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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할수록 영화는 좋아진다 <살아남은 아이> 신동석 감독
2018년 9월 5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살아남은 아이>는 강 익사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낸 내외(김여진, 김무성)가 아들의 ‘살아남은’ 친구(성유빈)와 가까워지며 시작되는 드라마다. 그날 그 사건 이후에도 내외는 여전히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고, 아들의 의사자 지정식에 참석하며, 새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불운한 생존자인지 불순한 가해자인지 알기 어려운 아들 친구는 학교를 그만두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영화는 그럭저럭, 혹은 어쩔 수 없이 삶을 이어나가는 세 사람을 기어코 충돌하게 만든다. 필연적으로 사람을 잃은(혹은 잃게 만든) 이들의 슬픔과 분노, 죄책감과 좌절이 뒤섞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영화의 태도는 줄곧 담백하다. 세 사람의 격정적인 감정을 전시하는 대신, 인물이 살아 숨 쉬는 공간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극도의 실제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인테리어 가게, 도배 현장과 시험장, 구청의 의사자 지정식, 자갈밭이 펼쳐진 강가까지 영화가 다루는 공간과 사건은 모두 진짜처럼 살아 움직인다.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든다는 신동석 감독은 취재에 취재를 더해, 마치 현실을 옮겨다 놓은 듯 구체적인 장면을 완성했다. 그가 말한다. 취재할수록 영화는 좋아지는 것 같다고.


<살아남은 아이>로 제20회 우디네극동영화제 데뷔작품상에 이어 제6회 무주산골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다. 축하드린다.
너무 어두운 이야기라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관객상은 못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상작을 추첨하던 그 날 그 상영관에 <살아남은 아이>와 취향이 맞는 분들이 많이 앉아 계셨던 모양이다.(웃음) 아마 김여진, 김무성, 성유빈 배우의 연기가 너무 훌륭했기 때문일 것이다. 안 보면 아까울 정도로 잘하셨다. 덕분에 나도 자신감이 좀 붙었다.

단편영화 <물결이 일다>(2005) <가희와 BH>(2006) 이후 11년 만에 첫 장편을 선보인다. 그 사이 기간이 짧지 않다.
그 시간을 이야기하다 보면 좀 슬퍼질 것 같은데…(웃음) 다른 영화의 연출부로 현장 경험을 쌓았다. 각색 작가로 일하기도 했다. 그런데 몸담았던 작품 세 편이 모두 엎어졌다. 일은 했지만 엔딩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공백이 더 길어 보인다.

지난한 경험 끝에 <살아남은 아이>를 선보이게 됐다. 강 익사 사고로 아들을 잃은 내외 ‘미숙’(김여진)과 ‘성철’(김무성)이 그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는 아들 친구(성유빈)와 가까워지는 내용이다.
현장 경험은 충분히 했으니 내 작품을 써봐야 할 것 같았다. 학원 강사가 주인공인 이야기, 청소년이 어떤 사정 때문에 도망치는 이야기, 실화 속 인물을 토대로 한 이야기까지 정말 다양한 글을 준비했다. 그런데 공모에 계속해서 떨어졌다. 다행히 2015년 겨울에 <살아남은 아이> 시나리오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제작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영진위는 물론 성남시에서도 일부 제작 지원을 받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협약을 통해 사운드 믹싱과 색 보정, 자막 같은 후반 작업을 지원해줬다.

촬영 성사도 쉽지 않았겠지만, 개봉까지의 여정도 짧지 않았다.
일단 제작 지원을 받으면, 독립 영화는 어떻게든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정말 어려운 건 개봉이다. (배급, 상영 계획까지 어느 정도 염두에 둔 상태로 촬영을 시작하는) 상업영화와 달리 영화제에 초청받아 어느 정도 호평을 받아내야 한다. 그래야 개봉 가능성이 커진다.

총제작비는 2억이다.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야 했을 텐데.
아마 내가 배우였다면 출연을 결정하기 쉽지 않았을 거다. 출연료로 촬영장을 오가는 유류비 정도만 받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배급사를 정한 상태로 촬영을 하는 게 아니니 촬영 당시에는 개봉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여러모로 배우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김여진, 김무성, 성유빈 배우의 출연 결정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들었다.
신기하게도 세 배우 모두 시나리오를 읽은 뒤 선뜻 출연을 결정해 주셨다. 김여진 배우는 어떤 인물의 고통을 선정적인 보여주기식으로 드러내지 않는 점이 좋다고 하셨다. 한동안 자식 잃은 엄마 역할을 그만 제안받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살아남은 아이>를 읽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셨다고 했다. 최무성 배우는 아이를 잃은 ‘미숙’과 ‘성철’의 감정이 상당히 현실적이면서도, 두 사람의 감정이 역전되는 후반부 지점에서는 극적인 재미가 있다고 하셨다.

김여진 배우는 극 중 내외를 ‘유가족’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고.
유가족이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가족을 떠나보낸 아픔이 있는 이들을 ‘대상화’ 할 우려가 있으니 그 점을 생각해달라고 하셨다.


