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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하는 게 좀 많아요 <보통사람> 장혁
2017년 3월 30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열정적이다. 그것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액션 하나는 제대로 배웠다. 당연히, 액션을 상당히 잘한다. 유머감각도 있다. 게다가 진지한 면모까지. 취미는 내가 출연한 DVD 모으기, 자랑거리는 늙지 않는 얼굴. 모두 장혁의 말이다. 인터뷰 내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데, 이 배우 어쩐지 밉지 않다. <보통사람>의 무서운 안기부 실장 ‘규남’을 연기했지만, 실로 이야기를 나누면 어쩐지 비죽비죽 웃음이 새어 나오게 만드는 호감형 배우다. 물론, 아재 개그 시전도 잊지 않았다.

종이에 펜을 들고 인터뷰에 임하는 배우는 처음이다.(웃음) 뭘 적으려고 그러나.
인터뷰를 하다 보면 이야기가 이리저리 새는 경우가 있어서 질문을 적어가며 대답을 해 보려고 그런다. 사실… 어젯밤에 감독님하고 늦게까지 술을 먹다 보니 상태가 좋지 않아서…(웃음)

거나하게 한잔한 걸 보니, 시사회 이후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꾸미지 않은 영화라는 평가를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영화 촬영장에는 굉장히 많은 카메라가 있다. 마음만 먹으면 매우 다양한 구도와 샷을 연출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연출이 과해지면 구도와 샷이 배우를 틀에 가두기도한다. 다행히도 <보통사람>은 그러질 않았다. 감독님은 장소는 여기이고, 시대 배경은 이쯤이고, 사건의 구성은 이러하니 알아서들 연기해보라는 식으로 촬영을하셨다. 배우가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준 것 같다.

손현주 등,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 작품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듯 하다.
물론이다. 우연히 시나리오를 제안받은 게 아니라, (손)현주 형이 출연한다고 해서 나에게도 대본 좀 달라고 했다. 현주 형과 작품 한 번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10년 전, 드라마 <타짜>를 할 때 현주 형을 처음 뵀다. 그때는 현주 형 집과 우리 부모님 집이 비슷한 동네여서 자주 만났다. 같은 작품에 출연한 상대 배우와 얘기를 나누는 시간은 늘 즐거워서, 그때도 형과 맥주 한 잔씩 마시며 여러 얘길 나눴다. 그런데 그게 벌써 한참 지난 얘기다. 언젠가 한 번쯤 영화에서 만나서 시간제한 없이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원하는 만큼 많은 대화를 나눴나.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내 역할이 안타고니스트(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현주 형과는 생각보다 많은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웃음) 대화보다는 기류로 소통하는 느낌이었다. 현주 형은 나보다 (김)상호 형과 훨씬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둘은 만담꾼처럼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실제로도 많은 의논을 했던 것 같다.

당신이 소화한 안기부 실장 ‘규남’은 민주화 세력을 폭력으로 굴종시키는, 전형적인 80년대 형 애국자다.
그렇다. 하지만 80년대의 정치나 이념을 주로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던 사람이 있다면, ‘규남’은 그 역할에 반대했던 사람이다. 서로 반대되는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가 누적돼 바로 지금이 됐다는 게 영화의 화두다. 비슷한 시대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국제시장>(2014)일 것이고, 또 다르게 표현한다면 <효자동 이발사>(2004)나 <친구>(2001)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규남’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보통사람> 시나리오를 읽을 당시쯤 안타고니스트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갓 40대에 접어들었을 때라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야 40대 중반, 후반에 들어서 더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뢰인>(2011) <순수의 시대>(2014) 등 이전에도 비슷한 역할을 소화했던 걸로 안다.
<의뢰인>의 ‘한철민’이나 <순수의 시대>의 ‘이방원’도 주인공과 대적하는 역할이었다. <보통사람>의 ‘규남’은 순서로 따지면 세 번째다. 그런데 과거 두 작품의 역할과 달리 전혀 격정적이지 않았다.

격정적이지 않다는 건.
말과 행동을 툭툭, 가볍게 던지는 방식으로 연기해도 되는 배역이라는 뜻이다. 의도적으로 강렬한 느낌을 주려고 하지 않아도, 현주형이나 상호형의 액션을 받아서 ‘슥’ 리액션을 하면 되는 식이었다. 상대의 연기에 내 연기를 얹어 놓듯 가는 거다. 이런 종류의 정적인 안타고니스트 역할도 표현해보고 싶었다.

극의 분위기를 주도하기보다는 동료 배우들의 연기에 자연스레 보조를 맞췄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렇다. 무언가를 많이 보여주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도 두 개 정도다. 왜냐하면 ‘규남’은 이미, <보통사람>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데 알고 보니 ‘규남’이 지시 했다거나, 반대로 ‘규남’이 어떤 지시를 해서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마치 <왝 더 독>(1998)에서처럼, 없는 전쟁도 만들어낼 듯한 기세로 말이다. 그런 캐릭터가 ‘내가 여기 있어!’라는 식으로 강렬하게 존재감을 부각하려고 들면 너무 과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저 상황에 맞게 앞에 있는 사람과의 호흡만 잘 맞춰줘도 충분하다고 봤다.

