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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가는 이미지, 영화에 방해 될 것 같았다 <해빙> 이청아
2017년 3월 9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미스터리 스릴러 <해빙>에 의심 가득한 분위기를 불어 넣는 간호조무사 ‘미연’ 캐릭터를 처음 만났을 때, 이청아는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신뢰감 있는 캐릭터를 위주로 선보인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 같았다. 하지만 ‘미연’을 연기한 후 그녀는 드라마 <뱀파이어 탐정>(2016)과 <운빨 로맨스>(2016)를 연이어 선택했다. 어둡고 악랄하거나, 화려하고 당당한 캐릭터를 소화했다. <해빙>의 ‘미연’으로 기존의 선하고 믿음 가는 이미지를 넘어선 셈이다.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07년 이후 무비스트와 첫 인터뷰다.
정말로 오랜만이다. 그때 무슨 작품으로 인터뷰를 했었나?(웃음)

<동갑내기 과외하기2>다. 당시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자가 무비스트 편집장이 됐다는 사실.(웃음)
오 정말인가. 꼭 안부 전해달라.(웃음)

보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해빙>에서 당신의 비중이 꽤 크더라.
나도 신기했다. 시나리오보다 영화에서 내 역할의 비중이 더 크게 느껴졌다. 촬영 회차도 그리 많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홍보에 참여하는 건 좀 주저했다. 나보다 훨씬 큰 역할을 맡아 <해빙>을 이끌어나가는 선배들이 계셔서 좀 쑥스럽더라.
당당하게 홍보에 참여해도 되겠던데.(웃음)
이전 작품에서 완성본도 보기 전에 먼저 인터뷰부터 한 적이 있다. 내가 나오는 분량에 대해서 이만큼 크게 말해 놨는데 막상 완성본을 보니 편집을 많이 당했더라. 마치 내가 거짓말을 한 것처럼 돼 버려서 이쪽저쪽에 송구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때 생각이 나서 좀 망설였다. 다행히 제작사 대표님이 언론시사회 이전에 다른 스탭들과 함께 완성본을 볼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다 보고 나서 날 보고 그러시더라. “어때, 너도 홍보해도 되겠지?” 그래서 열심히 해보기로 했다.(웃음)

촬영 후 1년 반 만의 개봉이다. 많이 기다렸을 것 같다.
감독님이 얼마나 더 공을 들이시려고 그러시나(웃음) 하면서 기다렸다.

당신이 연기한 ‘미연’ 캐릭터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
보통 시나리오를 읽을 때 나에게 제안된 캐릭터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대입해본다. ‘미연’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읽었다. 캐릭터가 가진 힘이 분명하게 느껴지더라. 그런데 나보다는 신인배우가 소화해야 더 빛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청아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미연’ 캐릭터에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나.
나에게는 신뢰감 가는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관객에게 믿어도 되는 캐릭터라는 느낌을 주는 연기를 해왔다. 그런데 ‘미연’은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승훈’(조진웅)도 그녀를 의심한다. 내가 맡는다면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연’ 캐릭터를 선택한 계기가 있을 텐데.
이수연 감독님이 나에게 아주 각별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웃음)

특별한 사연이 있나.
감독님과의 첫 만남 자체가 재미있었다. 당시 나는 감독님이 나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시는 줄 알고 자리에 나갔다. 그런데 감독님은 우선 나를 한번 보고 결정한다는 생각으로 자리에 나오신 거더라. 나를 선택하면 어떻겠냐는 다른 스탭의 의견이 있었다고 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대충 눈치 채겠더라.(웃음)

그래서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됐나.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내가 ‘미연’역을 맡는다면 내 본래 이미지를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이다. 감독님도 초반에는 나에 대한 확신이 없으셨을 수도 있다.(웃음) 결론적으론 나를 선택하셨지만 다른 신인 배우들도 엄청 많이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야 말씀하시더라. 영화 전체를 보고 ‘미연’의 역할을 고민해온 배우는 이청아 하나였다고 말이다. 역시 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본 배우는 다르다고 하셨다.

이수연 감독을 각별하게 느낄 수밖에 없겠다.(웃음)
더군다나 서로 소통도 굉장히 빨랐다. 감독님이 생각한 그림과 내가 생각한 그림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망설여지던 ‘미연’역을 맡게 된 후 어떤 식으로 캐릭터에 접근했나.
영화를 다 보고 난 관객이 ‘미연’을 떠올리면 마치 지금도 여전히 그 병원에서 일하고 있을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고 싶었다.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캐릭터 자체는 과하지 않은 느낌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무엇이든 조금 더 표현하고 싶을 때마다 조금 덜 표현하려고 나를 부여잡았던 것 같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미연’은 어떤 사람인지 헷갈리는 느낌이다. 순박해 보이는 간호조무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프로포폴을 훔쳐 명품백을 사는 대담한 인물이다.
그래서 나도 감독님께 여쭤본 적이 있다. ‘미연’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그랬더니 내게 되물으시더라. 어떤 사람일 것 같냐고 말이다.

