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좋은 영화음악을 널리 알려 같이 듣자 ‘신지혜의 영화음악’ 신지혜 아나운서
2018년 6월 20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자신만의 삶 그 자체의 인문학을 들려줄, 시대의 100인을 만나다”

외연을 확장한다. 영화배우와 감독이 주를 이뤘던 기존의 인터뷰에서 보다 분야를 넓혀 피플 리스트를 채워 나갈 예정이다. 남다른 소신과 철학으로 우뚝 선 존재감의 이들은, 현실에 발을 붙인 흥미진진한 영화적 캐릭터에 다름 아니다. 영화 같은 자신만의 삶! 그 자체의 인문학을 들려줄 우리 시대 100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 편집자 주


98년 2월 2일 ‘신지혜의 영화음악’을 런칭,
런칭 한 달 후 1인 제작 시작, 그간 해온 영화 스크랩이 큰 도움,
청취자와 주변의 에너지가 모여 20주년 가능케 해,
‘좋은 영화음악을 널리 알려 같이 듣자’가 신.영.음의 모토,
청취자를 헤아리려는 노력이 통할 때 뭉클하고,
무의식적인 뾰족함을 알아챔에 마음을 단정히 하게 돼,
때때로 활력을 부여하는 GV,
영화의 해석은 보는 사람의 몫, 현장감이 GV의 큰 매력,
20년 훌쩍 넘은 직장인으로서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지금을 있게 한 동력은 신.영.음,
무조건반사처럼 튀어나오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처음 시작할 때 까마득했던 10년 이후 15년 그리고 20년,
신.영.음에 애착은 갖되 집착은 말자


# ‘신지혜의 영화음악’ & 신지혜

어느새 ‘신지혜의 영화 음악’(이하 신.영.음)이 스무 살이 됐다. 지난 2월에 애청자와 함께 20주년 기념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시사회를 진행했는데, 소감은.
일단 신.영.음을 사랑해 준 모든 분께 너무 감사하다. 빈말이 아니라, 100% 진심으로, 내 일에 하루하루 충실했을 뿐인데 청취자의 에너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오래 했건 청취율이 잘 나오건 일단 제로섬으로 놓고, 프로그램 개편이 진행된다. 개편마다 한텀 한텀 배당받다 보니 어느덧 20년이 됐다. 예전에 내게 하신 임진모 선생님 말씀이 문득 생각났었다.

어떤 말씀인지.
신.영.음 8년 차였던 당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방문했다가 임진모 선생님과 동승한 적이 있다. 선생님이 나에게 앞으로 10년을 채우라고 하셨었다. 10년을 채우는 것과 채우지 않는 건 단지 2년의 차이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래서 내가 선생님께 손든다고 시켜주는 거 아니지 않냐고 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거든. 다행히 계속 배당을 받았고, 그렇게 10년을 채웠다. 그때 정말 정말 행복했었다.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찬하고 애청자들께 너무 멋지다며 감사했었다. 이후 11년, 12년은 그냥 덤같이 주어진 시간이고,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그렇게 15년, 그리고 20년이 됐다.

한편으론 (앞으로) 부담감도 있을 것 같은데.
(말했듯이) 방송은 보장이라는 게 없다. 당장 다음 개편에 프로그램 배당을 못 받을 수도 있고. 신.영.음과 함께 나이를 먹고 내 인생이 흘러 왔으니, 좀 더 가고 싶은 욕심은 당연히 있다. 부담과는 좀 다른 것으로 애착과 기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감정이 없다면 거짓말일 거다. 다만 신.영.음은 내 것이 아니라 나한테 맡겨진 것이니, ‘애착은 갖되 집착은 말자’고 다짐한다.

