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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모험, 새로운 경험 <내부자들> 조승우
2015년 11월 23일 월요일 | 최정인 기자 이메일

<내부자들> 출연을 3번이나 고사했다 들었다.
윤태호 작가님의 웹툰 ‘미생’을 너무 재밌게 봤다. 그래서 <내부자들>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원작 만화를 보니 내 캐릭터가 없는 게 아닌가. 또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긴 한데 처음 거절했을 당시에는 <내부자들>이 담고 있는 사회고발적인 내용 때문에 고사했던 것 같다. 검사 역할이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내부자들>의 메시지가 너무 어둡다고 생각했고 그런 세상을 나부터가 보고 싶지 않았다. 감독님은 내가 역할이 작아서 출연을 거절한 줄 알고 우장훈의 비중을 늘여 시나리오를 수정해 오시더라(웃음). 그런 게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병헌 형과는 작품을 꼭 함께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부자들>을 하게 되면 더 좋은 작품을 나중에 같이 못할 것 같았다. 미래에 더 좋은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지.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부자들>을 잘 선택한 것 같다. 예전과 달리 <내부자들>은 출연하는 데 있어서 타인의 의견을 많이 참고했다. <내부자들>을 추천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는데 그들이 그토록 추천하는 데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모험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영화의 사회고발적인 면이 마음에 걸렸다고 했는데 다른 배우들 경우는 오히려 영화의 메시지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더라.
<내부자들>은 실존 인물을 그대로 반영해 만든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 않나. <내부자들>은 캐릭터에 입각해 더 큰 권력을 원하는 남자들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다. 그들의 인간 관계에 대한 영화인 거다. 그런데 실화는 아니지만 내가 이런 사회를 살고 있다는 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라.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끔찍해서 처음에는 <내부자들>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영화에 대한 주변의 평은 어떤가.
좋다. 언론 시사를 마치고 긴장을 많이 했는데 평들이 괜찮아서 고마웠다. 어느 영화나 마찬가지지만 언론 시사가 끝나고 개봉할 때까지의 2주가 정말 피말린다.

스스로 보기엔 어땠나.
재밌게 봤다.

우장훈은 영화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출세를 원하는 우장훈의 개인적인 동기가 사건을 해결하는 그의 실질적인 역할과 상충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회가 아무리 투명해지고 깨끗해졌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 학연과 지연이 존재한다. 권력층은 모든 권력을 쥐고 서민들은 갈수록 힘들어지는 현상이 지금 악순환되고 있지 않나. 우장훈은 그런 사회의 최고 피해자인 셈이다. 내가 직접 지방 경찰청에서 1년 동안 복무하면서 느낀 건데 말단 경찰부터 시작해 어렵게 진급 시험을 봐서 계급에 오른 사람들은 40대 중반이 넘어서야 무궁화 배지를 하나 달더라. 그런데 경찰 대학 출신들은 졸업하자마자 무궁화 배지가 하나다. 그러니 상대적인 박탈감이 얼마나 크겠나. 우장훈도 마찬가지다. 모든 기회가 엘리트 수순을 밟은, 흔히 말하는 ‘인테리’에게 돌아가니까 우장훈은 경찰을 그만두고 사법 고시를 본 거다. 사실 우장훈은 정말 순진한 거다. 경찰 조직에서 그렇게 돌아가는 데 검찰 조직이라고 뭐가 다르겠나. 거기도 학연, 지연이 존재하고 우장훈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어느 선 이상은 못 올라간다. 그래서 장필우만 잡아오면 줄, 빽, 상관없이 승승장구 할 거라는 달콤한 유혹이 시작되는 거다.
우장훈은 현실에 항상 짓눌리며 살았기 때문에 적어도 아이들이 살게 될 미래의 나라만큼은 지금과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엄청난 정의감과 포부를 가지고 일을 시작한거다. 하지만 결국 뜻대로 안되는 거지. 그런데 우장훈이 결국 세상에 조금씩 때묻어 가기는 하지만 관객들은 우장훈의 감정선을 따라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학교부터 시작해서 회사면 회사, 공기관이면 공기관, 우리가 사회라 일컫는 모든 집단에서는 우장훈이 겪는 계급 사회의 모습이 비일비재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연기할 때는 우장훈이 뚝심있게 본인이 가야할 길을 가는 것만 신경썼다.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거다. 다르게 말하면 우장훈은 지난 날 자신이 살아오며 피해 받은 것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한 거다. 아주 단순한 거다.
만일 우장훈이 더 많은 권력을 원했다면 안상구를 감옥에 내버려 둘 수도 있지 않았겠나.
안상구에게 비자금 파일 원본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안상구를 그렇게 어르고 달래고 화내고 협박하는 거다. 우장훈이 안상구와 함께 있는 장면이 조금 위트 있고 유머러스하게 표현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장훈은, 안상구가 복수를 원하고 자신은 정의를 원하니 서로 돕자는 거다. 그런데 우장훈은 조금 뻔뻔하기는 하지만 안상구가 조금이라도 죄 값은 치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인 거지. 좋은 남남 커플이 탄생한 거다.

