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영화 속 ‘류성현’을 찾아라! 조·단역 계의 팔색조, 배우 류성현
2018년 7월 7일 토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자신만의 삶 그 자체의 인문학을 들려줄, 시대의 100인을 만나다”

외연을 확장한다. 영화배우와 감독이 주를 이뤘던 기존의 인터뷰에서 보다 분야를 넓혀 피플 리스트를 채워 나갈 예정이다. 남다른 소신과 철학으로 우뚝 선 존재감의 이들은, 현실에 발을 붙인 흥미진진한 영화적 캐릭터에 다름 아니다. 영화 같은 자신만의 삶! 그 자체의 인문학을 들려줄 우리 시대 100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꼭 작년 이맘때,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서 <연기의 중력>으로 남우 주연상 수상,
<변산>, <덕구>, <꾼>, <택시운전사> 등 그가 2017~2018년에 출연한 쟁쟁한 작품들,
있는 듯 없는 듯 작품 속에 녹아들고 싶어,
‘천만 관객 영화의 조연’과 ‘사투리 지도’라는 타이틀을 달아준 작품 <택시운전사>,
뒷모습만 나오는 스님 역할을 위해 머리 밀고 <하면 된다>로 스크린 데뷔,
카메라 울렁증이 생길 정도로 상처받았던 드라마 촬영 현장,
<평양성>으로 슬럼프를 극복, 그 후 연기에 도움 준 이준익 감독의 돌직구 조언,
<퍼펙트 게임>, <내부자들>, <택시운전사>까지 풍미 깊은 전라도 사투리 맛을 일궈내는 데 일조,
인맥, 오디션, 프로필 투어 등 다양한 경로로 배역을 따내,
코미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준 연극 <라이어>,
동료들과 함께하는 공연이 대학로에서 최고로 재미있다고 자부,
연기가 보고 싶은 배우로 남아 연극무대를 지키고 싶어,
억지로 꾸미고 치장하지 않는 본인이 지닌 고유의 색에서 참맛을 끌어내는 연기를 하고파,
조·단역 계의 팔색조, 영화 속 ‘류성현’을 찾아라!


작년에 <연기의 중력>(연출 정근웅)으로 2017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영화제 즈음하여 인터뷰하는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극 중 연기한 인물이 연극배우에 이름도 ‘성현’인데, 여러모로 각별한 작품일 것 같다.
벌써 1년이 지났다니! 시간이 참 빨리 흐른다. 아무래도 연극배우 이야기라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연기의 중력>을 작년 영화제 기간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보지 못한 관객이 더 많을 거다.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개인적(?) 경로를 통하지 않고는 보기 힘든 거로 알고 있다. 영화에 대해 간략히 소개를 부탁한다.

정근웅 감독이 영화가 (아마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 영화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 외설적인 면을 부각하는 - 소비되는 것을 우려해 대중적으로 풀지 않고 혹은 풀지 못한 게 아닌가 한다. <연기의 중력>은 독립 영화에 출연 기회를 얻은 연극배우 ‘성현’(류성현)과 그의 자리를 노리는 후배 ‘태석’(오륭)간을 갈등을 주요 소재로 한다. 연극배우의 삶과 그의 안에 (세상을 향한) 내재된 분노 등을 담고 있다. 내 이름 그대로 극 중 ‘성현’을 연기했고, 극 중 인물이 결혼했다는 점만 빼면 딱 내 이야기 같았기에 수월하게 이입할 수 있었다. 영화제 출품에 맞춰 촉박하게, 20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촬영했지만, 오히려 호흡과 감정을 놓치지 않고 연기할 수 있었다.

연기력을 인정받은 남우주연상 수상도 당연히 기쁘겠지만, 그간 조· 단역 위주로 활동하다 극 전체를 끌고 나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일본 홋카이도에서 개최되는 유바리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도 초청됐었다.
연극에서는 주역으로 극을 이끌었지만, 영화에서는 아직 경험이 없었으니, 말했듯이 큰 경험이었다. 이후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연극 무대에 서다 보면, 비단 연극배우만이 아니겠지만, 일하다 보면 인간의 밑바닥 혹은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거다. 그런 감정들을 쏟아 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정 감독이 어느 날 유바리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됐다고 전화로 알려줬는데, 아쉽게도 직접 방문하진 못했다.

