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화상! 예방 교육과 인식 개선이 중요” 베스티안재단 사회복지사업본부 설수진 대표
2018년 5월 19일 토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자신만의 삶 그 자체의 인문학을 들려줄, 시대의 100인을 만나다”

외연을 확장한다. 영화배우와 감독이 주를 이뤘던 기존의 인터뷰에서 보다 분야를 넓혀 피플 리스트를 채워 나갈 예정이다. 남다른 소신과 철학으로 우뚝 선 존재감의 이들은, 현실에 발을 붙인 흥미진진한 영화적 캐릭터에 다름 아니다. 영화 같은 자신만의 삶! 그 자체의 인문학을 들려줄 우리 시대 100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방송을 통해 맺은 인연으로 베스티안 화상 재단을 창립하다,
화상 환우 치료 지원과 화상 예방 교육 나아가 인식 개선 교육,
부익부 빈익빈, 아동과 대규모 재단에만 후원이 몰리는 현실,
규모는 작아도 내실 있고 무엇보다 깨끗한 재단이라 자부,
환우들의 경험이 동화책으로 탄생,
책 한 권 한 권이 나올 때마다 그들의 상처가 치유된 것같아 기뻐,
방송을 접고 재단에 몰두, 진정이 통하기까지 3~4년이 걸려,
결혼 9년 만에 아들을 얻고 너무 행복해,
영화 <원더> 속 대사처럼 장애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게 중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 행복할 기회를 스스로 놓지 마시길...



# 베스티안 재단

‘설수진’하면 많은 사람이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으로 기억할 것이다. 베스티안 재단과 인연의 시작은.
사촌 동생이 베스티안 병원에서 의사로 재직했고, 당시 나는 EBS의 독거노인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중 화상 환자 편이 있었다. 화재가 몸도 재산도 집도 다 앗아갔다고 절규하시던 할아버지, 또 반신마비 상태에서 연탄재 있는 쪽으로 넘어져 손과 다리가 절단된 분 등을 보았는데 정말 마음이 안 좋았었다. 화상의 참혹함을 목도했고, 누군가가 앞장서서 신경 쓰고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다.

베스티안재단 사회복지사업본부를 이끌고 있다. 베스티안 재단에 관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베스티안 병원은 대치동에 있던 순화 의원에서 시작했다. 그전까지 화상을 전문으로 다루는 병원이 없었는데 화상 치료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나며 2002년에 화상 전문 병원 베스티안 본원이 개원했고, 이후 부천, 대전까지 네트워크 병원화됐다. 병원 내 사회복지과 화상 후원 재단이 속해 있었는데 이후 2011년 독립했다.

그때 생각하면 참 용감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사회복지사와 매일매일 회의를 거듭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며 대표적인 사회복지기관을 염탐하기도 했고.(웃음) 우리가 홍보로 비용을 사용하기보다 한 명의 환우라도 더 돕고자 하는 생각에 대외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기에 아직 모르는 분들이 많다. 화상으로 고통받는 환우의 치료를 지원하고, 나아가 화상 사고 없는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재단의 지향점이다. 1차적으로 화상 환우 치료비 지원 사업에 집중했었는데, 점차 예방 교육 사업 쪽으로 무게를 옮겨 가는 중이다.

예방 교육 사업으로 방향을 선회한 이유는.
완전한 선회는 아니다. 작년 1년 동안 120건 치료비 지원을 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재단을 통해 의료비를 신청한 대부분의 환우가 혜택을 받고 있다. 화재 예방 교육 사업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오랫동안 화상 환우들을 지켜본 결과, 치료비 지원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화상이 발생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화상 환자가 가장 많은 연령대가 어디인지 혹 알고 있는지?

아마도 아동일 것 같은데.... 예방 교육 대상과 시기, 방법 등 예방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은.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화상 환자가 한 해 평균 60만 건이고 연령대로 보면 0~5세 사이가 약 12%를 차지한다. 이들은 주로 부모가 부주의한 사이에 호기심에 의해서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예방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예방 교육은 (재단에서) 유치원에 방문하여 원생을 대상으로 약 50분 정도 교육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재작년과 작년은 강남구 소재 유치원이 대상이었다. 올해는 강남, 송파, 강동구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점진적으로 전국적으로 예방 교육을 하는 게 목표다. 부모에게는 자체 제작한 책자가 나가고 교사를 위한 연수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교사 안전 교육은 1차 일반 화상 교육, 2차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3차 화상 예방송, 화상 응급처지송 관련 매뉴얼과 각종 자료를 제공하고 이수 시 수료증을 발급하려고 한다.

