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라는 고민에 대한 해답의 열쇠 <여자들> 이상덕 감독, 최시형
2017년 8월 2일 수요일 | 김수진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김수진 기자]
<여자들>의 작가 ‘시형’은 왜 글을 써야 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진 인물이다. 이에 대한 해답의 열쇠는 그와 우연히 마주친 다섯 명의 여성들에게 있다. 언뜻 한 남성의 욕구를 충족하는 판타지로맨스 같은 영화는, 사실상 오늘 날 모든 청춘의 처절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소박한 인간승리 드라마다. <여자들>로 첫 장편 데뷔를 한 감독 이상덕, 그리고 7년 만에 연기를 시작한 배우 최시형과의 진지한 대화 끝에 얻은 결론도 영화가 던지는 감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시사회라서 긴장했겠다.
이상덕 감독(이하 ‘이’) : 긴장을 많이 했다. 다행히 기자 분들이 까다로운 질문은 피해주셔서,(웃음) 잘 마친 듯싶다.

최시형(이하 ‘최’) : 나 같은 경우엔 영화를 오랜만에 봐서 감회가 새로웠다. 각 배우들과 단시간에 만나 작업을 진행했기에 오늘처럼 모든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인 적이 없었다. 이런 자리를 통해 다시 보니 반갑더라.

촬영 이후 개봉까지 시간이 꽤 흘렀나 보다.
최 : 마지막 촬영일을 기준으로 하면 1년하고도 수개월이 지났다. 첫 촬영을 기준으로 하면 2년 정도 됐고.

이 : 그렇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된 이후를 기점으로 해도 국내에서 작품을 선보이기까지 시간이 꽤 흐른 셈이다.

제 42회 서울독립영화제와 제 31회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에서 호평을 들었다고.
이 : 생각보다 좋은 평을 해줘서 감사했다.

주로 어떤 평을 들었나.
이 :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에서 들었던 몇몇 평들이 기억난다. 일본 분들은 평가를 하기보다 자신의 감상평을 말해주는 편이다. 소설 같다거나 각 챕터들의 각기 다른 색깔이 마지막 부분에서 연결돼 인상적이라는 평을 해줬다. ‘시형’의 여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면 그런 감상을 느낄 수 있나 보다. 사실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이지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 기로에 서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바라본다면 감상이 남다를 듯싶다.
배우 입장에서 완성본을 처음 봤을 때 어떤 감상이 들었나.
최 : 앨범을 보는 듯했다. 사계절이 모두 담겨 있는 앨범 말이다.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
이 : 후반 작업을 할 때까지는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다만 지금 생각해보니 제작비가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 싶더라. 장소 섭외 같은 부분이 아쉬웠다. 그러나 평소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신념을 갖고 있어서 후회하진 않는다.

최 : 7년 만에 배우로서 작품에 참여한 거다. 초반보단 뒤로 갈수록 나의 연기가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연기라는 게 단기간에 노력한다고 해서 느는 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더라.

이 : 내 생각은 다르다. 초반의 연기도 괜찮았다! 형이 오랜만에 연기를 해서 어색한 느낌이 풍겼는데, 그게 극중 ‘시형’의 모습과 잘 어울렸다.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한 이유는.
최 : 출연을 아예 고사한 건 아니다. 오랜만에 출연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출연 배우들도 많아서 민폐가 될까 부담스러웠다. 내가 못하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막상 작업을 해보니 이상덕 감독이 배우를 믿는 편이라서 그런지 단점보다 장점만 포착하려고 하더라. 결과적으로 감사하다.

이 : 전부터 시형이 형과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 형이 출연했던 <다섯은 너무 많아>(2005) 등 여러 작품을 보면서 잘 맞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둘 다 축구를 좋아해서 통하는 게 많다. 이번 프로젝트도 형이 있어 잘 완성시킬 수 있었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했다고.
이 : 각본은 없었고 대강 어떤 식으로 만들 건지 틀만 짜놨다. 극중 주인공 ‘시형’이 누군가를 계속 찾았으면 했다. 이런 간략한 구성 속에서 시형이 형과 끊임 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현장에서 바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사이가 되더라. 배우들 캐스팅의 경우에는 형이 도와주기도, 내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제작기간 8개월 동안, 한 달에 한번씩 촬영하는 제작방식이었는데.
최 : 기본적으로 책임감이 막중했다. 8개월이란 시간이 길다면 매우 긴 시간이니까. 여행을 떠날 수도 없고 촬영이 없는 동안에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했다. 촬영 회차는 많지 않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책임감이 커지더라.

