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나 자신과 배역의 접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인천상륙작전> 이범수
2016년 8월 2일 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자기 가치관으로 이해되지 않는 배역에는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자신과 배역의 접점을 찾아 나가는 일을 계속한다. 이범수는 <인천상륙작전>의 림계진을 그렇게 소화했다. 공산주의를 주창하는 골수적 캐릭터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느낀 순간, 림계진에게서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찾아냈다. 영화 안팎으로 만만치 않았던 악역 캐릭터를 맡은 이범수를 만났다.

얼마 전 MLB 올스타위크에 다녀왔다.
MLB 올스타위크는 지난 3월에 이미 초대 받은 상태였다. 즐거운 일정이었다. 내가 어릴 때 워낙 야구팀 열혈 팬이었다. 고향이 청주니까 처음엔 OB를 좋아하다가,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이 좋아서 삼성 팬이 됐다가, 나중에 한화도 좋아했다. 지금은 잘 하는 팀이 제일 좋다.(웃음) 여담이지만 미국은 시구 문화가 우리랑 다르더라.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연예인이 하지 않나. 그쪽에선 이해를 못 하더라. 그들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참전용사나, 시민을 구한 희생 정신 있는 소방대원 같은 사람들이 시구를 한다. 이라크로 파병 간 아빠를 오랫동안 보지 못한 아이가 시구를 하면, 포수 자리에 몰래 아빠를 앉혀 놓기도 한다고 하더라. 감동적이지 않나. 인상적이었다.

<슈퍼스타 감사용> 덕분에 초청받은 걸로 안다. MLB측은 그 영화를 어떻게 보게 된 건가.
그러게 말이다.(웃음) 아마 MLB코리아에서 MLB측과 정기적인 만남을 갖는 것 같다. 그 때 우연한 기회에 <슈퍼스타 감사용>에 대한 얘기가 오가면서 MLB회장이 직접 보게 됐다고 하더라. ‘오 야구 영화 중에 이런 게 있다니’ 한 모양이다.

10년도 지난 영화가 회자된 덕에 좋은 자리에 갔지만, 반대로 아쉬움이 남았던 작품도 대중에게 그만큼 오랫동안 기억될 때가 있다. 그럴 땐 어떤 마음인가.
(한참 망설이다가) 시간과 세월이 지나면 만족했던 작품이든 아니든 다 똑 같은 것 같다. 모두가 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물론 아쉬웠다. 결과에 아등바등 했고.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쉽든 안 아쉽든 뭐가 크게 달라질 게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오히려 항상 아쉬움과 미련이 있기에 그 다음을 다시 기약하게 만든 게 아닌가 한다.
<인천상륙작전>에서 악역 림계진을 맡았다.
캐릭터가 아주 골수적이다. 인정머리 없고, 자기 생각밖에 못 하고, 타협도 할 줄 모르는 매몰찬 사람이다. 인천지역을 지키는 북한군 사령관 림계진은 그런 사람이다. 그가 극단적으로 악할수록 그걸 헤쳐나가는 장학수의 활약이 빛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림계진과 장학수의 대립구도가 선명하지 않나.

시종일관 강렬하기만 한 점은 호불호가 갈린다. 당신도 그런 기류를 느끼나.
호불호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작품 얘기를 깊게 하면 심각해진다.(웃음) 좀 더 허심탄회하게 말해보겠다. 본래 <인천상륙작전> 최초의 시나리오는 림계진을 고뇌하는 사상가로 그렸다. 나도 그 지점에 매력을 느꼈다. 한채선과 멜로 코드도 좀 있었고. 하지만 결론적으로 주최측에서 다르게 결정을 한 셈이다. 극중 장학수도 그 나름으로 고뇌하는 캐릭터인데, 림계진까지 그런 콘셉트를 따르면 두 인물의 차별점이 없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또 공산주의자 림계진이 사상적 고뇌까지 치열하게 하는 캐릭터로 그려지면 오히려 장학수보다 더 강력해 보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을 것 같고. 내 입장에서는 물론 시나리오가 바뀌는 걸 원치는 않았다. 내용이 조금씩 수정되고 고쳐져서 현재의 캐릭터가 된 거다. 난 결국 림계진이 장학수에게 큰 난관을 제공하는 인물이라고 이해했고, 그에 맞게 좀 더 갈등과 대립을 주도하는 연기를 하고자 했다.

내키지 않는 악역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출연한 이유가 뭔가.
일단 악역이라는 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 배우가 연기를 맘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어느정도 확보되는 게 악역이기 때문에 욕심이 난다. 자극적이기도 하고. <짝패> 때나 <신의 한 수> 때도 그랬다. 이번 <인천상륙작전>에서도 림계진 역에서 비슷한 매력을 느껴서 참여한 거다. 그런데 몰입을 하면 할수록 뜻하지 않은 의외의 고민에 빠져들게 돼, 이 역할을 하기 싫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거다.

