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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노동 다큐를 찍겠다 <그림자들의 섬> 김정근 감독
2016년 8월 30일 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쭉 노동자로 살았다. 신발공장을 다닐 때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그저 자신이 속해있는 자리와 상황에 애정을 가졌을 뿐이다. 첫 작품 <버스를 타라>(2012)와 마찬가지로, <그림자들의 섬>은 한진중공업에서 일해온 이들의 이야기다. 다음 작품의 주인공은 부산 지하철 노동자다.

주로 한겨레21, 시사인 등 이른바 진보언론들에서 <그림자들의 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좀 더 많은 매체에서 써준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아쉬움은 크게 없는 편이다.(웃음) 기본적으로 <그림자들의 섬>을 같이 보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로 쓰지 않을 뿐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에 관심 있는 기자들은 많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든 지 2년이 지난 후에야 개봉하게 됐다.
독립영화 사정은 다들 대충 알 거다. 영화를 언제 개봉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늘 논의를 했다. <그림자들의 섬>은 단순히 영화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읽어야 하는 맥락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맥락이 살아있는 순간에 개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다만 조선소 구조조정이라는 이슈가 등장한 시기를 일부러 노려서 개봉한 건 아니다. 그런 타이밍이 왔다고 해서 그걸 노려서 바로 상영할 수 있는 여건도 못 된다.(웃음)

소셜펀딩 목표금액을 달성한 걸로 안다. 덕분에 상영관 수가 좀 늘었나.
오히려 줄었다. 17개 상영관이다. 본래 이런 다큐멘터리가 개봉하면 20개관 정도에는 걸렸는데 독립영화 상황 자체가 좋질 않아서 그렇다.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도 휴관해서 재개관일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고, 아예 문을 닫는 상영관도 있는 실정이다. 제작,배급사 ‘시네마달’이 접촉할 수 있는 개봉관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 대한 평가 중에 ‘정직한 카메라’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일단 사람이 정직하다는 건 아닌 것 같고.(웃음) 내가 꽤나 오랫동안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알아왔던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답변을 얻어내기 위해 유도된 질문을 하거나, 인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부정직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워낙 친하다보니 각 잡고 인터뷰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술 먹이면서 인터뷰 한 사람도 있다.(웃음) 그게 읽혔기 때문 아닐까. 정확하게 설명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웃음)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더라. 그런데도 어떻게 영화에 출연시킬 수 있었나.
출연의 필요성에 대해 많이 역설 했다. 특히 김진숙 지도위원은 무대에도 잘 안 서는 분이다. <버스를 타라> 때도 상당히 짧게 나온다. 그때도 다른 매체와 인터뷰를 일절 안 했다. 자기가 부각되는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 한다. 1차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에 온 사람들에게 한 이야기도 그런 거였다. 자기 말고, 15년동안 복직을 위해 싸운 박성호를 봐달라고. 아니면 장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무장의 사연에 집중해달라고 하는 식이다. 카메라를 자기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이동시키는 거다. 그런데도 선뜻 이 영화에 출연한 이유는, 아마 내가 살아온 시간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희망버스가 영도로 내려오던 당시에 PLOG TV라고, 부산에서 함께 활동했던 미디어팀과 함께 크레인 아래에서 상주하다시피 했다. 희망버스와 관련해서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2차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크레인 위의 생활이 어떤지를 찍었다. 지난 영화에도 잠깐 쓰였던 장면인데, 아무튼. 그런 일들을 하면서 얻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쇄소와 신발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한 걸로 안다.
맞다. 그런데 언젠가 그런 질문에 대해 한 번 짚어주고 싶었던 차였다. 지난번 인터뷰에서도 모 공중파 피디가 나에게 ‘노동자 생활’을 했냐고 묻더라. 그런데 노동자라는 게 별거 아니다. 그 피디도 노동자다.(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라고 지칭 할 때에는 특정한 이미지를 전제하는 것 같다. 내 인생은, 그렇게 표현하기보단 그저 쭉 일을 해왔다고 말하는게 더 적합하다. 영화 감독이 된 지금이라고 해서 과거와 위치가 달라졌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왜냐면 영화를 홍보하러 다니는 요즘에도 알바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웃음)

