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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가듯이 찍었다 <걷기왕> 심은경
2016년 10월 26일 수요일 | 류지연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류지연 기자]
‘내려놓는다’는 말을 유독 많이 하는 그녀에게서 역설적으로 연기에 대한 욕심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주위로부터 집요하다는 평을 듣곤 하는 13년차 배우 심은경은, 스스로 부족하다 느낄 때마다 더 열심히 못한 자신을 다그쳐왔다. 그러다 만난 영화 <걷기왕>을 찍으며 비로소 마음을 비우고 힐링할 수 있었다. 온전히 즐기는 순간에 발휘되는 연기의 진가 또한 알게 됐다.

반응이 호평일색이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웃음)

<걷기왕>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일단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공감이 갔다. 영화는 뭐든지 빨리빨리 하기를 요구하고, 꿈을 향해 가면서도 경쟁에 뒤쳐지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사회에 대해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냉소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그런 이야기를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쉽고 따뜻하게 풀어냈다는 점에 끌렸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아닌 단짝친구조차 만복이를 보며 ‘바보 냄새가 난다’고 하지 않나. 만복이와같은 세대로서 그녀를 연기하면서 느꼈던 점이 있나.
내게도 만복의 짝꿍인 지현이나 수지 같은 면모가 있었던 것 같다.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면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될 것만 같았고, 미래에 대해 항상 불안했던 시기가 있었다. 자신을 내려놓고,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연기를 하면서도 스스로 불만족스럽고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원인을 잘 찾지 못했다. 그저 ‘내가 열심히 안했나.’ 또는 ‘노력을 안했나’라고 생각을 했었다. 오직 잘하는 쪽에만 포커스를 맞춰오다 여러 착오를 겪으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마침 <걷기왕>이 주는 메시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영화의 시나리오가 들어오게 됐고 공감을 많이 했다. ‘이 시대의 청춘들을 위한 영화다’ 라는 생각에 출연하게 됐다.

영화 속 가장 공감 가는 장면이 있다면.
처음 시나리오를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엔딩씬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렇게 끝나는 엔딩이 흔치가 않다. 또 영화의 메시지가 잘 함축돼있으면서도 귀여우면서 독특하다. 완성된 편집본을 보면서 사실 좀 울컥했다. 단순히 포기하라는 말이기보다는, 부족한 면모가 있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좋아하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고 발전시키라는 말로 읽혔다. 한동안 여유가 많이 없었고 스스로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걷기왕>을 촬영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출연한 작품을 영화 자체로 즐기면서 본 게 참 오랜만이었다.

사실 결말이 반전이었다. 만복이가 벌떡 일어나서 결승선까지 갈 줄 알았더니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웃음) 아무튼 심은경에게는 영화 자체가 힐링이 되었겠다.
애초부터 소풍 간다는 생각으로 임했던 것 같다. 그 전 작품들을 할 때도 항상 생각을 비우자고 다짐했지만 부담감이라든지 책임감, 그리고 연기에 대한 고민이 수없이 많이 들었었다. <걷기왕>은 지금까지 했었던 영화 중 가장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찍을 수 있었던 영화였다. 10대 때 경험과 감정들을 만복 캐릭터에 잘 녹여내 보자는 마음으로 출발했었다. 촬영 때도 참 많이 웃었다. 그러면서 다시금 느낀 점은 내가 온전히 즐기는 순간에 비로소 연기의 진가가 발휘되는 것 같다는 거다.

실제 심은경은 만복과 정반대의 삶을 살지 않았나.
평소에는 만복이와 비슷한 면이 많다. 일 할 때를 제외하면 평상시에는 가만히 멍을 때릴 때도 많다. 10대 시절에는 만복이처럼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수업시간에 졸기도 하고 그랬다. 요새도 관심 있는 것에는 애정을 갖는데 관심이 안 간다 싶으면 신경을 잘 안 쓰는 타입이라 오해를 받을 때도 있다. 너무 모든 것에 무신경한 거 아니냐는 핀잔도 듣고. 낙천적이고 장난도 많이 치고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해서 만복이와 꽤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연기를 할 때만큼은 나도 모르게 진중해지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해왔던 일이고 관심사가 그 쪽에 쏠려있다 보니 그렇다. 하지만 연기할 때를 제외하면 편하게 지내는 스타일이다.

