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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를 말하자!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 오희정 프로듀서
2018년 1월 18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무슨 일이든 10년쯤 경험한다면 대개 그 분야의 베테랑이 된다. 대다수 여성은 그래서 필연적으로 ‘생리 베테랑’이 된다. 그런데, 자기 주력 분야에 자부심을 느끼는 여타 베테랑과는 태도가 좀 다르다. 여성에게 생리는 종종 불편하고 성가신 월례 행사다. 생리 이야기를 세상에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도 여전히 남우세스럽다. 더군다나 다큐멘터리 인터뷰라니…

대단히 재미있는 기획이 될 것 같다며 생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를 준비하던 김보람 감독과 오희정 프로듀서가 가장 먼저 부딪힌 장벽도, 주변의 회의적인 인식이었다. 투자자는 의심했다. 과연 ‘그런 얘기’를 관객이 극장에서 보고 싶어 할까? 인터뷰 대상자인 여성도 되물었다. 과연 ‘그런 얘기’를 카메라 앞에서 해도 앞으로 내 삶에 별 지장이 없을까?

두 사람은 생리에 대해 생각했다. 불편하고, 또 성가신 것.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 여성조차도 공공연히 이야기하기에는 부끄러운 ‘그런’ 것. 부정적인 쪽으로 무게추가 쏠려 있는 생리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생리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심어주자! 10년쯤 해봤으니, 이제 우리도 그럴 만한 자격이 있잖아? <피의 연대기>의 시작이다.


‘생리의 모든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를 선보인다. 이 작업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김보람 감독(이하 ‘김’): 먼저, 나는 여성 문제나 페미니즘에 큰 관심이 있던 사람은 아니다. 본래는 소설을 썼다. 등단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도 덩달아 위축됐다. 취업을 해야 해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이 분야에 발을 들였다. 생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나눈 대화 덕분이다.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샬롯’을 비롯한 외국인 친구들 말인가.
김: 다큐멘터리 수입, 배급사에서 일하면서 방문한 부산국제영화제에 그들을 처음 만났다. 네덜란드에서 온 아시아영화팀인데, 친분이 생겨 서울에서 마지막 식사 겸 송별회를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 우연히 생리 이야기가 나왔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샬롯’은 IUD(기자 주: 자궁 내 삽입하는 피임 장치)를 시술받았다고 말했는데, 함께 있던 남성 감독님이 큰 충격을 받으셨다.

오희정 프로듀서(이하 ‘오’): 그 감독님이 상상을 해봤더니 너무 끔찍하더란다. 남자로서, 피임을 위해 자기 성기에 특정한 기구를 집어넣는다? 그런데 여자들은 실제로 그걸 하고 있다고? 게다가 매달 자기 성기에서 피가 흐른다면? 충격에 사로잡히셨더라.(웃음)

그때, 이 얘기는 한 번쯤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김: 욕심이 나더라. 남자친구에게도 생리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꽤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엄청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해서 자신감 있게 다니던 다큐멘터리 수입, 배급사를 나왔다. 같은 회사에 다니던 오희정 프로듀서도 몇 달 뒤 정식 합류했다.

오: 김보람 감독이 보내주는 자료를 보니 조사도 충분하고, 생리에 관한 이야기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둘 다 첫 작품이라 의욕이 넘쳤다.

김: 그런데 이 기획을 들고 찾아간 모든 곳에서 반응이 안 좋았다.(웃음)

음.(웃음) 어째서일까.
김: 일단 우리 두 사람은 다큐멘터리계에서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단편 필모그래피조차 없기 때문에 영화진흥위원회의 장편 지원 프로그램에는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생리가 주제라니… 극장에서는 절대 안 본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도 투자가 안 돼서 엔젤투자자를 찾아갔는데, 중요한 이야기인 건 알겠지만 관객이 불편하지 않겠냐고 묻더라. 극장은 현실을 잊으러 가는 건데 관객이 과연 이 작품을 선택하겠냐는 거다. 정말 고난의 시간이었다.

