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앞으로 다가올 60대, 설렌다” 한국모델학회장 김동수
2018년 5월 20일 일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자신만의 삶 그 자체의 인문학을 들려줄, 시대의 100인을 만나다”

외연을 확장한다. 영화배우와 감독이 주를 이뤘던 기존의 인터뷰에서 보다 분야를 넓혀 피플 리스트를 채워 나갈 예정이다. 남다른 소신과 철학으로 우뚝 선 존재감의 이들은, 현실에 발을 붙인 흥미진진한 영화적 캐릭터에 다름 아니다. 영화 같은 자신만의 삶! 그 자체의 인문학을 들려줄 우리 시대 100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패션 모델계의 원로 중의 원로. 교수로 학회장으로 바쁘다 바빠,
모델 관련 토탈 케어를 지향하며 한국모델콘텐츠학회로 개칭,
1등 아닌 학생에 더 주목하고 가능성을 믿어 줘,
캐리어 두 개 끌고 한국 가을 하늘 보러 왔을 뿐인데,
획일적이고 다양성이 부족했던 한국 패션계에 힘을 보태고자,
차별화 전략 ‘미운 오리 김동수’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
아들 출산 후 현역 은퇴, 이후 교수로 학회장으로 다양한 활동에 박차,
변화의 노력을 멎추지 말고 문화적 소양을 쌓길! 후배에게 조언,
다가올 60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지 생각만으로 설레,
무대 위 아우라 뿜는 모델 김동수로, 친구 같은 엄마로, 선생으로 행복하다




# 교수, 학회장 김동수

1세대 패션모델로, 업계에서 원로 중의 원로라고 할 수 있다.(웃음)
아무리 전문직 종사자라도 50세를 넘어서면 아무래도 일할 거리가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디자이너 쪽은 90세 넘어서까지 현역 활동을 하는 거에 비해 이쪽은 생명이 짧은 편이다. 그래도 최근 들어 경력과 연륜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점차 형성되는 추세인 것 같다. 이순재, 박근형, 강부자 선생님 등등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며 내가 비록 연기자가 아니고 나이도 한창 아래지만, 스스로 할 일을 찾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미 동덕여자대학교 교수로, 한국모델학회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웃음) ‘한국모델학회’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내가 맡은 지 꼭 10년째로 올해부터 ‘한국모델콘텐츠학회’로 개칭한다. 그동안은 모델들이 모여 함께 세미나, 학습, 역대 모델 선배의 업적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에 주력했었다. 이제 개칭하며 모델 관련 영양, 체형관리, 부상관리, 비만 등등의 토탈케어를 지향하려 한다.

전국에 모델학과가 동덕여대와 서경대학교를 제외하면 모두 2년제인데, 지도자를 위한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한마디로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선생님들도 공부하라는 거지.(웃음) 또, 전국의 교수가 모여 섹션을 나눠 모델 교육 교재를 만들었다. 출판사가 후원했고, 각 분야 교수 열여덟 분 정도가 원고료를 학회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참여해줬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는데 밀어붙이니 가능하더라. 영어와 한국어로 기초 워킹 교육 영상 자료를 만들었고 공개를 앞두고 있다.

동덕여자대학교 모델학과가 체계적인 모델 교육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동덕여대 총장님이 선견지명이 있으셨는지 디자인, 실용음악, 대중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공연예술대학을 신설하셨다. 아마도 앞으로 여성이 목소리를 더 내고 문화를 선도할 거라 예상하시고 결정하셨던 것 같다. 보수적인 동국대가 몇십 년 전에 연극영화과를 개설하고 활성화된 모습을 보고 벤치마킹하신 것도 같다. (웃음) 같이 만들어 보지 않겠냐고 하시는데 몇 번 고사했었다. 일단 내가 그럴만한 자질이 못 된다고 생각했었고, 당시 외부에서 이미지 메이킹과 매너 교육 강사로 나름 잘 나가고 있을 때였거든. 그런데 모델 교육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결심했다. 정말 옳은 결정이었던 게 가르치는 일이 너무 재미있고, 제자들이 대내외적으로 활동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매우 자랑스럽다.