평상시에 무신경한 경우가 있다고 했는데, 연기하면서도 그런 경우가 있나.
하나에 집중을 하면 다른 걸 신경 못 쓰는 편이다. 연기할 때 그런 성격이 더 극대화 되는 것 같다. 캐릭터에 몰입하려고 하다 보니 연기를 하는 순간에는 내가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른다. 가끔 나를 자기 일에 있어서 완벽 하려 하는 집요한 사람으로 봐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내가 생각할 때 나는 그런 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웃음) 어떻게 행동했길래 그렇게 바라봐 주시는 걸까 의아하다.(웃음)

박주희, 김새벽 등 독립영화에서 입지를 다진 배우들과 함께 연기했는데 어땠나.
두분 다 전부터 관심이 있던 분들이라 같이 작업해보면 어떨까 궁금했다. 주희 언니와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낯을 가리다 보니 이 분하고 어떻게 작업해야 될지 고민이 됐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무척 쾌활한 분이었고 성격이나 관심사가 비슷한 면이 많았다. 아무래도 내가 7살 어린 동생이다 보니 촬영 끝나면 같이 저녁 먹자고 하면서 챙겨줬다. 새벽 언니하고도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정말 재밌었다. <한 여름의 판타지아>등에서 봐온 언니의 이미지가 참 여성스럽고 단아했는데 코미디 연기를 너무 능청스럽게 잘하시더라. 언론시사 보면서 같이 많이 웃었다. 언니는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믿기엔 유머러스하게 캐릭터를 너무 잘 살렸다.

영화에서 중요한 지점이 만복이가 경보를 시작한 후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러닝머신을 타는 등 여러 훈련을 거치는 데 만복이는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더라. 진짜 열심히 한 건 맞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만복 입장에서의 노력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걷기왕>이 다른 스포츠 영화와 다른 맥락에 있다고 생각한다. <걷기왕>은 경보라는 스포츠를 영화의 한 소재로 사용한 것뿐이다. 여타의 스포츠 영화처럼 피땀 흘려 훈련해서 성공하고 승리하는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정지우 감독의 <4등>같은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혹독하게 훈련을 받는다. 그 주인공이 힘들어서뛰쳐 나갔다면 납득이 될 텐데, 만복이가 그만둔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래부터 만복이라는 캐릭터는 열심히 하지 않고 멍도 잘 때리고 있고, 자신이 뭘 해야 할 지 잘 모르는 친구다. 그 친구 입장에서 본다면, 처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생겼다고 믿고, 재미를 붙이면서 열심히 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여느 스포츠 영화에서처럼 혹독한 훈련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우리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과는 맞지 않는다. 영화에서도 ‘너 같은 애가 해 봤자 얼마나 하겠냐’ 라는 대사가 나온다. 하지만 만복이 입장에서는 나름 노력하는 거다. (웃음) 남들이 어떻게 보든 본인이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얼만큼 했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 스스로 좋아하고 즐기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 전체적인 메시지다.

경보를 하는 자세가 좋더라. 누구에게 배웠나.
트레이닝 선수에게 한 달 정도 배웠다. 주희 언니는 선수 출신으로 나오지만 내 경우에는 처음으로 경보를 하게 되는 역할이다 보니 기본적인 자세와 규칙을 익히는 데 시간을 들였다. 경보가 생각보다 자세잡기가 어렵고 규칙도 많이 까다롭다. 예를 들면 경기에서 두 발이 동시에 떨어지면 실격인 것과 같은. 선생님께서 몇 번 더 하다 보면 전국체전에 나가도 될 것 같다고 격려도 해주셨다.(웃음)

평소에 걷는 거 좋아하나.
운동으로 말고 산책하는 건 좋아한다. 산책을 많이 하는 편이다.

둘레길, 올레길을 걸어본 적 있나.
그런 길은 체력소모가 커서. 그냥 집 주위 동네를 돈다.(웃음)