무슨 알바를 하나.
영상 만드는 알바다. 다큐 감독이 알바 하는 건 정말 흔한 일이다. 내가 아는 감독 중에는 자기 작품활동을 하면서 청소를 하는 분도 있다. 여전히 반지하에 사시는 분도 계시고. 삶이 별로 나아지지 않는 걸 보면서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도 생각한다. 동년배 감독들을 만나면 매번 이런 얘기뿐이다. 식당이나 할까? 요리 배울래? 제빵 배울게 내가!(웃음) 그러다가 헤어지기 직전 마지막에 잠깐 영화 얘기 하고.(으하하) 그런 게 좀 씁쓸하다. 문화노동자들이 설 자리가 점점 더 좁아진다. <그림자들의 섬>도 분명 ‘노동 다큐’인데 홍보는 ‘휴먼 다큐’로 되고 있다.(웃음) 이렇게 일터의 얘기를 다룬 다큐가 개봉하는 것 자체도 정말 오랜만 아닌가. 물론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이 있지만 결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고.
공장 노동자 생활이 고단했을 거라고 짐작되는데, 그럼에도 왜 노동계에 ‘투신’해서(웃음) 노동 다큐를 찍게 된 건가.
노동이라는 게 지겨운 것도 사실이고, 싫은 것도 사실이었다.(웃음) 맨날 공장을 나가면서도 그렇게 싫었다. 돈 모아서 빨리 여기서 탈출한 뒤에 영화 학교를 가고 싶기도 했다. 아니면 또 다른 탈출구를 마련하든가. 이런 것들이 나에게 상당히 갈급한 문제였다. 그런데 내가 쇠나 철에 대한 오타쿠 기질이 있다. 음. 자칫 잘못하면 변태적으로 보일 것 같기도 하지만.(웃음) 공장에 있는 프레스나 주물 하는 기계들에 상당히 관심이 많다. 내가 일했던 신발 공장에서는 프레스만 돌리는 대형 공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소음과 함께 프레스가 파바박 돌아간다. 오! 그런 장면을 볼 때 압도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그런 기계들에 애정이 가기 시작하니까, 그걸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이 가더라.

거기에 노동자로서 약간의 사명감이 더해진 건가.
그렇다. 그런 사명감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기에 중독 돼 있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완전한 운동가처럼 열렬하게 활동을 한다고 보기에도 어렵다. 내가 가지고있는 쇠와 철에 대한 오타쿠적 기질(웃음)과, 적당한 사명 사이를 오가면서 영화를 찍었다.