어떤 고민인가.
이범수가 작품 속 림계진의 사상을 이해를 못하겠더라. 내가 공산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걸 주창하고 강한 신념으로 삼은 뒤 악행을 저지르는 캐릭터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지금은 1950년이 아니지 않나. 2016년을 사는 이범수는 공산주의가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번듯하게 서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림계진을 어떻게 이해할 건지, 그 역할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지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전에 한 악역은 이런 식의 고민을 안겨 주진 않았다. <신의 한 수>는 하드코어 성인 오락 영화다. 거기서 맡았던 ‘살수’ 역할은 워낙 만화적인 캐릭터여서 나도 그에 맞게 오락적으로 접근하면 됐다.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은 시대극이고 림계진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의 등장인물이기 때문에 함부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 공산주의자가 갖고 있는 ‘민족주의적 측면’에 집중해 이해해보려고 했던 거다.

민족주의적 측면이란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민가.
림계진 대사를 빌리면 이런 거다. “미 앞잡이가 돼서” 일을 하지 말고, 우리 민족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뜻이다. 대사에 나와있는 내용을 근거로 생각했다.
극중에서 함경도 사투리를 쓴다.
우리에게 익숙한 북한 사투리는 사실 평안도 사투리다. 난 익숙한 것 보단 관객에게 좀 더 이질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함경도 사투리를 쓰고 싶었다. 또 함경도가 북한에서는 더 지방이고 변방이니까 림계진의 외골수적 특성과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내 북한 사투리 선생님이 북한 군 출신 탈북자였는데 실제로 함경도를 비롯해 경상도, 강원도 등 동해안 쪽을 따라 가는 지방의 사투리가 투박하고 우악스럽다고 하더라. 일주일에 세 네 번씩 두 달을 연습했다. 잘 한다는 칭찬 많이 들었다.(웃음)

기억에 남는 사투리가 있었나.
“앞장 치지 맙세”라는 말이 있다. 장학수가 서둘러서 검열을 하려는 초반 장면에서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사실 시사회 때 이 대사를 기억한 관객이 있었다. 자기 아버님이 함경도 분이라서 아는데, 이 말은 정말 함경도에서만 쓰는 거라고 하더라.

림계진이 구사하는 사투리는 투박하고 우악스럽다기보다는 좀 능글맞은 느낌이 들더라.
사투리 공부하면서 많이 고민했던 결과다. 함경도 사투리지만 군인의 말투여야하고, 그러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느낌을 풍겨야 했으니까. 군인이라면 강직한 느낌을 상상하기 쉬운데 그런 쪽이 아니었다. 그래서 좀 힘들었지만 어쨌든 표현했다.

뿐만아니라 분위기에서 풍겨나오는 야비함 같은 게 있었다.
배우의 표현 문제는 어렵다면 어려운 거고, 쉽게 답할 수도 있는 문제다. 일상생활을 생각해보면 된다. 강직한 사람은 보통 정직한 느낌의 리액션을 보일 것이다. 반대로 거짓이 많은 사람은 리액션이 과장됐다든가, 반대로 굼뜨든가 하지 않겠나. 배우의 표현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림계진 역시 장학수가 무슨 말을 하면 의미를 알 수 없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좋아서 웃는 건지 속을 감추려고 웃는 건지 모르고, 그 상황에서 웃는게 좀 과하게 느껴진다. 또 장학수와 같은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묻는 말에 대답은 안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반응과 계속 엇나간다. 이런 포인트를 잘 살리면 야비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천상륙작전>은 첩보물과 전쟁물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
일단 두 가지 특성을 아우를 수 있게끔 푸짐하게 촬영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물론 큰 틀은 6.25와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전쟁’이다. 그 안에 첩보전이 들어가 있다. 장학수가 북한군으로 위장하고 림계진이 지키고 있는 인천지역에 들어와 암암리에 작전을 벌이는 건 첩보적 요소다. 그래서 긴박하고 속도감이 있다. 다만 더 전체를 아우르는 건 전쟁이야기다.

