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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시리즈는 감독이 아닌 배우의 작품” <재꽃> 박석영 감독
2017년 7월 5일 수요일 | 김수진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김수진 기자]
박석영 감독은 ”<들꽃>(2015), <스틸 플라워>(2016), <재꽃>(2017) 모두 감독이 아닌 배우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캐릭터와 스스로를 온전히 동일화 시킨 배우의 ‘진정성’이 그의 작품을 이끄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인터뷰 내내 배우들의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이어나갔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한 시간이란 한정된 시간이 야박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꽃 시리즈가 이제 마무리됐다.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다.
사실 마음이 어떤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막연히 끝나면 홀가분할 것 같고, 편안하고 자유로워 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게 생각만큼 따라와 주는 건 아니더라.(웃음)

VIP시사회에서 울컥하던 모습을 봤다. 만감이 교차했나 보다.
일단 마이크를 잡으니 그럴 듯한 말을 남겨야 할 것 같아 긴장했었다. 이전 시리즈를 끝마친 뒤에는 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은데, 이번 시리즈는 쉽게 말이 나오지 않더라. 그렇다고 지나온 날들이 힘들어서 그런 건 아니다.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쉽게 말로 정리되지 않았을 뿐이다. 거기에 관객석에 앉아 있었던 동료, 지지자 그리고 배우들을 보니 마음이 더 이상해졌다. 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뒤풀이를 가야 하는 데 어떡하지 라는 걱정도 했었고.(웃음)

도종환 장관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장관님은 시사회를 마친 뒤 김동원 선생님이라고 오랜만에 다큐멘터리 <내 친구 정일우>를 만드신 감독님이 계신데, 그 분과 우리 영화 뒤풀이 장소 근처에서 함께 계셨다고 하더라. 김동원 감독님도 마침 그날 GV를 끝마치셨다고 들었다. 독립영화계의 어르신이니까 장관님이 먼저 찾아간 듯하다. <재꽃>에서 어머니 역할 맡았던 은경 선배님은 뵌 것 같다. 지나가다가 장관님과 악수 나눴다고 무척 기뻐하더라. 아무튼 그날 장관님께서 일반 공무원들처럼 형식적인 축사는 생략하시고, 순수하게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전해줘 감사하다.

참석한 동료 및 가족들은 무슨 말을 해줬는지.
보통 시사회에 가족들은 부르지 않는다. 그런 자리에서 보여져야 하는 건 배우와 스태프라고 생각했다. 우리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과 스태프를 필요로 할 감독님이나 제작자를 위한 자리를 우선적으로 마련하고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그런 마음으로 시사회에 참석했었다. 솔직히 영화의 흥행을 기대하긴 힘드니, 그런 식으로나마 배우와 스태프를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더라.
흥행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예상 스크린 수는 어느 정도인가.
일단 CGV아트하우스와 이야기 중이다. 3, 4개 정도 마련해주지 않을까 싶다.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에선 13개 정도 확보됐다. <스틸 플라워> 때는 총 17개였고 <들꽃> 때는 16개였다. 이번에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 영화에 대중의 마음을 끌 대단한 스타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의 상업적인 기획 또한 없었기 때문에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스크린 수를 늘리는 데 의지가 없는 건 아니다. 최선은 다해보겠다. 하지만 우리 영화를 숫자로만 판단하고 싶진 않다.

공교롭게도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점령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독립예술영화의 배급 그리고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의 건강성이다. 내가 알기엔 대부분의 독립예술영화 배급사들은 빚더미에 앉은 지 오래 됐다. 벼랑 끝에 있다는 말이 적당할 것이다. 하물며 전용관이라고 다르겠나. 그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현실에서 이번에 <옥자>가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차지한 것은 지극히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강릉 거주자는 <옥자>로 인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신영극장’이라는 극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이곳에서 다른 영화도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옥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낙관적으로 바라본다는 말인가.
이번 일은 정말 특별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누가 또 봉준호 감독처럼 넷플릭스와 손 잡고 <옥자>와 같은 영화를 찍겠나. 설령 있다고 해도 넷플릭스 혹은 대형 배급사 NEW가 이번처럼 똑같이 일을 진행할지는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아무튼 모처럼 온 기회이니 <옥자>를 통해 군소 극장 공동체를 좀 더 확장시키고 홍보 또한 됐으면 한다.