다큐가 조금 더 ‘재미’를 추구했으면 좋았을 것 같단 생각도 들더라.
그건 취향의 차이가 작용했을 수도 있는 문제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 박창수 열사가 돌아가신 91년 사건이 나오지 않나. 그때 경찰병력이 장례식장 벽을 뚫고 들어와 시신을 탈취해간 일이 있다. 그런 걸 더 강조하면 어땠을까 하고 묻더라. 이야기를 조금 더 자극적으로 직조해보라는 뜻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좀 더 상업영화스러운 리듬을 가지고, 속도감 있게 편집하는 식의 방법도 고민해보라는 지적일 수도 있고. 그런데 사실 그렇게 만드는 건, 어떻게 말하면 좀 쉽다. 그리고 난 그런 쉬운 방식으로는 전혀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설령 조금 지루하게 보인다고 해도 인위적으로 에피소드를 컨트롤해서 관객들의 감정을 끌어 오르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기만 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러면서 에롤 모리스 감독의 <씬 블루 라인>(1988)같은 영화도 참고했다. 앞으로도 내 영화는 이런 식으로 계속 될 것 같긴 하다. 다만 다양한 평가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시종일관 인터뷰가 이어지는 형식이 지루하다는 평가가 있다.
영화를 보는 방식의 차이가 아닐까. 이런 얘기 하면 웃기긴 한데 내가 이래봬도 부산에서는 “시네필”로 불릴 정도로 영화 애호가다.(으하하) 이제는 잘 쓰이지 않는 단어지만. 그러다보니 많은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환상의 빛>(1995)처럼 카메라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스타일이 좋더라. 인물에 밀착하고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클로즈업하기보다는 풀샷을 선호하는 연출 말이다. 내 영화도 그렇다. 인위적으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 기법들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때문에 인터뷰 방식을 통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가족이나 지인들은 당신의 영화를 지지해주는 편인가.
일단 <버스를 타라>때도 작은 상을 받았기 때문에.(웃음) 집안 친척들이 모였을 때는 주로 이런 말들이 나온다. “다음 영화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같은 걸 찍어보는 게 어떠니.”(으하하) 이 말에 포함된 전제들은 여러가지다. 일단 돈이 되는 상업영화를 찍으라는 거다. 그 다음엔 많은 사람들이, 집 앞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걸 찍으라는 거고. 하지만 그런 것들에 내 마음은 전혀 동하지 않는 걸?(웃음) 그래서 소신껏 말한다. 다음 영화는 부산의 지하철 노동자들에 대한 겁니다. 라고. 그러면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한다. 아무도 안 볼 걸 왜 찍느냐고.(웃음) 주변에도 비슷한 선배들이 있다. 영화에서 이야기의 재미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유명한 감독의 작품에 집중하는 이른바 ‘영화주의자’들이다.(웃음) <그림자들의 섬>을 준비하던 2013년 즈음에 한진중공업 얘기를 파보고 있다고 하니 대뜸 한 선배가 그러더라. 그런 거 지루하니까 그만 좀 하라고.(으하하) 나중에 상 받고 오니까 내 손을 잡으면서 “그래 넌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돼.”라고 하더라. 웃고 넘어갔다.(웃음)

영화 도중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우리가 참 오만했다”고 회고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이야기를 담아내기 꽤 까다로웠을 것 같다.
비정규직 문제를 함께 풀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는 부분이다. 그 얘기를 듣기 위해서 김진숙이라는 사람이 겪은 노동사를 전부 다 들었다. 박정희 시절부터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까지의 노동사 말이다. 나중에 녹취를 글로 풀어보고 싶을 정도로 의미 있는 얘기들이었다. 세시간 정도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마침내 비정규직 문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정말 헉! 했다. 이건 반드시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흔치 않은 얘기니까. 그런데 다른 노동자 형님들도 비슷한 톤앤매너르 이야기를 해주더라. 그걸 보고 여전히 그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진중공업 노조,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조직들이 굉장히 많은 욕을 얻어먹고 있지만, 그들 내부에서는 반성의 지점을 충분히 알고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존재 한다. 물론 여전히 정규직들이 자기 아들을 채용하기 위해 비리를 저지르거나,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노조 내에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있다. 그런 지점은 더욱 강력하게 비판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성의 목소리가 내부에 존재하고, 그것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려고 하는 시도도 있다. 나는 여전히 그런 지점에 혹해있다.(웃음)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솜씨가 상당하더라. 사람을 쑥 빨아들인다.
성호형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좀 더러운 표현이긴 한데 ‘오줌 쌀 정도로’ 얘길 잘 한다고.(웃음) 김진숙이란 사람의 특출난 지점이 분명히 있다. 책 ‘소금꽃나무’를 읽어봤는지 모르겠지만, 일반 작가 못지않은 문학적 감성과 문장 제련 솜씨를 갖췄다. 워낙 책을 많이 읽는 분이다. 영화를 만들다가 고민이 생겼을 때 무슨 책을 읽을까 물어보러 가려고 했던 적도 있다. 본인이 경험한 일들의 두께가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도 풍성한 느낌을 받는 것 같다.

여성 노동자이기에 더 기민한 감수성을 품은 부분도 있지 않을까.
분명히 그럴 거다. 여성 노동자가 느끼는 불합리함의 정도는 남성 노동자과는 또 다르다. 뿐만 아니라 동료가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울 수 있는 사람은, 한진중공업 노조에 김진숙 말고는 없다. 가장 대표적으로 곡을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김진숙 때문에 한진중공업 노조의 투쟁 역사가 더 질곡의 시간처럼 보이는 점도 있는 듯 하다. 여성 노동자이기에 조금 다르게 표현되는 측면이 있다.