사실 만복의 캐릭터가 조금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장점들도 많지만 평범하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멍청해 보일 때가 있어서. 아주 똘똘할 필요는 없겠지만 조금 더 현실적으로 그렸더라면 보는 사람들이 공감하기 쉽지 않았을까.
만복은 단순한 성격을 가졌고, 선천성멀미증후군을 앓고 있는 평범한 학생이다. 사실 그런 점들이 맘에 들었던 것 같다. 좀 더 똘똘했다면 만복이 같은 성격이 아니라 짝꿍 지현이 같은 성격이 됐을 거다. 그러면 경보가 아니라 공부에 집착하게 되지 않았을까. (웃음) 영화는 만복이의 서울대 입성기가 되었을 거고. 캐릭터가 단순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 영화의 메시지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말씀하셨듯 어떤 분들은 캐릭터가 너무 단조로운 것 아니냐 하는 얘기도 하셨다. 하지만 어쨌든 내 경우에는 그런 만복이가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똑똑해서 뭔가를 잘 해낼 수 있는 멋진 캐릭터는 참 많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도 어떤 순간에는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복이가 <말아톤>의 자폐아 캐릭터처럼 센 인물도 아니고, 뭔가를 잘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인물이지만 그게 그녀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도 만복을 그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으실 거라고 생각했고.

<서울행>, <로봇, 소리>에서 목소리 연기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다양성영화라 할 수 있을 <걷기왕>에도 출연했고.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하고 있는데.
그런 경험을 통해 연기의 폭을 넓혀나가려 한다. 그런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 목소리만 출연하는 거고, 비중 있는 역할도 아니지만 좀비 연기를 하고 로봇을 연기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에 주저 없이 선택했다. 아직도 배워야 할게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연, 단역이나 목소리 배역에 상관없이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하고 싶다.

목소리 연기의 경우에는 내가 한 연기가 아니라, 새로운 영상에 목소리만 입히는 작업이 될텐데. 연기할 때 어떤 도움이 되나.
일단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 든다. 이미 만들어진 캐릭터에 내 목소리가 입혀지니까. 연기를 하다 보면 카메라 앞에서는 어떤 표정과 어떤 느낌을 내야지 하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 목소리 연기는 소리 하나로만 그런 것들을 다 표현을 해야 되니 더 어렵기도 하다.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서 더 디테일하게 생각을 하면서 연기할 수 있는 것 같고, 더 몰입하게 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남이 그려놓은 것에 목소리를 입히는 작업이다 보니 캐릭터 연구를 더 섬세하게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더 신경 쓰는 부분은 없나.
특히 <로봇, 소리> 녹음했을 때 감독님하고 얘기를 많이 했다.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할지 진짜 로봇같이 내는 게 좋을지, 사람의 감정이 묻어나면 좋을지 상의를 많이 했었다. 녹음을 하는 과정에서도 몇 번씩 모니터링 하면서 수정을 여러 번 했다. 감정적인 디테일을 더 깊숙이 파고 들었던 경험이었다.

<특별시민> 촬영은 다 끝났나. 최민식, 곽도원 등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했다. 맡은 캐릭터도 이전과는 좀 달랐던 것 같다.
<특별시민>은 <걷기왕>과는 다르게 치열하게 찍었던 영화였다. 연기를 잘하려 했던 것 보다는 맡았던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한 스스로와의 싸움이었다. 최민식 선배님을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고, 반성했다. 배우로서의 자세나 연기를 대하는 면에 있어서 최민식 선배님을 가장 존경한다. 같이 호흡을 맞추기 전까지는 최민식 선배님 같은 배우가 돼야지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감히 그 열정을 이길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옆에서 지켜보며 경외심이 많이 들었고, 내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그런 배우들 틈에 껴서 연기했다는 것 자체가 값진 경험이었다. 옆에서 연기를 지켜보는 즐거움도 너무 컸다.

그럼 최민식 같은 배우가 되겠다는 꿈은 이번 경험을 통해 접은 건가. (웃음)
잘 모르겠다.(웃음) 감히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웃음) 물론 그런 배우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배님을 통해서 배운 것이 연기자라는 길을 걷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고, 수많은 고민 끝에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걷기왕>처럼 편하게 즐기면서 찍을 수 있는 장르도 있지만, 반대로 어떤 영화의 어떤 순간에서는 치열하게 파고들어야 하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음을 뼈저리게 느꼈던 터라 이제는 그런 말을 감히 못하겠다.

최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친한 사람들 만나서 카페에서 얘기하고 음악 듣고 동네 산책하는 시간이 소소하게 힐링이 되는 순간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비우면서 보내는 것. 그런 시간들을 최대한 많이 즐기고 있다. 시간 날 때는 주위 분들을 많이 만나서 이야기 하고 고민들도 털어놓고 한다. 그러면서 배워가거나 느끼는 것들이 많다.

2016년 10월 26일 수요일 | 글_류지연 기자 (jiyeon88@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imovist.com)
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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