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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함’이라는 꼬리표의 무게를 버텨라 <커튼콜> 박철민
2016년 12월 13일 화요일 | 김수진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김수진 기자]
장점이 단점으로 반전된 경험,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한때 재치 넘치는 애드리브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던 배우 박철민에게도 어느 순간 ‘식상함’이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주변의 냉정한 지적과 조언 사이에서 그는 배우로서 나아갈 길을 끝없이 고민했다. 요즘은 절제미 돋보이는 ‘악역’을 연기하는 게 오히려 행복하다는 그의 얼굴에 왠지 모를 애환이 느껴진다. 돈 없던 무명시절에는 ‘향기 나는 배우’라는 응원 한마디에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는 주변의 호된 채찍질을 통해 연기적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중이다. 결과적으로 박철민은 매일같이 발전하고 있다. 그의 오늘보다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시사회에서 눈물을 보였다.
아… 창피하다. 예상치 못한 깊은 감정에 빠졌다. 절대 의도한 눈물은 아니다. 오해하지 말라. 내 욕심 때문에 그랬다. 그동안 정형화된 이미지 때문에 스스로도 지치고 관객들도 식상해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가슴앓이를 했다. 하필 한꺼번에 감정이 복받친 듯싶다.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겠다.
끝나고 나서 문자를 많이 받았다. 더 창피했다. 눈물만 흘리면 좋은데 사진에 찍힌 표정이 과장돼서.. 우스꽝스럽더라. 다섯 살 꼬마가 먹고 싶은 음식 앞에서 떼쓰며 우는 느낌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가장 가슴 아팠나.
솔직히 시청자나 관객들이 냉정하게 조언할 때, 나도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가슴앓이를 하게 되더라. 그러나 냉정한 지적이나 조언들이 배우로서의 나를 더 탄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연기 색깔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계기다. 그래서 내가 요즘 악역을 잘 맡는다.(웃음)
그러고보니 <구르미 그린 달빛> <약장수> 등에서 인상깊은 악역을 연기했다.
악역은 나도 모르게 닫혀 버린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예전에도 악역을 종종 맡았다. 어쩌면 악역을 그리워 했는지도 모른다. <약장수>를 통해서도 연기적으로 새롭고 놀라운 경험을 했다. 주변의 지적들이 그런 캐릭터를 만날 수 있게 했다.

<커튼콜>에서 ‘철구’는 어떤 캐릭터인가.
‘철구’는 악역은 아니고, 중의적인 캐릭터다. 이 캐릭터에겐 유행어가 있다. 감독님이 사전 상의 없이 갑자기 제의한 유행어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라는 내 오랜 유행어를 그대로 뱉어 내야 했다.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져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처지의 ‘철구’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관객들이 이입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 망설였다. 그런데 감독님과 오랜 시간 이야기 해보니,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매력적인 교집합이 탄생할 것 같았다.

관객들이 여전히 식상해 한다면.
영화 홍보 때문에 예능에도 여러 번 출연했었다. 방송국에서 유행어를 그렇게 시키더라. 그때마다 거절하면서 자료화면을 대신 쓰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에 다시 한번 유행어 하면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하더라. 내키진 않았지만 하고야 말았다. 이번 <커튼콜>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싶다.(웃음)

극중 유행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애드리브도 선보였다. 웃음에 집착하는 느낌이랄까
거의 대본에 나온 대사들이다. 결말까지 변하지 않고 ‘철구’의 캐릭터를 안고 간 이유는, 결국 루저들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자신의 단점을 크게 극복 하지 못 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엉망진창이 된 연극에 관객들은 대부분 떠나버린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중 인물들이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찾는 게 영화의 목적이다. 그래서 ‘철구’라는 캐릭터가 끝까지 폭주하는 애드리브를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연기를 평가하자면?
최고의 배우는 아니지만 매일 발전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면 훨씬 훌륭하다. 물론 밑바닥부터 올라왔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웃음) 애드리브를 할 때도 예전보다 더 신중하고 절제하며 하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아지고 있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지금 촬영 중인 작품이 있다. 극중 유승호의 술주정뱅이 스승 역할이다. 이 역할을 맡으면서 절제를 해야 배우로서의 시너지가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진짜 ‘재미’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인천상륙작전>도 그런 캐릭터를 맡았던 작품 중 하나다. 대사나 감정 표현을 많이 생략했다. 밀도가 깊어 집중이 잘 됐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 그런 캐릭터를 또 만나게 되면 행복할 것 같다.

대본에 충실한 애드리브이긴 하지만 부담이 됐을 텐데 그럼에도 <커튼콜>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고민을 많이 했다. <커튼콜>같은 상황 코미디는 대부분 감독의 시나리오에 좌지우지된다. 심지어 저예산영화 특성상 보여줄 게 많지 않다. 연극처럼 배우들끼리 피나는 연습을 통해 완벽한 호흡을 보여줘야 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무대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소동이 한 데 모이지 않았나. 이를 표현하기가 부담스러웠다. 함께 출연한 장현성도 과연 영상화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더라. 그러나 등장 인물, 작품 자체만 봤을 땐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또 형식도 새로워 이런 코미디는 다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걱정은 많았지만, 연극 무대를 영화로 끌어왔다는 시도 자체에 큰 의미를 뒀다.

