데 <암살>은 대사에서 오는 재미 이외의 재미를 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시종일관 웃기는 건 <암살>에 어울리지 않았다. <암살>은 서스펜스다. <암살>을 처음 만든 의도는 미래를 알 수 없는 독립군들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정중동’을 해 보고 싶었다.
본인처럼 대중의 기대가 높은 상황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는 건가?
글쎄, 그 힘은... 그냥 믿고 가는 거다. 나는 이 영화가 재밌다라고 계속 생각하면서 그냥 간다. 물론 겁이 난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이 <암살>에서 전작과는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예고편을 <도둑들>처럼 만들지 않고 사뭇 진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실 나에게 대중은 알 수 없는 존재다. 알려고 손을 뻗어도 제대로 안 잡힌다. 그래서 대중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 거라고 미리 상정하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두려움이 적어 보인다.
두려움이 있다니까(웃음). 솔직히 무섭다. <타짜>를 찍을 때 정 마담의 도박장 세트장을 전주에 있는 어느 콩나물 해장국집 3층에 만들었다.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도망가면 실내와는 대조되는 거리가 보이게 만들고 싶었거든. 그런데 그때 전주 영화제가 개최되고 있어서 영화인들이 해장국을 먹으러 그 집에 많이 왔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막 데뷔해서 두 번째 작품을 찍을 때라 영화인들을 많이 몰랐다. 혼자 1층에서 콩나물 해장국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위층에서 <타짜>를 찍고 있던데? 라는 소리가 들리더라. 그랬더니 그 사람 앞에 마주 앉은 사람이 그 영화 망해, 그러더라(웃음). 밥 먹다가 신문으로 얼굴을 급하게 가렸다. 그랬더니 <타짜> 감독이 <범죄의 재구성> 찍은 애인데 그건 찍을 수 있어도 <타짜>는 못 찍어. 요새 감독들은 너무 오만해, 하더라(웃음). 그때 빨리 올라가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인은 못했다. 유심히 봐서 확인했어야 됐는데(웃음). 그런데 그때 사람들은 왜 내가 <타짜>는 못 만든다고 생각할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는 굉장히 다른 영화라는 걸 나도 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는 1년 반이 어렵고 힘들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나는 내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갔다. <전우치>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해 보고 싶었다. 그랬더니 최동훈이 <타짜> 찍고 나서 아이들이나 보는 영화를 찍었다고 난리가 난 거지(웃음). 난 하고 싶었는데 <전우치가> 그렇게 싫은가... <아바타>와 같이 개봉해서 그런가?

전작 중 <전우치>만 유일하게 못 봤는데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봤다.
전작과 달라서 깜짝 놀랐을 거다(웃음). 그런데 언제나 그랬다. <타짜>도 전작과는 조금 달랐고 <전우치>도 그랬다. <도둑들>도. 그런데 사람들은 과거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는다. 그러고서 누군가가 정해진 카테고리에서 나오려고 하면 왜 나오냐면서 다시 서랍 속으로 그를 밀어 넣는다. 나 역시도 그런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암살>은 처음부터 이렇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물론 <암살>이 사람들을 펑펑 울리는 영화는 아니지만 볼만한 장르영화면서도 캐릭터가 기억에 남는 영화이길 바랐다. 그것만 충분히 수행한다면 <암살>은 제 몫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확신이 없으면 2년 반 동안 한 작품만 생각하며 준비하는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암살>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질지 모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암살>의 세계가 매우 합당하다고 느껴졌다(웃음).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 않겠나.

나 역시도 과거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고 그 기준에서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분명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전우치>가 없었다면 큰일날 뻔 했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도둑들>도 그렇고 <암살>은 본인의 전작과 비교되는 경향이 강하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빠른 편집, 멀티 캐스팅 등 눈으로 쉽게 인지될 만한 특정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들이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든다. 다른 영화도 멀티 캐스팅에 빠른 편집인 경우가 많다. 그런 건 아무런 특징이 안 되는 것 같다. 그건 표면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본인 스스로 전작들을 모두 통괄하는 본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있을 거다. 그런데 작가는 그걸 직접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내 입으로 나는 원래는 이런 사람이에요,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웃음).
피상적으로 인식되는 부분이라도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건 관객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동시에 시간이 지나 관객들이 스타일에 익숙해지면 매력이 줄어들 수도 있는 위험도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그 말인즉,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지 않나. 그런데 <암살>에는 변화가 있다. 그 말이 맞다. 나도 그런 고민을 작품 사이 사이에 한다. 그러니까 변화를 해야 된다니까(웃음).

