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오빠가 되다니 <대립군> 여진구
2017년 6월 1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너라면 오빠라고 부를 수 있어” 사심 가득한 누나 팬들의 장난스러운 농담을 즐겁게 받아주던 소년 여진구가, 올해로 스물한 살이다. 생소한 변화가 피부로 감지된다. 난생처음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때만 해도 회식 자리에서 사이다 잔을 들었지만, 이번에는 진짜 술잔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갓 입학한 스무 살 대학 새내기에게 진짜 ‘오빠’ 소리를 듣는 게 가장 오묘하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아역 ‘이훤’이 영화 <대립군>의 ‘광해’로 성장하는 동안 생긴 일이다.

시대극 <대립군>에서 ‘광해’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 그간 다양한 작품에 등장한 ‘광해’와 어떤 점이 다른가.
‘광해’라는 역할 자체는 관객에게 굉장히 익숙한 존재지만, <대립군>의 ‘광해’는 그간 묘사됐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이다. 신분만 왕세자일 뿐, 왕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시절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대립군이라는 평범한 백성에 의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해나간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밑바닥 백성 ‘토우’(이정재)를 만나 유약한 모습을 버리고 왕의 면모를 갖춰간다는 점이 특색 있다.
기존의 왕 캐릭터는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비범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대신들을 상대하곤 하지 않나. 하지만 내가 맡은 ‘광해’는 주도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 하는 인물이다. 대립군이라는 백성을 만난 후에서야, 마음속에서 여러 종류의 감정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극 초반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애초부터 시나리오에 어둡고 생기 없는 캐릭터로 묘사돼 있었다. 그런 ‘광해’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참 다행인 게(웃음), 험난한 산지를 오르는 고난의 여정을 이어가다 보니 너무 고단하고 힘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연기에 초췌함이 묻어나더라. 촬영 회차가 늘어날수록 몰골이 점차 안 좋아졌다.(하하하)

이 산, 저 산을 옮겨 다니며 촬영한 탓에 배우들의 원성이 자자하더라.(웃음)
나보다 선배들과 스탭들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많이 편집됐지만 내 경우에는 가마를 타고 다니는 신이 꽤 많았다. 한동안 편하게 다녔다.(웃음)
주변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미안했을 것 같은데.(웃음)
그래서 가마를 타기 전에는 최대한 식사를 안 하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더라. 밥이 너무 맛있다.(웃음)

먹는 걸 워낙 좋아한다고 들었다.
워낙 잘 먹는다. 먹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편식도 안 한다. 맛있는 것들을 남긴다는 게 아깝다.(웃음) 그래서 음식을 가리는 사람을 보면 내가 다 아쉽다. 내가 같이 먹어주고 싶다.(웃음)

선배들과 연기 호흡은 어땠나. 이정재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장면은 다섯 번 정도 촬영했을 거다. 처음에는 소심하게 팔을 휘둘렀는데 자꾸 NG가 나니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에이 모르겠다!’ 하는 심정이 됐다. 화면으로 보면 많이 티가 안 나지만 실제로는 이정재 선배 턱이 휙 돌아갈 정도로 세게 때렸다. 아마 선배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려웠을 거다. 웃을 수도 없고, 화낼 수도 없고…(웃음)

연기니까 이해했을 거다.(웃음)
다행히 다른 연기와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게 같이 모니터해주셨다.(웃음)

선배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내가 한 일에 비하면 늘 과도할 정도로 잘 챙겨 주셨고, 예뻐해 주셨다. ‘광해’의 호위무사 역할을 맡았던 배수빈 선배는 실제로도 옆에서 항상 나를 지켜 주셨다.(웃음) 이정재 선배는 촬영을 갓 시작하던 초반에 한 번 제대로 인사를 드린 것 외에는 뵐 기회가 거의 없어서 좀 아쉬웠다. 식사때마다 뵙긴 했지만 촬영 내용상 나는 무리의 맨 뒤에 머물러있고, 선배는 맨 앞에 서 계셔서 늘 선배가 걸어가는 뒷모습만 바라봐야 했다.
이정재를 보고 ‘무섭다’고 했다던데?(웃음)
처음 현장에서 뵀을 때가 잊히지 않는다. 영화에서만 보던 선배가 눈앞에서 대본 리딩도 하고, 미팅도 하는 걸 보니 얼마나 멋있던지. 그러다가도 내 앞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친해진 것 같아) 기분도 좋아지고 말이다.(웃음) 그런데 일단 촬영에 돌입하기만 하면 선배 인상이 확 달라져 버리는 거다.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낯설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건 김무열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나랑 같이 천진난만하게 운동 얘기, 먹는 얘기를 하다가도 슛 들어가면 갑자기 욕을 하고! 그게 형의 본모습인가?(하하하)