이 : 감독 입장에선 모든 게 힘들었다.(웃음) 다큐멘터리 식으로 촬영 기록을 남겼다. 그 영상을 보면 언제나 내 모습이 힘겨워 보이더라, 시간이 흐를수록 늙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웃음)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내가 신뢰하는 배우, 스태프들과 문제 없이 작품을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또 내가 이런 영화를 다시 한번 만들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모든 게 운명적으로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 더욱 각별하다.

혼자서 다섯 명의 여성 배우와 호흡을 맞췄는데.
최 : 매 인터뷰마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 같다.(웃음) 다섯 분을 비교하는 거나 마찬가지니 섣불리 답하기가 난감하다. 아무래도 다섯 명의 여성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다는 건 흔한 기회는 아니니까 배우로서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등장하는 여성들은 주도적이고 ‘시형’은 소극적이던데.
이 : 표면적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시형’ 캐릭터에 대해 답답하다는 분들도 있지만 전혀 그런 인물이 아니다. 나름의 기준도 있고 거절할 땐 확실히 거절하는 친구다. 단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깊이 고민 중인 인물이다. 여성 캐릭터의 경우에는 실제 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의 성격과 경험을 충분히 반영한 결과물이다. 그러다 보니 의도하지 않았지만 다섯 명 모두 주도적으로 보인 듯하다.

‘시형’은 두 사람의 성향을 반반씩 담아낸 캐릭터라고.
이 : 그래서 인지 나와 닮은 점도 있고 아닌 점도 있다.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시형이 형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들어진 캐릭터라서 서로의 모습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촬영하는 동안에는 배우들과의 호흡 속에서 캐릭터에 대한 설정을 추가하기도 했다.

‘여빈’, ‘서진’, ‘이든’, ‘수진’, ‘소니’라는 인물 설정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이 : 우선 한 달에 한번 촬영하는 제작방식 때문에 실제 배우들의 모습을 캐릭터에 반영하게 됐다. 배우들과의 미팅 속에서 전해 들은 경험 그리고 그들의 말투가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 또 장소에 따라서 캐릭터가 전하는 분위기를 조율했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각각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연출 방식이 신선하다.
이 : 글쎄… 애초에 이렇게 만들려고 작정하고 뛰어든 건 아니다. 물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또 청춘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도 싶었다. 그래서 시형이 형과 토론 끝에 이런 구성을 고안해냈다. 제작방식은 아무래도 변경이 불가능한 부분이다 보니 최대한 틀에 맞춰 촬영을 진행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개성 있는 작품이 완성된 듯싶다.

최 : 8개월 동안 영화를 찍는다기보다 영화로 사는 듯했다. 생각보다 매력적인 일이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시형’처럼 진지한 모습도 갖추게 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한 가지만 바라보며 묵묵하게 밀고 나가는 진중함이 생겼다.
배우들 성향에 맞춘 캐릭터니 특별한 디렉션은 없었겠다.
이 : 대사는 명확하게 존재했지만 최소한의 제약만 두고 그 안에서 배우들이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했다. 뭐, 워낙 잘하는 배우들이니 믿을 수 있었다.

극중 다섯 명의 여성 캐릭터 중 가장 끌리는 인물은.
이 : (하하하) 영화를 끝마친 지금, 생각해보면 다섯 명이 하나의 캐릭터라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농담이 아니다. 결국 모두 애정한다는 말이다.(웃음)

최 : 아, 대답하기 힘든데… 인간적으로 끌리는 건 ‘소니’다. 아무래도 공간이 공간이다 보니, 낯선 곳에서 만나면 별 것 아닌 것도 아름답게 보인다. 공간의 힘이랄까. 이성적으로 끌리는 캐릭터는 ‘서진’이다. 유일하게 예전에 알던 사람이기도 하고 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상상하면 더 설레는 듯싶다. ‘서진’ 또한 ‘소니’처럼 일상 속 공간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마주치는 인물이기도 하고 말이다.

<여자들>은 멜로물 인가 아닌가.
이 :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영화다. 그냥 좋은 게 있는 영화, 라고 알아주면 좋겠다. 소설을 읽을 때도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처럼 장르의 구분이 없는 것들이 많지 않나.