신.영.음을 진행은 물론 제작까지 도맡아 하기에 아무래도 더욱 각별할 것 같다.
98년 -정말 오래됐군! - 에 뮤직네트워크는 김영준 선배가, 영화음악은 내가 맡아서 1인 제작을 시작했다. 현재 CBS 라디오에는 꽤 많은 1인 제작 프로그램을 방송 중이다. 인터넷 방송 ‘조이 FM’이나 CCM 위주 방송은 거의 1인 제작이라고 보면 된다. 또, 배미향의 ‘저녁 스케치’, 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 김형준의 ‘레인보우 스트리트’ 등도 그렇다. 전문성과 진행 능력을 갖췄다면 충분히 가능하고, 앞으로 점차 증가할 거로 생각한다.

98년이면 거의 신입 아나운서일 때 아닌가.(웃음)
한마디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던 거지. 그리고 시키면 해야지!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라고 했다면 아마도 못 한다고 했을 거다. 다행히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너무 좋아했었고, 많이 봤었다. 당시 선배들이 4, 50년대 영화를 어떻게 다 아냐고 놀랄 정도였다. 또, 대학 때 방송국 기자로 활동했기에 어느 정도 기계를 다룰 줄 알았고, 녹음과 편집 경험도 있어서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막내 아나운서로 주목을 많이 받았었고, 두려움보다는 흥미가 컸었던 것 같다.

상상이 간다. 오롯이 당신만의 1시간이니, 고민하면서도 즐거웠을 것 같다.
그렇지, 무슨 영화를 소개할지, 선곡을 뭐로 할지 등등. 당시는 LP에 번호가 다 매겨져 있었거든. 자주 나오는 노래 번호를 줄줄이 외우고 있었다. 지금도 몇 개는 기억난다. (웃음) 사실 사운드 트랙 앨범에는 좋은 곡이 여러 곡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유명한 곡 위주로 듣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앨범 중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정말 좋은, 숨겨진 명곡을 소개하고자 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신.영.음의 모토가 바로 ‘좋은 영화음악을 널리 알려서 같이 듣자’이다. 음악실에 거의 살면서 영화음악 노트를 만들어 모니터하고 청취자의 취향을 파악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단지 재미있어서, 정말 뼈가 부서져라 일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 보물이 있었는데, 바로 故 정영일 선생님이 영화 해설한 내용을 스크립한 거였다. 스크립하면서 나 혼자 별점을 매기고 영화 장면을 다 기록해 놨었거든. 그게 1인 제작함에 있어 엄청난 자산이 됐다. 당시엔 영화 관련 서적도 많이 읽었는데, 관심이 워낙 많았기에 스폰지처럼 빨아들였던 거 같다.

그간 청취자가 보내온 사연과 관련 에피소드가 정말 많았겠지만, 가장 뭉클했던 사연을 꼽는다면.
음, 청취자 한 분이 사람에 대한 상처가 깊어 몸과 마음이 힘들 때, 신.영.음을 들었다고 하시더라.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너무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밀어내지도 않는 목소리가,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같아 치유됐다며 자신 같은 청취자가 많을 거라는 사연이었다. 그분이 나에 대해 다 알지 못하고, 나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신.영.음이라는 접점을 통해 서로가 알아보는 것 같아 순간 뭉클했었다.

청취자를 통해 각성한다고 할까, 자극되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감성이 풍부하다. (웃음) 어떤 사연이 들어오는 경우 겉으로는 티를 안 내도 속에서는 요동칠 때가 있다. 물론 아무렇지 않은 척 진행하지만 말이다. 청취자분들은 너무 매서운 눈과 귀를 가지고 있어서 그 미묘한 변화를 놀랍게 알아채신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뾰족함을 느끼고 지적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을 단정히 조율하게 된다.

월급쟁이 직장인으로서, 20년 장수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당신만의 동력이 있다면.
몇 년 전에 아나운서 데스크를 맡기도 했고, 입사 후 처음으로 몸이 안 좋아서 6개월간 휴직을 하기도 했었다. 다른 직장인이 그러하듯 사직서를 쓰고 찢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방송하고 싶냐고 자문하니 대답은 하고 싶다였고, 방송하려니 방송국에 남아 있어야 했다. 청취자의 사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많은 감정에 이입하게 되는데, 그게 어떤 방법으로든 분출이나 해소가 안 되면 몸이 아파온다. 게다가 말을 하는 직업이니 목은 항시 만성으로 부어 있고, 소리가 나오니 방송을 하긴 하는데, 너무 몸이 안 좋아서 가끔 서러울 때도 있었다. (웃음) 너무 뻔한 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간의 내 동력은 신.영.음이었다. 힘들 때마다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의 한 시간이 나를 지탱해 줬다.