아동용 예방 콘텐츠의 예를 든다면.
‘베티’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아주 재미있다. 또, MOU를 체결한 숭실대 측에서 영어 뮤지컬용으로 예방 관련 캠페인송을 만들어서 영어를 통한 예방 교육도 준비 중이다.

인식 개선 교육을 위한 동화책도 있다. 경험과 나이 많은 환우가 멘토가 되어 이제 막 화상 입은 아이들에게 조언과 용기를 주곤 했었다. 이런 멘토와 멘티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모별 디디>, <할머니의 비밀>, <문닫아> 등등 자원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동화책을 만들었다.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떠올려 형상화하고 감정 이입하는 과정을 거쳐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을 얻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참여했던 몇 명은 현재 동화 작가를 희망하고 있다. 특히 <쉿, 비밀! 이젠 움직일 수 있어>는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자신을 괴롭혔던 모기를 소재로 쓴 것으로 아주 창의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50분의 일회성 예방 교육이 효과가 있을까?
모르는 소리! 그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강하기에 무심코 행동을 한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대부분 사용하는, 전기밥솥에서 김이 나오는데 그 김을 손으로 만진다든지, 아니며 그 위에 앉아본다든지 등등 어른이라면 생각지도 못 했을 행동을 하곤 한다. 조금만 사전 교육을 받았다면 다 막을 수 있는 사고들이다. 예방 교육 후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예방 교육 내용을 복습할 수 있도록 EBS 교육방송의 소방차 캐릭터가 실린 워크북을 제공하고 있다. 또, 예방 교육과 함께 인식 개선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인식 개선 교육이라 하면.
성인의 경우 화상을 당하면 구축(기자 주 화상에 의해 근육이 오그라드는 현상)이 오지만, 어릴 때 화상을 당하면 성장하면서 뒤틀림 현상이 수반되기에 계속 수술이 필요하다. 어린이들은 화상으로 흉터가 생기거나 뒤틀린 친구를 보면 무섭고 징그럽다고 여기고, 자신들과 다른 생김새를 보고 놀리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게 인식 개선 교육이다. 보통 만 4~5세 정도면 인식 개선 교육이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50분 교육 안에 30% 정도를 인식 개선 교육에 할애하고 있다.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어려운 점은.
아무래도 예산 문제다. 마음 같아선 예방 교사를 양성하여 전국에 파견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후원도 어떻게 보면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방 교육 같은 중장기 사업보다는 좀 더 후원 결과가 빨리 드러나는 화상 환우 치료 후원으로 몰리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회복이 빠르고 가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어린이 치료에 후원이 가장 집중된다. 심지어 20세 이하의 경우는 오히려 신청자가 부족하여 예산이 남기도 한다.

연령이 후원에 큰 영향을 미치다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안타깝지만, 어린이 후원에 비해 성인 후원이 드물고, 후원이 몇몇 큰 재단에 집중된 것이 사실이다. 치료가 필요한 성인 화상 환우의 경우 최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돕지만, 역부족인 경우가 꽤 있었다. 또, 몇몇 유명한 어린이 재단은 재원이 충분한 편으로 1년 안에 후원 물품을 소진하지 못하고 남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기업이 큰 곳, 유명한 곳만 후원하지 말고 우리 같은 작은 규모로 깨끗하게 일하는 곳도 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간 화상 환우들을 많이 접했을 텐데, 특히 기억에 남는 사례는.
음, 군대에서 온몸에 전기 화상을 당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운 좋게 화상으로 인한 절단은 피했었는데, 그 친구가 ‘화상환자 자조모임’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후에 자신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화상 환자의 롤모델이 돼야 한다며 파이팅한 결과, 현재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또, 탄자니아에서 온 아이가 있었다. 굉장히 말랐고 한쪽 볼과 어깨에 화상을 당했던 그 아이가 6개월 간 한국에서 치료받고 돌아간 후에 한국말로 편지를 보내왔다. 후에 한국에 와서 봉사하 고 싶다고 말이다.

