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아니면 연기할 수 없는 배우 <박열> 최희서
2017년 6월 29일 목요일 | 김수진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김수진 기자]
사형 선고 확률 99%인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아나키스트 ‘박열’과 그의 아내 ‘후미코’에게 만큼은 통하지 않을 이야기다. 재판장에 들어선 그들의 떳떳한 모습에서 풍기는 이질감. 이를 되려 매력으로 승화시킨 작품이 있다. 바로 이준익 감독의 신작 <박열>이다.

<박열>의 중심에는 진짜 일본인인가 싶을 정도로 유창한 회화를 구사하며 ‘후미코’로 완벽 변신한 배우 최희서가 있다.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굳세고 당당했던 ‘후미코’의 마음을 자신이 감히 헤아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고 털어 놓는다. 답변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연기 철학이 느껴진다. 최희서는 진심이 아니면 연기할 수 없는 배우다.


실제로 보니 훨씬 예쁘다.(웃음)
감사하다. 화장을 해서 그렇다.(웃음) 화면 속 모습이 더 나았는지 <박열>에선 비비크림만 바르고 나왔는데도 그 모습이 더 좋았다는 분도 있었다. 감독님에게 말했었다. 빈민촌에 사는 청춘들이 신문을 팔거나 오뎅집에서 일하는데 얼굴이 말끔해서야 되겠냐고. 비비크림만 바르고 출연해야 (후미코의) 고됨을 충분히 전할 수 있을 것 같더라.(웃음) 더군다나 옆에서 이제훈 오빠는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몇 시간째 열연을 펼치는데 나만 감독님에게 “아이라인만 그리면 안될까요”라고 하기엔 너무 눈치 없는 짓 같고.(웃음)

이준익 감독의 <동주>(2016)에 이어 <박열>까지 출연한 것도 모자라, 주연까지 맡게 됐다. 부담감은 없었는지.
오히려 ‘후미코’라는 캐릭터가 주는 부담감이 컸었다. 촬영장에선 주연이라는 타이틀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가도 사무실에 들어가 캐스팅 보드를 보면 힘겨웠다.(웃음) 왜냐하면 보드 정중앙에 이제훈 오빠의 사진과 내 사진이 함께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정말 꿈만 같더라. 원래 내 자리는 항상 보드 변두리였는데... 그러나 촬영에 임할 때만큼은 주연이라는 생각을 버렸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길 까봐 겁이 났다. 연기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될 것 같더라. 특히 ‘후미코’처럼 자유분방한 캐릭터는 위축되면 안되지 않나. 항상 마인드컨트롤을 했었다.

이준익 감독이 일본어 구사 때문에 ‘후미코’ 역에 당신을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동주>에서 맡았던 ‘쿠미’도 어떻게 보면 ‘후미코’와 같은 집념이 있는데. 당시 내 연기를 보고선 감독님이 저 캐릭터를 연기하는 최희서라는 배우에게도 비슷한 뚝심이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신 듯하다. 거기에다 <동주> 촬영 당시 모니터로 항상 일본어 대사 체크를 했는데, 그때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열정이 가득하고 또 한번 마음 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는 성격이라는 걸 간파하셨던 것 같다.
VIP시사회 때 가족이나 친구들도 초대했을 텐데 어떤 말을 해주던가.
부모님은 평소 칭찬을 해주시는 편이 아닌데 이번 영화만큼은 “잘 봤다. 울었다”고 말씀해줘서 다행이었다. 어떤 친구들은 독립운동가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나키스트 부부 이야기 같다고 말하더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 작품은 독립운동가로서의 적극적인 면모보단 아나키스트로서 폭탄 투척 혐의를 받고 있는 ‘박열’의 수감생활을 좀 더 부각시켰다. 그래서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한편으론 러브스토리 같다는 평도 있더라. 어떤 평이든 한 작품을 놓고 다양한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게 되려 좋은 것 같다. 아무래도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하다는 말이니까. 물론 안 좋게 본 분도 분명 있을 테지만 무논리로 무조건 싫다고 하는 게 아닌 이상 취향을 존중하고 싶다. 아무쪼록 관객 분들이 우리 영화를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완성본은 언론시사회에서 처음 본 것인지.
언론시사회 하기 전에 CG효과와 음악이 들어가지 않은 가편집본을 봤었다. 완성본은 언론시사회 때 처음 봤는데, 일단 너무 좋다는 생각만 들더라. 사실 (이번 영화에서) 시나리오부터 캐스팅까지 많은 작업들을 도왔던 터라 완성본이 색달라 보이진 않았다. 편집된 신도 세 개밖에 없었으니까. 하물며 ‘박열’이 등장하는 신은 삭제된 게 아예 없었다. 특정 캐릭터의 신이 단 한 신도 편집되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는 건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런데 우리 영화가 그랬다. 또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의 경우, 시나리오에서부터 경쾌함이 묻어났지만 음악과 배우들의 앙상블로 인해 더욱 밝아졌다. 생각지 못한 먹먹함도 있었는데 마지막 신에서 나와 이제훈의 사진이 실제 ‘박열’과 ‘후미코’ 사진으로 오버랩되는 장면에서 찡해졌다.