20년 동안 영화음악프로를 진행하면서 한국 영화와 영화 산업 환경의 변화를 크게 체감했을 것 같다.
처음 프로를 진행할 때만 해도 외화가 강세였지 한국 영화가 이렇게 다양하지 않았었다.영화 제작 환경도 열악했고, 소재나 주제도 한정적이었다. 지금은 음악, 믹싱, 편집 등등 기술적으로 정말 많이 발전했고, 스탭들에 대한 처우도 많이 개선됐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로 들어서며 한국영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거 같다. 한국형 최초 블록버스터라 할 수 있는 <쉬리>(1998)가 도화선이라고 보는데, 개인적으로 <은행나무 침대>(1996)를 주목했다.

이유는.
그 이전에는 한국영화에서 오리지널 스코어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는데, <은행나무 침대>의 이동준 음악 감독의 음악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후, <접속>(1997), <올드보이>(2003)의 조영욱 음악감독, 독일에서 음향을 공부한 한재권 음악감독, (기자 주 <실미도>(2003), <범죄의 재구성>(2004), <재심>(2016) 등 다수) 성악을 전공한 이욱현 음악감독(기자 주 <무방비 도시>(2007), 뮤지컬 ‘점프’ 등 다수) 등 그분들이 음악이 단순히 영화의 부속이 아닌 독자적인 하나의 영역을 구축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물론 음악만 발달한 게 아니라 영상 면에서도 기술적으로 엄청나게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음악감독에 주목하다니, 영화음악프로를 진행하고 있는 DJ답다!(웃음) 많은 사람이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지적하는데, 이에 관한 견해는.
기획, 제작, 배급까지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 그들은 이윤 추구가 목표이니 비난할 수는 없는데, 그럼에도 비난하게 된다고 할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문제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사실 우리 청취자는 작고 감동적인 영화를 찾는 분이 많은데, 신작 소개를 듣고 보러 갔더니 벌써 내렸다는 청취자의 사연을 접하며 안타까웠던 적이 많았다. 또, 스크린을 할당해 준다고 해도 직장인들이 보러 가기 정말 힘든 새벽 시간대에 열어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건 좀....너무한다!

몇 년 전에는 관객들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단순히 관객들에게 책임을 돌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결국은 영화가 제7의 예술에서 산업으로 넘어가며 생기는 문제인데, 단순히 이윤 추구가 아니라 영화가 지닌 고유의 본질을 생각해 보고 다양한 해법의 모색이 필요하다. 민병훈 감독(기자 주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2016), <설계자>(2017) 등 다수)의 말이 생각난다. 영화를 꼭 극장에서 혹은 IPTV로 가정에서 접하는 것 외에도 공동체의 공공상영 등 대안적 공간을 활용하여 스스로 뚫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스스로 대안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 지금 이 순간도 그 어떤 변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신지혜

영화를 좋아했었는데, 직업은 아나운서를 선택했다.(웃음)
어릴 때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뉴스를 진행하던 신은경 아나운서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때부터 방송일에 관심이 생겼던 거 같다. 대학 진학 후 교내 방송국에 들어가려니, 예쁜 문과생들이 아나운서를 많이 지원하더라. 나는 멋 낼 줄 모르는 이과생이라 상대가 안 될 것 같아서 기자를 지원했었다. 취재하고 뉴스 작성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졸업 즈음에는 방송국 입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PD의 경우 내가 그다지 창의력이 뛰어나지 못해서 포기하고, 이래저래 생각해보니 아나운서가 맞을 거 같더라. 마침, 중고등학교 때 책 읽기 하면 발음과 목소리가 좋아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소리를 들었던 게 떠오르기도 했고. (웃음) 이후 몇 번의 시도 끝에 입사했다.