액션을 선보인다고 할 만한 장면도 딱 한 군데뿐이다.
본래는 총을 가지고 연기한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액션을 보여주기보다는 영화 초반부에서 ‘규남’의 폭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딱 한번 노출해서 임팩트를 주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면 그다음부터는 ‘규남’이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관객은 언제든 그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았다.

워낙 액션을 잘하는 배우인데.(웃음) 강점을 못 보여줘 좀 아쉬울 것 같기도 하다.
전혀! 전혀 서운하지 않다.

오. 단호하다.(웃음)
물론 난 액션을 좋아한다. 그리고 심지어 잘한다.(하하하)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노력했다. 정말로 이곳저곳 부러져가면서 연습했다. 근 20년을 그렇게 했다.(웃음) 그렇지만 ‘액션 배우’가 되고 싶지는 않다. 액션을 잘한다는 건 배우로서 하나의 장점일 뿐이다. 모든 작품에 굳이 집어넣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액션 스킬을 자랑할 수는 있겠지만 캐릭터는 산으로 간다.

액션 잘한다는 건 인정.(웃음)
남들은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울면서 배웠다니까.(웃음)

왜 그렇게까지.
내가 또 열정이 좀 있다.(웃음) 그것만큼은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보는 사람도 다 느낀다. 저 사람 열정이 식어 있는지 아닌지. 배우는 특히나 자기 연기를 남에게 보여주는 직업이다. 연기 기술은 잘 갖췄지만 열정이 식어 있는 것보다는, 연기는 좀 촌스러워도 열정이 느껴지는 게 훨씬 더 가치 있다. 그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복싱장도 열정적으로 다닌다.(웃음)

복싱은 스트레스 해소용인가.
당연히 선수 되려고 하는 건 아니고(웃음) 복싱 선수들과 같은 수준의 운동량을 소화하다 보면 그 사람들 마음을 알게 되는 것 같더라. 매일같이 라운드에 올라서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3분을 버티면 땀에 흥건히 젖는다. 정말 힘들다. 그런데 그걸 꾸준히 하면 마음이 정제되는 느낌이다.

정제된다는 건.
현장을 경험할수록, 배우로서 무수한 벽을 만난다. 난 전혀 다르게 연기했는데 다른 사람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한다. 똑같은 사람이 하는 연기이기 때문에 아무리 변화를 주려고 해도 쉽지는 않은 것 같다. 한 번에 훅훅 바뀌는 게 아니다. 그럼 장르를 바꿔볼까? 아니면 아예 내 가치관을 뒤엎어서라도 분위기를 바꿔볼까? 별생각을 다 한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럴 때 복싱이 힘을 주나.(웃음)
비슷한 의미다. 일단 라운드에 올라있을 때는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상대에게 맞지 않으려면 계속 상대를 관찰해야 한다. 그 순간에 집중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집중력을 그대로 영화 촬영 현장으로 가져가면 어떨까 싶더라. 분명히 내가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 거고, 그러다 보면 다만 조금이라도 얻어갈 것이 생길 것 같았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힘을 기르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자기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이 구축될 수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복싱을 오래 하다 보니 자꾸 이쪽 비유를 들게 되는데, 복싱 선수에게는 모두 전적이 있다. 30전, 몇 승, 몇 패 같은 기록 말이다. 전적이 누적되면 나름대로 자기 스타일이 생긴다. 아주 많은 경험이 누적되면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하게 될 수도 있다. 배우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나가면 나갈수록 자기만의 색깔이 쌓일 수 있다고 본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뭔가 뜨끈뜨끈한 감정이 전달되는 듯하다.(웃음)
아직도 드라마 <모델> 리딩 작업을 하러 여의도로 가던 길에 맡은 새벽 공기가 생생하다. 그때가 96년이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그 때 내가 첫 대사를 하기 위해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또렷하다. 실수한 것도 다 기억한다. 다른 선배들은 기름진 톤으로 대사를 하는데 난 또 앵앵대는 건 아닌가(웃음) 걱정도 하고. 참 안 잊혀진다. 먼 미래에는 혹시 내가 교만해질 수도 있겠지만, 데뷔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때가 떠오르는 걸 보면 지금은 결코 아니다.(웃음) 다시 한 번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들도 많고.