<내부자들>(2015>, <택시 운전사>(2017), <꾼>(2017), <덕구>(2017) 등등 최근 하나같이 쟁쟁한 작품에 출연했다. 특히, <택시 운전사>로 ‘천만 관객 영화 조역’이라는 수식어를 받았다.
음....작품은 많지만, 영화 속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웃음)

고백하자면, 위에 열거한 영화를 아주 흥미롭게 열심히 봤음에도 극 중 당신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안(?)하다.
(하하) 아니, 그게 좋다. 내 역할은 딱 그만큼이다. 극 중 있는 듯 없는 듯한 거 말이다. 없으면 해당 장면이 어딘가 빠진 거 같고 휑하고 나중에 그 장면을 떠올릴 때, ‘아, 그런 인물이 있었지’라고 생각나지만, 딱히 배우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을 정도 말이다.

열심히 연기했는데 대중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배우로서 씁쓸하지 않은가.
예전에는 그런 생각이 분명히 있었다. 여전히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은 아쉽겠지만, 배우로서 그게 맞는 것 같다. 나를 드러내고 주목받는 것보다 작가나 연출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 즉 내 자체보다 영화가 빛나는 게 좋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나를 못 찾겠다는 소리를 들을 때, 만족스럽다. 아마 연극 공연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크게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공연하다 보면 주인공 한 명으로 인해 작품 전체가 안 보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다 영화 쪽으로 영역을 넓혔다. 영화 데뷔작과 이후 출연작이 너무 많으니, 기억에 남는 작품을 몇 편 소개한다면.
영화 데뷔는 박대영 감독의 <하면 된다>(2000)였다. 생각해보니 벌써 18년 전이다. 그때 맡은 배역이 프롤로그에 잠깐 등장하는 스님 역할이었다. 그 잠깐을 위해 머리를 밀어야 하니 원래는 안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부탁하길래, 평소 언행이 투박하고 거침없어서 과격하게 보일 수 있지만, 원래 거절을 못 하는 편이라 ‘까짓거 하자’고 했다. 소매치기를 보고 뛰어가서 잡는 스님이었는데, 뒷모습만 나왔었다. 그 후 대학로에서 계속 연극하며 경력을 쌓던 중, 이연우 감독의 <거북이 달린다>(2009)에 출연했다. 당시 조연이라도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역할을 주지 않을까 살짝 기대했다가 아니라서 실망했지만, 역시 하자고 하길래 했다. 이후 사투리 때문에 박희곤 감독의 <퍼펙트 게임>(2011)에 발탁됐는데, 개인적으로 의의 있는 작품이다.

<퍼펙트 게임>이 영원한 라이벌 최동원(조승우)과 선동열(양동근)의 대결을 그린 야구 영화인데, 사투리 때문에 발탁되었다니?
내가 광주 출신이거든. 단역이 아니라 현장에 머물면서 배우들에게 사투리를 가르쳐 주고, 그들의 사투리 연기를 감수했었다. 잘 보면 얼쩡거리는 인물 중에 나도 있다. <퍼펙트 게임>은 (내가) 촬영 현장에 가장 오래 있었던 작품으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 아주 유효했다. 이 경험이 <연기의 중력>에서 극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던 동력이 됐던 거 같다.

그간 (당신이) 참여한 작품 중 ‘사투리’ 하면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2010) 아닌가!
<평양성>은 내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건져준 작품이었다. <평양성> 연출부에서 풀지 못한 장면이 있었는데, 우리 단역들이 제안해서 풀게 됐었다. 그걸 보신 이준익 감독님이 나한테 ‘넌 (배우) 해도 되겠다’고 하시더라. 영화에 출연했음에도 관객이 나를 기억 못 하는 이유가 내 연기력의 부족 때문이라고 자학하던 때라 (이준익) 감독님의 그 말에 용기를 얻었었다.

무명의 시간이 오래되다 보면 스스로 위축되는 게 당연한데 그게 슬럼프로 이어졌었나 보다.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당시 드라마에 출연했었는데, 시범케이스라고 할지 공개적으로 (연기에 대해) 야단을 맞았고 꽤 상처받았었다. 이후 카메라 울렁증이 생길 정도였다. 그 후 대학로에서 선배를 만나서 얘기하던 중 폭발했던 것 같다. 잠시 서울을 벗어나서 혼자 생각했었지. 연극 무대에 서면 주변에서 잘한다고 하지만, 아무도 날 기억 못 하는데 그 말을 믿어야 할지 연기를 계속하는 게 맞는지 등에 대해서 고민했었다. 결국 다시 해보자고 결론 내리고, 연극에선 가장 자신 있는 <라이어> 공연을 시작했고, 영화 쪽으로는 이준익 감독님을 찾아갔었다.