아무리 작품에 대한 열정이 크더라도 기본적인 제작비가 마련되지 않으면 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웠을 텐데.
김: 다행히도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피의 연대기> 풋티지 영상을 보낸 뒤 종잣돈으로 활용할만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외 비용은 카드를 돌려막았다.(웃음)

오: 카드 돌려막기를 더 이어갈 수 없을 때쯤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카드값을 갚을 수 있었다.(웃음)

정말 다행이군.(웃음) 작품 초기 기획은 생리 도구의 변화나 생리에 대한 인식을 다루는 것보다, ‘생리하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쪽에 가까웠다고 들었다.
김: 처음에는 여성에게 ‘생리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했다. 하지만 결국 그 기획은 포기했다.

포기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김: 생리는 해봤지만, 생리를 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시술은 직접 받아보지 못했다. 일단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의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를 찾아갔다. 이 시술을 받으려는 목적이 뭐냐고 묻더라. 생리 전 증후군이 너무 심해 다리가 저리고 잠을 잘 때도 쥐가 나 힘들다고 말했더니, 시술을 받으면 오히려 그런 증상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했다. 차라리 피임약을 먹는 게 낫다고 말이다.


그런가. 직접 상담을 해본 여성이 아니라면 알기 쉽지 않은 정보다.
김: 그런데 피임약을 먹는 것도 상당한 위험성이 있더라. 미국에서는 피임약과 우울증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다는 기사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 섣불리 ‘생리하지 않을 권리’를 말하면서 시술이나 피임약 섭취 등의 방법을 소개할 수는 없었다. 30년, 40년 뒤에 그들에게 어떤 후유증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윤리적이지 않은 접근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해되는 고민이다. 그렇게 진행했다면 너무 무거운 분위기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기획 방향이 바뀌면서 <피의 연대기>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상당히 발랄하고, 감각적으로 변화한 듯하다.
김: 에이미 포엘러, 에이미 슈머, 티나 페이 같은 코미디언과 배우를 엄청 좋아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도 유명해지기 전부터 엄청난 팬이었다. 미국 시트콤과 다큐멘터리, 드라마가 보여주는 유머와 잘 맞는 편인데, 오희정 프로듀서도 나와 선호하는 유머가 비슷하더라. <피의 연대기>도 무조건 재미있게 만들고 싶었다.

여성 캐릭터의 나체를 그린 애니메이션, 면담자의 얼굴을 이미지 처리한 독특한 방식 등 시각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김: 애니메이션 효과는 내가 마음먹은 만큼 충분히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게 다 돈이라…(웃음) 그래도 단편 애니메이션 <심경>(2014)을 만드신 김승희 감독이 엄청 큰 역할을 해주셨다. 애니메이션 협회에 전화해서 무작정 그의 연락처를 받았고, 처음 만난 자리에서 솔직히 말씀드렸다. 드릴 돈이 없다고. 그런데 돈을 안 받더라도 참여하시겠다고 하더라. 물론 인건비는 협회 기준에 맞춰 지급했다. 이 업계에서 이 정도 수준으로 인건비를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 면에서는 우리도 자랑스럽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오: 사실 제때 드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정해진 인건비는 다 드렸다.

김: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할 때 임금 후려치기를 당한 게 너무 마음에 쌓여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그런 스트레스를 안기지 말자고 서로 약속했다. 절대로 ‘열정 페이’는 요구하지 말자고 말이다. 한가지 오점이 있다면, 다른 모든 분의 인건비는 다 정산해드렸지만 아직 오희정 프로듀서의 인건비는 다 지급하지 못했다는 거다. 나야 내가 시작하고 벌린 일이니 그렇다 치지만… 굉장한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다.

함께 작업한 분들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게 느껴진다. 스태프뿐만 아니라 자기 생리 이야기를 터놓는 상당수의 여성 면담자가 등장한다. 섭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오: 만약 요즘 같은 사회 분위기였다면 다들 나서 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촬영 당시만 하더라도, 특히 미혼 여성들은 카메라 앞에서 생리 이야기하는 걸 꺼렸다. 만약 나중에 결혼할 때 약간의 흠(?) 같은 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다.

