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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이라는 시간이 현 시국에 묻히지 않길…” <판도라> 박정우 감독
2016년 12월 8일 목요일 | 김수진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김수진 기자]
4년. 한 영화가 개봉되기까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이 시간 동안 박정우 감독은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간 <판도라>를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라 돌아가는 사정과 크게 맞물리는 영화가 돼 여러 잡음을 걱정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가 됐건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영화를 통해서 ‘어떤 미래를 꿈꿔야 하는가’ ‘국가의 안전은 보장되고 있는가’ ‘한 나라의 대통령은 무엇인가’와 같은 지극히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재난보다 더 재난 같았던 촬영 현장에서 어떻게든 가치 있는 물음을 담아내기 위해 수많은 장애물과 싸워왔을 박정우 감독. 그에게 있어 마지막 재난 영화가 될지도 모를 <판도라>의 뚜껑이 드디어 열렸다.

(본 인터뷰는 <판도라>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4년만에 개봉했다. 소감이 어떤가.
개봉 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스스로가 대견하다. 무엇보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잊을 수가 없다. 영화와 관련된 모든 분들도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하며 뿌듯해 하면 좋겠다.

개봉이 늦어진 특별한 이유라도.
걸림돌이 실질적으로 많았던 건 아니다. 모두 소소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과연 이 영화가 개봉할 수 있을까’라는 내면의 두려움이 컸다. 그런 와중에 물리적으로 크고 작은 장애물들이 생겼고 별 것 아닌데도 심히 불안하게 지냈다.

외압이 있어 불안했던 것은 아닌지.
엄밀히 말하면 없었다. 사실 외압이라는 게 시나리오를 바꾸라고 하든가, 상영관을 열어주지 않는 게 외압 아닌가. 우리가 겪은 일들은 딱히 외압이라기 보단 하나의 난관이자 장애였다. 재난 영화가 아닌 일반 영화라면 안 그랬을 텐데 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예를 들면?
관영 기관에 장소 협찬을 부탁할 경우 거절당할 때가 많았다. 과거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에는 거리에서 촬영하면 교통 통제도 안해주더라. 또 배우 캐스팅에 있어서도 힘든 부분이 있었다.

김남길은 캐스팅이 수월했나.
비교적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시나리오를 써 놨다’는 이야기가 영화 판에 돌았었는데, 소재도 독특하고 워낙 대작이라 관심이 쏠린 상황이었다. 배우들도 다 알 정도였다. 김남길에게는 내가 먼저 시나리오를 주진 못 했다. 그런데 김남길이 어디선가 구해서 봤다더라. 그리고 날 만나고 싶다고 했다. 만났더니 시나리오에 대한 공부를 꽤 해온 것 아닌가. 감독 입장에선 반갑고 고마웠다.
배우가 시나리오에 대한 이해가 완벽하다 해도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으면 캐스팅이 어렵지 않나.
시나리오를 들고 만나기 전 우연한 기회에 사석에서 김남길을 본적이 있다. 평소 눈빛이 센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털털함이 매력인 동네 청년 같은 모습이더라. 그런 모습들이 극중 ‘재혁’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또 전작인 <해적>에서도 배우로서 좋은 역량을 보여주지 않았나.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른 배우들을 캐스팅할 생각은?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티켓파워가 어마어마한 배우들과 영화를 해서 그 배우 덕에 잘됐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싫었다. 오로지 영화의 힘으로 배우도 살아나고 연출자인 나도 잘되는 모양새가 좋다고 생각했다. 김남길도 기존의 각지고 스타일리쉬한 연기는 이미 구축된 상태였으니, 우리 영화에서 생활연기까지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연기의 폭이 넓어질 테니 말이다.

작품 이야기를 하자면, 삭제된 부분이 많다고 들었다.
그렇다. 예를 들어 극중 ‘재혁’이 대통령에게 하는 말 중 ‘이게 나랍니까. 죽어서 지켜 볼 겁니다’ 라는 대사를 삭제했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대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혁’ 역을 맡은 김남길과 함께 그 대사에 애착을 가졌다. 영화 구조적으로도 재난 상황에서 최상위층, 최하위층의 인물들이 평행으로 가다가 결국 만나는 지점이 그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편집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보니 대통령을 미화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비현실적이라는 평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삭제를 결정했다. 물론 전체적인 흐름상 그 신이 맞지도 않았지만…

