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답지 않은 진중함 <판도라> 김주현
2016년 12월 15일 목요일 | 김수진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김수진]
분진을 뒤집어쓰고, 생전 몰아 볼 일이 있을까 했던 대형 버스를 직접 운전했다. 300명의 스태프들이 각자의 임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수라장 같은 촬영 현장에서 오랜 공백기를 깨고 현장에 투입된 신예 김주현은 외로운 섬과 다름없었다. 홀로 이끌어가는 신도 적잖았기에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자 그녀는, “다함께 고생하는 현장인데 나만 힘들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힘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였다”며 속 깊은 말을 꺼냈다. 극중 ‘연주’처럼 책임감이 강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 한다는 김주현. 그녀에게서 신예답지 않은 진중함을 엿볼 수 있었다.

(본 인터뷰는 <판도라>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판도라>라는 대작에서 예상외로 비중 있는 역할이다. 소감이 남다르겠다.
촬영한 지 오래돼서 기억도 잘 나지 않고 감정도 그때만은 못 하지만, 4년만에 드디어 개봉하게 돼 기쁘다.

출연하게 된 계기는.
감독님이 내가 출연한 작품들과 화보를 인상 깊게 보셨다고 들었다. 이후 시나리오를 건네 받았고 순서대로 미팅을 가진 뒤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됐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던가.
감독님이 첫 미팅에서 내 눈빛을 보고는 ‘뭔가 하겠다’고 느끼셨다더라.

감독님이 촬영 현장에서는 무서웠다고 들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호되게 혼났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온전히 감독님을 믿어야 하는 상황이기에 좋은 의미로 혼을 내셨다고 생각하면서 잘 받아들였다.
촬영이 끝난 뒤에는 뭐라고 말씀해 주시던가.
영화 촬영이 끝난 후 감독님께서 “다음 작품이 중요하다. 이번에는 ‘연주’라는 큰 그림 안에 널 넣은 거지, 극 전체를 이끈 건 아니다. 감정을 주고받은 신이 많지 않았으니, 온전히 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나 연기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연주’와 닮은 부분은 없었나.
물론 연주와 닮은 부분도 많다. 그러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연주’가 갖고 있는 강인한 성격과 책임감, 불의를 보면 못 참는 부분들은 비슷하다.

경상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구사하던데 힘든 점은 없었나.
어려웠다. 경상도 사람이 아니라서 사투리를 선생님께 배워야 했다. 그러나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서 고생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다. 나만 특별히 힘들다고 느낄 상황이 아니었다.

버스, 오토바이 면허도 땄다고 들었다.
실기가 진짜 어려웠다. 버스가 복불복인데, 비교적 좋은 버스를 타서 한 번에 붙었다. 그런데 버스를 원래 몰던 사람이 아니라서 촬영 현장에서 운전 미숙으로 민폐를 끼친 게 죄송하다.
그밖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체력적인 부분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촬영할 때 운동을 열심히 할 걸 그랬다. 화면으로 보니 얼굴도 부어 보이고 그러더라. 또 강한 여장부 캐릭터라서 몸을 어느 정도 키워야 했는데, 그땐 그냥 살만 찌웠다. 다시 돌아간다면 살을 찌우지 않고 운동으로 몸을 키울 것 같다. 중간에 권투를 배워 보긴 했지만 몸이 금방 만들어지지는 않더라. 대신 보형물의 도움도 조금 받아 몸을 부풀렸다. 캐릭터를 구현하는 것 못지않게 캐릭터의 외관이 화면에 어떻게 비춰질지 이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감독님이 한 인터뷰에서 아직 신인이라 단독 신이 불가능할 경우, 문정희, 김영애와 함께 연기하는 단체 신을 대안으로 생각 했다더라.
감독님께서 촬영할 때 종종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진심인 줄은 몰랐다.(웃음)

김영애 선배님은 어땠나.
촬영하다 보면 어려운 부분이 있거나 주눅이 들 때가 있다. 모두 다 목숨을 걸고 임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나도 현장에서 개인적인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 힘든 경험을 많이 하면서 연기적으로 폐를 끼치기도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항상 친절하게 대답해 주시고 챙겨주셔서 감사했다.