뭐라고 대답했나.
아유, 나쁜 년.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그녀가 경험해왔을 삶을 생각해보면 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어떤 이유에서.
나는 지금의 내 상황이 어떻든 꿈만큼은 크게 꾸는 편이다. 이루든, 못 이루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미연’은 나랑 다른 캐릭터였다. 감독님도 그러셨다. 이청아는 자신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미연’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명품백을 사는 거고, 그렇게 하면서도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거다. 반복할수록 죄책감은 줄어든다. 감독님은 이걸 자존감의 문제라고 표현하시더라.
자존감은 혼자서는 키우기 어려운 것 아닌가.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부모님, 또 좋은 은사님이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연’의 인생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다. 사람은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갑자기 측은한 느낌이 드는군.(웃음)
사실 우리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다 그런 면이 있다. 그게 감독님이 관객에게 주려는 메시지인 것 같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조금씩은 측은하게 느껴진다는 것 말이다.

당신에게는 인생의 훌륭한 조언자가 있나.
그렇다. 부모님이 좀 시크하신 편이었지만(웃음) 늘 사랑으로 키워 주셨다. 특히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나에게 큰 선물을 주셨다. 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지, 왜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나중에 행동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주셨으니까. 전에는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했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과 추억을 쌓는 게 더 의미 있는 것 같다. 굳이 사치를 한다면 아마 그런 쪽에서 사치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 이청아의 생각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런데 나는 항상 내가 부끄럽고 마음에 안 든다. 누군가는 지금의 나를 보고도 “청아야, 너 정도면 훌륭해”라고 말해 줄 지 모르지만 나는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죽고 나서도 존경받을만한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가 너무 작은 것 같다.
어려운 문제다.(웃음)
가끔 동생을 불러서 고기를 사줄 때가 있다. “야, 누나가 살게 많이 먹어!”라고 말해놓고 동생이 마음에 안 드는 말을 좀 하면 내가 왜 이 자식한테 고기를 사준다고 이러고 있어? 하고 생각하게 된다.(웃음) 아버지한테도 늘 효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잔소리를 조금만 들으면 금방 “아 정말!”하고 소리치고 말이다.(웃음)

누구든 그럴 때가 있다고 본다.(웃음) 인간적인 면모 외에, 배우로서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면.
요즘에는 현장에서 나보다 어린 후배와 함께 연기를 할 때도 있다. 선배가 됐으니, 후배가 연기를 잘 해낼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하는데 상황이 바쁘게 돌아가다 보면 “욕심은 나지만 이정도로 만족하자”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러면 집에 가서 꼭 자책한다.

연기를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을 텐데.
물론이다. 스물다섯 살 때쯤 그랬다. 처음으로 들어간 소속사와 계약 기간이 끝나 갈 때였다. 본래 학교에서 연출을 배우던 학생이었으니, 나름대로 콧대가 높았다.(웃음) 이 작품의 시나리오가 어쩌고저쩌고 평가하길 좋아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맡아서 연기하는 캐릭터들이 그런 내 판단 기준과 너무 큰 간극이 있었다. 내 성향과도 맞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연기한 드라마나 영화가 공개될 때마다 주변 사람들 보기가 민망하더라. 아직 배우로 살아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극복했나.
다행히 자연스럽게 연기에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다. 연출자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연기를 바라보는 것과 직접 배우가 돼서 그 연기를 해내는 건 너무나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나이 70에라도 연기 잘한다는 말, 정말 멋진 배우라는 말을 들어볼 수 있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연기의 재미를 알려준 작품들이 있다면.
사실 <해빙>을 찍고 나서 어두운 캐릭터의 매력을 알았다. 그 경험이 드라마 <뱀파이어 탐정>과 <운빨로맨스>를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어느정도 다크한 캐릭터를 연기해봤으니 이제는 극악무도한 어두움을 표현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면서 고른 게 뱀파이어의 수장 역할이고, 강인하면서도 얄미운 역할을 맡아보면 어떨까? 하면서 선택한 게 <운빨로맨스>의 ‘에이미’다. 가장 최근에는 배종옥 선배님과 함께 <꽃의 비밀>이라는 연극을 했는데 아직도 여운이 남아서 마지막 스케줄표를 냉장고에서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걸 떼어내면 울 것 같다.(웃음)

배우가 아닌, 관객으로서 좋아하는 작품은.
얼마 전에 <마담 세크리터리>라는 미드를 보다가 그만 눈물이 왈칵 난 적이 있다. 미국의 국무총리가 국가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우방국에게 “소수민족을 탄압하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국익을 위해서는 절대 하면 안 되는 말이었지만, 인류애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원래 써 뒀던 원고를 덮어 두고 결국 자기 생각을 말하는 쪽을 택하더라. 나도 늘 그런 태도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멋있는 사람이고 싶은 마음인가보다.(웃음)
당연하다. 배우는 연기력 말고도 다양한 이야깃거리로 대중에게 노출되는 사람이다. 그러니 연기뿐만 아니라 내 삶의 행보를 통해서도 대중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얼마 전에 <해빙>을 본 관객이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을 콕 짚어가면서 그 부분이 참 좋았다고 말해 주셨다. 그럴 때 연기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전보다 연기가 나아졌다는 평가를 들으면 ‘아휴 다행이다’ 하면서 한숨 돌리게 된다. 그럴 때도 행복하다.

<해빙>이 당신에게 그런 평가를 가져다줄 작품이 되길 바라겠다.
사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두 명이 ‘미연’역을 뽑는 오디션을 봤다. 촬영 도중에 그 친구들에게 연락이 와서 그 사실을 알게 됐다. 너무나 미안했고, 그래서 더 잘 해내고 싶었다. 그 친구 중 한 명은 시사회 때도 와줬다. 그 친구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2017년 3월 9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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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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