영화 중간에 이문세 노래 ‘사랑이 지나가면’이 나온다.
김주익 열사가 좋아해서 선곡 한 거다. 그 노래가 나오기 전에 성호형이 이런 멘트를 친다. 김주익은 다른 노동자들이 좋아하는 투쟁가는 별로 안 좋아하고, 꼭 이문세 노래 같은 처연한 것만 좋아하더라고.(웃음) 그런데 사실 넣을지 말지 고민이 많았다. 음원료가 너무 비싸서.(으하하) 끝까지! 빼자는 얘기가 있었다.(으하하) 내가 알바해서 넣겠다고 그랬다.

그 노래를 노무현 대통령이 나오는 장면에 삽입한 까닭은.
‘사랑이 지나가면’에 그 시절 노동사를 보여주는 영상이 붙고, 姑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등장하면 관객이 어떤 아이러니를 훨씬 더 잘 느끼지 않을까 했다. 실소를 금치 못할 수도 있고, 반대로 되게 우울할 수도 있을 거다. 실제로 그 장면에서 우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가 노동자가 정말 많이 죽어 나가던 시기였고, 결국 김주익 열사까지 목을 맸다. 인권 변호사였던 사람이 대통령이 됐는데 노동자들에게 더욱 더 큰 탄압이 돌아온 때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이 공고화 된 시절이기도 하고. 그런 아이러니를 보여주자는 의미로 그렇게 편집했다.

노무현에 대한 애증이 느껴진다.
인간적으로는 지금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임기 때 사석에서 뵌 적도 있다. 물론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웃음) 당시 공장 노동자였는데 실업상태여서 그랬다. 부산 고용복지공단에서 대통령을 모시고 간담회를 했는데, 담당자가 우연찮게 내게 연락을 해왔다. 그 자리에 좀 참석할 수 있겠냐고. 실업 청년과 대통령의 만남이 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만남을 많이 하셨다. 그날 뉴스에도 나왔는데 사람들이 왜 거기 앉아 있냐고 연락이 오더라. 차마 실업청년이라서 앉아있었다고 말은 못 했다.(웃음) 노무현이라는 글씨가 써져 있는 시계도 받았고 아버지가 잘 차고다니셨다.(웃음) 그런데 아무튼 당시에는 그에 대한 미운 감정도 많았다. 한미 FTA 문제도 그렇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길 바랐던 사람들의 믿음이 철저하게 배반당한 순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으면 좋을 것 같나.
<그림자들의 섬>이 자기 노동의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물론 사무직 노동자들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특수한 상황과 똑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면서 자기 노동의 가치를 한 번 정도 점검해볼 수 있는 기회는 될 거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가진 문제들을 공론화 시킬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저임금이 1만원도 되지 않는 현실 아닌가.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본 뒤에는 노동자를 위해줄 수 있는 마음들이 좀 더 생겼으면 좋겠다. 부산에서도 지하철이 늦거나 냉방이 시원치 않으면 기관사한테 전화해 욕하고, 문짝 때리고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웃음) 물론 구의역에서 19세 청년이 죽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변화한다는 느낌도 든다. 어쨌든 그러다 보면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상황과 심정도 이해하게 되고, 지지하게 되고. 그런 연쇄작용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서울과 부산에서 시사회를 진행하는데, 내가 모시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이 왔다. 예를 들면 민주노총 사람들. 그들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게 많았다고 말해주니 감격스럽더라. 일반 관객이 많이 봐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1차적으로는 노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훨씬 더 다양하게 읽히는 측면도 있을 테고. 그리고 다큐의 흥행 지점이라고 일컬어지는(웃음) 1만 관객이 들었으면 한다. 이렇게 개봉관이 적은데도 많이들 보는구나 하고 회자되길 바란다. 그런 결실을 통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더더욱 힘을 얻었으면 좋겠고.

2016년 8월 30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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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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