문정희와도 붙는 신이 많았다.
문정희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내게 빈틈이 보일 때나 또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가장 먼저 캐치해서 잘 알려주셨다. 연기적으로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부담스러웠는데, 먼저 이야기해주는 부분이 많아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김남길과 연인 관계였는데 호흡은 어땠나.
동료 배우라는 느낌보다 정말 친 오빠 같은 느낌이었다. 감히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김남길 선배님은 실제 캐릭터 안에 평소 본인의 편안한 모습을 잘 담아낸다.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재혁’과 많이 닮았다. 또 기억나는 게 통화 신 같은 경우는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친절하게 직접 대사를 맞춰주고 그러셨다. 항상 책임감 넘치고 성실하신 분이다.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극중 체육관 신에서 경찰이 주민들을 무리하게 막아서는 모습은 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어쨌든 경찰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지 않냐. 충분히 현실성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극적인 장면을 통해 소시민들이 누군가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부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영화 속 이야기의 현실성은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나.
조심스럽게 말씀 드리자면, 재난 영화는 판타지와는 다르게 실제로 일어날 법한 혹은 일어난 일을 그린다. <판도라>는 그 중에서도 일어날 법한 일을 잘 그려낸 영화다.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삭제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장면이 삭제됐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정치적으로 현 시국과 맞닿아 있는 부분 몇 군데를 덜어냈다고는 들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맞닿는 것도, 단순하게 보면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이기심과 같은 부조리한 부분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일 뿐이다. 우리 영화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경각심을 심어주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판도라> 이전에 <기담>(2007)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첫 작품인데도 꽤 비중 있는 역할이었다.
첫 작품인데 과분한 역할을 맡았다. <기담>이라는 영화는 옴니버스 영화다. 그중 첫 번째 이야기에서 귀신 역할을 맡았고 상대역은 배우 진구 씨였다. 그 영화는 미장센을 중요하게 여겼다. 보여 지는 이미지들이 독특하다. <기담>이후 귀신 역 때문인지 얼굴에서 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배우에게는 좋은 말인 것 같다. 첫 작품을 잘 만난 덕분이다.
<기담>이후 공백기가 있었다.
일에 대한 이해가 뒤따르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 당시에는 뭐든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연기가 절실해졌을 땐 이미 늦었더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기회가 오지 않았다. 물론 내 능력이 부족했던 이유도 있다.

원래부터 연기가 꿈이었나.
연기가 꿈은 아니었다. 배우를 꿈꾸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끼가 많아서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췄더라. 그런데 난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꿈꾸지 않았다. 그런데 점차 이쪽 일을 시작하면서, 숨겨진 내 자신을 찾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런 과정들 속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만큼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배우 일을 마음먹게 된 것이다.

부족한 연기 역량을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
연기 수업을 따로 받은 적은 없다. 연극영화과를 나와서 학교에서 배우기도 했는데, 대부분 연극 연기 위주다. 연기 수업보다 더 도움이 되는 건 같은 직업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 미술 전시 관람 등 문화생활을 하는 게 개인적으로는 도움이 됐다.

<판도라>로 오랜 공백기를 깨고 다시 시작하는 지점에 서있다. 앞으로 맡고 싶은 역할이 많을 텐데.
예전에는 액션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판도라>에서 거친 액션 신을 찍으면서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이제는 내 나이 대에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 그리고 ‘연주’와 반대되는 캐릭터를 맡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체적인 이미지를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일단 ‘연주’와 표현 방식이 다른 캐릭터를 맡고 싶다. 장르로 따지면 멜로가 좋은 것 같다. ‘연주’라는 캐릭터로 에너지를 많이 쏟은 상태기 때문에 감정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성향의 캐릭터를 맡고 싶다.

아직 <판도라>를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 당부의 말이 있다면.
소재 자체가 무거워 보기 싫다는 글도 봤다. 그러나 원전, 지진 등 안전에 대한 문제는 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담고 있는 메시지가 많기 때문에 일단 보고 고민할 계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사건에 집중하는데 그것보다 단순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

의도가 왜곡되지 않고 관객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에 행복했던 적이 있다면.
당연히 영화가 개봉한 것 아닐까.(웃음) 최근에 행복한 일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아!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배우지 못했던 것을 요새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행복하다. 운동이 싫었는데 재밌어지고 있다. 운동을 계기로 앞으로도 활동적인 취미를 갖고 싶다. 일 외적으로 내 자신을 행복하게 할 많은 것들을 배울 계획이다.

2016년 12월 15일 목요일 | 글_김수진 기자(sooj610@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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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박광희 실장(ultra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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