촬영 도중 부상이 있었다고 들었다.
한 마디로 어이없는 부상이었다.(웃음) 림계진이 장학수의 정체를 알게 되는 장교클럽에서 서로 총을 겨누는 장면이 있다. 도망가는 장학수를 쫓아 나오면서 총격전을 벌여야 하는데, 그 동선에 계단이 세 개쯤 있었다. 별 것도 아닌 계단인데 문제는 그 주변에 내 인민군 부하들 열 댓 명이 쓰러져 있었다는 거지.(웃음) 이 보조출연자들을 밟고 나올 수는 없고, 시선은 도망가는 지프차를 봐야 하고, 요령껏 보조출연자들의 겨드랑이 사이와 다리 사이를 밟느라 진땀을 뺐다. 그래도 여러 테이크를 잘 갔다. 하필 마지막 테이크에 앵글이 바뀔 때 사고가 터진 거다. 한 보조출연자가 원래는 왼쪽에 끌어 안고 있어야 할 따발총을 반대쪽에 끌어 안고 쓰러지는 바람에, 내가 그걸 밟고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내가 여태 외운 동선과 안 맞으니까. 그 때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으로 떨어졌는데 공중에 뜨는 순간 정말 끔찍했다. 난 1초가 그렇게 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웃음) 아니나 다를까 무릎이 찌릿하더라. 절단 날 줄 알았다. 그 때 큰일났다 싶었다. 촬영 이틀 차였는데 아무래도 선수교체 당할 것 같아서(웃음). 지금 같으면야 공중에서 두 바퀴 돌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웃음) 운동화였으면 좀 긴밀하게 발놀림을 했을 텐데 부츠를 신어서 발이 부자연스럽고, 아무튼 상황이 따라주질 않았다.

총 촬영기간이 얼마나 되나.
4개월이 채 안 된다. 3개월 반 정도다.

부상 때문에 촬영기간 내내 고생했겠다.
다행히 움직일 순 있어서 억지로 마지막 한 테이크 찍고 병원에 갔다. 인대가 끊어진 건 아니고, 끊어질 뻔 했다고 하더라. 일주일정도는 진통제 맞으면서 촬영했다. 병원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거 외엔 보약이 없다고 하더라. 그 때 난 의사선생님한테 “선생님. 참 속 편한 말씀 하십니다. 움직이지 말라구요? 전 푹 자고 싶어요”(웃음)라고 말했다. 선생님도 내 너스레에 막 웃더라. 어쩔 수 없이 목발 짚고 반 기부스를 하다가 촬영 하면 풀곤 했다. 처음엔 쪼그려 앉기도 안 되더라. 무릎에 물이 찬다는 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무릎에 진짜 주사기를 꽂아서 노란 물을 빼낸다. 소주잔 한 잔 정도 되는 양을 두 번이나 뺐다. 재밌지 않나. 외적으로 부딪혔는데 내적으로 물이 찬다는 게. (정적이 흐르고) 아닌가?(웃음) 근데 사람들은 겉 부분이 찢어지고, 꼬매는 정도는 해야 다친 줄 안다. 무릎 이런 건 잘 안 다친 줄 안다. 괜찮으세요? 하고 묻는데 ‘저 큰일 났어요’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하하하)
이정재와는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다.
1998년에 <태양은 없다>를 하고 2002년에 <오! 브라더스>를 찍기 위해 다시 만났을 때 우리가 4년만이라고 반갑다고 깔깔댔었다. 그런 지 벌써 또 14년이 지났다. 세월이 빠르다.

데뷔 후 27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연기하는 게 재미 없거나 싫다고 느낀 순간도 있을 것 같다.
재미 없는 답변이지만 굳이 말 한다면, 힘들 때 나는 내가 얼마나 무명시절에 배우를 꿈꿨던가 생각한다. 이건 정말이다.

오래 전 인터뷰를 보니 스스로를 강한 성향이라고 말했더라. 포기하려는 사람에게는 질책하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봤다.
내가 그렇게까지 짧고 세게 얘기 했나.(웃음) 당연히 과거보단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비슷한 지점도 있다. 강한 성격은 아버지께 물려받은 거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타고난 성향이고 기질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뿐만 아니라 자식들과 주변인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내가 갖고있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기보다 가지고 있는 걸 활용 하란 거다. 희망을 갖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 코드에서 강한 거라면 여전히 변함은 없다.

당신이 최근 가장 소소하게 행복했던 순간을 알려달라.
우리 애기들 소을이 다을이가 웃을 때. (눈치를 보며)재미 없나.(웃음)

그것도 좋지만, 당신만의 행복한 순간이 있을 거다.
난 해외에 갈 때 만화책 20권씩 들고 간다. <배가본드>라고 아나. 일본 검객 이야긴데 지금 30 몇 권까지 나왔다. 두 주인공이 만나서 대결을 해야 되는데, 아직도 못 만났다. 대체 어쩌자는 건가.(웃음) 심지어 한 권 나오는데 반 년이 걸린다. 이 작가 완성 못 하고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된다.(으하하)

그래서 포기했나?
아니! 우려하던 차에 마침 한 권이 나왔다! 그런데, 여태까지 이야기를 회상하는 내용이더라. 에이 이런!(웃음)


2016년 8월 2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 제공_CJ엔터테인먼트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