촬영 기간이 짧았던 걸로 알고 있다.
하룻동안 열한 신을 찍은 적도 있었다. 물론 모든 배우가 그런 강행군을 치렀던 건 아니었고. 나와 이제훈 오빠 그리고 ‘미즈노’ 역을 맡은 김인우 배우가 특히 고생했다. 감옥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하루 종일 연기를 했어야 했다. 감옥이 등장하는 신을 한꺼번에 몰아서 찍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선을 더 잘 컨트롤해야 했다. 이런 부분을 제외하고는 촬영이 급박하게 진행된 적은 없었다. 감독님이 결정을 빨리 내리는 편이라서 뭐든지 신속했다. 배우들은 그저 자기 연기만 잘 하면 됐었다.

이준익 감독이 촬영하면서 어떤 말을 주로 해줬는지.
평소 촬영 도중에는 디렉션이 없으신 편이다. 반면 촬영 전에 캐릭터에 대한 논의를 배우들과 충분히 나누신다. 배우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고 이후 서로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미 상의를 거친 부분들만 반영되기 때문에 감독님이 특별히 코멘트를 더하는 일은 없었다. 전반적으로 배우들을 믿으신다. 물론 작품의 톤앤 매너에 대해서는 촬영하는 틈틈이 말씀해주셨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코믹한 분위기로 흐르겠거니 지레짐작은 했지만 배우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희화화하실 생각이셨는지 중간중간 영화의 톤앤 매너를 인지시켜주셨다.
‘박열’과 ‘후미코’가 마주칠 때마다 서로를 바라보며 찡긋하는 표정이 인상적이던데.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그건 나와 제훈 오빠가 만든 사인이다. 극중 ‘박열’과 ‘후미코’가 연인인데 그런 관계성이 드러나는 장면이 잦지 않다. 그래서 수감 생활로 인해 몸은 떨어져있지만 가끔 만날 때마다 주고 받는 은밀한 사인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아무래도 대사보다는 표정으로 보여주는 게 낫겠다 싶었고, 너무 자주 등장해도 안될 것 같아서 특정한 세 개의 신에서만 그 표정을 짓기로 했다. 감독님은 배우가 무언가를 준비해오는 것을 좋아하시는 편이라 흔쾌히 받아주셨다.(웃음)