언젠가 예전 다이어리를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쓰여있는 거다. ‘영화는 환상이자 꿈, 방송은 목표’, 라고. 꿈과 목표는 비슷한 의미로 혼용되어 쓰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의미에 차이가 있다. 꿈이 목표로 치환돼야 계획하고 도모할 수 있게 된다. 내 경우는 방송이라는 목표를 달성했고, 이후 DJ 하면서 내가 꿈꿨던 ‘영화’ 분야를 하게 됐다. 한마디로 신.영.음이 꿈과 목표를 동시에 이뤄준 거다.

미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주부이자 엄마라는 소리를 듣고 조금 놀랐다. 딱 꼬집어서 표현하기 힘든데, ‘생활감’이 잘 안 느껴진다고 할까.
그런 소리를 종종 듣는다.(웃음) 처음에는 내가 철부지 같아 보이나 의아했었다. 클래식, 재즈, 영화 등 음악 프로 진행자의 경우 감정에 너무 이입하여 사적인 이야기로 다가가기보다는 음악을 통해 청취자와 접점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청취자와 밀접하면서도 적절한 거리 두기가 필요한 것 같다. 요즘엔 그런 소리를 듣는 게 적당한 텐션을 유지했다는 방증처럼 느껴진다. 집에서는 살림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엄마지만, 직장에서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진행하는 ‘신지혜’로서 항상 프로의 모습을 갖추려 한다. 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퍼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웃음)

자녀가 방송인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겠다.(웃음)
중학생 딸이 한 명 있다. 어렸을 때는 좀 그랬던 것도 같은데, 음....지금은 내 프로를 듣고 모니터링 한 번 안 해준다. 게다가 원체 소년 같은 소녀라 직접적인 감정 표출이 드물고, 감정보다는 팩트를 중시하는 편이다.

매일 오전 11시 ‘신지혜의 영화음악’ 외에 진행하는 다른 프로그램이 있는지.
오후 9시에 방송되는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외에도 라디오, 뉴스, TV 더빙 등 일이 꽤 많다. CBS 방송국의 경우 아나운서 인원이 적은 데 비해, 프로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일이 많은 편이다. 나를 프리랜서로 알고 있는 사람도 꽤 많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20주년 기념 애청자 시사에 참석한 후 직장인임을 알았다.(웃음) 직장인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매너리즘에 빠지는 순간도 있었을 텐데.
당연하다. 가끔 진행하는 GV(Guest Visit)가 루틴한 일상에 활력이 되곤 한다.

최근 오랜만에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미세스 하이드> GV를 진행했다. GV의 매력은.
현장감이 가장 큰 매력이자 힘든 점으로 방송하곤 전혀 다른 느낌이다. 사전에 전혀 몰랐던 관객을 대상으로, 내가 미리 보고 공부하여 준비한 얘기를 전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런 상호 작용이 아주 좋다. 방송은 영화 음악 위주로 진행하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나 짧은 감상을 주로 언급할 뿐, 영화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긴 힘들다. 하지만 GV의 경우는 한 편의 영화를 주제로 좀 더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현장감이 매력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론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급격한 견해차로 인한 말싸움이라든지 말이다.
물론, 항상 긴장하는 이유다. 그런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매력이 더 많다. 항상 GV 시작하면서 영화는 본 사람의 수만큼 해석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내 해석과 생각을 일방적으로 들려주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교감하는 게 GV의 목적이니 말이다.

<미세스 하이드>가 상당히 독특한 영화인데, 어떤 점이 좋았는지.
고전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재해석한 영화인데,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한 존재감 제로인 지킬 선생이 어느 날 실험실에서 전기를 맞은 후 때때로 하이드로 변신하는 이야기다. 이미 스토리를 잘 알겠지만, 한편으론 실소가 나올 부분도 분명히 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한 결말과 고전 원작을 학교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여 비틀어 버린 점 등 세르지오 보종 감독이 참 영화를 잘 만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장면은 지킬 선생이 학생에게 최단거리 구하는 법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사고의 방향을 잡아주는데, 그녀는 정말 엄청난 교수법을 지닌 물리 교사더라. 이후 그 학생의 삶의 방향이 아마도 바뀌지 않았을까. 그 순간은 조금 각도를 튼 것뿐이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크게 달라져 있을 거로 생각한다.