또 다른 장면이 있다면.
대통령이 등장하는 첫 신도 생각해보니 바뀌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는 장면에서 원래는 나이든 어른들이 ‘뭐가 훌륭한 대통령이야. 기업들만 챙기고, 다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대사를 한다. 그런데 부담스러워서 다른 장면으로 대체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대통령의 첫 등장 신은 매우 평화롭다. 또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돌아와 수석 비서관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총리가 비서관을 자기 세력으로 포섭하곤 대통령을 왕따 시키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그 부분은 현 시국과 너무 맞물린 것 같아 또 삭제했다. ‘도대체 이 나라는 누가 이끌어 가는 겁니까’ ‘계엄을 선포 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판단능력을 상실했다’는 대사들… 삭제할 수 밖에 없어 보이지 않나.(웃음)

삭제를 했지만, 영화에는 여전히 현 시국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들이 많다.
그렇다. 그러한 부분들 때문에 도움을 받는 것도 있을 테지만, 오히려 피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
의도한 건 아닐 텐데.
전혀 계획하지 않았다. 시국을 생각하고 편성한 영화라고 보여지는 게 썩 반갑지 않다. 4년이라는 세월이 그걸로 묻히는게 억울하다. 순수하게 원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정부를 겨냥한 영화가 아니다. 그렇지만 마음 같지 않은 게 지금 상황과 비슷한 대사가 나오면 관객들은 그저 영화 속 상황과 어울리는 대사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자꾸 현실과 맞물려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몰입하는 데 더 방해될 것 같다. 오해를 부를만한 대사는 최대한 거둬낸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다.

부담스럽다면 청와대 비중을 덜 다뤄도 되지 않았을까.
청와대가 나오는 장면은 영화의 구조상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 국가 재난 상황인데 뺄 수가 없지 않나. 만약 뺀다면 소심하고 비겁해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쓸 당시, 청와대에 대한 어떤 그림을 상상했나.
비선실세까지는 전혀 예상 못 했다. 청와대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몇 가지 단초들만 둔 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상황들을 그려냈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대통령은 일단 기본적으로 생각이 바르고, 사람 목숨을 소중하게 다룰 줄 아는 인간적인 대통령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주변 환경때문에 제대로 힘을 못쓰고 재난을 통해서 결국 자아를 찾게 된다. 관객들이 저런 이상적인 대통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캐릭터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초반 총리에게 실권을 잃은 대통령 설정이 자칫 비선으로 비춰질 수 있더라… 라이트한 재난 영화라면 청와대를 무능하게 묘사해도 된다. 그런데 우리 영화에서 총리를 비롯해 청와대 전체를 무능하게 묘사하면 원전이 아닌 청와대 때문에 재난이 일어났다고 오해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총리 역할에 스마트 한 이미지의 이경영 씨를 캐스팅했다. 청와대가 무능해 보이지 않도록 말이다. 원전에게 면죄부의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극중 피폭된 모습은 얼마나 현실성이 있나.
많이 순화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시사회 이후 ‘충격적이다’는 반응이 많더라. 우리 영화는 결코 겁주려는 영화가 아니다. 정신을 차릴 수 있을 정도, 전체적인 이야기를 따라갈 수준의 공포를 배치시키는 게 목적이었다. 실제로 방사능에 피폭되면 시간 강도에 따라 다르지만 심각하다고 들었다. 영화 속에서는 그저 보는 사람들이 ‘심각 하구나’라고 깨달을 정도로만 표현했다. 각혈이나 구토, 홍반 증상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면 피폭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조하는 일은 가능한가.
방사능이 어마어마하게 센 곳은 40분에서 2시간 사이에 죽는다. 사람이 냉각수에 들어가면 무조건 즉사다. 방사능이라는 게 공기처럼 터지는 게 아니고 분진처럼 국지적으로 퍼진다. 극 속에선 영화적으로 순화시켰다. 실제였으면 ‘재혁’은 이미 죽었다. 소방관은 원전 정문 근처에도 못 간다. 사실대로 그리면 표현하는 데 확실히 어려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방관은 무지함에 우왕좌왕하다가 등 떠밀리 듯 원전에 들어가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또 사람들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사람이라도 구하자’며 구조에 뛰어드는 장면도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신인 김주현이 비중이 크더라.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여주인공을 가장 나중에 캐스팅했다. 김주현이 맡은 ‘연주’는 일반 여성들 보다는 강단 있고 용감하게 마을 주민 통솔하는 면모를 가져야 했다. 잔다르크 같은 모습 말이다. 기존 여배우들에게 이 역할을 맡기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사투리도 구사해야 했고 한 배우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깨기 위한 여러 가지 사전 작업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라리 참신한 배우를 캐스팅해 관객들을 납득시킬 여지 없이 캐릭터를 그려내 듯 전개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김주현은 오디션을 통해 발탁됐나.
아니다. 그냥 어떤 화보를 보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영화에 맞는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신인이고, 이런 큰 영화는 처음이지 않나. 준비를 많이 했어도 현장에서 못 따라오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것 같아 걱정이 됐다. 그래서 베테랑인 김영애, 문정희와 함께 극을 이끌어 가는 2번째 대안을 생각 해놓기도 했다. 그런데 잘 소화하더라. 사투리 때문에 현지에도 가고 버스, 오토바이 운전을 위해서 면허증도 땄다. 본인이 숙소에서 부단히 예습, 복습하고 주변 연기자들의 도움도 받은 덕분에 이런 결과물이 탄생한 것 같다.

