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한 꺼풀 벗겨내다 <인랑> 한효주
2018년 7월 31일 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해사한 미소를 주 무기로 밝고 선한 얼굴을 보여온 한효주가 이번에는 다소 음울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김지운 감독의 SF물 <인랑>으로 관객을 만난다. 통일에 반대하는 테러조직 ‘섹트’의 여성분과위원장 ‘이윤희’역을 맡은 그는 종종 김지운 감독이 자신에게 끌어내고자 한 색깔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고 자평한다. 염세적인 작품 분위기 속에서 도발적인 느낌을 풍기는 인물을 소화하기까지 벽에 부딪힐 때가 많았고, 고민도 따라 커졌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이 배우로서 자신의 연기를 다음 단계로 도약하게 한 경험이었다는 건 분명하단다. 좋지 않은 평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자기 모습을 한 꺼풀 벗겨낸 시도였다고 말이다.

<인랑>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는지.
아무래도 볼 수밖에 없다. 영화가 새롭고 액션도 볼만하다는 좋은 평도 있고, 그렇지 않은 평도 있더라.

새롭다는 평가에는 당신의 역할도 포함돼 있을 거로 보인다. 밝고 부드러운 역할을 주로 맡아왔다면, 이번에는 테러 조직 ‘섹트’의 여성분과 위원장 ‘이윤희’를 연기했다. 우울하고 사연 있는 인물이다.
<인랑>에서는 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지운 감독님이 도와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틀을 깬다는 건 쉽지 않다. 습관적으로 보여준 모습을 경계해야 하니까. ‘이윤희’를 연기하는 건 꽤 어려운 도전이었다. 늘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예컨대 어떤 모습을 경계하려고 했는가.
보통 ‘이렇게 연기해야겠다’는 계획을 하고 작업에 임하는 편인데 <인랑>에서는 그 과정을 최소화했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캐릭터에 집중하기보다는 감독님이 내게 입히려는 색깔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내 바탕을 하얗게 비우고 최대한 나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감독님을 믿고 나를 맡긴 셈이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고스란히 포착해 동물적인 연기를 하고 싶었다.

‘이윤희’라는 인물에 대한 김지운 감독의 요구가 확실했던 모양이다.
음… 그랬던 것 같다. 나에게서 새로운 얼굴을 끄집어내겠다는 감독님의 욕심이 느껴졌다. 섹시함이라는 단어에 다양한 뜻이 있겠지만, 주로 섹시한 모습을 끌어낼 수 있도록 많은 자극을 주셨다.

일종의 도발적인 느낌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영화 속 자기 모습에 만족하는가.
워낙 처절한 상황에 처한 인물인 만큼 배역에 대한 연민이 큰 상태였고, ‘임중경’(강동원)과의 중요한 신을 찍기 전에는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부담도 컸다. 그러니 연기 면에서도 부족할 때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변화가) 성공적이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긴 어렵다. 연기하면서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리적으로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을 연기하는 데다가 멜로 감성까지 곁들여야 했다.
<인랑>의 모든 등장인물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있다. 하지만 ‘이윤희’는 그중에서도 유독 흔들리고 표류하는 인물이다. ‘섹트’ 활동도 신념 때문이라기보다는 혼돈의 시대에서 먹고 살 방법을 찾기 위해 시작한 거였다. 인물 자체가 내적 갈등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임중경’을 만나 진짜 자신을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역시 인터뷰에서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이기에는 쉽지 않은 캐릭터다. 대답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와중에 개인적인 관계를 향한 대중의 관심마저 높은 상황이다.
배우로서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유명세니까… 그렇게 유명해질 때까지 긴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가진 것에 비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견뎌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

사람인지라, 지나치게 높은 관심이 가끔 견디기 어려울 때도 있을 텐데.
가끔은 그렇다. 그때마다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좋은 친구들과 가족이 있는 주변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집중을 많이 하는 편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받는다.

힘든 순간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배우로서 기운 나는 순간은 언제인가.
좋은 작품에 출연해 열심히 연기한 뒤 관객에게 선보일 때 배우로서 보람이 있다. 그런데 그런 좋은 작품을 만난다는 게 쉽지 않다.

당신에게 좋은 작품이란 어떤 것인가.
내가 맡을 캐릭터보다는 영화 전체를 보는 편이다. 첫인상이 중요하다. 재미, 감동, 메시지나 의미 등 하나라도 좋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으면 된다.

그런 면에서 <인랑>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웃음)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역시 김지운 감독의 존재가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그가 만드는 영화의 일원이 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기뻤다. 과연 어떻게 만들어질까? 싶기도 했고, 촬영장에서도 오랜만에 설레었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 과정에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후회는 없다. 나를 또 한 꺼풀 벗겨냈다는 점에서도 만족한다. 평이나 결과에 상관없이, 연기 면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계기를 제공해준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다.

‘이윤희’ 캐릭터가 ‘임중경’에게 너무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느낌도 들던데. 아쉽지 않던지.
‘이윤희’도 같이 액션을 했으면 좋았겠지만(웃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영화 전체로 봤을 때 그 정도의 역할이 최선이었을 거라고 본다.

공교롭게도 <미션 임파서블: 폴 아웃>과 개봉 일이 겹친다. 연이어 <신과 함께-인과 연> <맘마미아!2>까지 기대작이 관객을 찾는다.
이 정도 큰 제작비를 들인 한국 영화가 많지 않은데, 쉽지 않은 대결을 하게 됐다. 긴 시간 동안 많은 분이 어떻게든 새로운 영화를 보여드리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찍었고, 정말 고생하셨다. <인랑>을 보면 비주얼, 의상, 세트, 음악까지 모든 면에서 스태프의 노력이 드러난다. 그 노고가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길 바란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지금보다 어릴 땐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선한 기운을 주고자 늘 노력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더 많은 분에게 긍정적인 힘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욕심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최근 즐겁게 본 영화가 있다면.
에이미 슈머 주연의 <아이 필 프리티>. 자존감 높여주는 영화다. 경쾌하고 재미있어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자존감 떨어지는 분께 추천한다.(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소확행을 말하는 거군.(웃음) 친구들과 맛있는 거 먹을 때. 그게 유일한 낙이다.


2018년 7월 31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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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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