이제훈과 호흡은 당연히 좋았겠다.
이제훈 오빠는 정말 훌륭한 배우다. 이런 대답, 사실 영혼 없어 보일 까봐 매번 말하면서도 걱정하는데… 정말이지 오빠는 상대배우가 연기할 의지가 없어도 저절로 감정을 느끼게 하는 힘을 가졌다. 많은 대사를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상대방에게 깊은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배우는 좀처럼 드물다. 그런데 제훈 오빠는 본인의 대사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대사와 감정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연기에 임하니까 가능한 거다. 덕분에 촬영하면서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제훈이 이 답변을 보게 된다면 영광스러워 할 것 같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을 거다. 하도 그런 말을 많이 하고 다녀서! 요즘 영화 때문에 수많은 행사를 동행하는데, 그때마다 칭찬하게 되니까… 물론 사적으로 고마움을 전한 적도 있었다. 원래 칭찬을 못하는 성격인데 ‘후미코’를 연기해서 대범해졌는지 촬영 쫑파티 때 제훈 오빠한테 악수를 먼저 청하고는 “오빠는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배우가 될 것 같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칭찬세례를 퍼부었다.(웃음) 어쩔 줄 몰라 하던 오빠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후미코’가 내 안에 남아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후미코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 같나.(웃음)
그런 것 같다. 기자 분들과 이야기할 때도 예전에는 얌전하게 말했다면 이제는 동지를 만난 것처럼 편하게 이야기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여성의 권리나 페미니즘 운동에 관심이 많지 않았는데 요새는 ‘왜 여성은 이런 부분에서 배제되지?’ 또는 ‘왜 여성은 이런 대우를 당연히 받아들여야지’ 하는 것들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자주 하게 되더라. 아무래도 ‘후미코’를 연기하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도 병행했기에 그런 듯싶다. 이젠 주변 사람들에게도 여성 인권의 중요성을 열렬히 설명하고 다닌다.(웃음)

주로 어떤 식으로 이야기 하는가.(웃음)
무조건 여성을 존중해야 돼! 라는 건 아니다. 그저 단순하게 여성과 남성이 같은 선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성별을 떠나 똑같은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여겨져야 하지 않겠나. 여성의 낮은 임금만 봐도 알 수 있다. 고질적인 사회 문제다. 그런가 하면 여성 전용 주차장은 굳이 필요할까 라는 생각도 든다. 이 역시 또 하나의 차별이니까! 이처럼 예전엔 무심코 지나 온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라. 이런 생각들은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평생 갈 것 같다. 이렇게 맡은 배역이 배우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후미코’를 통해 처음 느꼈다.
여성 영화가 가뭄인 시기에, 이준익 감독이 ‘박열’이라는 아나키스트 캐릭터를 앞세워 여성의 주체성을 잘 녹여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시기를 잘 만난 것 같다. 감독님이 <박열>이라는 작품을 20년 전부터 구상했다고 들었다. 2017년이 아닌 2007년에 선보였다면 지금과는 반응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그때는 비교적 여성의 주체성에 대해 고민하거나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니까. 반면 요즘엔 여성의 인권이 부각되고 있는 시점이고, 또 SNS의 효과가 상당하다 보니 반응이 다른 것 같다. 영화라는 매체가 사실상 한 사회의 트렌드를 선두하고 또 그 시대의 주요 토픽을 형성하는 중요한 존재 아닌가. 그런 맥락에서 <박열>이 관객들에게 좀 더 가치 있는 작품으로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후미코’가 ‘박열’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개새끼’라는 시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실제 ‘후미코’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박열’이 지은 ‘개새끼’라는 시를 읽었을 때 어떤 뜨거운 감정을 느꼈고 생전 본적이 없는 그와 남은 인생을 함께 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시에 투영된 그의 사상에 끌린 것이다. 이후 ‘후미코’가 친구에게 부탁해 ‘박열’을 소개시켜달라고 하는데, 자서전에서 그 대목을 읽는 내내 그와 만나고 싶어한 그녀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영화는 시간을 축약하는 매체라 극중에선 ‘개새끼’를 읽은 ’후미코’가 그날 바로 ‘박열’에게 들이대는 모습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실제 두 사람은 2개월이 지난 이후에 만났다고 하더라. ‘박열’이 ‘후미코’를 한동안 피했다고. 물론 영화만 봐서는 둘의 관계가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제 아무리 당당한 여성이라도 보자마자 동거 제안을?’이라고 의문을 품을 법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숨겨진 이야기를 추측하며 감상하다 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훈과의 애정신이 많지 않아서 보는 입장에선 다소 아쉬웠다.
본래 우리 영화의 기획의도는 ‘제국도 막지 못한 사랑’이었다. 지금 완성본은 그런 의도를 약간 희석시킨 것인데… 감독님은 본래 러브스토리를 기반으로 이번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사실 연기하는 배우들은 이 작품이 로맨스 물이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시사회 이후 반응들을 보니 많은 여성 관객 분들이 애틋한 사랑이야기 같아 좋았다고 말해주더라. 구체적인 애정신은 드러나지 않아도 작품 전체를 조망하다 보면 러브스토리를 본 듯한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역사 공부를 많이 했겠다.
정말 다양하고 또 방대한 양의 자료들을 읽었다. ‘후미코’는 자신의 짧았던 삶을 알릴 수 있는 방법으로 글을 택한 현명한 여자였다. 그녀의 자서전을 모두 읽지 않을 수가 없더라. 만약 그녀의 자서전이 없었으면 완전히 잊혀졌을 인물이었을 것이다. 읽고 또 읽고 문장 하나하나 음미하며 공부했다. 이외에도 재판기록을 살펴봤는데 사용된 일본어가 대부분 전문 용어라서 해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국내에서 ‘박열’과 ‘후미코’의 재판기록을 모두 번역한 사람이 없더라. ‘박열’과 ‘후미코’ 자체를 연구하고 있는 한국 학자조차도 많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일본어로 된) 재판기록 한 페이지를 읽는데 처음에는 거의 세 시간 걸렸다.