현장 분위기가 화기애애 했을 것 같다.
주연 배우들은 대부분 베테랑이고 스태프들도 각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사전 준비를 충분히 했어도 결국 원전을 소재로한 영화는 모두 처음 겪는 것이었다. 자기 것만 챙기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등장 인물도 많았을 뿐더러, 분진은 여기저기 날리고 강풍기 때문에 소리도 안 들리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감독인 내가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분위기가 좋았다고 볼 순 없다.

무서운 감독이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욕도 많이 하고 그랬다. 이상하게 욕의 강도가 세질수록 배우와 스태프들이 단단히 뭉치더라. 간혹 숙소에 혼자 있으면 외로웠다. 그래도 덕분에 사고 없이 계획대로 진행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촬영이 모두 끝난 뒤 스태프들이 욕하는 모습만 편집한 영상을 내게 선물했다. 기분 나쁘기보다는 ‘그들이 나를 적어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었다.
장면 하나하나에 모든 신경이 곤두서 있었겠다.
스태프들과 초반에 목표를 세운 게 있다. 절대 피해가지 않고 모든지 실제 현장에서 촬영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영화 속 모든 공간을 사실적으로 연출할 수 있었다. 물론 CG의 도움도 받고, 사전 조사도 많이 했다. CG의 도움을 좀 더 받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CG로 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모두 실제 연출을 통해 만들어 냈다. 바깥 촬영이 매일 힘들었다. 아마 스태프들이 고생이 많았을 거다.

고생한 만큼 좋은 결과 있어야 할 텐데.
기본적으로 재난 영화가 개봉하면 관객층이 두텁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든다. 물론 그런 계산법이 무조건 통하지는 않지만, 일단 예산이 많이 들어갔고 넷플렉스에 판권까지 팔려서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 시국이 변수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다.

또 재난 영화 찍을 건가.
<판도라>를 찍으면서 생각한 건데, 이 이상 심각한 재난이 또 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재난의 최대치가 있다면 바로 우리 영화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영화를 찍게 되면 어떤 식으로는 더 발전해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사실을 왜곡 시키게 되고 의도한 방향으로만 스토리를 몰아갈 여지가 많다. 그런 위험 요소들 때문에 일단 재난 영화 연출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

다른 장르는 생각한 게 있나.
미리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써 놓는 편이 아니다. ‘영화를 시작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든 뭐든 준비한다. <판도라>가 개봉됐으니 이제 당분간 쉴 예정이다. 영화가 하고 싶다면, 그 시기에 알맞은 영화가 무엇일까 생각을 해서 소재와 장르를 결정할 듯 싶다.

기대해보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가장 행복했던 적이 있다면.
일단 <판도라>가 개봉한다는 것이 행복하다. 또 욕을 하든 어쨌든 영화를 만드는 현장에 있을 수 있다는 그 자체도 행복하다. 사실 난 현장이 좋아 영화를 시작한 사람이다. 일을 제외하고는… 가족들이 건강한 게 감사하다. 처자식 굶기지 않고 자랑스러운 아빠, 남편의 위치를 지킬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할 따름이다. 또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이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2016년 12월 8일 목요일 | 글_김수진 기자(sooj610@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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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김재윤 실장(Z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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