10년 이상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스스로 어떤 선생님인지 자평한다면.
글쎄, 자평하는 게 제일 어려운 건데? 평소 지도자는 많은 아이를 어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 외로움, 고민 등에 신경 쓰는 편이라 자연히 1등보다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 학생들을 주목하게 된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빛을 볼 아이들일 테니 말이다. 그들의 가능성을 믿어 주는 게 내 몫인 것 같다.


# 모델 김동수

‘미운 오리 김동수’를 기억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그만큼 숏컷 헤어를 한 보이시한 당신의 모습이 강렬했었다.
나름 차별화 전략이었다.(웃음) 1980년대 중반 미국과 유럽에서 모델 활동하다가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한국에 정착하게 됐는데, 이렇게 표현하면 좀 그렇지만 당시는 한국 모델계가 상당히 낙후됐던 시기였다. 미의 기준이 다양하지 않고 하나같이 예쁘고 머리가 치렁치렁했는데, 그들과 미모로는 경쟁이 안 될 것 같았다. 나만의 개성을 찾고자 머리를 과감하게 잘랐는데 시원하고 좋더라. 나이가 들면서는 변화를 주기위해 오히려 머리를 기르고 있다.

긴 머리도 잘 어울리신다. 너무 화사해서 깜짝 놀랐다. 이미지 메이킹의 선두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그간 예쁘지 않아도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중요한 건 개성이라고 수 십년 간 강조했었다. 어느 순간은 나 혼자만 떠드는 것 같아 외롭고 고독하다고 생각했는데, 서서히 내 생각을 받아주고 인정해주는 분들이 생기더라.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개성파 모델이 국내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다양한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오히려 개성을 높이 사는 추세가 됐다.

예쁜 자매가 있다 보니 콤플렉스가 있었다. 아마 국내에서 공부하고 활동했다면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지 못하고 언니 동생과 외모 비교하며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쑥스럽지만, 외국에서 외모 찬사를 꽤 받았었다. 그리고 뭐, 세월이 지나면서는 살짝 터치도 하고, 전문적 도움을 받기도 한다. (웃음) 모델 김동수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 나이에 맞게 외모 변화를 주고 싶거든. 무대 위나 전문 화보 촬영에서는 프로로서 개성과 카리스마를, 평소에는 좀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려 한다.

해외에서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해외 진출이 활발해졌지만, 당시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집안 전체가 미국에 이민을 갔기에 가능했었다. 어느 날 학교 앞에서 언니가 데리러 오길 기다리는데 한 흑인 남자가 오더니 모델이냐고 물어보더라.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했지. 긴 생머리, 광대뼈에 사각턱, 비쩍 말라서 청바지에 고무신 신고 다녔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담당 교수님이 넌 모델 같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 말이 기억에 남았었는지, 무의식 중에 모델 맞다고 대답해 놓고 얼마나 당황했던지. (웃음) 그게 시작이었다. 그 남자가 명함 주면서 모델 콘테스트 나가보라고 해서 나갔고 3등을 했고 파리에 가게 됐다. 집에선 난리가 났었다. 형제가 모두 외모가 특출했고 예체능에 재능이 뛰어났는데, 나는 정말 형제 중에서도 조용하고 튀는 점이 없었거든. 그런데 파리에 간다니.... 오죽하면 언니가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할 정도였다.

그 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가.
외국인들이 나처럼 아름다운 여자 처음 봤다고 하는데 어린 마음에 수작거는 건가 싶기도 했었다. 그런데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독특하고 예쁘다고 칭찬해 주더라. 이후 나에게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인지하기까지 3년 정도 걸렸다. 그러면서 동서양의 미의 척도가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고, 스스로 내 아름다움에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프로들이랑 경쟁에서 살아남았다고 본다.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등에서 프로 모델로 활동했는데, 그 세계가 경쟁이 물론 세지만 한 번 인정하면 이후는 존중을 해주는 편이다. 내가 특A급 모델은 아니었지만, 모델일로 스스로 생활할 정도의 수입을 벌었기에 당당할 수 있었다. 에이전시에 내가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고 거침없이 요구할 수 있었고 말이다.