연출부도 해결 못 했던 장면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평양성>은 사실 <황산벌>(2003)의 아류 같은 느낌이었다. 두 영화 모두 사투리 욕배틀이 등장하는데, <평양성> 시나리오상에 그 장면이 굉장히 간략히 표현돼 있었다.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고구려군, 공격을 받는다’ 뭐 이정도였다, 그 장면을 어떻게 살릴지 동료와 고민하다가 제안하니 (감독님이) 신선하고 좋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배우는 장면보다는 자신이 더 돋보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내 경우 그런 생각이 아예 없었으니 오로지 그 장면만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후 내 연기 방향이 결정됐다고 할 수 있다.

좀 전에 말한 ‘있는 듯 없는 듯한 연기’로 이해된다. 조·단역의 경우, 매번 오디션을 볼 것 같지는 않은데, 주로 어떤 경로로 작품에 참여하는지.
경우에 따라 다른데, 아무래도 인맥을 무시할 순 없다. 알음알음으로 역할 제의가 들어오기도 하고 오디션을 보기도 한다. 또, 우리 사이에선 프로필 투어라고 하는데, 자기 프로필을 들고 제작사 등 사무실을 방문하기도 한다. 내가 조직의 간부 중 한 명으로 나왔던 <신세계>(2012)의 경우, 이미 오디션이 끝난 상황이었는데, 다른 선배를 캐스팅하기 위한 자리에 함께 나갔다가 우연히 오디션 기회를 잡았다.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는 나를 잘 봤는지 덥석 배역을 줬었다. <내부자들>(2015)은 오디션을 통해 발탁됐는데, 역시 사투리와 인연이 깊은 작품이다. <내부자들>의 주인공인 ‘안상구’를 연기한 이병헌 배우와 극 중 인물이 사용하는 사투리를 실제와 유사하도록 고치고 다듬어 나갔었다. 형(이병헌)도 처음에는 어색해하다가 나중에는 좋다고 해서 나름 자신감이 생기더라.

사투리에 자긍심이라고 할지, 관심도가 높아 보인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전라도 사투리가 다소 가볍고 상스럽게 사용되고 그렇게 인식되는 것 같은데, 그 점이 싫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서 사명감이라고 할까, 전라도 사투리가 절대 가볍지 않고 풍미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퍼펙트 게임>, <내부자들>도 그렇지만, 최근작인 <택시 운전사>도 마찬가지였다. 광주가 배경임에도 감독님 이하 스탭들 중에 광주 사람이 한 명도 없었거든. 후반 작업할 때, 나만 쳐다보는 거다. 사투리가 맞는지 틀리는지 잘 모르니 말이다. 내가 좋다고 했는데 아닐 수도 있기에 부담된다고 말하니, 어디선가 관객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그 결과 <퍼펙트 게임>과 <내부자들>에서 사용된 사투리가 가장 실제와 유사했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 <택시운전사>에서 (류) 준열이가 사투리 연기가 자연스럽다고 칭찬받을 때는 내가 다 뿌듯했었다.

보통 촬영 현장에서 이북 지방 사투리는 따로 선생님을 붙여 주는 데 반해, 다른 지역 사투리는 배우보고 각자 알아서 준비하라는 경우가 많다. 사투리 티칭과 감수가 하나의 영역 혹은 스탭의 일원으로 인정됐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꼭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로써 작품의 수준을 높일 수 있으니 말이다. 연기는 작은 것, 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나고 그게 나비 효과를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택시운전사>의 출연진 소개를 보면 당신의 경우, ‘조연’과 ‘사투리 지도’ 이렇게 두 가지로 표현돼 있다. 사투리 티칭과 감수가 하나의 영역이 됐으면 하는 당신의 바람에 한 발짝 다가갔다고 볼 수 있겠다. 지금까지 조폭 등 다소 센 역할을 많이 했었는데,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택시운전사>에서 맡은 배역을 소개한다면.
좀 세게 생긴 덕분인지 나를 잘 모르는 분들은 외모만 보고 누아르, 액션, 사채업자 이런 역할을 주려고 한다. 다만, 나를 좀 잘 아는 사람들은 코미디나 생활 연기 등에 쓰려고 하고. 극 중 ‘김만섭’(송강호)이 원래 예약된 기사를 따돌리고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다. 그 손님 뺏긴 ‘류기사’가 바로 나였다! 원래 내 역할은 시민 1이었는데, 택시 기사를 하기로 했던 배우가 빠지는 바람에 갑자기 하게 된 거였다. 처음에는 출연료가 너무 작아서 망설였었다. 혼자 고민해보고 주변에 물어보니 역시 너무 박하다고 하더라. 남산 한 바퀴 돌며 ‘너는 무명이잖아, 남이 인정 안 하는 걸 받아들여’라고 마음 다지며 초심으로 돌아 가고자 했고, 한편으론 광주 출신으로서 좋은 영화에 참여하는 것에 의미를 두려 했다. 정말 올바른 결정이었다.(웃음)