연극 무대를 스크린으로 끌어오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스크린에 투영했을 때, 관객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따라와줄까 싶었다. 연극은 특성상 대사나 행동들이 급하다. 또 현장감이 생명인데, 스크린에서는 이런 부분이 잘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카메라가 어느 지점까지 비춰야 하는지, 그런 계산이 힘들었다.
극중 ‘햄릿’은 지나치게 변주된 것 아닌가.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신선하게 느낄 것이다. ‘햄릿’을 모르는 분들에게는 오히려 친절한 영화다. ‘햄릿’의 불필요한 요소를 최소화하면서 변주했다. 정말 ‘죽느냐, 사느냐’ 밖에 몰랐던 분들에게 적합한 영화다.

예산이 적어 힘든 부분은 없었나.
큰 어려움을 없었다. 대부분 이야기가 연극 무대를 중심으로 돌아가니 저예산이지만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자본이 조금 더 있다면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저예산영화라는 티가 나지 않아 만족스럽다.

연극 무대를 많이 해봐서 잘 알 것 같다. 극중 벌어지는 돌발 상황들은 얼마나 현실성 있나.
나도 찍으면서 어이없어 웃었다. 극중 ‘석구’처럼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무대를 가로질러 나갈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다. 무대만 바라보거나 연기에 빠져있는 친구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대부분 융통성이 없고 현실과 이상을 판단할 줄 모른다. 그런 친구들이 ‘석구’와 같은 실수를 하게 된다. 모든 돌발 상황들은 사전에 배우들끼리 충분한 토론을 걸쳐 복선을 깔았고, 그로 인해 개연성을 지니도록 노력했다.

연극 무대 위에서 본인이 실수한 경험은 없나.
대사가 생각나지 않는 것은 가장 흔한 실수다. 찰나의 순간인데도 굉장히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부끄러움으로 며칠 동안 잠도 못 잔다. 배우들은 자존심 때문에 더 그렇다.
더한 실수도 있을 것 같은데.
(웃음) 내가 술 주량이 꽤 된다. 한번은 막걸리 세 잔 정도를 마시고 올라갔다. 보통 무대에 오르면 흥분하지 않나. 술까지 먹어 대사가 안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된다. 아.. 왜 매번 반성과 후회를 반복하는지... 괴롭다. 그 뒤론 무대 오르기 전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배우들끼리 사이가 좋을 것 같다.
배우들끼리 단체 채팅방이 있다. 툭하면 알림이 울린다. 결국 무음으로 바꿔버렸다.(웃음)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이다. 모두 배우로서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들 아니냐. 심지어 그런 주제로 영화까지 찍었느니, 어떤 작품을 작업할 때보다 팀워크가 좋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연극에 목숨 거는 후배들이 있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명시절, 이정길 선배님이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해주셨다. ‘넌 임마 무대 위에선 향기가 나는 놈이야.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그걸 맡을 수 있을 거다’… 그 말을 듣고 너무 행복했다. 대선배가 그런 말을 해주다니 너무 감격스러운 거다. 그날 밤은 취해서 많이 울었다. 이후 내 인생은 180도 달라 졌다.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은 그 말 덕분이다. 그래서 나도 후배들에게 그 말을 똑같이 해준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자신감을 주는 말이다. 또 그러면서 후배들에게 술을 자주 사주려고 한다. 나도 돈 없던 시절을 거쳐왔고, 선배들이 술 한잔 사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인들의 애환이 담긴 <커튼콜>, 얼마나 사랑 받았으면 좋겠나.
공교롭게도 <판도라>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됐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보면 바닥에서 시작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분들이 유쾌함 가득한 우리 영화를 보면서 공감하고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 이런 게 인생이라는 깨달음을 얻으면 더 좋다. 우리 영화는 한 사람만 빛나는 영화가 아닌 작은 별들이 다 함께 빛나는 영화이기에 더 의미 있다.

일전에 100만명이 동원되면 ‘촛불 100만개’를 나누겠다는 공약이 인상 깊었다.
노 개런티로 출연했지만 지분이 있으니, 그런 공약을 내걸어도 된다. 그러나 결코 시국을 틈타서 한 공약이 아니다. 그저 예쁘고 따뜻한 일을 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혹시 촛불을 안 들어도 될 상황이 온다면 촛불 100만 개 금액만큼 기부할 생각이다.

흥행에 성공해 공약을 지키는 모습, 기대해 보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면.
야구를 잘한다고 칭찬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 어제도 현역 프로야구 선수들의 초청을 받아 경기에 참여해 3타수 3안타를 쳤다. 전 관중들이 일어날 정도였다. 웃기면서도 슬픈 사실은 연기보다 야구를 잘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기할 때는 야구할 때만큼 행복하진 않다. 야구는 잘 못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까... 그러나 연기는 직업이기 때문에 못하면 아프고 자괴감 든다. 너무 사랑해서 시작한 직업이지만 어쩔 땐 두렵다. 그래서 가끔씩 강의를 하러 가면 젊은 친구들에게 꿈을 절대 버리지 말고 취미로 라도 열심히 하라고 조언해준다. 그곳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2016년 12월 13일 화요일 | 글_김수진 기자(sooj610@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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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김재윤 실장(Z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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