알려달라!(웃음)
드라마 <보이스>에서 김재욱과 호흡을 맞춰봤는데, 그 친구 열정이 대단하다. 씬에 막연하게 접근하는 게 아니라 대사 하나까지도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더라. 드라마 <추노>와 <뿌리깊은 나무>에서 함께한 조진웅도 좋다. 내가 어떤 연기를 툭툭 던져도 안정적으로 잘 잡아줄 수 있는 친구다. 그때 만난 (성)동일이 형도 그런 면에서는 최고다. 예전에는 내 액션이 나를 살려준다고 생각했는데(하하하) 이제는 상대의 리액션이 나를 살려준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좀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지금 언급한 목록에 절친 차태현은 빠져있다. 서운할 것 같은데?(웃음)
아이. 걘 절대 안 서운해한다. 드라마 <햇빛속으로>(1999)때 이미 같이 했다.

너무 오래전 아닌가.
어차피 걔가 영화를 찍으면 내가 카메오로 가고, 내가 영화를 찍으면 걔가 카메오로 온다.(웃음) 사실 태현이는 배우 대 배우가 아니라, 20년지기 친구로 봐야 한다. 걔랑은 같이 연기를 할 게 아니라 예능을 해서 여행을 다녀야 한다.

동의 된다. 나이 먹을수록 친구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까.
예전에 현주 형을 처음 만났을 때 “친구 많이 만나냐? 많이 만나라” 하는 말을 해주셨는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예전에는 친구들 만나서 맥주도 한 잔씩 하곤 했는데 지금은 만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예능에 한 번 출연해도 태현이가 있는 곳에 가려고 한다. 아니면 (김)종국이가 있는 곳이라든가.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만날 수 있다.(웃음)

꼭 그런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뭔가.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고 능력을 개발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 배우는 누군가에게 캐스팅 당하는 사람이고, 캐스팅 당하려면 관객이 찾아줘야 한다. 또 어떤 걸 도전해볼까? 누구를 연기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임해서 자신을 세일즈해야 한다. 앞서 당신이 말하길, 배우는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사회적 시스템이나 관습에 덜 얽매여 있다고 했는데, 그렇기는 하지만 배우 역시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매여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다.
의미 있는 이야기다.
내가 출연한 작품의 대본이나, DVD를 모아두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다시 보다 보면 그때 내가 저런 생각을 했었나? 하게 될 때가 있다. 분명 내가 했던 생각인데 한동안 떠오르지 않았던 것들이다. 과거에 했던 생각을 지금 다시 받아들여서 소화하고, 또 과거로 보내고, 그런 방식으로 내 색깔을 쌓아 나가고 싶다.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면.
많은 배우가 있지만, 나 어릴 땐 영화배우 하면 로버트 드 니로, 아니면 알 파치노였다.(웃음) 그 위로 말론 브란도가 있고, 그 아래로 숀 펜이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한쪽은 이쪽 저쪽에서 재능을 펼쳐보인 배우고, 다른 한쪽은 한 분야를 굉장히 깊숙이 파고 들어간 배우다. 누구 한 쪽이 더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다. 스타일이 다른 거니까. 나는 두 배우의 길을 모두 걸어보고 싶다. 어떤 쪽으로 방향을 한정 짓지 않고 새로운 능력을 개발해 나가려고 한다. 그러려면, 당장 지금 하는 작품의 배역을 설득력 있게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할 테고.

‘규남’과 <보통사람>이 많이 사랑받길 바란다.
물론이다. 잘 돼야 좋다. 그런데 내 영화뿐만 아니라 개봉하는 모든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다. 영화인들은 다 같은 ‘영화밥’을 먹는 거다. 나도 지금은 <보통사람>을 개봉하지만 다음 번에는 또 뭘 찍을지 모른다. 전반적으로 영화 자체가 잘 팔리고 극장에 사람이 넘쳐나야 다양한 장르적인 영화도 만들어질 것 아닌가. 나는 그때를 위해서 실력을 더욱 열심히 갈고닦겠다.(웃음)

마지막 질문.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그건 진짜 명확하다. 아이들 자라는 걸 보는 게 제일이다. 영화 <대부>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알파치노가 맡은 캐릭터가 보여주는 건 결국 쓸쓸한 죽음이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살았던 남자인데 정작 가족은 자기 뒷모습만 보고 있었던 거다. 그걸 보면 생각이 참 많아진다. 영화 촬영 현장도 참 좋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아주 많이 한다. 그동안 그렇게 못해왔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결국 준비한 종이와 펜은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역시 이미지 메이킹 용도였군.(웃음)
아니야 아니야. 몇 번 쓸 뻔했다고.(웃음)

마냥 진지한 줄만 알았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꽤 유머 감각이 있다.
원래는 유머 있는 사람이고, 그 중 진지한 면도 있는 거다. 그런데 데뷔하고 한 3년 정도 진지한 이미지를 고수했더니 이후에는 아무리 유머를 보여줘도 다들 진지하다고만 한다. 무게감 있다고들 하는데, 내가 뭐… (망설이다가) 바벨은 아니니까.

헐. 아재 개그. 성급히 인터뷰를 마무리하겠다.
(하하하)고생했다.


2017년 3월 30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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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sidus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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