지금까지 지나간 작품만 얘기했는데, 앞으로 공개될 작품에 관해 얘기해보자. 파출소장으로 출연한 <변산> (2018, 연출 이준익)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준익 감독님과 인연이 깊다. (기자 주 <변산> 개봉 전에 인터뷰가 진행됨)
이준익 감독님과 <평양성>(2010), <박열>(2016) 이후 세 번째다. 이번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시더라. 좀 전에 말했듯 <평양성>의 경우는 슬럼프에서 건져준 작품이고, <박열>은 방수인 감독(기자 주 <덕구> 연출)을 만나러 갔다가 겸사겸사 (이준익) 감독님께 인사 갔더니, 하루만 촬영하면 된다고 역할을 주셨었다. <변산>도 비슷하다.

그간 여러 작품에 참여한 만큼 많은 현장과 감독을 경험했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단역 출연의 경우 현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아 인간관계가 깊이 형성되긴 힘든 면이 있다. 다만, 좋았던 감독님의 경우 아무래도 다음에 또 불러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택시 운전사>를 연출한 장훈 감독님은 말은 많지 않아도 참 친절하신 분이다. <신세계>에 함께 출연했던 정기섭 배우와 가끔 만나면 <신세계>가 잘 돼서 박훈정 감독이 한번 불러줄 법한데 안 불러 준다고, 우릴 싫어하나 보다고 농담하기도 한다. 박훈정 감독이 워낙 내성적인 분이라 먼저 연락 같은 거 잘 안 한다고 위안 삼기도 하고.(웃음) 그런데, 박훈정 감독이 <신세계> 시사 후 우리 같은 조·단역은 연기 후 모니터로 가서 자신의 연기를 보는 게 조심스러웠을 거라고 얘기하는데, 드러내진 않아도 그런 마음 써줌이 좋았다. 또 하나는 이준익 감독님이 던진 돌직구 조언인데, 당시에는 잘 이해가 안 갔었다.

어떤 조언인가.
사실 이 얘긴 여러 번 했는데, 정작 감독님은 생각 안 난다고 하시더라.(웃음) 감독님이 “너한테 몇 번의 기회가 있을 것 같냐?” 이러면서 시작하는데....나 지금 이준익 감독 성대 모사한 거다! 처음에는 조언이 아닌 비야냥처럼 들렸는데, 그 내용인 즉 대사가 없어도 좋으니 엔딩까지 나오는 배우가 되라고, 그렇게 흐름을 끝까지 읽어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춘다면 5~6년 후엔 기회를 잡을 것 같다고 하셨었다. 처음에는 기분 나빴지만, 조언에 따라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를) 너무 소비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드라마의 경우 거절하고 다른 이에게 양보한 적이 있는데, 덕분에 ‘아직 배가 부르구나’ 라는 소리까지 듣기도 했었다.(웃음)

여전히 영화와 연극을 병행하고 있다. 연극과 영화의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박쥐라고 할 수 있다. 영화판에 가면 연극배우 아니냐고, 연극판에 가면 반대로 영화배우 아니냐고 한다. 한 명의 배우로서 연기한다는 건 같은 건데 사람들이 이렇게 구분 짓곤 한다. 연극 무대가 편하고 연극을 계속하고 싶다. 그러려면 영화도 계속해야겠지.

연극을 위해 영화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연극에서 티켓 파워가 있으려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표가 팔린다. 아마도 (연극보다) 좀 더 대중적인 영화를 통해 ‘류성현’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궁금해진다면, ‘류성현’이 하는 연극도 궁금해지고 좀 더 연극 무대를 찾게 되지 않을까. 내가 비록 출연료 없이 무대에 서더라도 많은 분이 연극을 보러 오시고 관객층이 넓어졌으면 한다.

연극을 찾는 관객이 소수다 보니 연극배우가 생계를 위해 투잡 쓰리잡을 뛰어야 하는 게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지금 약 5% 만이 연극을 본다고 하는데, 역발상으로 95% 관객이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지금보다 무대를 더 잘 만든다면 점차 관객이 증가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견디는 시간이 정말 힘들다. 나도 노상 겪는 일이라 너무 잘 안다. 견딜 수만 있다면, 굳이 영화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연기가 보고 싶은 배우가 되는 것만으로 나는 만족한다.

