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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② “CJ, 롯데 규제 정책 시급해”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최용배 집행위원장
2018년 7월 13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자신만의 삶 그 자체의 인문학을 들려줄, 시대의 100인을 만나다”

외연을 확장한다. 영화배우와 감독이 주를 이뤘던 기존의 인터뷰에서 보다 분야를 넓혀 피플 리스트를 채워 나갈 예정이다. 남다른 소신과 철학으로 우뚝 선 존재감의 이들은, 현실에 발을 붙인 흥미진진한 영화적 캐릭터에 다름 아니다. 영화 같은 자신만의 삶! 그 자체의 인문학을 들려줄 우리 시대 100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ㅡ편집자 주


CJ, 롯데 등 대기업 수직계열화로 중소 투자, 배급사 괴멸 상태
대형 극장 입맛에 맞는 영화 제작에 치중된 현재 영화계 우려스러워
지난 10년간 정책 부재, 민간기업이라 제재하기 어렵다는 건 ‘핑계’ 불과
젊은 영화인, 부자 되겠다는 욕망보다는 자기만의 터전 닦는 작품 우선하길
확신 가진 여러 프로젝트 있으니 조만간 새로운 작품 제작할 것


요즘 업계 최대 관심사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대기업이 영화계 여러 부분을 독점하고 수직계열화를 이뤘다는 점이다. (투자, 제작, 배급, 홍보 등) 부문별로 다양하게 존재해야 할 주체가 괴멸해버렸다.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하려면 강한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민간기업이 벌이는 일을 법으로 강제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핑계’에 불과하다고 본다.

‘핑계’라.(웃음)
필요하면 해야지.(웃음) 불문율이 존재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대형 극장을 보유한 동시에 그곳에서 상영할 영화에 직접 투자하고 배급까지 겸하는 CJ와 롯데 등의 대기업에 규제를 가해야만 한다.
과거에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그 영화를 상영하는 사람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했다. 많은 관객이 영화를 보러 와야 수익을 분배할 수 있으니 투자, 배급사는 매체 광고에 힘쓰고 극장은 극장 내외부에 포스터를 부착하는 등 여러 홍보 작업을 맡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극장이 자신들의 홍보 과정을 유료화하기 시작한 거다. 투자, 배급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발할 일이었다.

플랫폼 사업자인 극장이 영화를 만드는 투자, 배급사로부터 홍보비 명목의 돈을 거둬들인 게 문제의 시작이라고 보는 모양이다.
특정 배급사 하나가 극장의 그런 요구를 들어주면서 문제가 본격화됐다. 그 배급사가 누구냐 하면, 바로 대형 극장과 같은 계열의 회사다. 규모가 작은 나머지 배급사는 힘센 그들의 방식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런 방식으로 극장에 많은 돈을 갖다 바치게 되면서 투자, 배급사가 거둬야 할 이익이 줄어들었다. 극장은 심지어 배급사에 극장에서 사용할 영사 장비 비용을 부담시켰고, 자기들 마음대로 상영 작품의 무료 초대권을 발행했다. 이런 관행이 이어져 오면서 중소 투자, 배급사는 현재 괴멸 상태다. 대기업의 이런 행태가 현재 영화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다.

무료 초대권 발행에 대한 극장과 투자, 배급사의 갈등이 적지 않은 거로 안다.
최근 영화계에 진출한 젊은 영화인 일부는 극장이 무료 초대권을 발행하는 행위를 ‘있을 수 있는 일’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영화표 한 장 가격이 만 원이라면 그 안에는 극장과 배급사의 이익이 모두 포함돼있다. 극장이 배급사의 동의 없이 무료 초대권을 찍어서 뿌리면 그와 동시에 배급사가 취해야 할 이익을 마음대로 편취하는 것이다.

결국 ‘영화 주도권’이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보다 극장을 소유한 대기업에 편중된 상황이 문제적인 셈이다.
그런 상황은 결국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CJ와 롯데 같은 대기업 중심의 자본이 형성되니 최근 영화계는 그들 극장 상영에 적합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제작비 몇백억짜리 대작 영화만 만드려 든다. 성공해본 감독을 다시 쓰고, 유명한 배우는 마치 계 들듯 여러 명씩 작품에 참여한다. 안 보면 안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만의 시도를 할 수 있는 신인 감독이 데뷔하기란 정말 어렵다.

신인 감독이 성공적으로 데뷔하는 건 과거에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예컨대 봉준호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2000)를 준비할 때만 해도 업계에서는 그 작품의 상업적 경쟁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건) 당시 대단한 흥행을 예상했던 <화산고>(2001)라는 작품을 만들던 제작사의 요구 덕분이었다. <화산고>에 투자하고 싶은 자는 봉준호라는 신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에 함께 투자하라는 거였다.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2003)을 연출하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제작사는 <살인의 추억>에 투자하려면 먼저 장준환이라는 신인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에 투자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방식으로 여러 신인 영화감독이 데뷔할 수 있었고 다양한 영화가 등장했다. 한국영화 전성기가 형성된 거다. 지금의 대기업 독과점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모델이다.
 봉준호 감독 <플란다스의 개> 포스터
봉준호 감독 <플란다스의 개> 포스터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 같은 모델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웃음) ‘봉준호 영화에 투자하려면 장준환 영화에 투자하라’는 식의 끈끈한 영화인 연대가 지금도 기능하고 있다고 보는가.
지난 10년간 생긴 영화인 선후배 사이의 균열이 있다고 본다. 후배들 입장에서는 선배들에 대한 불신이 많이 커졌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 자기 터전을 만들어 나간다는 생각보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한탕주의’ 같은 게 깊이 자리 잡은 것도 같다. 전부 근거를 대가며 설명할 순 없지만 직감적으로 그런 느낌이 든다.