전반부에서 우장훈은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우장훈은 선을 행하는 인물로 부각된다. 갑작스런 캐릭터의 변화가 쉽게 납득되지는 않았다.
우장훈은 사회에서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다. 양심에 어긋난 일을 한다는 건 알지만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야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자기 위안이 있는 거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본인의 한계를 넘어선다. 돌파구가 있어야 하지 않나. 물을 예로 들면 끓기 시작하는 임계점을 넘어선 거다. 지금은 조금 비굴해도 자신이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야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우장훈을 움직인 건 정의감에 가깝나, 욕망에 가깝나.
엔딩에서 우장훈과 안상구가 그렇게 웃으면서 끝난 건 영화가 이 사회에도 한 줄기 빛은 남아있다는 걸 표현하려 한 거라고 생각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사회지만 도덕적, 양심적 기준에 의해 생각하는 고무적인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거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무거운 분위기지만 캐릭터들이 유쾌한 상황을 잘 만들어 준 게 좋았다. 욕설도 재밌더라.
주위에서 정감있는 욕이라고 해주니 기분이 좋더라. 촬영 전에 똘뱅이, XX 병, XX 것 등 경상도 욕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영화가 너무 무겁기만 하면 재미없지 않나. 위트와 유머 속에서도 감동이 존재할 수 있다. 예전에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 선배가 건달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선입견을 깨트리는 걸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송강호 선배가 연기한 건달은 마치 나사 하나 빠져 있는 것 같은 인간적인 모습이다. 건달도 결국 찌르면 피 한 방울씩 나는 사람이지 않나.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면들, 즉 규정화 되어 있지 않은 모습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안상구도 이병헌 선배가 약간 헛점이 보이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연기했기 때문에 그가 배신당했을 때 관객이 느끼는 충격이 증폭됐다고 생각한다. 우장훈의 경우는 검사라고 딱딱하기만 하면 얼마나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보이겠나. 그건 우장훈의 캐릭터와 맞지 않다. 그래서 우장훈과 안상구의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 둔 거다. 관객들이 영화를 볼 때 우장훈과 안상구가 친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했다. 둘의 관계가 너무 딱딱하지 않고 티격태격 하면서 밀당하는 게 재밌더라.
‘신의 선물’ 에서는 전라도 사투리를 연기했는데 <내부자들>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전혀 다른 사투리를 구사하는 게 힘들지 않았나.
경상도 사투리는 내가 정한 게 아니고 원래 대본에 설정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전라도 사투리가 더 익숙하고 편하지만 <퍼펙트 게임>에서 김윤석 형에게 부산 사투리를 도움 받은 적이 있어 괜찮았다. <내부자들>에서는 경상남도, 경상북도로 구분해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족보 없는 사투리를 해 보고 싶었다. 예를 들어 지방에서 서울에 온 지 오래된 사람들 중에는 표준어를 써도 어조가 남아있는 경우가 많더라. 그런데도 고향에 가면 지인들에게 왜 서울말 쓰냐고 핀잔 받는다고 하더라(웃음). 영화에서는 우장훈이 어느 지역 출신이라고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형된 사투리를 썼다. 경상남도도 경상북도도 아닌, 저거 뭐지? 싶은 사투리를 써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장훈은 만나는 상대에 따라서도 말투가 다르다. 실제 생활에서도 지방에서 서울에 온 많은 사람들이 표준어를 쓰다가도 감정이 격해지거나 급해지면 갑자기 사투리를 쓰는 경우가 있지 않나.