GV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을 거다. GV 진행 간격은.
예전 CGV에서 정기 톡을 진행할 때는 한 달에 한 편, 많은 경우 일주일에 2회 진행했었다. 회사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즐거워서, 욕심내서 했었는데 이제는 힘들어서 많이 못 한다. 몸이 힘들면 목소리가 안 나오기에 적당히 조절하는 중이다.(웃음) 이번에 아주 오랜만에 진행한 거였다.

아나운서나 DJ를 희망하는 후배들이 많다.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해 조언한다면.
누군가 DJ 되는 방법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DJ를 뽑는 시험이 따로 없으니, 그런 질문이 나올 만도 하겠더라. 디제이(DJ), 엠씨(MC), 캐스터(Caster)는 모두 아나운서의 영역이다. 말을 통해서 콘텐츠를 전달하고 시사, 교양, 음악프로 등 방송을 진행하는 게 아나운서의 주 영역인데, 그중 하나가 DJ다. 즉, DJ를 하고 싶으면 방송사에 아나운서로 입사하여 음악 프로 진행을 맡는 방법이 가장 정도이다.

방송은 공공재이고, 방송사는 준국가기관이라 할 수 있어서 아주 틀에 박힌 얘기지만 성실함과 책임감이 필수다. 365일, 24시간 내내 방송하기에, 새벽 2시에서 4시까지는 녹음으로 진행하지만, 배당받은 프로에 대해서 무조건 책임을 져야 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선후배가 응급실에 갔어도 방송 시간에 맞춰 복귀한 경험을 한 번쯤은 갖고 있다. (웃음) 그리고 방송사도 회사이기에 기본적인 자질은 필요하다. 자리에 비해 지원자가 많고, 나이와 학력 제한이 없다지만, 결국 서류 전형을 통과하기 위한 현실적인 스팩이 필요하다. 상식과 논술, 한국어 공부는 이후 업무 수행에도 아주 도움이 되는 부분이니 꾸준히 공부 한다면 좋을 거다.

개인적으로 가장 대답이 궁금한 질문이다. 좋아하는 영화를 꼽는다면.
단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 영화 이전에도 이후에도 더 흥미롭거나 재미있거나 감동한 영화가 많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질문받으면 무조건반사처럼 튀어나온다. 마치, 갓 부화한 새끼 오리가 처음 본 대상을 엄마라고 인식하는 것처럼 나에게 각인된 영화라고 할까. <블레이드 러너>는 단순한 SF 물이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을 심도 깊게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공각기동대>(1995)를 연출하면서 오마주라고 이야기한 것을 비롯해 이후 많은 SF 걸작에 영향을 미친 기념비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데커드’(해리슨 포드)와 ‘레이첼’(숀 영)간의 튜링 테스트 모습을 비추는 오프닝은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영화라는 것을 알려주고 이후 펼쳐지는 인상적인 장면들과 서브텍스트는 깊은 물음을 던진다. 최근 속편인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에서 프리퀄이 나오는데, 아마도 오리지널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모호함에 휩싸일 수밖에 없을 거 같았다. 게다가 반젤리스의 음악도 영화의 분위기와 기가 막히게 어울렸었다. 서기 2019년, 산성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도시.... 아 벌써 내년이 2019년이라니!

나도 좋아하는 영화다. 특히, 빗속에서 외치는 레플리컨트(복제 인간)의 절규를 잊을 수 없다.(웃음) 마지막 질문! 최근에 인상적인 일이나 행복한 순간은.
음, 2월 2일에(기자 주 신.영.음은 1998년 2월 2일 첫 방송) 20주년이라고 편성국에서 패를 하나 만들어 주더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이었다. 또, 후배들과 동료들이 케이크를 준비해서 축하해 줬는데, 그렇게 일일이 챙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너무 고마웠다.


2018년 6월 20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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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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