대상화란, 어떤 뜻일까.
사람들은 유가족이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유가족인데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지? 라든지, 유가족인데 어떻게 저렇게 외모를 깔끔하고 단정하게 가꿀 수 있지? 하는 식으로 되묻는다. 그런 말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미숙’의 헤어스타일같은 구체적인 사항을 결정할 때 그런 조언이 꽤 도움이 됐다.

영화는 아들을 잃은 부모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 계속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아들의 ‘의사자 지정식’같은 장면은 굉장히 현실감 있더라.
실제로 의사자 지정식을 했던 공공기관에 찾아가서 당시를 촬영한 비디오를 보여달라고 했다.

음. 공무원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겠다.(웃음)
황당했겠지.(웃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어찌어찌 연결해 보건복지부 관계자와도 통화 했다. 내가 하려는 일의 취지를 잘 설명하니 다들 도움을 주시더라.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미숙’과 ‘성철’을 잘 표현하기 위해 실제 부부가 운영하는 인테리어 가게를 무작정 찾아간 적도 있다. 일주일 동안 비질과 허드렛일을 도우며 그들의 삶에 발을 붙이고 서 있었다. 그제야 이해되는 것들이 있더라. 취재를 하면 할수록 영화는 좋아진다. 그렇게 촬영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을 시사회 때 초청했다. 신기해하고, 또 좋아하셨다.

촬영 현장도 직접 물색했다고 들었다.
전부는 아니다. 이야기 흐름상 가장 중요한 강은 그렇게 했다. 대형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인공위성 사진을 100m 단위로 훑어가면서 우리나라 남쪽에 위치한 강을 훑어나갔다. 숲과 산책로가 있고, 자갈밭이 있고, 수심이 깊어야 했다. 그렇게 생긴 곳을 막상 찾아가 보면 인공위성 사진과는 전혀 다른 경우도 많았다. 4대강 사업으로 불쑥 도로가 들어와 있다거나… 강 주변을 얼마나 파헤쳐 놨던지 이명박 대통령이 다 미워지더라.(웃음) 아무튼 임진강, 홍천강, 금강의 구석 구석 스무 군데 넘는 위치를 일일이 확인했다. 사실 재미도 있었다. 단편 영화를 찍던 시절부터 촬영 장소 물색하는 일을 좋아했다. 잘 모르는 곳에 가서 그 지역 음식을 먹고 며칠을 지내면 일종의 재충전이 되는 느낌이다.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상, 특정 순간부터는 등장인물의 감정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촬영을 진두지휘하면서 감정적으로 힘겨운 순간은 없었는지.
김여진 배우의 연기에 압도돼 컷 타이밍을 놓친 적이 있다. 넋을 잃고 화면을 바라봤다. 스태프 말에 의하면 목이 메어서 갈라지는 목소리로 겨우 “커어엇~” 소리를 냈다고 하더라. 지금까지도 그걸 가지고 나를 놀려먹는다.(웃음) 함께 일하던 피디님은 김무성 배우의 연기를 보고 오열한 적도 있다. 옆에서 ‘흑, 끄윽’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길래 바라보니 완전히 울음이 터져버렸더라. 연기하는 배우가 가장 힘들었겠지만, 연출자나 스태프도 그들의 연기에 몰입하고 동화된다.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 힘들 때도 물론 있었지만, 보통은 ‘오늘 좋은 장면을 찍었구나’ 싶은 마음에 힘이 났다.

당신은 왜 이야기를 만드는가. 영화란 어떤 의미일까.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1976)를 본 뒤로 많은 게 바뀌었다. 주인공 ‘트래비스’가 왜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한 건지 너무나 궁금하더라. 그전까지는 분기마다 블록버스터 영화나 한 편 보는 관객이었던 내가 무언가를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바라보기 시작한 거다.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누군가는 그러기 위해 심리학을 하고, 철학을 하고, 소설을 쓴다. 나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곳으로 향하는 방법으로 영화를 택한 거다.

앞으로 관객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어떤 것들인지.
여전히 꾸역꾸역 쓰고 있는데...(웃음) 지금 단계에서 말할 수 있는 건 여성 형사가 연쇄 살인범을 추격하는 이야기라는 정도다. 추격에 집중하는 장르적인 색깔보다는 여성 형사가 겪게 되는 감정의 변화에 집중하는 조용한 범죄물에 가까울 것 같다. 오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투자, 배급사에게 자세한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새로운 영화는 <살아남은 아이>보다 더 큰 예산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욕심은 있다. 제작비가 많이 들면 영화의 완성도도 높아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예산이 올라가면 제약도 그만큼 커진다. 영화 내용에 맞는 예산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 자체가 경험이 많이 쌓여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아침에 음악을 틀어놓고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게 그렇게 좋다.(웃음) 개봉을 준비하면서 평생 겪지 못할 비일상적인 일을 많이 경험했다. 라디오에 출연한다든지, 안성기 선배님을 갑자기 만나게 됐다든지… 신기한 하루 속에서도 내 일상을 지키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즐겁다.


2018년 9월 5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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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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