어찌됐든 <내부자들>은 이병헌과 조승우의 연기대결도 기대되는 대목 중 하나다. 실제로도 이병헌과 함께 등장하는 신이 많은데 연기력이 비교될지 모른다는 부담은 없었나?
연기할 때는 상대방과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때문에 상대를 이기겠다고 생각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다. 연기는 함께 이뤄가는 하모니다. 배우들끼리 서로 공유하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연기 대결이라는 말을 사실 좋아하지 않는다. 이병헌 형과 함께 찍은 호수가 신 같은 경우는 대본에 쓰인 장면과 호흡도 조금 다르다. 대본에는 서로 상대방의 말을 자르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연기할 때는 우리 모두 서로 이야기 하려고 덤벼들며 상대의 말을 끊었다. 어떻게 보면 NG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테이크가 자연스러워서 감독님이 그 장면을 영화에 쓰신 것 같다. 훨씬 더 실제로 싸우는 것 같았으니까.

연기할 때는 그렇다 해도 영화를 볼 때는 상대방의 연기와 자신의 연기를 비교해서 보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일단 내 영화를 민망해서 잘 못 본다. 항상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고 뒤늦은 깨달음 같은 게 있다. 시사회 때도 내가 촬영한 부분이 나오면 항상 고개를 숙여 스크린에 초첨을 정확히 맞추지 않고 본다. 스크린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에너지를 통해 연기가 어디서는 잘 됐는지, 어디서 아쉬운지를 가늠한다. 하지만 영화를 대 놓고 보지는 못한다. <타자>도 언론 시사회 때 한 번, VIP 시사회 때 한 번, 두 번 밖에 못 봤다. TV에 내 영화가 나와도 오글거려서 돌려 버린다.

무대가 더 잘 맞을 것 같다.
내가 내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웃음) 그런데 공연도 찍어가는 방송국들이 있더라.
이병헌은 실제로 만나 보니 어땠나.
이병헌은 디테일한 배우다. 역할에 완전히 빠져들어 집중하다가도 연기가 끝나면 바로 빠져나와 본인의 연기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어떻게 연기하면 더 효과적인지를 감독님과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나는 반대로 감독님에게 맡기는 편이다. 감독님이 지시하는 대로 연기를 해서 오케이가 떨어지면 나도 오케이다. 그런데 감독님이 아쉬워서 나더러 한 번 더 마음대로 연기해 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가 좋다. 그때는 컷의 연결도 신경쓰지 않고 정말 마음대로 연기한다.

연결을 맞추는 게 필연적인 영화나 드라마 연기는 상대적으로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영화가 조금 힘든 부분은 하나의 연기를 계속해서 똑같이 반복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연결을 맞추는 데 신경쓰다 보면 연기를 잘 못한다. 그래서 다른 선배들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나는 한 번 연기하고 나면 내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스크립터가 와서 이전과 똑같은 연기를 해달라고 하면 기억도 안 나는데 어떻게 똑같이 연기하냐고 볼멘소리를 한다(웃음). 그런데 연극은 연결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내부자들> 편집이 많이 됐다 들었다.
내 장면은 편집이 많이 되지 않았다. 우장훈이 경찰로 활약하던 시절의 몽타주가 빠졌을 뿐이다. 본인이 맡은 사건은 끝까지 해결해 범인을 잡으려고 하는, 한마디로 조금 더 거친 모습의 우장훈이 표현됐었다. 그런 액션신이 조금 빠졌지 다른 건 별로 편집된 게 없다.

이병헌, 백윤식은 편집이 많이 돼 아쉬워 하던데 본인은 그렇지 않나 보다.
영화를 하다보면 편집은 불가피한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백윤식 선생님과 이병헌 형이 편집된 장면이 아쉽다고 말하는 건 그만큼 그들이 본인들의 장면에 공을 많이 들였기 때문일 거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공을 들인 장면이 사라지니 아쉬운 거다. 그만큼 각자의 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거다. 나 역시도 다른 영화에서 편집이 많이 된 경우는 아쉬웠다. 하지만 <내부자들>은 가편집본이 3 시간 40분이었다는데 편집해야지 어떡하겠나.
현재 뮤지컬 공연을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영화와 공연을 동시에 한다는 게 힘들지는 않나? 지금도 상당히 피곤해 보인다(웃음).
원래 목소리가 이렇고 말이 느리다(웃음). 말하는 데 에너지 소비를 많이 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맨 오브 라 만차’ 10주년 공연을 하면서 또 다른 뮤지컬 ‘베르테르’를 연습했다. 연기하면서 동시에 두 작품을 한 건 처음이었다. 거기다 <내부자들> 영화 홍보까지 겹쳐서 제작 보고회하고 인터뷰까지 하니 적응이 안되더라. 과부하가 걸린 거다. 그런데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하겠나. 그래서 기분 좋게 하고 있다. 피곤하지 않다.

