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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우울한 이미지? 배우로서 잘살아왔다는 뜻 <여곡성> 서영희
2018년 11월 13일 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추격자>(2007)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로 배우 서영희는 겁에 질리거나 고통에 잠식당한 이의 얼굴을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냈다. 최근 개봉한 리메이크 공포물 <여곡성> 역시 특유의 서늘함을 지닌 그의 얼굴을 십분 활용한 작품이다. 어느덧 서영희 하면 자연스럽게 어둡고, 우울하고, 무거운 이미지부터 떠오르는 상황. 그는 그게 “배우로서 잘살아왔다”는 증표라고 말한다. 오히려 확실하게 기억나는 작품이 하나도 없는 배우가 슬픈 것 아니겠냐며, 한 가지 이미지라도 분명하게 떠올리게 만드는 배우는 그만큼 대중의 신임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말이다.

한국 고전 공포물 <여곡성>(1986)을 리메이크한 동명의 작품으로 돌아왔다.
<여곡성>은 배우 입장에서는 잘해야 본전인 영화였다. 원작이 대단한 수작이다. 출연하신 배우들의 열정이 너무 커 내게 짐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분들은 CG 없이 모든 걸 실제로 다 연기하셨다. 피눈물 흘리는 장면을 위해 실제로 눈에 무언가를 넣고, 지렁이를 먹는 장면에서는 실제 지렁이를 먹었다. 항공 촬영까지 가능할 정도로 영화 기술이 좋아졌지만 그런 대단한 열정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그런 부담을 이겨내야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들이 기피하는 역할을 오히려 더 탐내는 경향도 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도 모든 사람이 안 하려고 할 것 같은 느낌의 영화 아니었나.(웃음) 예쁘지도 않고, 망가져야 하니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역할을 맡아서 나만의 무언가를 더하면 반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곡성>에서는 심상치 않은 귀기(鬼氣)가 맴도는 ‘이경진 가문’의 안방마님 ‘신씨 부인’을 연기했다. 원작의 ‘신씨 부인’은 기괴한 분장으로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분장 면에서는 얼굴에 피를 조금 묻힌 것 외에는 특별할 게 없었다. 대신 야망과 위엄으로 가득한 ‘신씨 부인’의 존재감을 어떻게 더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평소보다 더 다부져 보이게끔 힘줘 연기했던 게 생각난다. 그런 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도 하면서 말이다.

한 많은 귀신 ‘월아’가 ‘신씨 부인’의 몸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야밤에 닭 피를 빨아먹는 장면 등 꽤 고생스러운 촬영을 했겠더라.
손발이 얼 정도로 추웠던 지난해 겨울 촬영을 했다. 닭 피가 꽁꽁 얼어버려 제대로 뿜어져 나오지를 않더라. 피를 겨우 녹여서 촬영하면 바로 다시 얼어붙는 바람에 주르륵 흐르는 느낌도 잘 나지 않고 말이다. 결국 손이 동상에 걸렸는데, 웬 잔가지가 손에 수도 없이 박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바보처럼 손에 닭 털이 박힌 줄로만 알았는데 난로 앞에 가니 싹 낫더라.(웃음)

<여곡성>은 공포물인 동시에 ‘신씨 부인’과 ‘옥분’(극 중 손나은), ‘월아’, 그리고 주변 인물까지 여성 캐릭터가 많은 작품 축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출연에 욕심을 냈던 건 아니다. 소복이 등장하는 한국 공포 영화의 고전미가 그리웠던 찰나였다. 이불을 덮어쓰고 ‘전설의 고향’을 기다리던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꺼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이야기까지 여성 캐릭터 중심이었으니, 내게는 행운 같은 작품이다.

당신 말대로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한국 고전 공포 영화가 워낙 오랜만인지라 반가운 마음이 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곤지암>(2016)이나 <겟아웃>(2017) <해피 데쓰데이>(2017) 처럼 젊은 층을 끌어들이는 트렌디한 작품과 비견될 수도 있다.
아마 한국 고전 공포물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를 품고 극장에 오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웃음) 내 입장에서도 마치 할로윈 데이를 즐기듯 편하게 영화를 보러 와줬으면 한다. 어떻게 보면 <여곡성>은 굉장히 이해하기 쉬운 영화다. ‘신씨 부인’과 ‘옥분’은 고부 관계 아닌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불편한 사이 말이다.(웃음) 경험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접근한다면 쉽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본다.