모처럼 수험생이 된 기분이었을지도.(웃음)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줄 알았다.(웃음) 그래서 더 재미있었던 걸 수도… 실제로 재판기록을 읽어보면 흥미진진하다. ‘박열’과 ‘후미코’가 당시 했던 말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예를 들어 어떤 날은 ‘박열’이 “몸이 좋지 않으니 오늘은 답하지 않겠네”라고 할 때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날 쓰여진 재판기록은 단 두 줄밖에 없는 거다. 또 ‘후미코’의 경우 “나는 오늘 생리통이 있어서 별로 답하고 싶지 않네”라고 말한다.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동시에 그들이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영화에 참여하기 전 ‘무정부주의’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였는지 궁금하다.
그다지 관심 있는 분야는 아니었다. 사회과학에 밝은 편이 아니었으니까. 전공은 언론홍보영상학과였는데 대학을 다니면서도 ‘내가 왜 사회과학을 배우고 있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통해 평전을 읽게 되었고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모로 깨달은 게 많았다. 실제로 아나키즘의 기원부터 설명하는 <아나키즘>이라는 책도 일부 읽어 볼 정도로 관심을 갖게 됐다.

아나키즘에 대한 지식 덕분에 ‘후미코’라는 캐릭터의 톤앤 매너를 비교적 수월하게 잡았겠다.
정말 그랬다. 극중 ‘후미코’가 장난스러운 면모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돌변해선 논리정연 하게 본인의 사상을 전달하는 신 같은 경우 큰 도움이 됐었다. ‘후미코’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모습들이 극중 자주 등장한다. 내겐 그런 모습들이 시나리오 상에서부터 매력적이게 다가왔고, 내가 느낀 바를 관객들도 똑같이 느꼈으면 해서 ‘후미코’의 상반된 성향을 확연하게 드러내는데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 ‘후미코’는 똑똑한 여성이지만 평소에 그녀를 모르는 사람들은 당차고 독특하고 동시에 감정적인 철부지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지식과 학구열이 내재돼 있다. 극중 ‘다테마스’에게 장난을 치다가 돌변해서 일장 연설을 펼치는 신에서도 그런 두 가지 면모를 모두 엿볼 수 있다. 또 윙크하다가도 갑자기 표정을 굳히는 다양한 모습들이 등장하는데 연기하는 입장에선 너무 재미있었다. 언제 이런 역할을 또 맡아 볼까 싶더라.