공연을 하던 배우들은 다른 매체로 넘어와도 공연을 그리워하는 경우가 많더라.
나는 어릴 때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꿨기 때문에 무대가 고향이고 가장 편하다. 아마 연극 배우 출신들은 모두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거다. 송강호 형도 그렇고, 김윤석 형, 류해진 형도 마찬가지라고 하더라.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 있지만 영화 쪽에서 놓아주질 않는 거지(웃음). 이제는 그들 모두 영화의 주축을 이루는 배우라 영화계에서 항상 필요로 하지 않나. 그런데 오랫동안 영화에만 출연한 형들 중에 무대로 돌아가기 두렵다고 하는 분도 많더라. 무대가 그립지만 막상 돌아가려니 무섭단다. 무슨 말인지 조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은 무대의 어떤 부분이 좋고 그리운 건가.
고향이지 않나. 나의 모든 연기가 무대에서 시작됐다.

연극은 편집이 없어 당신의 성향과도 잘 맞을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는 뒤죽박죽 찍기 때문에 그런 촬영환경에 맞게 연기 조율을 스스로 잘 해야 된다. 5 신을 찍고 나서 갑자기 72신 찍으면 감정의 흐름이나 분장, 상황이 모두 순식간에 바뀌는 거다. 그런데 그렇게 연기하는 거야 말로 정말 ‘연기’ 하는 느낌이 들어서 아직은 불편하다. 15년간 영화를 했지만 아직도 카메라가 낯설고 힘들다. 자유롭게 연기 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무대만큼 자유롭지는 않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나더러 영화보다 무대에서 더 에너지가 넘쳐보인다고 하더라. 실제로 영화보다는 뮤지컬이나 연극이 개인적으로는 더 편하다. 잠도 잘 수 있고 시간도 정해져 있어 지칠 일이 별로 없다. 하루에 딱 3시간 무대에서 모든 힘을 집중해 올인할 수 있는 게 매력이다.

당신 정도의 인지도라면, 원한다면 무대에만 서도 괜찮지 않나.
연극, 드라마, 영화는 모두 삶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아무래도 소재가 고갈될 수 밖에 없다. 참신한 소재가 등장하는 게 이제는 정말 가뭄에 콩 나듯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체를 막론하고 세상에 저런 이야기가 있어? 어떻게 저런 상상을 할 수 있지? 라고 생각될 만한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그런 경우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지 않나. 사실 뮤지컬은 창작 뮤지컬도 있기는 하지만 해외 라이센스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는 감독님이나 작가가 대본을 직접 쓰는 경우가 더 많다. 다른 곳에 로열티를 지불하는 리메이크가 아닌 창조물인 거다. 그래서 특정 매체에 출연해야겠다는 계획이 있는 게 아니라 영화든, 연극이든, 나를 새롭게 사로잡는 작품을 선택해 이야기의 소재를 넓혀 나가고 있는 거다. 나는 단지 배우일 뿐인데, 무대에도 서고 카메라 앞에도 서는 거다. 그런데 결론은 무대가 더 좋다(웃음).

<내부자들>은 주변 사람들의 추천으로 선택했다고 했는데 평소에는 어떤 기준을 두고 작품을 선택하나.
대본이 재미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관객의 입장에서 시나리오가 재미와 감동이 있는지, 새로운지를 본다. 또 10~20년, 오랜 세월이 지나고 봤을 때도 촌스럽지 않을 영화가 될 것 같은 시나리오를 선택한다. 잠시 반짝이고 마는 트렌드에 치중한 영화인지를 보는 거다. 또 영화가 작품으로서 가진 낭만도 중요하다.
당신의 필모그래피는 도무지 종잡기가 힘들다.
<복숭아나무>는 제대하고 처음 찍은 작품이다. 그런데 구혜선 감독이 굉장히 당찼다. 본인이 만들고 싶은 영화가 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류덕환이 연기한 샴 쌍둥이에 머리만 붙어 있는 역할이었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언제 또 신체를 쓰지 않고 얼굴만으로 연기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겠나. 고개를 움직일 수도, 숨도 쉴 수도 없고 단지 눈만 껌벅이는 거다. 당시에 그런 설정이 매우 새롭게 다가왔다. 사람들이 구혜선 감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도전정신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복숭아나무>는 아쉽게 흥행은 잘 안됐지만 아주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마의’의 촬영 B팀 감독님이 연출하고 ‘마의’의 작가님이 참여한 단막극 ‘이상’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도 언제 또 이상 역할을 해 볼 수 있겠나, 라는 마음으로 정말 재미있고 즐겁게 촬영했다.

