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매료시키는 타고난 이야기꾼 <옥자> 봉준호 감독
2017년 7월 6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옆구리를 콕- 하고 살짝 찌르면 기다렸다는 듯 흥미로운 이야기보따리를 툭툭툭 풀어놓는다. 페미니즘이 부흥하기 한참 전부터 소녀 ‘미자’와 암퇘지 ‘옥자’를 구상한 일, ‘희한한 애들’(?)이라고 평가한 넷플릭스와 만나게 된 계기, 도살장 취재 당시 경험한 경악할만한 사건들, 해외 유수의 영화제와 유명 영화인들과의 에피소드까지… 독보적 콘텐츠와 적절한 유머로 듣는 사람의 흥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은근슬쩍 자신에게 빠져들게 만드는 봉준호 감독, 사람을 매료시키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인터뷰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가 우연히 누군가 당신의 말을 통역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른 오전부터 외신과 인터뷰 중이었던 건가.
토론토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카메론 베일리 진행으로 북미 관객과 화상으로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했다. 토론토에 다녀올 시간이 도저히 나질 않아서 말이다. 그들이 소유한 벨 라이트박스에서 ‘더블 피처’라는 개념으로 <옥자>를 상영한다. 예를 들면 <옥자>와 <살인의 추억>, <옥자>와 <괴물>, <옥자>와 <설국열차> 같은 식이다. 그 후에 진행한 GV였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자리에서?
그렇다. 베를린국제영화제 당시 <설국열차> GV도 이런 방식으로 진행했다. 상당히 재미있는 게 (스마트폰을 꺼내 셀카 모드로 자신을 비추며) 계속 이런 상황으로 진행된다는 거다.(웃음) 그럼 외국 극장에 있는 거대한 화면에 내 얼굴이 나온다. 가뜩이나 머리가 큰데…(후후후)

북미 관객이 한국 서울의 한 카페에 앉아있는 당신의 모습을 본 거군!(웃음)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고, 그들은 스크린에 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서로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셈이다. 실상은 서로 낄낄대면서 즐기는 거다.

외국 개봉과 관련된 이벤트가 꽤 많을 것 같다.
앞서 말한 ‘더블 피처’같은 특수한 형태의 개봉 일정이 계속 잡혀있다.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무대인사를 끝내고 나면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가 소유한 L.A의 극장으로 간다. 그분은 워낙 영화광이라 본인이 직접 2주에서 3주 단위로 상영 프로그램을 짜는데, <옥자>도 2주간 상영하기로 결정했다. 단, 그 극장의 원칙은 영화를 꼭 35mm 필름 프린트로 상영해야 한다는 거다. 아마 쿠엔틴 타란티노 본인이 상영 이후에 남게 될 필름을 보관하게 될 테니까 군침을 흘리고 있겠지.(후후후) <옥자>는 디지털 4K로 찍었는데 그곳에서 상영하기 위해 35mm 필름 프린트를 다시 만들었다.(웃음) 그 외에도 링컨센터 개봉을 앞두고 있다.

출국 전까지 국내 GV 일정도 상당수 잡혀있는 걸로 안다. 상당히 바쁜 일정이다.
그래 봤자 잠깐이다.(웃음) 3~4년에 영화 한 편 찍는 거니까.

아무래도 <옥자> 홍보에 이전보다 손이 더 많이 가는 상황일 텐데.
개봉관이 많지 않으니까 몸으로라도 때워보려고 열심히 홍보하는 중이다.(웃음) 나도, 촬영을 맡은 다리우스 콘지 감독도 지금 같은 상황을 어느 정도 예측했고, 미리 각오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극장을 마련해보려고 했다. 사실, 스트리밍 영화 기준으로 보면 지금도 상당히 많은 극장에서 개봉하는 셈이다. 특히 L.A나 뉴욕, 토론토를 합쳐도 10개 관 밖에 안되는 북미 상황에 비하면 한국 상황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마치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어’와 ‘물이 반이나 남았어’의 차이 같기도 하다.(하하하)
그 이상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중랑천에 흘러 떠내려가는 널빤지처럼 그저 흐름을 타고 가는 거다.(후후후)