김: 게다가 교사나 공무원처럼 보수적인 집단에 몸담은 분들을 섭외하려니 더 어려웠다. 여성주의자보다는, 여성의 문제에 대해 교육받지 않은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육체 노동자를 거의 섭외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육체 노동자라면 예컨대.
김: 농부나, 공장 노동자.

오: 아니면 해녀. 무용수나 모델처럼 무대 위에 서는 분들. 운동선수, 그리고 아이돌도 섭외 대상이었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대개 도시의 사무직 노동자다.
김: 섭외도 결국은 돈 문제였다. 누군가를 섭외하려면 일단 그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취재 대상의 얼굴을 익히고, 그분들에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 작업 취지를 설명하면서 친해져야 한다. 그렇게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지출되는 비용은 물론, 모두에게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오: 그래서 이미 결혼한 내 친구들을 섭외했다. (금전적인 상황을 모르는 이들은) 너희는 왜 발전된 도시에 사는 여성들만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냐고 묻기도 했다. 생리 문제는 아프리카에도, 인도에도, 제3세계에도 있는 것 아니냐고.

김: 하지만 내가 아프리카나 인도에서 살아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들의 고통에 대해 말하는 건 쉽지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정도로 경제적인 발전을 이룬 도시에 사는 여성들, 게다가 4년제 대학교를 나와서 사무직으로 살아가는 여성들마저 생리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이렇다면, 그 외에는 다 보여주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의 인상적인 대목은 생리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래서인지, 생리컵을 삽입하는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로켓이 발사되는 장면을 삽입하기도 했다.
김: (하하하) 로켓 발사 장면은 정말로 빼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도 난 정말 넣고 싶었다. 다들 생리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질 안으로 생리컵을 끼워 넣을 때, 탁! 하고 (자궁 경부에) 자리를 잡는 순간이 있다. 그 경험이 주는 분명한 쾌감이 있다. 남성 성기가 아니라, 내 의지로 무궁무진한 그 공간에 무언가를 끼워 넣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마에 액션캠을 장착하고 화장실에서 직접 생리컵을 빼는 장면을 집어넣기도 했다. 신체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피가 고여있는 생리컵을 꺼내 세면대에서 씻어내는 장면은 고스란히 보여준다.
김: 그 장면 역시 관객에게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좀 불편해하더라.

오: 내 입장에서는 서스펜스가 있는 장면이었다.(웃음) 남성 관객 옆에서 <피의 연대기>를 본 적 있는데 김보람 감독이 생리컵을 빼려는 장면이 나오니 “헉, 진짜 빼는 거야? 지금 저게 나오는 거야?” 라면서 상당히 긴장하더라.(웃음)


(웃음) 충분히 놀랄 수 있는 장면이라고 본다. 걱정도 됐을 것이다. 사회 분위기상, 여성이 질 안에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빼낸다는 행위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는 희롱 거리가 될 수도 있다.
김: 그래서 오희정 피디가 그 장면 촬영을 상당히 말렸다.

오: 당신이 말한 그 부분을 나 역시 똑같이 걱정했다. 영화도 중요하지만, 김보람 감독이라는 한 여성의 삶도 중요한 거니까.

김: 그런데 남자친구는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고 응원해주더라. 위로 차원인지는 몰라도, <피의 연대기>가 개봉해봤자 사람들은 많이 안 볼 테니 아무도 생리컵을 빼는 게 너라고는 생각 못 할 거라고 해줬다.(하하하)

오: 결국 나도 설득당했다. 심지어 나까지 그 장면을 촬영했다. 그런데 나는 키가 상당히 큰 편이라, 김보람 감독과 똑같은 구도로 촬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음모가 다 나오더라.

(웃음)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오: 그런데 그때 든 생각이 스스로도 상당히 신선했다. 사실 나는 부끄러움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몸이 드러나는 게 싫어서 수영장도 못 간다. 그런데 카메라 화면에 내 음모가 다 나오고, 생리혈이 다 나오는 데도 별로 걱정이 안 되더라. <피의 연대기>를 작업하면서 생리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타인에게 내 피 정도 보여주는 건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시점에 이르게 된 거다.