유럽에서 모델 활동 중 에피소드 좀 들려 달라. 흥미로운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
내가 성격이 좋아서 적응을 너무 잘 하는 편이다.(웃음) 주변 친구들이 나를 파티에 초대하는데 영화에서나 보던 상류 사회 파티에도 여러 번 다녔었다. 고성 파티, 요트 파티 등등 럭셔리한 삶을 이미 20대 때 경험할 수 있었다. 모델들은 마치 고급 집시처럼 한 시즌이 끝나면 짐 싸서 다음 모델 마켓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몇 년 다니며 패션 인사만이 아니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며 고급문화를 접했었다. 이탈리아에서 1년 정도 보낸 적이 있는데, 그들이 전통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게 됐다. 한 파티에서 만난 이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조끼라고 자랑하는 거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자랑스러워하고 아끼고 보존하려고 노력하더라. 그 모습을 보고 5~600년 내려오는 명문가의 자산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제대로 가정 교육해주신 부모님께 새삼 감사했었다. 덕분에 화려한 생활을 즐기되 나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프로 모델로 생활하다가 어느 날 짐 싸서 한국에 들어온 건가.
내가 하늘 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너무 괴롭다. 당시 모델 마켓은 대부분 백인 위주로 돌아가는데 원체 처음부터 치열하게 생활하다 보니 지쳤었다. 마침 시즌이 끝났고, 다행히 한 시즌 정도 쉬어도 경제적 여력이 충분했었다, 그래서 가방 2개 들고 한국 가을 하늘 보러 들어 왔었다. 한국 가을 하늘이 참 예쁘지 않나. 그런데 좀 충격을 받았지.

이유는.
음, 헤어 스타일이 다 비슷하고, 검정과 감색 등등 대부분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더라. 문화적 충격이랄까, 나름 쇼킹했었다. 당시는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이라 한국만의 리그같았다. 국제화가 덜 됐었고, 유명디자이너의 고급스러운 의상이 많았지만, 무대 테크닉과 메이크업이 천편일률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뭔가 기여를 할 수 있겠구나, 주책없이 의무감마저 들더라. 이후 디자이너 故 앙드레 김 선생님, 모델라인 이재연 선생님의 도움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현역 모델은 물론 ‘미운 오리 김동수 이야기’(1995), ‘모델학’(2002) 최근의 ‘모델론’(2015)등의 저서 집필, 강의, 사업 등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다.
음, 사업 얘긴 너무 긴 사연이라 생략하자.... 아들 출산까지 현역 활동했다. 이후 이미지 메이킹과 매너 강사로 기업체 출강을 하다가 대학에 자리 잡고, 모델학회를 이끌고 있다.

아들 출산 후 현역에선 은퇴했다지만, 워킹맘 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제결혼을 했다. 일본, 중국, 한국 오가며 살았기에 내가 결혼을 안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아들은 그야말로 보석 같은 존재다. 솔직히 양육에 도우미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나보다 아이 아버지가 교육에 정말 정성을 들였었다. 아들이 대학 졸업하고 멀쩡히 스포츠 마케팅 회사 잘 다니다가 갑자기 한국 럭비 국가대표를 하겠다고 한국에 왔다! 이중국적자로 군 복무를 안 해도 되는데 입대하여 상무 럭비팀 플레잉 코치를 하는데,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어릴 때는 떨어져 살았던 시기가 많았는데 한국에 들어와 살면서 더 친해지고 이젠 희로애락을 나누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됐다. 뒤늦게 건강한 식단으로 밥 해먹이느라 요즘 정신없다. 또, 아들을 통해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젊은 세대를 체감하고, 나도 나이에 연연해 꼰대가 되지 말고 열린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모델 선배로서 후배에게 조언한다면.
흔히 모델은 생명이 짧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시선이 그렇고 당사자인 모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모델이 다른 분야에 비해 관리가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에 생명이 짧은 것도 있다. 가수, 배우 등등 모든 분야에는 원로가 있고 그분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예전의 명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 작품을 찍고 신곡을 발표하는 등 끊임없이 노력하고 계시고 그분들이 존경스럽다. 외국에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원로 모델이 꽤 된다. 우리나라도 점차 그렇게 될 거라 본다.