으응? 중랑천?
너무 조악한 비유를 해버렸나.(웃음)

<옥자>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역시 넷플릭스와의 첫 만남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단계적으로 한 번 짚어볼까? <옥자> 시나리오는 2015년 3월에 완성했다. 시나리오를 본 프로듀서들은 아마 걱정부터 왕창 앞섰을 거다. 배경은 뉴욕이고, 틸다 스윈튼은 이미 출연을 결정한 상태고, 그 정도 레벨의 배우가 서너 명 주르륵 나올 테고, 게다가 돼지가 뛰어다니고…!(웃음)
배우 출연료에, CG비용에…
일단 대체 돼지가 몇 컷이나 나오는지 하나하나 세어봤을 거다.(웃음) 크리쳐 CG가 엄청 비싸서 한 컷이 늘어날 때마다 영화 예산이 널빤지처럼 뛴다. <라이프 오브 파이>(2012)에서도 관객은 내내 호랑이를 본 것 같지만 실상은 127컷밖에 안 나온다. 감독과 프로듀서가 예산에 따라 출연 빈도를 조절하는 거다.

<옥자>에서 ‘옥자’의 비중은 상당히 큰 편 아닌가.
사실상 주인공이다. 내 전작인 <괴물>(2006)의 괴물보다도 훨씬 많이 나온다. 더군다나 ‘옥자’는 ‘미자’와 같이 살고, 같이 돌아다니기까지 하니까 아무리 못해도 300컷은 나오게 돼 있다. CG 비용을 포함해 예산을 계산해보니 대략 오천만 불(한화 576억) 이상 나오더라. 그 이하로 줄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 돈을 쾌척(!)해줄 투자자가 절실했겠다.
일단 한국 투자자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면 <옥자> 때문에 다른 한국 영화가 ‘올스톱’ 된다. 한마디로 민폐다. <설국열차>때도 친한 후배 감독들에게 ‘쿠사리’를 먹은 적이 있거든.(웃음) 당시 예산이 400억가량 필요했는데 “아 형은 (그렇게 예산이 큰 작품은) 외국 가서 해야지! <설국열차> 투자를 할지 말지 결정해야 우리 작품 투자 여부도 ‘그린라이트’가 떨어진다고!” 라는데 정말 미안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정말 미안했겠다.
“(의기소침하게) 아니… 해외에서 해보려고 했는데… 여의치가 않았어. 미안해”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웃음) 그런데 <옥자>는 그보다도 더 큰 예산이 필요한 영화였다. 한국에서 해결하려고 투자자를 들쑤시고 다니면 한마디로 ‘대형 민폐’였다. 아시아권, 유럽권에서도 그 정도 규모의 영화를 소화한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미국으로 갔다. 그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많은 스튜디오를 만났을 것 같다.
일단 <옥자> 시나리오를 좋아한 투자사는 대부분 아트하우스 전문이었다. 코엔 형제니, 폴 토마스 앤더슨이니 하는 작가주의 감독의 작품을 주로 제작하는 회사였다. 200억에서 300억 정도의 예산 안에서 감독이 원하는 대로 연출하게 해주는 거다. 반응은 한결같았다. “시나리오도 좋고 같이 하고 싶은데… 예산이 얼마라고?”(하하하)
500억!(웃음)
결국 “우리가 담당하는 영화 예산은 최대 300억 까지다. 미안하다” 하는 답이 돌아온다.(웃음) 워너브러더스나 파라마운트처럼, 500억 예산 정도는 껌값이고 심지어 그런 돈 문제에는 별로 관심도 없을 정도로 큰 제작사도 찾아다녀 봤다.

반응이 어떻던가.
시나리오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더라.