멀리 보면 군소 극장 홍보효과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에 걸린 작품들은 피해가 있을 텐데.
봉준호 감독님도 의도한 바는 아닐 것이다. 그분도 그저 변화의 시대 속에 살고 있는 하나의 영화감독일 뿐이다. 독립예술영화인들이 <옥자>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보다 앞서 말했듯이 <옥자>가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거대한 멀티플렉스다. 도무지 깰 수 없는 양극화, 건강하지 않은 극장 생태계를 하루빨리 변화시켜야 한다. 사실 오랫동안 비슷한 일을 겪어와서 나 같은 독립영화인에게 이번 일은 특별하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천안함 프로젝트>(2013), <다이빙 벨>(2015)을 틀었다는 이유로 극장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금조차 모두 끊은 일이 있지 않았나. 그때를 생각하면 현 상황은 과대평가된 편이다.

그렇다면, 독립예술영화계의 건강성을 위해 필요한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일단 앞서 말했듯이 군소 극장이 살아야 한다. 독립영화인으로선 그간 극장을 지켜내지 못한 연약함에 미안할 뿐이다. 제발 한 명이라도 <옥자>를 보기 위해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투자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상황이 아니다.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은 어느 나라에서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앞으로 국가 차원의 정책적인 지원이 탄탄하게 보장된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많은 관심 가져달라.
이제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우선 꽃 시리즈가 처음부터 기획된 게 아니라고 들었다.
그렇다. 우선 <들꽃>(2014)은 거리의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시작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완성시키고 나니 결국 아이들의 불행을 내가 이용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들꽃>으로 조수향 배우가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탈 때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게 옳은 건가 고민에 빠졌었다. 그러다가 해운대 바닷가에서 문득 한 장면이 떠오르더라. 어떤 아이가 일을 하다가 쫓겨 나는데 울지 않고 담담히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스틸 플라워>를 만들었다. <스틸 플라워>를 마무리를 하고 나선, 또 다른 욕심이 생겼다. 결과적으로 (<스틸 플라워>가) 나와 정하담 모두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 됐고, 또 세간의 인정을 받았지만 이런 것들과 상관없이 이젠 ‘하담’이라는 캐릭터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는 모습이 보고 싶더라. 두 편의 시리즈를 제작하는 3-4년 동안 ‘하담’이라는 캐릭터가 맘 편하게 웃지도, 쉬지도 못했구나, 내가 그렇게 만들었구나 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재꽃>을 만들게 된 것이다.

<스틸 플라워>와 <재꽃> 사이에 ‘하담’에겐 어떤 일이 있었나.
어떤 사건이 있는 건 아니다. ‘하담’이가 바닷가에서 거센 비바람을 맞고도 다시 굳건하게 일어나는 모습을 <스틸 플라워>의 마지막 장면으로 구성했다. 촬영을 모두 마친 뒤 ‘하담’이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스스로 생각해보았다. 상상해보니 아마 그녀는 다시 허름한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옷을 말리고 촛불을 바라보면서 아빠를 만나러 갔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더라. 세상의 거친 풍파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만큼은 지켜내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지면서 말이다. ‘하담’이는 촛불 속에서 어린 시절 자신과 만났고 그게 바로 이번 영화의 ‘해별’이다. ’해별’이는 ‘하담’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해별’이가 길을 잃고 떠나려 할 때 ‘하담’이가 고민 없이 찾으러 달려나간다. 아이를 찾는다는 것은 곧 (하담이) 과거의 '나'를 구하고자 하는 의지다. 그렇게 ‘하담’이가 촛불 속에서 본 자신의 어린 날의 기억으로 <재꽃>은 시작됐다.