최 : 나 또한 굳이 특정 장르로 <여자들>을 규정하고 싶지 않다. ‘시형’이 만나는 대상이 모두 여성이라서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선입견을 버렸으면 좋겠다. ‘시형’의 입장에선 이 작품은 멜로가 아닌 드라마다. 물론 여성 캐릭터 입장에선 멜로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때문에 각각의 챕터는 멜로이지만, 작품 전체를 보면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이 : 마지막 말에 동감한다! 각 챕터를 따지면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작품 전체를 조망하면 분명 연애의 감정과는 다른 뭉클한 감정이 피어날 것이다.

<여자들>이 관객에게 어떤 영화가 되길 바라나.
이 : 특정하게 글 쓰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일이든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나 역시도 공교롭게 <여자들>로 장편 영화를 시작하는 기점에 서있기도 하고. 누구나 그런 시점이 있지 않나. 저기, (<여자들> 대형 포스터를 가리키며) ‘아주 근사한 우연이었다’라는 카피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저 말처럼 관객 분들에게 우리 영화가 근사한 우연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최 : 작든 크든 누구나 원하는 게 있지 않나. 모두 노력을 하겠지만 노력만으로는 안될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냥 어떤 일을 욕심 없이 단순하게 하다 보면 저 카피처럼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근사한 우연이었다’는 말이 한층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관객 분이라면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당신들도 <여자들>을 통해 ‘영화’ 그리고 ‘연기’를 시작하기 앞서 가졌던 고민을 해소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 이번엔 <여자들>을 통해 참여한 배우, 스태프와 함께 한층 성장, 아니 확장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지금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시작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은 언제든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 : 나 역시 자주 그런 고민을 한다. 인간관계든 일이든 쉽게 해결이 안 되는 상황들이 주변에서 종종 일어난다. 누구나 이런 고민 끝에 완벽한 정답을 내리려고 하지만 불가능하다. 그저 즐기면서 주변사람들과 견디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하자면, 당신들은 ‘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 같나.
이 :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음… 장난처럼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있다. 영화를 찍는 건 마치 권투선수가 링 위에 올라가는 일이라고 말이다. 링 위에 올라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다음부터가 중요하다. 버티는 것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왜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 자리에서 버티기 위해서 한다는 대답을 하고 싶다. 많은 감독님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도 싶다. 해야 하니까, 할 수밖에 없으니까 영화를 만드는 거다.

최 : 극 중 챕터 ‘풀코스와 디저트’에서 ‘물고기를 잡는 분위기’로 넘어갈 때 등장하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쓴 글이 나 자신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는 말인데 굉장히 공감 가는 이야기다. 언제나 이런 부분을 조심하고 있는 것 같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말이다. 영화를 왜 만드냐고 묻는다면, 사람을 가까이 보고 싶어서, 특히 나 자신을 알고 싶어서 만드는 게 않을까 싶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사람이 있다면.
이 : 아내와 20대를 함께 보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남이 있었지만 아내만큼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최 : 난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게 도움을 주지 않았나 싶다. 부모님도 그렇고…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다.

앞으로 계획은.
이 : 다음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중이다. 잘 완성시키는 게 목표다. 또 한 가지는 신념과 가족 그리고 주변 동료들을 지키면서 살고 싶다. 새롭게 도전하기보단 지금 갖고 있는 걸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한 시점인 것 같다.

최 : 일단 <여자들>을 잘 마무리 하고 싶다. 또 연출 중인 영화 후반작업 중인데 잘 완성시키고 싶다. <여자들>을 촬영하면서 그동안 한번도 생각 하지 못한 걸 깨달았다. 글 쓰는 게 좋아진 것이다. 그래서 출판사를 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머지 않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즐기면서 지켜야겠다는 시기가 나 역시 과거에 있었지만 지금은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웃음)

최근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면.
이 :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에 아내와 함께 참석했었다. 아내가 육아 때문에 쉽게 나가지 못 했는데 오랜만에 동행하게 돼 기분이 좋았다. 일정이 많아서 개인시간이 많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잠깐 시간을 내 소소하게 산책하고 밥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 순간이 그렇게 잊혀지지 않더라.(웃음)

최 : 너무 소소한데… 키리코 나나난이라는 만화가를 좋아한다. 절판된 만화책 전집을 최근 중고로 구입했다. 기분이 너무 좋더라. 집에 쌓여 있는데 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내가 좀 덕후 기질이 있다.(웃음)

2017년 8월 2일 수요일 | 글_김수진 기자(Sujin.kim@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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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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