어떤 이유에서?
도살장신을 꼭 찍어야 하는 거냐, ‘알폰소’(‘옥자’와 비슷한 유전자 조작 돼지)신은 너무 불편하다, ‘옥자’도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게 디자인됐고 소녀 ‘미자’도 상당히 귀여워서 북미의 가족들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디즈니처럼 만들어보는 건 어떠냐… 등등. 그런 장면에 네 주제의식이 들어 간 거냐고 묻길래 “YES!” 라고 대답했다.(웃음)

뭐라던가.
아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 하더라.(흐흐흐)

봉준호, 잘가~(웃음)
<옥자>는 돈 없는 애들(?)은 좋아하는데 돈 많은 애들(?)은 불편해하는 영화였다. 그 두 제작사 사이의 중간 어디쯤에 난처하게 끼어있을 때 마침 넷플릭스가 나타난 거다.

당신에게 넷플릭스를 소개한 사람이 있었을 것 같은데.
<옥자>의 공동 제작을 맡은 플랜비에서 넷플릭스를 강력 추천했다. 일단 조건이 좋았다. 시나리오를 단 한 줄도 바꿀 필요가 없었고, 감독이 최종편집권을 갖는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그리고 ‘R-rate Approval’(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 승인)까지 보장했다. 감독에게 최종편집권을 줘도 특정한 관람 등급이 나오도록 강권하면 연출자에게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게 없었다. 도살장에서 창자로 줄넘기를 해도 돼! 하는 분위기였다.(후후후)
창작자에게 그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겠다.
완전 쿨한데?(웃음) 싶었지. 넷플릭스는 여러모로 특이하다. 한국 스트리밍용 자막을 만들 때도 본사가 지사에게 ‘욕을 순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한다. 틸다 스윈튼이나 제이크 질렌할이 F로 시작하는 욕을 많이 하는데, 그걸 굳이 ‘씨발’, ‘존나’ 이렇게 강한 자막으로 써달라는 거다. 그래서 극장용 자막보다 넷플릭스 스트리밍 버전 자막이 훨씬 세다. 틸다 스윈튼이 하는 대사가 “존나 맛이 있어야지!”라고 번역되는데 보는 우리(한국 사람)는 오히려 ‘약간 어색한데…?’ 싶고.(웃음) 대체 이게 무슨 컨셉인가 싶었지만 그런 방식이 넷플릭스 고유의 프로토콜이라고 하더라.

넷플릭스가 일하는 방식은 여타 기업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걸로 정평이 나 있다.
어쨌든 난 즐겁게 찍었다. 작업 끝까지 전혀 어떤 압박이나 강요가 없었다. 이 정도 큰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작품에서 감독이 백프로 전권을 갖는 건 미국에서도 상당히 드문 경우다. 행운이었다.

행운인 건 분명해 보인다. 다만 넷플릭스와 일하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도 분명히 있었다.
나나 촬영감독은 골수 영화쟁이다. 큰 스크린에 대한 동경이 여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기반 사이트다. 그러니 극장에서 상영하려면 넷플릭스를 설득해야 했다. 일단 영화 촬영을 무사히 마친 후 배급을 해야 할 때 최대한 애를 쓰는 양동작전(웃음)을 썼다. 다행히 넷플릭스가 우리 입장을 잘 이해해줘 한국 극장가에서는 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개봉할 수 있었다.