화상 환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한명 한명 손잡으며 말하고 싶다. 화상을 입은 사람은 자기를 놓아 버리는, 극단적인 순간의 판단으로 목숨을 놓아 버리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을 사랑하길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 설수진

좀 전에 방송을 하던 중 베스티안 재단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EBS 독거노인 프로그램 진행 시 한 달에 두 번 촬영했었는데, 촬영이 끝나면 몸살이 나곤 했었다. 그만큼 처음에는 감정의 여파가 컸었는데 몇 년 진행하다 보니 다음 촬영이 기다려 질정도였다. 화상 환우를 처음 만날 때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적응하지 못했었다. 이후 방송 활동을 그만두고 이 일에만 매달렸다. 내가 단지 잠깐의 마음이 아닌 진심임을 보이고 싶었던 거 같다. 이후 그들도 나도 편해졌다. 그렇게 되는데 3~4년이 걸렸다. ‘화상환자 자조모임’ 회장님이 이젠 방송 좀 하라고 농담을 건네고, 나도 (남들이 보기엔 흉칙해 보이겠지만) 그들 손을 덥썩 잡으며, 어디 손 본거야? 왜 이렇게 예뻐졌어? 이런 식으로 얘기할 정도가 됐다.

평소 사회 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거로 보인다.
글쎄, 일단 내가 모금에는 소질 있는 것 같다.(웃음) ‘효 도우미’라고 모금이 잘 안 돼서 폐지 위기였던 프로그램에 내가 들어가면서 너무 잘 된 적이 있었다. 사회 복지에 따로 관심을 기울이려고 해서가 아니라 그냥 부모님께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거 같다. 우리 집안이 불교 신자인데 어머니가 석가탄신일이 되면 항상 아이들에게 나눠준다고 따로 천 원짜리를 준비해 두셨었다. 한 번은 내가 방송을 하고 있던 때인데, 남쪽 지방에 수해가 났었다.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안 가고 싶다고 하니 어머니가 그러시더라. 네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있거든 감사하고 봉사하라고.

누구나 힘든 시기가 있었을 거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당신만의 힘이 있다면.
어느 날, 화상 환우를 보는 게 힘들어서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힘들고 아픈 사람을 만나니 나까지 아프고 지쳤었다. 그래서 절에 들어가서 기도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막 펑펑 흐르는 거다. 그때, 지금 하는 일이 내 천직이구나 싶었다.

자꾸 어려웠던 경험만 물어봐서 죄송하다.(웃음) 반대로 정말 기뻤던 일이나 인생에서 가장 반짝였던 순간을 꼽는다면.
음.... 결혼 후 아이를 9년 만에 얻었다. 얼마나 행복했던지! 나눔 활동과 좋은 일을 하다 보니 아들이 찾아와준 것 같다.

평소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인지.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최근에 본 <원더>가 너무 좋았다. 선천 안면 장애를 지닌 채 태어난 소년 ‘어기’와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인데 온 가족이 함께 보면 좋겠고, 특히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 추천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어기의 얼굴은 바꿀 수 없으니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 한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이었다. 우리가 가진 장애에 대한 올바르지 않은 시선을 돌아보게 하고 아이들 인식 개선 교육에 무엇보다 도움이 될 것 같다.

‘화상환자 자조모임’ 회장님께서 방송 좀 하라고 했다는데,(웃음) 앞으로 활동 계획은.
초등생 아이 돌보고 베스티안 재단을 잘 이끌어 나가려 한다. 화상 환우를 위해 재단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다양한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방송은....기회가 된다면. (웃음)

최근 인상 깊은 일이나 행복했던 순간은.
음, 우리 아들이 두 자릿수 빼기를 푸는데 더하고 싶은 숫자는 더하고, 빼고 싶은 건 빼며 아주 창의적으로 수학을 하더라.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 그리고 처음 45점이었던 받아쓰기를 100점 받아왔는데 너무 기뻤었다.(웃음) 또, 아까 말했던 동화책이 한 권 한 권 탄생할 때마다 환우들의 아픔이 치유되는 것 같아 행복하다. 아, 그리고 작년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직원들을 대표해서 상을 받았는데, 그들의 고생을 알아주는 것 같아 내가 다 뿌듯했었다.


2018년 5월 19일 토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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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광희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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