김: 하지만 촬영감독은 우리가 찍어온 영상을 보고 정~말 놀랐다.(웃음)

오: 이 장면이 공개되면 ‘피디 노모’라는 이름으로 떠돌아다닐 것 같다고 하더라.(웃음)


영화에는 김보람 감독의 할머니와 이모들도 출연해 자신의 생리 경험을 털어놓는다.
김: 50대, 60대, 70대, 80대 여성이 다 필요했다. 생각해보니 이모와 할머니가 계단 순으로 딱 그 연령대이시더라. 나도 속으로는 이모들이 불편해하면 어떡하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생리 이야기의 물꼬를 트자마자 거의 두 시간을 이야기하셨다. 영화엔 못 넣었지만, 나중에는 할머니가 막내 이모를 낙태하려는 이야기까지 하셨다. 첫째 이모와 둘째 이모는 우시고…(웃음) 나는 물론, 가족 구성원에게도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모들은 어째서 눈물을…
할머니가 계속 딸을 낳으니까, 그게 동네에서는 좀 창피한 일이었나 보다. 이모들이 할머니 드실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서 미역을 빨러 냇가에 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또 딸 낳았냐며 놀렸다고 하더라. 그게 싫어서 다섯 번째 이모가 태어났을 때부터는 아무도 모르는 새벽에만 미역을 빨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삼촌이 태어난 거다. 아들을 낳았으니 이모들도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지 않았겠나. 그래서 한낮에 냇가에 나가 온종일 앉아있는데 그날따라 아무도 안 나와서 너무 서러웠다고…(웃음)

어쩜 그리 얄궂을 수가. 듣는 내가 다 속상하다.(웃음)
김: 할머니는 애를 계속 낳는 바람에 생리를 많이 안 했다고 하시더라. 이모들이 할머니를 놀릴 정도였다. 엄마는 생리도 많이 안 했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었다고 하는 거냐고.(웃음)

오: 그들 세대의 생리는 요즘 우리 세대의 생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용품만 다른 게 아니라 삶 자체가 그렇다.

아쉽게도 그런 내용이 영화에서는 대다수 편집됐다.(웃음) 대신 생리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터놓으며 시작된 이야기를 좀 더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장한다. 예컨대 ‘무상생리대’ 문제라든지.
김: 결말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생각하다가 ‘무상생리대’까지 떠올리게 됐다. 어차피 세금으로 휴지도 주고, 비누도 주고, 청소하는 분들 인건비도 드리는데 생리대도 비상용품으로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진행된 ‘무상 생리대’ 관련 법안 서명 기념식을 촬영하기도 했다.
김: 정말 운이 좋았다. 우리 프로젝트 중 가장 운이 좋을 때였다. 법안 서명 기념식에 날 데려가 준 활동가는 나더러 ‘잭팟 터졌다’고 할 정도였다. 금전 여건상 뉴욕 촬영을 포기할까 하다가, 합류 중이던 다른 프로젝트의 뉴욕 촬영이 때마침 겹쳐 단 이틀 정도 <피의 연대기>에 필요한 장면을 촬영할 여유가 생겼다. 다행히도 그중 하루가 위스콘신주 하원의원이 법안 서명 기념식에 참석하는 날이었다.

오: 나는 당시 한국에서 섭외를 담당했다. 정해진 이틀 안에 그들을 섭외하지 못하면 다시는 촬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돈이 없으니 미국에 다시 갈 수가 없지 않은가.(웃음) 눈물의 메일을 쓰고, 페이스북으로 접촉하고, 하원의원 보좌관에게 전화하고…

김: 그 촬영을 하면서 미국이 정말 선진국이란 걸 느꼈다. 서명 기념식이 이뤄진 곳은 맨해튼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브롱크스라는 흑인 밀집 지역이다. 일부러 그 지역을 찾았고, 그 지역 여학생을 가장 먼저 단상에 세워 법안의 필요성을 말하게 하더라. 시장과 하원의원 같은 정치인은 그저 맨 뒤에서 뜨거운 박수로 그 친구를 지지해줬을 뿐이다. 무엇보다 정치인은 이 법안이 뉴욕시가 시민의 행복과 평등을 위해 노력해온 활동 중 하나라고 단호하게 정의하더라.