미국, 영국에 비해 한국의 <옥자> 개봉 조건이 훨씬 너그러웠던 모양이다.
미국, 영국은 대체로 2주 정도로 상영 기간을 제한했다. 한국은 기간 제한이 없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난제와 암초가 있었지만 말이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도 600억가량의 예산을 투자하고 극장 개봉까지 ‘협의’해준 걸 보면 당신의 작품을 통해 기대한 바가 있을 것이다.
어떤 전략은 분명히 있겠지만 창작자인 나에게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다. 다만 추론해본다면, 자신들이 스트리밍 사이트인 동시에 ‘영화’를 만드는 집단이라는 걸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을 거다. 그래서 칸국제영화제에서 <옥자>를 상영하자는 연락이 왔을 때도 엄청 좋아했다. 담당 인원도 많이 배치하고 말이다. 당시 마틴 스콜세지가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가 함께 출연하는 넷플릭스 영화를 촬영할 예정이었는데 그런 사실도 적극적으로 알려 주고 싶어 했다.(웃음) 영화 스튜디오로서는 후발주자인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우리도 영화를 만드는 거야” “우리도 영화라니까?”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웃음)
칸국제영화제 상영에 대한 프랑스 극장가의 불만 토로,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의 상영 보이콧 등 많은 고비를 넘기고 드디어 <옥자> 개봉을 맞았다. 소감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밤 12시에 스트리밍이 시작되고, 아침에는 관객들이 대한극장을 찾아가는 상황이 왔다. 약간 몽롱~한 느낌이다. 술 한잔 하고 꽃밭을 걷는 묘한 느낌?(후후후)

어째서인가.(웃음)
넷플릭스 영화는 손익분기점이라는 개념이 없다. 야쿠르트 아줌마나 OO 신문 지국처럼, 매달 전 세계 9천만 명 정도 되는 가입자에게 돈을 걷는 정액 시스템이다. IPTV만 해도 어느 영화의 매출이 가장 높은지 비교하는 성적 그래프를 공개하는데 넷플릭스는 그런 게 없는 거다. <워 머신>이 얼마를 벌었는지 <옥자>가 얼마를 벌었는지, 심지어 클릭 수가 얼마인지도 공개하지 않는다. 나도, 프로듀서도 모른다. 일단 업로드를 하면 며칠 사이에 두 번, 세 번 보는 회원도 있고 한참 잊고 지내다가 몇 년 뒤에 처음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참 희한한 시스템이다.(웃음)

전통적인 방식으로 개봉해오던 감독 입장에서는 상당히 생소한 경험이겠다.
이 엄청난 해방감, 안 겪어본 분은 절대 모른다.(웃음) 감독과 프로듀서는 영화 한 편을 개봉하면 주말 박스오피스를 보면서 달달 떤다. 대박까진 아니더라도 일단 영화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건 누구든 싫지 않겠나. 아무리 아트하우스 감독이어도 제작비는 회수하고 싶다. 그럼 맨날 영화진흥위원회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하는 거다. “아씨… 벌써 상영관 많이 내렸네” 하는 식으로.

조바심 날 일이 없어진 셈이다.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추천한 플랜비의 제레미 클라이너 프로듀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자기도 개봉 첫 주말이면 눈알이 시뻘게져서 박스오피스 모조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넷플릭스와 일한 후에는 그러지 않아도 돼서 해방감이 엄청나다고. <워 머신>을 찍을 때 정말 좋았다고 말이다. 근데 정작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속으로 ‘아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빨리 영화 찍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만 급급했지.(웃음)

관객에게 얼만큼 선택받고 사랑받았는지 알 수 있는 지표가 전혀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궁금하지 않겠나.
앞으로 5년이나 10년쯤 지난 뒤에 내가 넷플릭스 회사 관계자와 친해지면 “(속삭이며) 야, 그때 그 성적표 좀 가져와 봐” 해볼 순 있겠지. 내부에서는 자기들끼리 공유하는 성적 그래프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 내외신의 평가, 관객의 후기가 호평을 이루고 있다. 특히 ‘채식’하면 아직은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는 한국 문화에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는 작품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더 필요할 수도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육식을 반대하진 않는다. 영화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붉은색 고기를 먹는 양이 현저히 줄었고, 계란이나 유제품과 해산물 위주로 섭취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안이 됐지만, 여전히 특별한 상황에서는 고기를 먹는다. 그러니까 <옥자>가 육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채식’을 강권하는 영화는 아니다. ‘미자’도 맨날 닭백숙을 먹지 않나. 그렇다고 이 아이가 닭과 돼지를 차별하는 것도 아닐 테고.(웃음)

그래서 더 현실적인 것 아닌가.
우리 모습도 비슷하니까 말이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동물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런데 동시에 스테이크도 맛있게 먹는다. 삼겹살도 맨날 먹는다. 품에 애완견을 안은 채로 마트에서 안심이나 등심을 집어 카트에 넣는다.(웃음) 그렇다고 이런 상황 자체에 문제를 삼으면서 철학적인 고민을 하기엔, 인간의 삶도 너무 힘들지 않나.