결국 <재꽃>도 ‘해별’의 이야기가 아닌 ‘하담’이의 이야기인 것인가.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유일하게 잘한 게 있다면 영화 세 편을 만드는 동안 한눈 팔지 않고 오직 한 아이만 바라봤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못났지만 열심히 ‘하담’이의 모진 삶을 따라다녔다. 이제 <재꽃>으로 ‘하담’이라는 캐릭터를 확실히 보낼 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

<들꽃>에서는 세 명의 소녀 ‘수향’, ‘은수’, ‘하담’이 등장한다. ‘하담’과 여정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하담’이라는 캐릭터 자체에 마음이 갔다. 세 배우의 특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들꽃>에서 ‘수향’과 ‘은수’는 ‘하담’과 달리 마음을 지키는 법을 알고 있던 친구들이었다. 스스로 어른이 돼 버린 것이다. 그리고 <들꽃>의 마지막 신에서는 ‘하담’이만 등장하는데 아마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하담’이와 함께 다음 편까지 가보자고 마음 먹게 된 것 같다.

정하담이라는 배우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마음이 부드럽고, 정직한 사람이다. 촬영하다가 (하담이의 연기에 대해) 의심스러운 게 있다면 내가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할 정도니까. 가장 이해하기 쉬운 사람이 정하담이다. 거짓을 말하는 걸 힘겨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친구다. 나로선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의 헌신을 매 작품마다 보여줬다. (<스틸 플라워> ‘하담’을 연기할 때) 촬영 전부터 하담이가 한달 넘게 거지 옷을 입고 밤거리를 돌아 다니기도 했다. 극중 길거리 소녀 ‘하담’의 마음을 알아야 했으니까. 당연히 실제 촬영장에선 별다른 디렉션이 필요치 않았다. 한 달 동안 거리를 돌아다녔던 그 모습과 느낌 그대로 카메라 앞에 섰기 때문이다. 길거리 아이들의 삶이 그 눈빛 속에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 난 이러한 노력들이 결코 어디서 배운 행동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담이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에게 미안하다고 매번 이야기한다. ‘하담’이를 좋아했지만 좋아하는 만큼 표현하지 못해서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학대하면서까지 ‘하담’의 모습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대단하더라. 이는 연기자로서 자의식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하담이라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가진 ‘연민’의 감정이 유난히 강하기에 그렇다.
다행히 <재꽃>에선 정하담이 편하게 연기했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 하담이가 편하게 나오니까 비교적 쉽게 연기 했겠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고생을 많이 했다. 촬영을 하지 않을 때도 하담이가 밤마다 시골길을 뛰어 다니고 그랬다. 왜 그러냐고 물어 보면 자신이 ‘해별’이를 정말 사랑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너무 미안하고 ‘하담’이라는 캐릭터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하더라. 사실 형식적으로 안아 주고 위로하는 연기는 무척 쉽다. 그러나 하담이는 진심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고려하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배우다. 정말 인간적이지 않나. 이렇게 ‘하담’은 온전히 정하담이라는 배우의 진정성을 통해 빚어진 캐릭터인 것이다. 세 편의 시리즈 모두 그랬다. 특히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어른들에게 상처 입은 ‘해별’을 감싸던 ‘하담’이 외쳤던 대사인 “열한 살이에요!”라는 말은 하담이가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다. 네 감정대로 연기해보라고 했더니 그런 대사를 만들어 냈다.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말이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20분짜리 영화를 찍는 내내 조금의 디렉션도 없었다니 당신도 대단하다.
동선의 최소치를 이야기 하는 정도였다. 사실 하담이와 작업하기 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다. 그럴만한 이유도 없었고. 디렉션을 하지 않는다는 건 무례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담이는 달랐으니까 과감히 디렉션을 하지 않았던 거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예의 있게 접근하려는 이 아이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더라. 언제 꺾일지 모를 황야의 꽃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선 채 아련하면서도 아릿하고, 불안한 순간들의 연속을 겪은 느낌이었다.

‘해별’ 역의 장해금의 연기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하담이와 비슷한 오디션 과정을 거쳤고 함께 하게 된 이유도 유사하다. 어린 아이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니 매번 놀랐었다. 연기 천재라는 말도 있지만 하담이와 해금이는 천재보단, 그저 스스로의 마음에 정직하고 타인에 대한 연민이 깊은 친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하는 동안 서로 작게나마 배려하는 모습이 두드러졌었다.