그들의 연기에서 배울 점이 많았겠다.
맞다. 정윤철 감독님이 미션을 주실 정도였다. 이정재 선배의 눈빛을 한번 빼앗아와 보라는 거다.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하면서도 미세한 감정을 전달하는 선배 특유의 눈빛 말이다.

성공했나.
아니. 제대로 안 된 것 같다.(웃음) 어떻게 하면 그런 눈빛을 연기할 수 있냐고 물으니 이정재 선배가 웃으면서 “너도 나이 들면 이렇게 돼” 하시더라.(웃음) 그 말이 맞는 것 같긴 한데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선배들에게 연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조언을 받을 기회도 많았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선배들께 상당히 많이 의지했다. 나는 연기에 관한 질문이 많은 편이다. 질문할 때도 특별히 망설이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꼭 무언가를 묻지 않아도, 선배들의 연기를 보면서 감정을 다잡으면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편안하다. 선배들과 같은 상황을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몰입이 더 잘 된다.

개인적으로도 많이 가까워졌겠다.
음. 내가 선배들한테 더 잘 해드려야 하는데… 애교가 많질 않다. 먼저 다가가는 게 어렵다. 먼저 다가가고 싶다.(웃음) 어릴 때부터 선배들과 연기하기 시작해서 그런지, 평소에는 장난도 잘 치고 수다스럽게 굴다가도 촬영 현장에 가면 진지해지는 것 같다.
앞으로는 후배도 조금씩 생겨날 텐데.(웃음)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행사 때문에 여대 한 군데를 다녀왔는데, 진짜 후배들이 생겨서 ‘오빠’라고 부르더라. 느낌이 아주 독특했다.

어떻게 독특하던가.(웃음)
그동안은 나보다 나이 많은 누나들이 장난스럽게 ‘오빠’라고 부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상대방과 좀 더 친근해지는 느낌도 들고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분들이 진짜 오빠라고 부르는 상황이 와버렸다. 정말 느낌이 오묘하다.(웃음)

나이를 먹으면서 연기에 대한 마음가짐도 조금씩 달라지는지.
확실히 달라졌다. 성인 배우와 아역 배우 시절을 완벽히 구분해서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어릴 때는 그저 재미있다는 생각으로 연기를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슬슬 욕심이 나기 시작한다. 내가 맡고 싶은 캐릭터가 생기고, 실제로 맡으면 책임감도 느껴진다. 내 연기가 누군가를 실망시킬 수도 있다는 것도 느낀다. 다른 선배들처럼 나도 좀 더 전문적인 연기자가 되고 싶다. 여진구라는 이름을 걸고 말이다.

그 외에 달라진 것들이 있다면.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 ‘화이’)때 함께 했던 선배와 <대립군>에서도 호흡을 맞췄는데, 감회가 남달랐다. ‘화이’ 때만 해도 내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회식 자리에서 사이다나 콜라를 따라 놓고 ‘짠’을 했는데(웃음) 이번 회식 자리에서는 내가 직접 그 선배께 술을 따라드릴 수 있었다. 같이 ‘짠’도 했다. 어른이 돼서 새로운 작품에서 다시 만나 같이 술잔을 기울인다는 게 새로웠다. 덕분에 촬영 끝난 후에 고된 몸을 이끌고 소주 한 잔 마시는 매력을 알게 된 것 같다.(웃음)

술이 좋아졌나 보다.(웃음)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대립군> 선배들과 회식을 하면서 술맛을 알았다. 촬영이 끝난 후 고된 몸을 이끌고 산속에서 선배들이 따라주는 막걸리나 소주를 한잔하면 정말 좋다.(웃음) 하지만 잘 마시진 못한다. 소주 반병에서 한 병 정도가 주량인 것 같다. 아직은 주사가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수준이다.(웃음) 취하면 꼭 잠이 드는 걸 보면, 술기운을 잘 못 이기는 것 같긴 하다. 앞으로 좀 더 마셔봐야 할 것 같다.(하하하)
주도적으로 작품을 고르는 편인가.
늘 그랬다. 내 의견이 가장 중요했다. 좀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작품 선택에 좀 더 신중해졌다는 거다.