인정.(웃음)
인간은 서로 다 이해한다. 동물을 사랑하면서 육식을 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걸 말이다. 단지 극영화 감독으로서 관객이 목격하게 하고 싶었던 건, 동물이 마치 핸드폰을 찍어내듯 대량생산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요즘 우리가 먹는 닭은 평생 A4용지 한 장만한 공간에서 몸 한 번 돌리지 못한 채 알만 낳다가 죽는다. 비정상적인 스트레스가 온몸에 쌓여 독이 되고, 그걸 인간이 먹는 거다. 당연히 인간에게도 안 좋다. 상당히 최근에 벌어진 일이다.

동물 인권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렇게 키워진 걸 먹는 인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옥자> 촬영 준비 단계에서 콜로라도의 도살장을 방문했는데, 거대한 파이프라인을 통해 하루에 5천 마리가 도살되더라. 마치 자동차 공장처럼, 아주 정교하게 개발된 도축 기계가 존재한다. 0.1초 만에 소의 가죽을 ‘촥!’ 하고 벗긴다. 그 소리는, 정말로 스펙터클하다. 가죽이 피부에서 순식간에 분리되는 그 소리는 도저히 내 입으로는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초현실적이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 너무나 잔인하다.
더욱이, 그 기계를 개발한 기술자가 있고 개발팀이 있다는 거다. 얼마나 많은 동물 실험을 했겠나. “어? 이렇게 하면 가죽이 잘 안 벗겨지네?” 하면서 말이다. 그들에게 높은 인건비와 연구비를 책정한 CEO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옥자>의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루시 미란도’같은 사람이다. 과거에는 그저 자연스러운 육식이던 것이 이제는 돈의 문제, 비즈니스의 문제가 돼버린 거다. 돈을 버는 방법 중에도 가장 병적이고 안 좋은 방법이 바로 대지 위에서 살아 움직이던 동물을 콘베이어 벨트 시스템에 편입시킨 일이다. 관객이 그런 상황을 목격하게 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였다.
그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미자’와 ‘옥자’가 정을 쌓아나가는 과정부터 차근차근 보여준 것인가.
그렇다. ‘미자’와 ‘옥자가 산속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며 그들에게 정을 붙인 관객이, 돌연 그들이 수난을 겪는 걸 보는 흐름이 필요했다. 그런데 미국의 대형 스튜디오는 ‘그런 걸 찍을 거냐’고 묻다니, 말이 되는 질문인가?(웃음) 그 얘기를 하려고 <옥자>를 만든 건데.

관점이 달랐던 모양이다.(웃음) 아우슈비츠를 연상시키는 도살장 시퀀스도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인간이 동물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도록 만들려면, 인류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고난의 이미지를 차용해야 했다. 꼭 유태인이 아니어도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인간이 겪은 수난은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어두운 도살장 주변에 철조망이 둘러져있고 그 속에 수만 마리의 소가 있는 곳은 아우슈비츠 이미지를 차용했다. ‘옥자’가 실험실에 끌려 들어갈 때는 731부대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받은 인상을 투사하려고 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지만 전작에서는 보기 어렵던 따뜻한 분위기도 함께 감도는 게 <옥자>의 특징일 것이다.
이번에는 인간을 공격하는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 보호해줘야 할 것 같은 사랑스러운 존재를 그려보고 싶었다.