영화계 현안을 논의하는 토론장을 찾으면 원로급 영화인이 “나 때는 말이야!” 하는 식의 훈계성 발언을 꺼내놓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불필요하게 권위적인 경우도 많다. 이런 모습도 젊은 영화인을 실망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을까.
그럴 때는 “나 때는 말이야!”가 아니라 “이런 적도 있었는데… 혹시 지금과 비교하면 어떨까?” 하면서 얘기를 해야지.(웃음)

흠.(웃음)
젊은 사람들이 나이 먹은 사람들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것도 한국 영화계의 걱정스러운 지점이다.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물론 영화의 색깔이나 자신들이 지향하는 세계의 모양까지 다 보수적이다.

예컨대 어떨 때 그런 생각을 하는지.
우리 영화계의 큰 흐름으로 비교해보자. 강제규, 강우석, 윤제균 등의 감독과 비견할만한 감독은 지금도 많다. 김용화, 류승환, 최동훈 감독 등이다. 그런데 이창동, 봉준호,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 같은 감독과 비견할만한 감독을 꼽자면 지금은 나홍진 감독 정도뿐이다. ‘그런 영화’(기자 주: 투입된 자본은 적어도 자기만의 색깔을 고집하는 작품을 통칭하는 듯)를 만들겠다는 감독이 없는 거다.
 나홍진 감독 <곡성> 스틸컷
나홍진 감독 <곡성> 스틸컷

왜 그럴까?
자꾸 세대를 나누는 듯 발언하게 돼서 조금 그렇긴 한데.(웃음) 과거 한국 영화 전성기를 이끈 영화인은 대개 한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를 미국 영화에 점령당한 시절에 업계에 발을 들인 이들이다. 한국 영화 하면 다들 에로영화 정도밖에 떠올리지 못했고, (잘 만들어도) 흥행이 안 됐으며 국제적으로도 어떤 주목을 받지 못했던 때다. 내가 한국 영화를 만드는데 내 친구들은 정작 한국 영화를 안 본다는 식이었지.(웃음) 그런 괴리감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좋아서 업계를 떠나지 않았다. 함께 봤던 좋은 영화를 떠올리며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를 물었고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온몸으로 기회를 맞아 성공을 체험했다. 그 세대들이 이뤄놓은 영화적 세계가 있는 건 사실 아닌가. 사람마다 속성이 다르니 스펙트럼이라는 건 있겠지만 대체로 그 세대는 ‘영화는 우리가 만드는 거지 돈이 만드는 게 아니다’라는 자존심과 전투 의지를 공유했다.

과거 세대가 이뤄놓은 한국 영화의 전성기가 있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젊은 영화인은 그런 경험을 해본 적 없고 능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안전한 것만 찾는다. 창의적으로 자기 걸 만들기보다는 돈 주는 대로 시키는 걸 만든다. 기능적으로 일하는 거다.

이번 부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된 젊은 감독 오인천, 백재호, 이희섭 감독 등은 개중에 도전정신 있는 이들로 판단받은 건가.(웃음)
그렇다. 오인천 감독은 <데스트랩>, 백재호, 이희섭 감독은 <대관람차>로 초청받았다. 다만 이 작품들은 모두 저예산 범주에 해당한다. 영화 제작이 디지털화되면서 저예산으로도 독립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됐고, 정부가 그나마 푼돈 주듯 지원을 해줬기 때문에 그만큼이라도 만들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앞서 말한 모든 이유로 그들이 중규모 이상의 상업영화로 발을 들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렇게 자기 실험을 하는 작가, 예술가들에게는 결국 여러 위험을 함께 부담해줄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대기업에 집중되어 온 영화산업의 구조를 바꾸기 위한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지난 10년간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올바른 기능을 상실하면서 영화산업이 너무나도 심각한 방향으로 변질됐다고 본다. 이 구조를 바로잡으려면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간이 들겠지만, 의외로 정부가 방향만 잡아주면 빠르게 진행할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다 보면, 당신이 제작한 영화도 다시 만나볼 수 있는가.(웃음)
물론이다. 확신을 가진 여러 프로젝트가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흠.(웃음) 종종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영화를 만난다. 그럴 때 행복하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한다. 만약 내가 영화 일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 ‘난 왜 이런 걸 만들어 보겠단 생각을 안 해봤을까?’ 하는 어마어마한 후회를 하지 않았을까? 하면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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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3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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