<암살>은 장르적인 재미는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되 전작보다 확실한 메시지와 시대 정신을 담고 있어 반가운 영화였다.
사실 변화 그 자체보다 어떻게 변해야 되는지가 어렵다. 솔직히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영화를 찍고 나면 집에서 책이나 영화만 보고 밖에 잘 안 돌아다닌다. 가끔 친한 친구들 만나서 술을 먹기도 하지만 그러다가도 집에 처박혀서 시나리오를 쓴다.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그런데 본능적으로 이제 조금 다른 걸 해야지,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사람은 어디 안 간다. 그 놈이 그 놈이다. 히치콕은 히치콕이고 우디 앨런은 우디 앨런이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밖에 영화를 못 찍는 거지. 우디 앨런이 <세븐>을 찍었다거나 데이빗 핀처가 우디 앨런처럼 영화를 찍었다고 생각해봐라. 하지만 데이빗 핀처는 우디 앨런을 좋아할 거고 심지어 닮고 싶은 면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데이빗 핀처가 우디 앨런처럼 변할 수는 없다. 모든 게 그렇다. 난 변화를 목표로 두지 않는다. 변화보다는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 지가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 50대, 60대에도 성공적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걸 보장할 수 있는 변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여튼 예전부터 <암살>을 찍고 싶었고 그래서 준비했다. <암살>의 스타일은 마구 달리다 조금 느리게 가는 식으로 가져가고 싶었다. 시간이 정지되는 꼴을 한 번 보고 싶었던 거다. <암살>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몇 개 더 있다. 흔히 ‘서랍속에 넣어둔다’고 하지 않나. 지금은 <암살>이라는 파도 위에서 춤추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무엇을 작업할지 아직 못 정했다. 앞으로도 내 인생의 짧지 않은 시간을 바칠 만큼 재밌고 나를 사로잡는 이야기를 발견하면 그걸 만들 거다. 어떤 방법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암살>처럼 여자 주인공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영화가 드물다.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여자가 주인공이어도 영화가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지 않나. 올해도 많은 여성 영화인들이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적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할리우드에서도 오래된 문제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지속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존재감 있는 여배우들이 늘어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나만큼 여성 캐릭터를 단순히 대상화시키지 않고 최선을 다해 만든 사람이 없다(웃음). <타짜> 같은 경우도 정 마담이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극을 지배하는 형태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둑들>에도 여자 캐릭터가 4명이나 있다. <암살>도 남자가 주인공이었다면 더 호쾌한 액션영화가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이 직접 뛰고 구르면서 목적을 달성하는 걸 보고 싶었다. 쉽게 얻어질 수 있는 작전이면 영화가 1시간 40분 안에 끝났겠지. 그런데 주인공들이 수행하는 작전은 굉장히 어렵고 두려운 일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그것이 레지스탕스 영화의 근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여성이 주도적으로 영화를 이끄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흔히 독립 운동의 세계를 터프하고 남성적인 세계로 여기는데 남성 독립군들 사이에 여성이 있다면 그녀가 어떻게 할지 궁금했고 긴장감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양 옆에 존재감 강한 남자 둘이 버티고 있다면 그 여성이 버틸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 여성이 <암살>의 전지현이다.
전지현은 매우 훌륭한 배우다. 연기를 잘하려는 욕심이 앞서는 강박적인 연기를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해도 본인의 일에 집중하며 묵묵히 버틴다. 그런 전지현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만약 전지현이 뺀질이였다면 영화가 무너졌을 거다. 이야기가 조금 샜는데 하여튼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늘어나긴 늘어나야 된다. 여자가 주인공일 때 나올 수 있는 정말 재밌는 이야기가 많다. <바운드>라는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호쾌한 맛이 있다.

2015년 7월 24일 금요일 | 글_최정인 기자(jeongin@movist.com 무비스트)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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