<괴물>로 보여준 봉준호 특유의 스산함이 다소 약해지고 대중성과 오락성에 중점을 뒀다는 평가도 있다.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어둡고 쓸쓸한 잔상이 더 강해졌다는 평가도 있고, 전작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밝고 동화적이라는 분도 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설국열차>보다는 훨씬 오락적이고 대중적이다. <괴물>에 비해서는 스산한 느낌이 많이 줄었다고 본다. 훨씬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다.
그건, 우리 어머니 탓이 크다.(하하하)

에?(웃음)
<마더>(2009)와 <설국열차>를 만들고 어머니한테 한소리 들었거든. “너 애가 왜 이렇게 어두워졌니!”(하하하) 결과적으로 ‘미자’와 ‘옥자’가 겪는 수난이 있기 때문에 마냥 밝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무게를 잡으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옥자>가 보여주는 색감이나 밝기도 내 영화 중 가장 알록달록하다. 돼지를 중심으로 분홍색 계열을 사용하고, ‘미란도’ 그룹을 보여줄 땐 주로 연두색을 사용한다. 환경친화적인 척하는 기업들이 연두색에 엄청 집착한다.(웃음) 실제 모델로 삼은 회사도 있다.
어딘가.
미국 변호사가 얘기하지 말라고 해서…(후후후) 그래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다 나온다. 최근 유럽의 제약회사와 합병을 했다. 실제로 유전자 조작 관련 사업으로 상당히 유명한 곳이다. 서울에 지사도 있다. 그 회사를 주제로 한 단행본도 많고… 아아, 더 얘기하면 변호사의 질책을 받을 것만 같으니 그만 하자.(웃음)

적극적으로 그 회사를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는 외침 같은데.(웃음)
(입모양으로) OOO. 나 얘기 안 한 거다.(후후후) 영화에서 미란도 그룹이 고용한 사권력 ‘블랙초크’가 나오지 않나. 그 회사가 실제로 벌인 일을 묘사한 거다. 통유리로 돼 있는 회사 입구도 영화와 똑같다. 카운터에는 사람이 없고, 밖에서 내선 전화를 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맨날 환경단체가 쳐들어와서 기습적인 시위를 벌이니까 방문객 자체를 좋아하질 않는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입구가 녹색의 향연이다.

말을 듣고 보니 ‘미자’가 온몸으로 돌진해 통유리를 깨부숴버리는 장면이 영화의 핵심 이미지처럼 느껴진다.
그 장면을 <옥자>의 상황을 압축하는 장면으로 꼽는 트위터 글도 봤다. ‘미자’는 허들을 뛰어넘는 애가 아니라 허들을 부수면서 가는 애라는 거다.(후후후) 시나리오를 쓰고 찍을 때까지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편집실에서 촬영 장면을 쭉 훑어보니 알겠더라. ‘미자’는 계속 무언가를 격파한다. 처음 집을 나설 때 돼지저금통을 팍 깨버리고, 미란도 직원으로 출연한 <박열>의 최희서 배우가 건네는 항공권 판넬도 부숴버린다. 안서현이 그런 이미지에 참 잘 어울리는 얼굴이다.