연극을 향한 각별한 애정이 느껴진다. 최근 5.18 기념 연극 공연을 했다고 들었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 38주년 기념인 <그때, 그놈>을 3일 동안 공연했었다. 고문 기술자였던 ‘이근안’을 모티브로 한 연극으로, 영화 <1987>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근안’을 배후 조종하는 인물인, 영화 <1987>로 치자면 김윤석 선배 역할을 맡았는데, 흥미롭고 훌륭한 공연이었다.

지금까지 연극과 영화를 통해 기억에 남는 캐릭터 혹은 좋아하는 작품을 꼽는다면. 좀 전에 연극 <라이어>가 자신 있다고 했는데....
자신 있다기 보다는 코미디라는 게 뭔지를 (나에게) 알려준 작품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연극 <라이어>를 처음 공연할 때, 원래 6개월 하기로 했던 것을 연장해서 1년 동안 공연했었다. 배우는 보통 관객이 웃으면 그 웃음 유발 행위를 극대화하게 되는데, 그러면 반대로 관객의 웃음이 사그라들곤 한다. 관객이 웃는 이유와 코미디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평소 누군가 만들어 놓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보다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흥미를 느끼는데, 그렇게 나만의 ‘라이어’를 만들 수 있었다. 더불어 대학로에서 나와 우리 팀이 만든 공연이 제일 재미있다고 자부한다.(웃음)

배우로서 스스로 생각하는 장, 단점은.
어려운 질문이다. 지금 문득 생각나는 건, <평양성> 조감독이자 이번에 <꾼>(2017)으로 데뷔한 장창원 감독이 했던 말이다. 장창원 감독과는 <평양성> 시절부터 알고 지냈는데, 이번 <꾼>에서 ‘입봉 감독으로서 줄 수 있는 배역 중에서 제일 큰 역할’이라며 선뜻 ‘정회장’역을 맡겨줬었다. <평양성> 촬영 당시, 그가 어떤 장면을 부탁하러 왔다가 그냥 가면서 하는 말이 ‘형은 기승전결을 생각하고 감정을 만드는 건 잘하는데,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장면이라 안 되겠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욕인지 칭찬인지 애매했는데, 내가 순발력이 없는 건 맞는 거 같고, 그렇다면 감정은 잘 잡는다는 거 아닐까. (하하)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최근에 흥미롭게 본 건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2015)이다. 어제 또 봤는데, 긴장감 넘치고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출력 등 모두 좋았다. 주인공 베니치오 델 토로는 역시 범접할 수 없는 결을 가진 배우더라. 좋아하는 영화는 이준익 감독님의 <라디오 스타>(2006)로, 실컷 웃다 보면 어느새 감동에 젖게 된다. 또, <택시운전사>도 좋아하는데, 정공법을 선택해 신파를 깨버리고, 특별한 장치나 기교 없이 승부한 점이 좋다. 사실 후반부 카체이싱 시퀀스가 더 현란한 버전도 있었는데, 가장 노멀한 버전을 선택하셨더라. 그 점이 좋았다. 나도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

‘그런 연기’라는 게, 확 다가오지 않는다.
음, 멋있게 꾸미려 하지 말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만이 가지고 있는 참맛, 진미를 찾는다고 할까.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멋 내기 위해 다른 새의 깃털을 붙였던 까마귀처럼 행동하지 말고, 까마귀인 ‘나’를 인정하고, 나만의 연기를 다지겠다는 거지.

앞으로 또 어떤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지.
분량은 적지만 작품 수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웃음)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70대 노인역으로 등장한다. 극 중 사건 전달자라 할 수 있는데 내 나이를 훌쩍 넘은 노인 역할이라 마음에 들었다. 또, 영화 <식구>(2018)에서도 단역으로 나온다. 이번에도 나를 한 번 찾아보길!

마지막 질문! 최근 행복한 순간이나 인상적인 일이 있다면.
설날 고향에 내려가 차례 끝내고 부모님, 누나, 조카들과 함께 산책갔었다. 부모님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는데, 건강하시고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그 모습이 너무 좋고 문득 행복하다고 느꼈었다. 또, 작은 누나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부모님께서 최근 리마인드 웨딩을 하셨는데, 싫다고 하시다가 막상 하니 설레하는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2018년 7월 7일 토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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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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