함께 호흡한 ‘옥분’역의 손나은에 대해서는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첫 영화 주연작으로 공포물을 선택한 것 자체가 어려운 도전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워낙 고민도, 걱정도 많은 친구라 준비를 철저하게 해오더라. 그 추운 촬영장에서 더러운 물이 가득 고여있는 세트 바닥에 내쳐지는 연기를 하는데도 단 한 번도 못 하겠다는 말이 없더라. 여러모로 나만 잘하면 되는 상황이었다.(웃음)

본래 공포,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가.
사실 공포영화 하면 <주온> 시리즈처럼 귀신이 튀어나와서 깜짝 놀라게 되는 단순한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곡성> 유영선 감독님 덕분에 공포영화 역시 스토리가 탄탄할 수도 있고, 장면이 예쁠 수도 있고, 관객을 울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감독님이 외장 하드에 넣어 전해주신 공포, 스릴러 영화가 수도 없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돌로레스 클레이븐>(1995)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장르의 폭이 이렇게나 넓은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정짓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었다.

<스승의 은혜>(2006) <추격자> <궁녀>(2007)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마돈나>(2014) 까지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의 작품에 다수 출연했다. 이미지 고착에 대한 걱정이 있는가.
물론 좀 더 밝고 쾌활하고 명랑한 이미지로 변신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하지만 배우를 떠올렸을 때 기억나는 영화가 하나도 없다면 그게 더 슬픈 것 아닌가 싶다. 우울하고, 힘들어 보이는 이미지 또한 나라는 배우가 보여준 확고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기억해주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앞으로 서서히 나에게 맞는 모습을 찾아가며 변신하면 된다고 본다. 또다시 내게 박수와 칭찬을 안겨줄 작품을 기대하고 있다.

강렬한 영화를 찍고 난 뒤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지.
남들도 다들 힘들게 사는데, 내가 좀 힘들다고 해서 뭐…(웃음) 뭔가를 오래 담아두고 끙끙 앓는 성격이 아니다. 빨리 털어버리는 연습을 평생 하면서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재미있는 기억만 남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일상은 행복하니까, 작품 속 불행을 훌훌 잘 잊어낼 수 있는 것 같다.

1999년 데뷔해 드라마 <천 번의 입맞춤>(2011~2012) <세 번 결혼하는 여자>(2013~2014)와 영화 <탐정> 시리즈 등 어둡지 않은 역할도 다수 맡았다. 다음 작품은 장르성 강한 드라마 <트랩>이라고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직업, 참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무슨 일을 했는지 대중에게 전부 보여지는 일이라 노력한 티가 많이 나는 것 같다.(웃음) 나이 제한도 없고, 내 삶과는 다른 또 다른 삶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딸이 있는 거로 안다. 좋은 직업이라고 하니... 배우가 되겠다고 하면 지원해 주겠는가.
먼저 이 길을 걸은 선배로서 객관적인 지적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진심으로 연기를 하고 싶은 건지, 그저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겠다는 건지 말이다. 만약 엄마도 배우니까 나도 해보겠다는 정도의 말을 한다면 아마 너무 화가 날 것이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선택했으면 좋겠다. 남에 의해 선택된 것 같은 삶을 살지는 않았으면 한다.

당신의 연기 시작은 어떤가. ‘진심’이었던가.(웃음)
사실 친구 따라서 해보고 싶다고 했다.(하하하) 그래서 아빠한테 크게 혼나기도 했다. 그때 날 말려 주신 걸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웃음) 그래도 재능 없는 일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연기가 나을 것 같았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지금 이 순간.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온전한 시간 아닌가. 은행 떨어지는 가을날을 만끽하며 삼청동으로 인터뷰를 하러 오는 이 길이 얼마나 좋던지. 가족이 늘어나면서 이렇게 직업 활동으로 집 밖에 나올 수 있다는 게 얼마만큼 행복한 일인지 깨달았다.(하하하)

사진 제공_스마일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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