<괴물> <설국열차>에서도 소녀 주인공을 선호했지만,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이 부흥한 상황에서 공개된 <옥자>를 해석하는 시각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소녀 ‘미자’의 돌파라는 이미지가 상당히 트렌디하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그런 질문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 주인공 영화 7개를 묶어서 피처기사를 쓰는 데 <옥자>가 포함된다거나, 안서현에 대한 피처기사가 나온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영화 한 편을 준비하는 데 최소한 3년에서 4년이 걸린다. 발상이나 구상 단계부터 따져보면 훨씬 더 길다. <옥자>도 2010년부터 구상해 7년 만에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설국열차>도 8~9년 정도 걸렸다. 그렇게 보면 개봉 시기의 트렌드를 예측하고 미리 그에 맞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당신의 필모그래피에서, 또 사회적으로 <옥자>가 유효하게 해석되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살인의 추억>(2003) <괴물> <마더>에서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소녀 주인공을 항상 희생시켰다. 그러다가 <설국열차>에서는 오히려 고아성을 살려 기차 밖으로 나오게 했다. 생존으로 마무리한 거다. 그렇다면 <옥자>에서는 모든 걸 다 때려부수면서 돌진하는 소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찍으면서 상당히 후련했다. 안서현은 고생했지만.(웃음)
소녀의 진화라고 봐도 무방하겠다.(웃음) 봉준호 작품에서 이제 소녀는 뗄 수 없는 이미지가 된 듯하다.
그래 봐야 아직 6편밖에 안 찍었다.(웃음) 10~15편 정도 넘어가면 소위 말하는 시그니처 같은 게 생길지도 모르겠다. 뉴욕에서 마틴 스콜세지와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눌 영광스런 기회가 있었는데, 벌써 <택시 드라이버>(1976)를 찍은 지 40년이 넘었다고 하더라. 그런데도 2017년에 여전히 현역으로 촬영을 하고 있다니 정말 존경스러웠다. 작품 수를 세어 보다가 포기했다. 나도 저 나이까지 영화감독으로 살아남아 있을 수 있을까? 걱정된다. 아직까지는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며 안갯속을 헤매는 수준이다.(웃음)

적은 분량이지만 최우식이 연기한 캐릭터도 인상적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 그러니까 봉준호 이후의 세대가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최우식, 되게 귀엽지 않나?(웃음) 정색하고 변혁을 외칠 것 같진 않은데 매사 비아냥거릴 것 같은 느낌이다.

적절한 표현이다.
“헬조선? 떠나면 그만이야~” 할 것 같은 느낌.(웃음) 내 세대에서는 꿈꿔보지 못한 결심인데, 그걸 가차 없이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 같다. 아마 내 세대 관객이 보기엔 좀 낯설 수 있는 캐릭터다. 윤제문이 소화한 캐릭터가 바로 내 세대 아닌가. 두 사람이 트럭에 타 있는 장면에서의 그 극명한 대비란...(후후후) 최우식 입장에서 윤제문은, 변희봉보다는 훨씬 어리지만 마찬가지로 꼰대다. 그리고 개저씨다.

세계관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웃음)
윤제문은 트럭에 탈 때부터 ‘어으~’ 하는 이상한 추임새를 내면서 할 필요도 없는 말을 한다. “트럭이 왜 이렇게 높아?” 같은 식이다. 그럼 트럭이 높지 낮아?(웃음) 최우식은 아예 거기에 대답을 안 한다. 말 섞기가 싫다는 거지. 그게 참 웃긴데, 서글프기도 하다. 나는 이미 중장년층으로 진입해가고 있는 윤제문 세대니까.

(웃음 만발)
그래서인지, 최우식 같은 캐릭터에게 느끼는 매혹이 있다. <해무>(2014) 제작자로 프랑스 파리 시사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와 같은 줄에 앉은 독특한 한국 청년을 만난 적이 있다. 어리고, 귀엽고, 굉장히 해맑고, 체구도 작고 뽀얀 느낌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프랑스로 망명을 했다고 하더라.

망명?
종교 문제도 있었고, 군대도 가기 싫고, 아마 추측건대 성적 지향과 관련된 문제도 있었던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그런 저런 이유로 망명을 잘 받아준다고 하더라. 그런데 굉장히 재미나게 살고 있었다. “모든 게 좋아요!” 하는 분위기다.(웃음) 우리 세대에게는 그런 인간 유형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분명 실존하고 있다. 최우식에게 투사한 이미지가 바로 그때 그 청년이다. 큰 역할은 아니고 어찌 보면 비현실적인 캐릭터일 수도 있지만, 의외로 그런 인물이 가장 현실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찍어봤다.

역시, 봉테일!(웃음) 묻고 싶은 질문은 산적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다 돼 간다. 마지막으로, 요즘 가장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아마존에서 배송된,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블루레이 포장을 찍- 하고 뜯을 때!(웃음)


2017년 7월 6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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