예를 들면?
탭 댄스를 추기 앞서 ‘하담’이가 ‘해별’이에게 탭 댄스 신발을 신겨준다. 롱테이크 숏으로 길게 등장하는데, 계획된 신은 아니었다. 내가 억지로 영상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여튼 그 장면은 하담이가 해금이에게 신발을 너무 느리게 신겨 준 탓에 길어졌다. 찍는 동안 속으로 ‘조그만 빨리 신겨줬으면!’할 정도였다. 나중에 하담이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해금이 발이 아플까봐 천천히 신겨줬다는 거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번엔 해금이가 하담이에게 자신의 신발을 신겨 주는 바람에 더 길어졌었다. 기껏 해야 120분짜리인 영화에서 이러면 될까 싶었다. 이 또한 해금에게 물어보니 ‘언니가 맨발로 땅에 서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아서 그랬다’고 말하더라. 이런 모습만 봐도 이 친구들이 어떤 마음으로 작품과 캐릭터에 임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경력이 출중한 배우들 못지 않은 연기를 펼치는 두 친구를 보고 있으면 감독으로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
우선 어떤 작품이든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배우들이 만든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시나리오는 정말 거지같다. 나는 배우들이 구축한 캐릭터의 언어와 분위기 그리고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서는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완성본을 보면 내 영화지만 늘 처음 보는 것 같다. 연기하는 배우들을 볼 땐 언제나 제3자의 입장으로 목격하는 기분이었고, 이상하리만큼 모든 시간이 다큐멘터리처럼 다가왔다. 세 편 모두 내 작품이라는 자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극중 ‘하담’과 ‘해별’을 통해 성인 관객들이 깨달았으면 하는 게 있나.
‘해별’이가 상처를 입고 텐트 안에 숨어있던 신이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위로와 애정은 모두 이런 단계를 밟아야 된다고 생각한 장면이었다. 신에 대해 말하자면, 삐쳐 있던 ‘해금’이 자신을 찾아 뛰어온 ‘하담’에게 “뛰어왔어?”라고 묻는다. 숨이 차 보이니까 뱉은 말이다. 그러자 ‘하담’은 “아니야”라고 답한다. 그럼에도 ‘해금’은 끝까지 묻는다. “왜 언니, 나 때문이야?”라고 말이다. ‘하담’는 절대 아니라고 계속 부정한다. 자신의 감정은 접어두고 서로를 걱정하는 ‘하담’과 ‘해별’이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이런 따뜻함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작게 위로하는 법, 작게 사랑을 시작하는 법을 누구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 아빠, 엄마가 없다고 하면 왜 그런 거냐고 먼저 묻기 바쁜 게 요즘 사회다. 가슴 아프다.

그 말에 심히 공감한다. 분위기를 바꿔서, 극중 김태희와 박명훈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들의 앙상블로 인해 이전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는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일단 관객 분들이 캐릭터에 애정이 있기에 그들의 앙상블이 웃음 포인트가 된 것 같다. 일부러 활기를 의도하지는 않았다. 이번 영화의 등장인물들을 설정할 때,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최소한의 능력과 감성만 갖도록 했다. 이유는 이들 중에 누구도 악인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서였고, 또 선명한 형태의 캐릭터가 아니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런 사람들조차 결국 아이를 돌보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으니까. 우리의 현실이 그렇기도 하고 말이다. 특히 여성보다 남성 캐릭터들은 한층 만만하게 보이도록 노력했다. 반면에 여성 캐릭터는 약간의 잔머리를 굴릴 줄 아는 정도로만 설정했다. 내가 시골에서 자랐는데 어렸을 때 봐온 주변의 형이나 아저씨의 모습을 반영하려고 했다. 선하고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지만, 그들마저도 마지막엔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정당성만 찾다가 말이다.