어떤 이유에서.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작품을 고르기 위해서다. 고등학교 때 나름대로 고충을 겪었다. 연기에 대한 의욕은 높은 상태인데, 말 그대로 의욕만 앞서고 표현은 제대로 못 했다. 내가 연기한 모습을 화면으로 보면 자연스럽지가 않더라.

<내 심장을 쏴라>(2014)나 <서부전선>(2015)을 촬영할 때쯤인가보다.
함께 작업했던 분들께는 정말로 죄송하지만, 그때가 맞는 것 같다. 그때 내 연기에 대한 후회가 많았다. 아쉽기도 하고. 그 후로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 것 같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시도를 해야 하는 작품에 끌린다.

누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만큼(웃음) 멜로 장르는 어떤가.
그런 장르는 아직 낯설다.(웃음) 내가 멜로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부담감까지는 아니지만, 더 잘 해낼 수 있는 준비가 됐을 때 연기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물론 생각 같아서는 20대 초반에만 할 수 있는 청춘멜로도 찍어보고 싶긴 하다.

언젠가 가슴 아픈 사랑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기를 하다 보니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그 감정을 확실하게 느껴볼 기회는 없는 것 같다. 알콩달콩한 사랑도 좋지만 절절하고 아픈 사랑도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달달한 사랑부터 해보는 걸로…(웃음)
휴식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어릴 때부터 워낙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잘 못 참는다. 어딜 가고 싶다거나, 무언가를 만들어 먹어보고 싶다거나 하면 무조건 다 해야 한다. 운전면허도 따서 <대립군> 촬영장에 갈 때도 종종 내가 직접 차를 몰고 갔다. 매니저는 끝내 안 타려고 했지만.(웃음) 안전벨트를 맸는데도 항상 옆 손잡이를 잡고 계시더라.(웃음)

그러면 당신이 더 불안해질 텐데!
그러니까 말이다! 그래서 맨날 뭐라고 했다.(웃음)

어린 시절부터 배우로 활동해왔다.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다양한 제약도 따랐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도 있다. 특히 학창시절에 연애를 제대로 해보지 못한 것! 내가 남고를 가면 안 됐었던 건데…(웃음) 고등학교 때 다른 친구들이 봄, 가을마다 떨어지는 꽃 같은 걸 보면서 헤벌쭉해 있는 모습을 보면 그게 정말 부러웠다. 난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웃음) 그런데 대학생이 됐는데도 미팅이 안 들어온다. 동기들한테 나도 끼워달라고, 편하게 생각해 달라고 얘기했는데도 전혀 제안이 안 들어온다. 희한하다.

당신이라면 당신을 미팅에 끼워 주겠나!(웃음)
음.(하하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나 보다.
일단 성적으로 보면 절대 우등생은 아니고, 동기 도움을 많이 받는다. 겨우겨우 재수강을 면하고 있다.(웃음)
최근에 본 영화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정말 재밌게 봤다. 나도 ‘스타로드’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어졌다.(하하하) 그동안 마블 시리즈는 팬 입장에서 관람했다. 어떻게 저렇게 오락적이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었지?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데 ‘가오갤’ 시리즈는 처음으로 나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다.

히어로물은 워낙 CG가 많이 동원되는 작업이라 배우들은 항상 상상력을 풀가동해야 한다고 하더라.(웃음)
상상력은 내가 또 괜찮다. 내 멋대로 상상력이라 좀 그렇지만.(하하하)

요즘 가장 행복한 순간은.
4월과 5월을 굉장히 바쁘게 지냈다. 보통은 촬영기간엔 촬영만, 홍보기간엔 홍보만 집중하는데 최근에는 드라마 촬영, 영화 홍보를 병행했다. 피곤하고 지치기도 하지만 많은 팬을 만나고 바쁘게 지내는 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7년 6월 1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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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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