조승우를 캐스팅하려면 새로운 내용이나 역할의 각본을 쓰는 게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인 건가.
그렇다(웃음). 역할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어차피 원 톱으로 영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없다. 뭉쳐야 사는 때인 거지. 그래서 역할이 작던 크던 매력있고 설득력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카메오로 출연한 <암살> 같은 경우도 시나리오가 재미있고 감독님과 다른 배역들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역할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참여하게 된 거다. 김원봉 같은 경우도 새롭지 않나. 누가 다뤄 봤겠나.

그런 면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추천만으로 선택한 <내부자들>은 당신에게 흔치 않은 선택인 셈이다.
모험을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지킬 엔 하이드’도 지금처럼 3번 거절했다. CD를 들어 봤는데 능력 밖의 일이더라.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사람이 불렀더라. 한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녹음해 놓은 것 같아서 나는 못하겠다고 말했다. 24~ 25살일 때라 역을 맡기엔 너무 어리다고도 생각했고. 그런데 신춘수 대표님이 반드시 내가 ‘지킬 엔 하이드’를 해야 한다고 하시고 주변에서도 추천이 많아 미친 척하고 출연을 결심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미스 캐스팅이네, 미친 것 아니네,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더라. 이를 갈면서 했다(웃음). 다행히 결과는 좋았다. <말아톤>도 너무 힘들고 못할 것 같았다. 형진이라는 실제 모델이 있으니 그 친구만 모방하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된다면 형진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게 낫지 영화를 만들 필요가 뭐가 있겠나. 그런데 그때도 주변에서 <말아톤>을 계속 추천해서 출연했다.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그 세 작품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부자들>의 추천이 가장 강렬했다. 안하면 때리겠더라(웃음).
무대에서 내려오면 기분이 어떤가.
가장 힘든 순간은 두 달, 석 달 매진한 연극의 마지막 공연 때 혼자 분장실에 앉아 클린징 크림 바르고 있을 때다. 그때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독함을 느낀다. 클린징 크림으로 역할을 씻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섭섭하기도 하고. 모든 작품을 할 때마다 그 순간이 가장 울컥한다.

결혼 생각은 없나.
결혼은 생각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정말 멋있고 예쁘고 낭만적인 불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결혼은 조금 더 늦게 마흔이 넘어서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이혼하거나 가족이 어쩔 수 없이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지 않나. 나는 가정을 꾸리면 그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진한 멜로를 해 볼 생각은 없나.
<클래식>도 있었고 청춘 멜로는 해 봤다.

<클래식>도 본인의 입장에서는 이뤄지는 사랑이야기가 아니지 않나.
완전한 사랑의 결정체를 다룬 이야기는 재미없지 않겠나. 하지만 작품이 좋으면 당연히 출연한다. 뭐가 있을까. 지금 당장은 예시로 들 만한 작품이 생각나지 않는다.

색다른 로맨스를 좋아한다면 <번지 점프를 하다>는 어떤가.
<번지 점프를 하다>는 영화도 재밌게 보고 뮤지컬도 재밌게 봤다. 하지만 굳이 남자 몸을 빌려서까지 남자에게 고백하고 싶지는 않다. 상대는 그냥 여자였으면 좋겠다(웃음).

최근 가장 행복했던 일, 웃음짓게 한 일이 있다면.
조카가 삼촌이라고 해 줬을 때! 조카가 아주 예쁘게 크고 있다. 또 우리 고양이가 낳은 새끼가 어느덧 어엿하게 자라서 성묘가 된 모습을 볼 때도 행복하다. 그리고 강정호 선수가 미국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을 때! 가장 슬펐던 순간은 강정호 선수가 다쳤을 때!

강정호 선수의 쾌유를 빌면서 인터뷰를 마무리 하도록 하겠다.
실제로 너무 걱정이 돼서 강정호 선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강정호 선수가 없으니 아침에 낙이 없더라. 아침형 인간이라 아침에 할 게 없는데 아침마다 MLB에 나오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안 나오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황)재균에게 강정호 선수의 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서 쾌유를 빌고 내년에는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강정호 선수가 <타짜>를 100번 봤다면서 대사도 외운다고 문자가 왔다. 강정호 선수가 나를 알다니 정말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싶었다(웃음). 나로서는 영광이었다. 그 이후로는 가끔 문자 보낸다.

2015년 11월 23일 월요일 | 글_최정인 기자 (jeongin@movist.com 무비스트)
사진_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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