정은경, 박현영, 박명훈, 김태희 모두 경력이 상당한 배우들이라서 정하담과 장해금을 대할 때와는 달랐겠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작업했다. 전문 연기자들이니까 존중했다. 나로서는 감사한 경험이었다. 특히 ‘명호’의 캐릭터는 감이 잡히지 않아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를 만만하게 보이고 희화화시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컸었다. 박명훈 배우 스스로도 어려워했고 말이다. 그러다가 아무 것도 없는 ‘명호’에게 ‘해별’이란 아이가 마치 첫사랑처럼 눈앞에 나타난다면 어떨까? 라는 상상을 시작으로 하나하나 구축해나갔다. 바보 같은 모습으로 보이도록 말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명호’의 이런 감정도 사실 솔직한 감정은 아니다. ‘해별’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니까.

‘하담’이 이외에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누구인가.
어머니 ‘삼순’ 역할을 맡은 은경 선배다. 그분은 절대 어려운 말씀을 안 하는 분이고 카메라도 신경 쓰지 않는 배우다. 오랜 세월 자신이 맡아온 인물의 감정에만 집중하면서 살아온 배우다. 그래서 선배님이 나온 장면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나 또한 후반부 ‘삼순’의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혼란한 그 상황 속에서 ‘하담’이와 ‘해별’이를 발견한 어머니가 그들을 향해 유일하게 다가오는 캐릭터다. 정말이지 놀라운 리액션이었다. 연배가 가장 많으시고 연극을 오래하신 분인데, 여태껏 그런 연기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은경 선배와 관련된 일화를 하나 더 말하자면, 극중 등장하는 시골집이 세트장이 아니었다. 폐가를 구해서 집처럼 꾸몄다. 한달 동안 연기자, 스태프 할 것 없이 수시로 폐가에 들러 고쳤었다. 사람이 사는 것처럼 살림살이도 채웠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 손떼가 묻은 집처럼 보이지 않더라. 그래서 나와 김태희, 하담이 세 명이 방 하나씩 잡고 폐가에서 며칠 동안 살았었다. 같이 밥도 해먹고 정원도 키웠다. (나 빼고) 다들 시골에서 산 적이 없어서 살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뭔가 부족했다. 그리고 대본 리딩하는 날, 은경 선배님이 내려오셨다. 모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선배님이 어머니 의상으로 갈아 입고선 툇마루에 앉아 계셨다. 자연스럽게 파리를 잡으시는데 그때서야 집처럼 보이더라. 마법 같았다. 아… 드디어 찍을 수 있겠다 싶더라. 결국 모든 집의 중심은 어머니였던 거다.

정은경 선생님에게도 이 말을 전해줬는지.
나중에 무슨 생각으로 역할에 임하셨냐고 물으니까 “구체적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지 않았다. 그냥 내 집이라고 생각했다”고 말씀하시더라.

박현영은 감독 출신이다.
현영 선배와도 (하담이만큼)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왔다. 단편 영화 감독이라서 항상 생각이 많다. 무엇보다 마지막 신에서 현영 선배가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데 대단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개인의 품성과는 상관없이,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돌리려고 하지 않는다. ‘현영 선배는 역시 감독의 생각을 꿰뚫는 배우’라고 생각했었다. 캐릭터를 이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순 없겠다 싶더라.

후반엔 등장인물 모두가 피해자처럼 그려지는데, 감독이 생각하기에 가장 아픈 캐릭터는 누군지 궁금하다.
현영 선배가 연기한 ‘진경’이다.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곧 나 스스로에게 던지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진경’처럼 우리도 잘못을 쉽게 저지르며 살고 있다. 너무나 쉬워서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진경’이 가장 공감되고 또 아픈 캐릭터다.

마지막으로 최근 행복했던 적은 언제인지 알고 싶다.
VIP시사회 때였다. 시사회 이후 뒤풀이에서 좋아하는 감독, 스태프, 배우들과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던 그 시간이 행복했다. 많은 독립영화인들도 찾아와 3부작을 마무리했다고 케이크에 촛불을 꽂아왔더라. 하담이와 함께 그 촛불을 불었는데, 순간 마음이 너무 편안해졌다.

2017년 7월 5일 수요일 | 글_김수진 기자(Sujin.kim@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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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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