요즘 패션쇼는 종합 예술이라는 표현에 딱 맞는 첨단 영상과 각종 음악이 동원되는 쇼이다. 단지 옷을 입고 뚜벅 뚜벅 걷는 거로 모델의 역할이 끝나는 게 아니다. 해당 쇼의 콘셉트를 소화하기 위해서 모델은 많은 문화를 접하는 게 좋다. 공연, 전시, 고궁 방문 등등과 시를 비롯한 문학도 가까이해야 한다. 한마디로 문화적 소양을 쌓는 게 필수다.


# 김동수

개인적으로 혹은 일적으로 고수하는 원칙이 있다면.
고인 물이 안 되려고 노력한다. 생각이 열려 있어야 성장이 가능하니 말이다. 그림, 클래식, 댄스 스포츠 등 이것저것 다양하게 배우려 시도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보며 내가 어떻게 학생들과 소통해야 할지 참고한다. 사실 어떤 일이든 하다 보면 만족감과 함께 순간의 비참함이라고 할까, 내가 하는 일에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약 20년 전부터 시작한 마음공부가 도움이 된다. 마음 수련을 하다 보니 타인에 의해 휘청거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중심을 잡게 된다. 예전에는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 6시 이후 금식 등 나만의 원칙을 정하고 철저하게 따랐었다. 일할 때 상당히 예민해졌었는데, 이제 그런 것들에 매우 너그러워졌다.

꼭 지키는 건 매년 말 정도 그다음 해에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운다. 가령, 컴퓨터와 영어 배우기, 사람들 이야기 경청하기, 삼시 세끼 내 손으로 해 먹기 등등 사소해 보이는 것들도 아주 꼼꼼하게 오랜 시간을 들여 계획한다!

요즘 집중하는 것이 있다면.
최근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었는데, 너무 좋았다. 열심히 돈 모아서 나름 럭셔리하게 실컷 놀다 왔다. 젊은 시절 해외 활동하며 웬만한 국가와 휴양지는 대부분 가 봤는데 그때랑 지금은 또 다르더라. 제한된 예산과 시간 안에 어떻게 하면 멋진 곳에 여행을 가서 유익한 시간을 보낼지 고민 중이다. 스페인과 전라도 여행을 꼭 가려 한다. 앞으로 60대가 얼마나 즐거울지 너무 기대된다. 아들은 훌륭한 교육 받게 해줬으니 내 의무는 어느 정도 끝냈고, 이제 나만 독립적으로 잘 살면 된다.

<뱀파이어 아이돌>(2012)로 연기 이력이 있는데, 이번엔 여행 예능 도전은 어떤가? (웃음)
음, 살다 보니 ‘절대 안 돼’ 라는 건 없더라. 또, 모르지!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주로 패션과 관계된 작품을 흥미롭게 보는 편이다. 좀 오래됐는데 <제5원소>(1997)가 우주인 의상이 독특해서 보는 맛이 있었다. 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도 그녀들의 패션이 시선을 끌더라. 한국 영화로는 <써니>가 기억난다. 영화 관계자 지인이 꽤 있어서 시사회에 가끔 초대받아 가는데, 요즘 작품들이 너무 폭력적이라 무섭다.

요즘 인상 깊은 일이나 행복한 순간은.
행복이라....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늘 행복한 것 같다. 스스로 기특하다고 생각하고 나서는 살아갈 자신이 생기고 무슨 일을 해도 행복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몇 년 전부터 키우고 있는 화초들에게 물을 주는 거다. 그 후 KBS 라디오 틀어놓고, 좌훈기에 앉아 밀크티 마시며 내 화초들을 바라보는데, 그 출근 전 1시간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

2018년 5월 20일 일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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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박광희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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