듣다 보니 이 질문 하고 싶어진다. ‘후미코’는 돌아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감독님은 ‘후미코’가 완전히 돌아이처럼 보여지길 원했다. 극중 “후미코는 정신감정 해봐야 돼”라는 대사도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보는 분들도 공감하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의 캐릭터를 구축해야 했던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성향의 ‘후미코’. 음, 돌아이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웃음)

돌아이 이야기 끝에 물어봐서 미안하지만,(웃음) 자신에게도 ‘후미코’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순 없지만, 비슷한 부분이 꽤 있다. 감정기복이 심하고 또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고집 센 성격이 비슷하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향도 내면에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 보면 여자 애들 놀리는 남자 애들이랑 자주 싸우고 그랬으니까. 거의 기본적인 기질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싶다. 다만 ‘후미코’가 표현하는 방식이 훨씬 거칠다는 게 다르다.

감정 표현에 있어서 힘들었던 신은 없었는지.
공판신이 다소 힘들었다. ‘박열’과 ‘후미코’가 사형선고를 앞뒀음에도 밝은 모습으로 재판장에 입장하고, 이후 자유분방하게 변론을 펼치지 않나. 그 장면들 자체가 내겐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솔직히 사람 목숨이 걸린 순간이 아닌가. 그럼에도 결코 굽히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 ‘후미코’를 내가 감히 얼만큼 파악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싶더라. 물론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쉽게 감을 잡기 어려웠다. 당시 그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어떤 결론을 내렸나.
일단 죽어라 대사 연습부터 했다. 그리곤 ‘박열’에게 ‘후미코’가 고백하는 신에선 내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고 연기해버렸다. 그 신만큼은 본능적으로 연기하고 싶더라. 1차, 2차, 3차 공판을 지난 뒤 4차 공판에 임할 때서야 고백하는 ‘후미코’의 마음을 실제로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과감히 내 자신을 믿고 찰나의 감정에 맡긴 채 연기했다. 이후 모니터를 해보니 계획하고 연기한 다른 신들보다 훨씬 진정성 있게 그려진 것 같더라.
이외에도 <박열>을 통해 연기자로서 배운 점이 많은 듯싶다.
그동안 조연만 맡아오다가 상업영화의 주연으로 발탁된 게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다 보니 촬영이 진행될수록 내가 과거에 했던 연기를 스스로 점검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더라. 비중이 큰 신이든 작은 신이든 차별을 두지 않고 책임감 속에서 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치면 촬영하는 내내 심적으로는 편한 날이 없었던 것 같다.

<동주>, <박열>에 이어 이준익 감독의 다음 작품에 출연할 계획은 없나.
논의된 바는 없지만… 지난 VIP시사회 때 한예리 선배가 와서 내게 팬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바로 감독님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그럼 네가 여자들만 대거 출연하는 작품의 시나리오를 써서 가져와봐라. 검토해보겠다”고 말씀하시더라. 제작을 맡으신다는 건지 연출을 하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하는 말인 것 같아 기뻤다. 감독님이 평소 이런 말씀을 하신 적 있다. ‘남탕 영화만 가득한 오늘 날 영화계 모습엔 우리 감독들의 책임도 크다’고. 감독님은 항상 다양한 아이템을 발굴하고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고자 하는 갈망에 가득 찬 분이다. 감독님이 “너와 한예리, 전혜진 등 좋은 여성 배우들이 한 작품에서 모인다면 난 그저 현장에서 너네 연기만 구경하고 있겠으니 알아서들 만들어 보라”고 말할 정도로 의지가 있으신 것 같더라. 여성 배우로서 너무 감사하다.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듣고 싶다.
우선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벗어 던지고 그저 배우로서 성장하고 싶다. 최희서의 연기가 더 보고 싶고 최희서가 연기하면 그 영화가 보고 싶어지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여기에 진정성 있는 배우로 기억되면 더 좋을 것 같다.(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행복했던 적은 언제인가.
요즘은 매일매일 행복하다. <박열> 홍보를 하면서 내 인생 처음으로 수많은 기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 영화를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너무 기쁘다. 또 ‘후미코’라는 캐릭터도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일정이 만만치 않아서 사실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마음만큼은 구름 위에 떠있는 심정이다.(웃음)

2017년 6월 29일 목요일 | 글_김수진 기자(Sujin.kim@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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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박광희 실장(Ultra Studio)

(총 1명 참여)
ektha97
연기 너무나 인상적이었어요. 앞으로도 좋은 연기 부탁해요!   
2017-07-1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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