오: 우리는 생리를 여성 문제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깔창 생리대’처럼 불쌍한 친구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그들은 지역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이라는 더 큰 틀에서 생리를 논의하더라. 우리도 배운 순간이었다.

취재를 위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보인다. 제작비는 턱없이 모자라는데 섭외부터 촬영까지 전담해야 하니, 때로는 지치고 힘든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김: 많은 사람이 우리가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목이 쉴 때까지 싸울 때도 많았다.

오: (하하하)

김: 금전적으로 너무 쪼들리니까 스트레스가 많았다. 오희정 프로듀서가 엄청나게 노력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쳐있다는 이유만으로 무례하게 행동한 적이 많았다. 내가 프로듀서로 일할 때는 감독이 그런 무례한 행동을 할 때 다 받아줘 놓고 말이다. 고마운 건, 오희정 프로듀서는 아주 건강하게도, 나와 맞서 싸워줬다는 거다. 특히 영국 호텔 방에서는…

오: (이구동성으로) 영국 호텔 방에서는…


(웃음) 동시에 같은 상황을 떠올리는 걸 보니 정말 크게 싸웠나 보다.
김: 생리컵 사용법을 알려주며 유튜브 스타가 된 영국 소녀를 촬영하러 갔는데, 내 발가락이 부러진 상황이라 목발을 집고 다녀야 했다. 돈은 없고, 몸은 아프니 정말 예민하더라. 목이 쉴 때까지 싸우고 나중에는 둘 다 엉엉 울었다.(웃음)

오: 김보람 감독이 아파서 내가 짐을 다 메고 다녔는데, 내가 얼마나 억울했겠는가.(웃음)

김: 둘 다 역량이 부족한데 이루고 싶은 건 엄청 컸던 것 같다.

오: 한국에서만 만들 수도 있었는데, 돈도 없이 무리해서 외국을 간 건 정말 욕심 때문이었다.

김: 우리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독립영화를 함께하는 감독과 프로듀서가 많이들 헤어진다고들 하더라. 하지만 지나고 나니, 사실 그건 다 돈 문제였다는 걸 깨달았다. 돈이 생기면서 싸움이 급속도로 줄었다.(웃음)

오: 목숨 걸고 개봉 지원 사업 네 개를 따냈다. 일단 영화를 만들어 놓으니 그게 가능하더라.

그런 면에서는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고 본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냈지 않나.
오: 굉장히 자랑스럽다. 많은 이들이 내게 영화로 이루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 한 가지 결론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생리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긍정적인 논의든, 말도 안 되는 공격이든 간에 여러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일단 이야기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일 테니까. 어느 정도는 그 목표를 달성한 것 같다. 그래서 기쁘다.



마지막 질문이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김: 어떻게 먹고 살지 고민이 많다. 다음에도 만들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과연 만들 수 있을까? 그런데 최근 <피의 연대기>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 의뢰를 받았다. 우리끼리 그걸 ‘파생상품’이라고 한다.(웃음) 계속 작업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찾을 때 제일 행복하다. 말하고 나니 너무 천박하네!(웃음)

오: 처음 영화를 하겠다고 할 때 주변에서 미쳤다는 말을 많이 했다. 원래 받던 월급의 1/5도 못 받는 영화사로 밑도 끝도 없이 이직했으니…(웃음) 돌이켜 보면 철이 없긴 했지만, 그렇게 보낸 3년 동안 영화 두 편을 만들었다. 무리도 많이 했지만 짧은 시간치고는 많은 걸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엄마 아빠가 신촌에 들렀다가 상상마당을 지나가면서 <피의 연대기> 포스터를 보셨다고 하더라. 아빠는 광주 출신인데, 영화가 광주여성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됐다고 하니 이제 나를 영화 하는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것 같다. 음. 아무래도 효도를 한 것 같다.(웃음)


2018년 1월 18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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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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